음악가가 자신의 작업 과정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몽땅 털어놓는 코너. 어디에서도 접하지 못할 초미세한 이야기로 리스너들에게는 색다른 감상법을 제시하고, 베드룸 프로듀서들에게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정보를 공유한다. 장비 애호가들에게는 흥미진진한 볼 거리와 읽을 거리가 될 것이다. 첫 번째 주인공은 전자 음악가 윔(WYM)이다. 지난 해 발매한 [After Moon]은 둔중한 비트와 강렬하면서도 감성적인 멜로디를 자랑한다. 2015년 한국대중음악상 일렉트로닉 앨범 부분 후보에 올라 음악 애호가뿐만 아니라 평단에서도 작품의 완성를 인정받았다. 음악만큼 신비의 베일에 싸인 그를 만날 수 있는 세 번의 기회 중 두 번째 시간이다. | 진행: 정은정 cosmicfingers99@gmail.com 안녕하세요. 일렉트로닉 뮤지션 윔(WYM)입니다. 정규 1집을 발매한 지도 벌써 5개월째에 접어들었네요. 청취자인 여러분들은 완성된 하나의 상품으로서 앨범을 듣고 평가를 하리라 생각합니다. 보통은 앨범이 어떤 식으로 만들어졌는지, 만들어지게 된 배경 등을 알지 못한 채 음악만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저는 음악을 들으면 관련된 작업기나 아티스트가 생각한 것들을 찾아보는 직업병이자 버릇을 갖고 있는데요. 그 동안 읽은 아티스트들의 작업기를 통해 음악을 바라보는 관점, 작업에 임하는 자세, 기술적인 녹음, 믹싱 방법 등 많은 영향을 받아왔던 터라 저의 음반 작업기 또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다룰 곡은 [After Moon]의 2번 트랙이자 더블 타이틀 곡 중 하나인 “Moon River”입니다. 앨범 수록곡 중 가장 먼저 쓴 곡이기도 합니다. 때는 2012년 12월의 어느 날로 기억합니다. 굉장히 슬픈 날이었어요. 갑자기 맞닥뜨린 현실을 믿을 수 없었고, 벗어나고 싶었어요. 그래서 앨범의 콘셉트도 어두운 미지의 세계로 여행하는 이미지가 되었어요. 이 곡은 슬픈 감정으로 만든 곡이지만, 오히려 몽환적인 느낌을 품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슬플 땐 잠에 취해 꿈을 꾸는 게 가장 도움이 되거든요. 그때는 이 곡으로 저의 마음을 치유하고 싶었어요. 무중력 상태에 몸을 맡기고 지구에선 볼 수 없는 달의 뒤편을 향해 멈추지 않고 유영하는 기분. 치유의 방법치고 좀 색다른가요? 곡을 감상한 다음 작업기를 읽으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거예요. 여러분도 한번 눈을 감고 느껴 보세요. After Moon by WYM “Moon River”는 처음부터 끝까지 쉼 없이 물 흐르듯 전개되는 구조를 갖추고 있어요. 구간의 반복이나 1절과 2절의 구분도 모호하며, 엔딩에 다다를 때까지 새로운 멜로디 라인이 계속 등장합니다. 멈출 수 없이 유영하듯이. 데모 버전은 현재 버전보다 BPM도 10 정도 빠르고 드럼 비트도 간편하게 TR-606 드럼머신으로 작업했는데요. 계속 진행하면서 박자도 조금 늦추고 드럼 파트도 드럼머신 겸 샘플러인 MPC 3000으로 드럼 소스를 샘플링하여 사용했습니다. 곡에 등장하는 늘어진 드럼 소리는 따로 오디오 딜레이 이펙트를 사용한 건 아니고 MPC 3000에 내장된 자체 미디 딜레이를 사용했어요. 쫀득한 패드의 맛이 일품인 MPC 3000은 지금 제 곁을 떠나고 없네요. 윔의 장비: MPC 3000 신시사이저 사운드는 신시사이저스닷컴(Synthesizers.com) 사의 모듈러 신스, Roland JX-3P, Yamaha DX-100로 만든 소리를 녹음했습니다. 많은 음악가들에게 사랑받은 로랜드(Roland) 사의 아날로그 신스는 크게 Jupiter 시리즈와 Juno 시리즈를 들 수 있는데요. 