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가 자신의 작업 과정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몽땅 털어놓는 코너. 어디에서도 접하지 못할 초미세한 이야기로 리스너들에게는 색다른 감상법을 제시하고, 베드룸 프로듀서들에게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정보를 공유한다. 장비 애호가들에게는 흥미진진한 볼 거리와 읽을 거리가 될 것이다. 첫 번째 주인공은 전자 음악가 윔(WYM)이다. 지난 해 발매한 [After Moon]은 둔중한 비트와 강렬하면서도 감성적인 멜로디를 자랑한다. 2015년 한국대중음악상 일렉트로닉 앨범 부분 후보에 올라 음악 애호가뿐만 아니라 평단에서도 작품의 완성를 인정받았다. 음악만큼 신비의 베일에 싸인 그를 만날 수 있는 세 번의 기회 중 두 번째 시간이다. | 진행: 정은정 cosmicfingers99@gmail.com 안녕하세요. 윔(WYM)의 [After Moon] 작업기 두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소개할 곡은 앨범의 3번 트랙이자 7분 25초에 달하는 “Light Years”입니다. 이 곡은 개인적으로 앨범의 야심작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긴 러닝 타임을 가지고 있는데다 금전적으로 일명 현질을 가장 많이 한 트랙이거든요. 하하, 스트링 녹음을 했으니 말 다 한 거죠! 물론 50인조 풀 오케스트라를 녹음할 재정적 능력은 없던 관계로 4인조로 열심히 오버 더빙(Over Dubbing)했습니다. 두 번째 소개하는 트랙으로 “Light Years”를 선택한 이유로 이번 기회가 아니면 이 곡을 많은 분들에게 들려 줄 수 있겠느냐는 생각도 없지 않았답니다. 저는 이 곡이 나름(?) 꽤 팝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7분 25초의 러닝 타임은 라디오 같은 대중매체에서 틀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죠. 길이를 짧게 해보려는 생각도 했지만 앨범의 흐름을 고려해 제가 담고자 했던 아이디어를 위해선 짧은 호흡보다 긴 호흡이 필요한 곡이라는 것이 저의 판단이었습니다. 저는 하루에 최소 한 번은 이 곡을 듣는데요. 앨범을 감상한 분들 중에 중간에 건너뛰지 않고 끝까지 들은 사람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요즘처럼 짧은 시간 안에 자극을 계속 줘야 청취자의 관심을 잃지 않는 시대에 말이죠.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노래를 우선 듣고 작업기를 이어나가 볼까요? After Moon by WYM “Light Years”에 담고자 했던 것은 ‘우리는 어떻게 이곳에 왔으며 지금은 어디로 향하고 있고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란 개인적인 물음이었어요. 거창해 보이지만 일상에서 가졌던 작은 궁금증이었죠. ‘나는 어떻게 지금 이런 생각을 하는 건가’, ‘우리는 왜 이렇게 아등바등하면서 살고 있는 걸까’, ‘왜 평화롭지 않게 거짓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은 걸까’ 등등 이런저런 생각이 작업 배경이 되었어요. 우주에서 바라보면 정말 백사장의 모래 알갱이처럼 작은 우리가 왜 지구 위에 존재하는지, 이 넓은 우주 공간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며 왜 우리 인간만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지. 저는 사색에 잠길 때마다 이런 궁금증에 해답을 찾아보곤 하는데요. 제가 알아낼 수 있는 답은 아직 없다는 게 사실이죠. 하지만 저는 끊임없이 답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며 저만의 인생을 살아가겠죠. 많은 과학자가 우주 연구를 하며 수광년이 떨어진 곳으로 우주선을 보내는 시간 동안, 예술가들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고뇌하는 시간 동안, 오늘 점심으로 어떤 메뉴를 고를지 고민하는 시간 동안 등등 인생은 결국 각자 품고 있는 궁금증과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이지 않을까요. 물론 해답을 찾는다는 보장은 없지만요. 