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프리티랩스타가 끝났다. ‘랩스타가’와 ‘끝났다.’ 사이엔 ‘1시즌이’ 라는 표현이 붙어야 한다. 쇼미더머니 스핀오프로 기획된 이 프로그램의 평균 시청률은 케이블TV 기준으로 낮지 않은 1%. 발표하는 곡마다 음원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고 출연자의 이름은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 6회로 예정됐던 이 프로그램은 2회 연장 방영됐고 현재 2시즌 제작이 확정됐다. 이 정도면 성공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 웨이브x네이버연예 칼럼 프로젝트 [스.압.주.의] “예쁜 척하지 않는 실력파 여자 래퍼들의 거친 힙합이 격돌한다!” ⓒ엠넷 언프리티랩스타의 룰은 단순하다. 주인공은 여성 래퍼. 이들은 유명 프로듀서와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제작될 6트랙의 컴필레이션 앨범에 자신의 랩을 담기 위해 서바이벌을 펼친다. 기획만으로는 나무랄 곳이 없어 보인다. 서바이벌이라는 형식은 ‘경쟁’을 통해 성장한 힙합이라는 장르와 어색하지 않다. 남성 중심의 힙합 신에서 여성 래퍼가 설 자리는 적다. 그들에게 프로그램은 호의적으로 실력을 드러낼 기회를 준다. 굳이 기획만으로 흠을 잡자면 토너먼트나 리그와 같은 형태가 아니라 탈락자도 (갑작스러운 제이스의 투입으로 릴샴이 탈락했지만) 결승전도 없어 긴장감 있는 서바이벌이 될 수 있을까 정도인데 여성 래퍼에게 기회를 준다는 대의를 우선시한다면 되려 이 점은 ‘착한’ 룰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프로그램이 끝난 지금 이 프로그램의 긍정적인 부분은 어떻게 구현됐을까? 출연자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내세우는 공정한 경쟁을 통해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고 기회를 얻었을까? 아쉽게도 언프리티랩스타엔 순수한 서바이벌로 즐기기에 이를 방해하는 위계의 구도가 촘촘히 얽혀 있었다. 언프리티랩스타에 등장했던 대사를 통해 이를 짚어 보자. 언니(오빠)와 동생 “누가 제일 나이가 많은가?” ⓒ엠넷 출연자가 모이자마자 제시는 위와 같은 대사로 ‘언니’와 ‘동생’을 나눴다. 타이미는 첫 트랙의 프로듀서가 지코라는 이야기에 “프로듀서로서는 저보다 어리지 않나요?”라고 묻는다. 나이 많고 실력 있는 래퍼와 나이 적고 실력이 부족한 래퍼가 ‘엄마’와 ‘딸’로 구분 지어지고 이들은 ‘내새끼’ ‘울엄마’라는 표현을 쓰며 서로를 응원한다. 산이는 종종 “오빠가…”라는 말로 멘트를 시작한다. 시작부터 끼어드는 언니와 동생의 구도는 동등한 위치에서 실력을 겨루는 랩 컴피티션에 집중할 수 없게 한다. 제시는 돌발 디스 랩에서 타이미를 디스를 하기 위해 가장 먼저 “You are not 내 언니 아니야”를 뱉어야 했다. 이는 비단 언프리티랩스타뿐 아니라 ‘빠른’이라는 구분이 있고 반말 하나에 연예 뉴스 란이 들썩일 만큼 나이가 만드는 위계에 민감한 나라에서 힙합이 겪어야 할 필연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남성 래퍼(프로듀서)와 여성 래퍼 “귀엽고 앙증맞고” ⓒ엠넷 한국 힙합 신에서 여성 래퍼가 가장 크게 이슈가 됐던 건 졸리브이로 시작된 디스전이었을 것이다. 졸리브이 디스의 주된 내용 중 하나는 실력 없는 여성 래퍼의 섹스 어필이었다. 여기에 상대였던 타이미와 키티비는 여성으로서 섹스 어필은 무기라는 내용으로 대응했다. 언프리티랩스타는 어떤 입장일까? 당장 제목만으로 판단하기엔 ‘여성’보다는 ‘래퍼’에 방점을 찍은 것 같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구도와 외부의 시선은 필연적으로 이들을 ‘여성’으로 인식하게 한다. 서바이벌의 참가자를 제외한 나머지는 마지막 트랙의 보컬 에일리를 제외하고 MC인 산이까지 모두 남자다. 이들은 선배 래퍼이며 프로듀서이고 심사위원이다. 