제가 Juno 시리즈 대신 로랜드의 아날로그 신스인 JX-3P를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매우 좋아하는 뮤지션인 M83의 작업실을 담은 영상에 그 답이 있습니다. 단지 좋아하는 음악가가 사용하는 장비라서 관심을 두게 된 건 사실이지만 볼수록 매력이 느껴졌어요. 결국 직구족과 악기 덕후들의 보물섬인 이베이(Ebay)를 통해 일본에서 공수해 왔습니다. 바다 건너 온 JX-3P에 전원을 꽂고 건반을 짚었던 순간 외쳤던 한 마디는 바로 “오잉, M83이 여기 있네!”였습니다. 시세는 제가 구매한 4년 전의 가격보다 올랐지만, 여전히 Jupiter나 Juno 시리즈보다 저렴해요. 특히 JX-3P는 Jupiter와 Juno의 사운드 특성 중간에서 둘의 뉘앙스를 작게나마 구현할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요즘도 제가 가장 즐겨 사용하는 폴리 신스 악기입니다. 신시사이저스닷컴의 모듈러 신스는 신스 덕후라면 결국 돌고 돌아 도착하게 된다는 모듈러 신세시스(Modular Synthesis) 세계로 저를 이끈 장본인입니다. 다프트 펑크(Daft Punk)도 <트론(Tron)> OST와 [Random Access Memories] 앨범에서 모드칸(Modcan)이라는 회사의 벽만 한 모듈러 신스 시스템을 사용했습니다. EDM 신을 이끄는 데드마우스(Deadmau5)의 작업실 뒤편에 벽처럼 자리 잡고 있는 것도 모드칸의 제품입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그들의 재력과 능력을 따라가겠습니까. 모드칸의 모듈러 신스는 사전 주문으로만 판매하며 오로지 수작업으로 제작하여, 비싸기로 유명하고 수개월이 지나 잊을 만하면 배송된다는 신스입니다. 물론 더 위로 올라가면 오리지널 무그(Moog) 모듈러와 부클라(Buchla)라는 것도 있습니다. 반갑다, 제군. 나는 모드칸 모듈러 신스 시스템이라고 한다. 치명적인 덩치와 그보다 더 치명적인 가격을 겸비하고 있지. 제가 갖고 있는 신시사이저스닷컴의 모듈러는 매우 저렴한 축에 속하는 무그 모듈러의 복각 제품입니다. 모듈러 신스의 장점이라면 사용자 취향에 맞춰 신시사이저의 부속을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현재 모듈러 신스의 기본 포맷은 크게 MU(Moog Unit)와 Eurorack으로 나뉩니다. 두 포맷에 맞춰 여러 신스 회사에서 제품을 만들고, 사용자는 원하는 부속들을 포맷에 맞춰서 자기만의 신스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남자들이 가계를 망치는 3대 취미로 흔히 자동차, 사진, 오디오를 들죠. 신스 덕후들이 가계를 망치는 지름길로 제일 먼저 모듈러 신스를 꼽습니다. 얘기가 너무 멀리 와버렸네요 하하. 신스 얘기는 일단 여기까지만 하죠. 윔의 장비: 신시사이저스닷컴 모듈러 신스와 로랜드 JX-3P 앨범 전반에 걸쳐 위에 언급한 아날로그 신시사이저들로 만든 소리를 많이 녹음했는데요. 앨범 작업 당시 모든 외장 전자악기 레코딩 체인은 SSL X-Panda Line/Summing Mixer를 통해서 Burl B2 Bomber AD 컨버터로 녹음을 받는 방식이었어요. SSL의 훌륭한 Line Amp 능력과 Burl이 내장한 변성기(Transformer) 덕분에 고가의 프리 앰프가 필요 없는 체인이었죠. 두 장비 또한 제 곁을 떠나고 없어요. SSL X-Panda는 아쉽게도 재테크 계획에 따라 떠났고(장비 재테크라는 분야가 있답니다), Burl 컨버터는 앨범 제작 비용을 충당하느라 어쩔 수 없이 떠나 보냈습니다(앨범 내고 남은 장비가 없어요 흑). 국내에 잘 알려진 장비가 아니라서 누가 데려갈까 궁금했는데, 어라 현관문 앞에 나타난 사람은 디제이 수리(Soolee)였습니다. 