처음 이 곡의 데모를 만들었을 때 드럼 파트의 리듬은 지금과는 달랐답니다. 조금 더 복잡한 리듬에 사운드도 과거 전자 드럼머신 소리로 채워졌었죠. 하지만 마음에 쏙 들지 않아 자문을 구하고자 공동 프로듀서인 이병렬 씨에게 데모를 보냈습니다. 얼마 후, 되돌아온 작업물은 힙합 비트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힙합 비트라고 요즘 유행하는 트랩 느낌의 비트라기보다 90년대의 힙합 밴드 더 루츠(The Roots)가 떠오르는 비트였어요. 사실 제가 전자 음악가 혹은 전기 인간(?)이라는 타이틀로 활동하고 있지만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20대 초반까지 샤워실에서 버터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힙합, 알앤비, 소울 키드였어요. 최근 퍼렐(Pharrell)과 로빈 시크(Robin Thicke)의 표절 사건으로 이름이 오르내린 마빈 게이(Marvin Gaye)와 얼마 전에 새 앨범으로 돌아온 디안젤로(D’Angelo)가 제가 어린 시절 숭배했던 우상이었죠. 15년 전(헐…) 대학교 재즈 동아리 활동 중에 디안젤로의 “Left & Right”를 커버해서 불렀던 시절도 있었네요. 흑인 음악에 푹 빠져 있던 음악적 호기심이 디스코(Disco), 하우스(House) 등을 거쳐 일렉트로닉 음악으로 넘어오게 되었는데요. 저의 음악적 DNA는 사실 검은 바탕 위에 녹아 있다고 생각해요. 마빈 게이와 디안젤로의 끈적하고 차진 매력을 그 누가 부정하리오. 아무튼 그렇게 공동 프로듀서로부터 돌아온 데모 속 드럼 비트는 순식간에 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곡의 중요 요소가 되었어요. 하지만 다채로운 스타일을 담으면서도 트랙들이 일맥상통하는 앨범을 완성하는 게 목표였던 상황에서 힙합 드럼 리듬은 다른 곡들과 괴리도 느껴지고, 앨범의 콘셉트와 일관성 유지에 있어 많이 튀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내린 결론은 드럼도 녹음하자는 것이었어요. 리듬은 어느 정도 유지하되 사운드 자체는 힙합의 느낌을 완화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스트링은 원래 녹음 계획이 있었던 터라 드럼까지 라이브로 녹음하면 꽤 멋있는 트랙으로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답니다. 드럼 녹음에 참여한 음악가는 밴드 야야(YaYa)의 드러머 시야(SIYA)입니다. 예전에 녹음하는 시야를 본 적이 있는데 파워풀한 연주가 매우 인상 깊었던 터라 부탁했고 흔쾌히 응해주었습니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죠. 그래서 “Outro”와 “Again”도 함께 녹음했답니다. 녹음은 엔지니어 브래드(Brad A. Wheeler)가 운영하는 유니온 스튜디오스(Union Studios)에서 진행했습니다. 마치 외국의 어느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것처럼 보이지만 성수동에 있는 스튜디오랍니다. 브래드는 캐나다에서 온 드러머 출신 엔지니어로 현재 한국에 정착해서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어요. 선우정아, 바버렛츠, 강산에 등의 앨범을 프로듀싱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답니다. 올라운드 아트 플레잉 듀오, 야야(YAYA)의 야야(좌)와 시야(우). 격정적인 드러밍을 구사하는 시야는 밴드 텔레파시의 멤버이기도 했다. “Light Years”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사이렌 소리처럼 들리는 신스를 시작으로 곡의 큰 뼈대가 되는 첫 번째 부분이 흐릅니다. 곡의 시작부터 곡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신스는 지난주 작업기에서 소개했던, 제가 사랑해 마지 않는 Roland JX-3P의 소리입니다. 항해를 떠나는 배가 뱃고동 소리를 울리듯 긴 여정을 알리는 출발음을 신스로 표현해보았어요. 첫 파트가 흐르다가 모든 악기의 소리가 사라지고 피아노가 등장하면서부터 두 번째 파트가 시작됩니다. 