남자들은 여성 참가자가 트랙에 참가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결정하고 랩을 잘 못 하면 혼내며, 때론 서바이벌과 상관없는 싸움을 붙인다. 엄연한 위계가 존재하는 셈이다. 이 점이 가장 도드라졌던 때는 15명의 남성 래퍼가 평가단으로 등장한 팀워크 배틀이었다. 동료 남성 음악가가 단체로 평가한다는 것부터가 위압적인데 바스코의 대사처럼 그와 무관한 평가나 리액션이 보이고 산이는 ‘지민이 만세!”를 외친다. 웨이브에 실린 미묘의 칼럼처럼 이는 ‘남자들의 여자 품평회’처럼 보였다. 가요계와 힙합 신(scene) “음원차트 No.1 최정상 프로듀서입니다.” ⓒ엠넷 힙합은 장르 음악이고 장르 음악엔 고유의 룰과 멋이 있다. 힙합에서 중요한 룰과 멋 중 하나는 보여주고 증명하는 것이다. 증명의 대상은 주로 실력, 진정성 그리고 성공이다. 진정성과 실력으로 성공을 거두는 건 힙합 신에서 최고의 증명인 셈이다. 힙합 신의 구성원은 이를 인정하고 존경을 보낸다. 진정성과 실력 그리고 성공이 공존할 수 있는 세계의 일이다. 한국은 상황이 복잡하다. 실력과 진정성은 자신의 노력으로 증명할 수 있다. 성공은 쉽지 않다. 우선 힙합 신의 규모가 작다. 한국의 음악 시장은 대형 기획사의 힘이 크고 이들과 미디어 그리고 유통 플랫폼이 촘촘히 얽혀 있다. 근데 여기서 성공을 증명하는 이가 등장한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한국 음원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는 힙합 또는 랩이 들어간 곡 종류를 비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쉬운 랩에 가요 풍의 멜로디가 코러스로 들어간 곡 (2) 팬 베이스가 많은 아이돌이 발표한 힙합 곡 (3) 쇼미더머니와 언프리티랩스타에서 방송을 탄 곡. 언프리티랩스타에 코러스를 부를 보컬로 출연한 강남이 음원 성적 때문에 아이돌인 지민이 자신에게 왔으면 좋겠다고 했던 건 이 모두를 함축하는 대사였다. 이를 반대로 말하면 코러스에 보컬이 들어가지 않고 어려운 랩을 하거나, 아이돌이 아니거나, 쇼미더머니나 언프리티랩스타에서 방송을 타지 않고 곡을 발표하면 음원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힙합이라는 장르 자체와는 크게 상관없는 이러한 성공을 증명이라 할 수 있을까? 단적인 예로 이 프로그램의 MC 산이를 들 수 있다. 그는 뛰어난 실력으로 언더그라운드에서 이름을 알린 후 연예 기획사에 들어가 (1)의 방식으로 음원차트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힙합 커뮤니티에서의 그의 평가는 인기가 올라갈수록 반비례해 낮아졌다. 그의 실력과 진정성을 문제 삼은 것이다. 그가 버벌진트를 디스하는 곡이 포함된 믹스테잎을 발표하며 랩지니어스라 불렸던 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이에 대해 그는 인터넷에 공개한 ‘쇼유더머니’라는 곡에서 ‘작년부터 낸거 내꺼 4곡 1위 니 편견 편협 편육보다 못한 귀가 대중보다 낫다 생각치마 이건 진리’라는 랩으로 답했다. 세상의 일을 흑과 백으로만 나눌 수 있다면 누구보다 이 원고를 한참동안 붙잡고 있는 나부터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쇼유더머니’는 대중의 사랑을 받을수록 좋은 곡이라는 가요계의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디스 랩과 스왝이라는 힙합의 방식을 택한다. 산이가 브랜드뉴뮤직과 계약하고 인터넷으로 공개한 ‘Rap Circus’ 중에서 ⓒ브랜드뉴뮤직 산이의 표현대로 ‘이런 곳에 안 나와도 될’만큼 아이돌 그룹 AOA로 성공한 지민은 굳이 언프리티랩스타에 출연하고 랩몬스터는 워렌지가 참여한 믹스테잎을 발표한다. 힙합 신에 있는 이는 마이너 리그에서 메이저 리그에 오르듯 가요계에 투신하고 가요계에서 일정 이상 성공을 거둔 이는 힙합 신에 콤플렉스라도 가진 듯 종종 자신을 증명하려 든다. 그리고 이런 혼란스러운 세계에 언프리티랩스타는 마지막 프로듀서로 엠씨몽을 선택했다. 