장비 거래로 만나는 인연들이 꽤 되네요. 윔 프로젝트는 1인 밴드의 형식를 추구하지만, 인생은 혼자 사는 게 아니듯 음악 역시 혼자 하면 재미없잖아요. 그래서 음악가 지인들이 도움을 받았습니다. “Moon River”도 세션 연주 녹음이 있었는데요. 소프라노 색소폰 녹음은 재즈 색소포니스트 신현필 씨가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참여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잘 안 들릴 수도 있지만 어쿠스틱 기타 소리 또한 곡에 들어 있는데 기타리스트 백승주 씨가 연주했습니다. 힘들게 녹음한 기타가 왜 들릴 듯 말 듯한지 궁금할 수도 있을 텐데요. 녹음한 기타 연주를 리터치하여 다른 사운드로 만들어서 사용했답니다. 레코딩 체인은 Stellar CM-6 튜브 콘덴서 마이크, Vintage Design M73 EQ73D 마이크 프리 EQ, Antelope Orion 32 컨버터 인터페이스였습니다. Stellar CM-6 튜브 마이크는 외부 스튜디오 녹음을 제외하고 모든 보컬과 악기 녹음 때 사용한 마이크입니다. 저는 데모 녹음은 항상 싸고 튼튼하며 전 세계 녹음실에 있는 Shure SM57로 해왔는데요. 앨범 녹음을 시작하며 콘덴서 마이크가 매우 필요한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집에서 보컬 녹음을 해야 했거든요. 이제껏 소장용 마이크에는 투자를 해본 적이 없었기에 부랴부랴 인터넷 검색 신공에 들어갔습니다. 보컬 마이크계의 슈퍼스타 중 하나인 Neumann U47 튜브 마이크부터 살펴봤습니다. 검색은 항상 최고급부터 시작해야 해요. 그래야 나중에 덜 슬프거든요. 빈티지 U47 마이크 사진을 보며 입맛을 다셨지만, 천만 원이 넘는 가격표를 보고 황급히 검색창에 ‘U47과 비슷한 음질 중에서 가장 싼 마이크(Cheapest mic that sounds like u47)’를 입력했습니다. 저와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걸 확인하자 외로움은 금세 사라지더군요. 그렇게 Stellar CM-6라는 마이크를 만났습니다. 오디오 시장에서 복각의 세계 또한 크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과거 빈티지 장비에 사용된 부품이나 유사한 것을 가지고 개인 제작자와 오디오 회사에서 복각 제품을 만들어 새 이름으로 상품화하는 것이죠. 복각 제품 또한 다양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Stellar CM-6는 고가의 U47 복각 제품을 만드는 펠루소(Peluso) 마이크가 사용하는 동일한 마이크 캡슐을 중국 제조 공장에서 받아 제작하며, 가격은 1/5 정도 저렴하기 때문에 가격 대 성능비를 찾는 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이름도 마음에 들고 30만 원대라는 가격 또한 운명 같았습니다. 한국에서 아무도 쓰지 않은 마이크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음반 작업에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윔의 장비: 스텔라 CM-6 튜브 마이크 보컬 녹음은 집에서 Stellar CM-6 마이크와 UA 아폴로(Universal Audio Apollo)의 Unison Pre를 사용해서 진행했습니다. UAD Neve 1073마이크 프리 플러그인을 사용한 걸로 기억해요. 아무런 방음 장치가 되어 있지 않은 침실에서 콘덴서 마이크로 녹음을 하는 건 기본에 어긋나는 걸지도 모르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가족들이 모두 잠들어 있는 새벽, 방에서 홀로 빨간 버튼을 누르며 녹음한 보컬이 가장 좋았거든요. “Moon River”의 곡 분위기를 지배하는 건 딜레이와 리버브 등의 공간계 이펙트 활용이 큽니다. 