이 부분은 짧게나마 성찰의 의미를 가진 가사를 담고 있습니다. Chemical foundation Skeptical incarnation How we’ve come to this far away Physical interaction Superficial transaction Now eyes are all closed and we play Life of untrue Disguised soulless Greedy selfish Shameful heartless What made us fool How small we are Life is so cruel Lights shine from stars 굳이 가사를 해석하진 않을게요. 한국 사람이 한국에서 앨범을 발매하는데 왜 영어로 가사를 쓰고 부르는지 궁금한 분들이 있을 텐데요. 저의 모국어는 한국어고 우리나라 말로 의사소통하는 게 훨씬 편해요. 그런데 인생에서 대략 1/5을 외국에서 생활한 경험이 제 인생에 꽤 많은 영향을 끼쳤어요.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도 외국에서의 경험 때문이었어요. 그로 인해 영어와 어색하지 않은 사이가 되었어요. 제게 사람의 목소리와 가사는 악기와 마찬가지예요. 음악을 즐겨 듣는 이들 중에 가사를 매우 중시해서 뜻이 이해되지 않는 가사는 감상의 방해물로 치부하는 분들도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저에게 가사는 사람의 목소리를 특정 톤으로 표현하는 걸 돕는 장치예요. 한국어로 노래할 때와 영어로 노래할 때 저의 목소리 톤도 각각 달라지거든요. 한글 가사가 더 잘 어울리는 곡도 있고 영어 가사가 더 적합한 곡도 생기죠. 그리고 그것에 맞춰 가사를 쓰고 곡을 만듭니다. 이 곡은 제목을 “Light Years”로 먼저 확정한 것에 맞춰 가사를 완성하는 방식을 택했어요. 제가 가지고 있던 주제가 명확해서 가능했다고 봅니다. 그러다 보니 영어 가사가 좀 더 어울리는 쪽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성찰의 시간을 가진 두 번째 파트를 지나 돌입한 세 번째 파트는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어요. 휘몰아치는 드럼 연주와 피아노 솔로가 등장하거든요. 요즘 한창 인기리에 상영 중인 영화 <위플래쉬(Whiplash)> 같은 재즈 드러밍은 아니지만, 이 구간에서 드럼이 휘몰아칠 때만 되면 드러머로 빙의되어 양손을 들고 에어 드러밍을 하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드럼 연주에 발맞춰 피아노 솔로 또한 긴장을 고조시키는데요. 피아노 연주도 역시 저의 지인 뮤지션인 재즈 피아니스트 키 제이(Key J)가 도와주었습니다. 4인조 스트링 쿼텟의 연주도 드럼과 피아노 사이에서 멋지게 울려 퍼지는데요. 스트링 편곡은 제가 한 게 아니랍니다. 지난 회에도 언급했지만 원맨밴드 형식으로 앨범을 만들었지만 제가 완성도 있게 채울 수 없는 부분은 적극적으로 동료 음악가들의 힘을 빌렸는데요. 스트링 편곡도 마찬가지입니다. 작곡가 송현주 씨가 스트링 편곡과 녹음 디렉팅을 맡아주었습니다. 송현주 씨는 이병렬 씨와 부부입니다. 그렇습니다. 윔의 앨범은 가족이 함께하는 앨범입니다! 제가 원하는 느낌만 전달했을 뿐인데 멋진 편곡이 나와서 좋았답니다. 이 곡의 믹스 역시 제가 직접 했는데요. 문제점이 좀 있었죠. 당시 사용하던 맥 미니에 드럼과 스트링 녹음으로 90여 트랙을 넘나드는 프로젝트 파일을 담았는데 꽤 버거워하더라고요. 더군다나 모든 녹음이 24Bit(비트), 96kHz의 Hi Rez 사양으로 진행됐던 터라 조그마한 맥 미니가 비행기 이륙 소리를 내더군요. 결국 스트링 녹음 분량은 프로젝트 파일로 따로 만들어서 스템 믹싱(Stem Mixing)했고, 믹싱된 스테레오 스템을 원래 프로젝트로 가져와서 믹싱을 마무리하였답니다. 저번 주 작업기는 앨범에 사용된 여러 악기들과 장비들 위주로 내용을 꾸몄는데요. 오늘은 곡에 담고자 했던 저의 생각들과 곡 자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다뤄보았어요. 다음 주 저의 작업기 시리즈 마지막 편에서는 앨범의 마지막 트랙 “New Day(Part 2)”를 중점으로 앨범의 사운드와 마스터링 등 후반 작업과 관련하여 내용을 꾸려볼까 합니다. 그럼 다음 주에 만나요. | 윔(WYM) info@thewym.com “Light Years”의 스트링 녹음 프로툴즈 프로젝트 “Light Years”의 메인 프로툴즈 믹싱 프로젝트 Leave a Reply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CommentName* Email* Website 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