현재 그는 무얼 하든 논란이 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긴 하지만 힙합 커뮤니티에서는 그의 자격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힙합 웹진 리드머는 ‘랩 가요의 제왕, 드디어 한국 힙합 씬에 왕림하다’라는 칼럼을 써 한국 힙합 신의 현실과 프로그램의 취지인 ‘힙합의 대중화’에 딱 어울리는 섭외라며 비꼬았다. 컴필레이션의 수록곡 한 곡을 차지하는 경쟁이었지만 프로그램은 세미 파이널과 파이널 그리고 전과 다른 우승 기념품을 통해 마지막 곡을 차지하는 걸 최종 우승처럼 다뤘다. 엠씨몽을 수식하는 “음원차트 No.1 최정상 프로듀서”라는 멘트에는 거짓이 없다. 다만 이를 통해 프로그램의 가치가 어디에 방점을 찍고 있는지 보여줬을 뿐이다. CJ E&M과 출연진 “(출연)하면 정말 좋은 기회죠” ⓒ엠넷 지금까지 등장한 것 중 가장 자발적인 위계다. 출연을 결정하고 계약서에 사인하는 건 어디까지나 본인의 몫이니 말이다. 계약의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여기에 출연하는 래퍼는 프로그램에서 ’30시간 촬영’과 같은 고된 노동은 물론이고, 스스로 탈락자를 정하고 갑자기 새로운 출연자의 등장으로 탈락하는 등의 일방적인 룰을 감내했다. 같은 CJ E&M 계열의 프로그램 ‘아트스타코리아’에서 차지량이 공개한 계약서를 참고하면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이 창작한 모든 것에 관한 권리를 넘겼을 것도 짐작할 수 있다. 어디까지나 이는 거래다. 대신 출연자는 8주 동안 평일 황금시간대 예능에 출연해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언프리티랩스타의 출연자가 힙합 신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 건 여성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의 실력을 증명하지 못한 이유도 있다. 오히려 일부 출연자는 여성 래퍼이기 때문에 크게 받았던 주목을 프로그램을 통해 까먹기도 했다. 언프리티랩스타는 화제를 모을 수 있는 쇼를 만들었고 이들의 음악을 음원차트에 올려놓으며 영향력을 드러냈다. 이 위계가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도 이어진다면 어떨까? 작년 말 CJ E&M은 7개의 레이블과 손을 잡고 본격적으로 음악 제작을 선언했다. 이 와중에 엠넷에서 힙합 전문 레이블을 만든다는 소문도 들려 온다. 제작진이 쇼미더머니부터 외치던 ‘힙합의 대중화’가 실제로 되었는지는 의견이 갈리겠지만 한국 힙합 신에서 쇼미더머니의 힘은 확연히 볼 수 있을 만큼 커지고 있다. 이미 영화계는 제작, 투자, 배급, 상영관, 부가판권 판매까지 CJ E&M의 관련 산업 독점과 그에 관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 힙합은 언더그라운드에서 출발했다. 소수지만 언더그라운드에서만의 활동으로 성공을 거두는 이도 생기고 일부는 가요계로 넘어가 음악성이 바뀌었다는 비판을 받으며 활동을 하기도 한다. 한쪽에서는 힙합 아이돌이 제작되고 누군가는 아이돌로 데뷔한 뒤 인기를 발판으로 힙합을 하는 우회 상장을 시도한다. 쇼미더머니와 언프리티랩스타 더 나아가 CJ E&M은 한국 힙합 신 그리고 한국 음악 신에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스파이더맨의 대사처럼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 이들은 자신의 책임을 어떻게 지게 될까. 이 프로그램의 제작진은 다음 프로그램의 아이템으로 EDM을 지목했다. | 하박국(일렉트로닉 뮤직 레이블 [영기획] 대표) Leave a Reply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CommentName* Email* Website 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