여느 프로듀서처럼 저 또한 다양한 종류의 리버브와 딜레이를 사용하는데요. 짧은 리버브, 중간 길이 리버브, 매우 긴 리버브, 짧은 딜레이, 긴 딜레이 등 여러 이펙트를 조합해 곡을 완성합니다. 플러그인 이펙트는 UAD EMT 140, EMT 250, Cooper Time Cube Delay, Valhalla Shimmer 등을 사용했고Lexicon PCM 70과 Roland RE-201 Space Echo 등 외장 아웃보드 이펙터로 깊이감을 더했습니다. 플러그인이 편의성이란 장점이 있긴 하지만 하드웨어로만 얻을 수 있는 마지막 2%의 무언가가 음악을 좀 더 입체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해요. 데모 보컬 트랙 중에 SM57 마이크를 RE-201에 직결해서 녹음한 게 있어요. 나중에 재녹음을 하려고 봤더니 RE-201가 중고 제품이었던지라 상태가 안 좋아 사용하지 못한 기억이 나네요. 그래서 UAD RE-201플러그인으로 같은 질감을 내려고 했는데 그 느낌이 나지 않아 데모로 녹음한 부분을 그대로 음반에 사용했답니다. UAD RE-201은 분명 복각이 매우 잘된 플러그인이지만, 이렇게 가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네요. 앨범에서 “Trying”을 제외하고 모두 제가 직접 믹스했는데요. 이번 앨범의 공동 프로듀서이자 뮤트(Mute)로 활동하는 이병렬 씨의 개인 스튜디오에서 작업했습니다. 진행 상황을 지켜보면서 제가 지치고 길을 잃을 때마다 조언해 준 동료입니다. 공동 작업자는 곡 작업부터 믹싱까지 혼자 해야 하는 상황에서 작업물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더구나 좋은 장비와 모니터링 환경을 갖춘 작업실을 아낌없이 빌려주어서 제겐 은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믹싱은 Pro Tools 10 HD를 기반으로 Lexicon PCM 70, Eventide H3000 Harmonizer, SPL Transient Designer 등의 외장 아웃보드로 프로세싱한 스템(Stem)을 SPL Mixdream 서밍 믹서로 최종 아날로그 서밍하여 Antelope Orion 32컨버터로 녹음을 받았습니다. 이번 앨범의 모든 곡을 믹싱할 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유니버설 오디오(Universal Audio)의 UAD-2 DSP 플러그인입니다. 아날로그 서밍한 믹스 마스터의 인서트 체인이 사실 모두 UAD-2 플러그인이었던 것이죠. SSL G-Comp, Pultec EQP-1A, Ampex ATR-102, Dangerous Bax EQ 모두 하드웨어로 있으면 매우 좋았겠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에서 UAD-2는 참 고마운 존재였답니다. 작업기를 쓰면서 정리하다 보니 작업하던 때가 새록새록 기억나면서 많은 얘기를 계속하게 되네요. 오늘은 이만 마치고 다음 주에는 3번 트랙 “Light Years”로 이어갈게요. 끝으로 “Moon River”의 영감이 되어준 문리버 님께 이 곡을 바칩니다. | 윔(WYM) info@thewym.com 윔이 사용한 프로그램: Pro Tools 10 HD와 UAD-2 플러그인 Leave a Reply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CommentName* Email* Website 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