쏜애플 │ 이상기후 │ 해피로봇레코드, 2014 2010년도, 쏜애플은 홍대 앞에 음반 한 장을 던져놓고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 어떤 프로모션이나 홍보도 없이 매진된 [난 자꾸 말을 더듬고 잠드는 법도 잊었네]는 그 해 가장 ‘인디적인’ 성과를 거둔 음반들 중 하나였다. 사람들은 쏜애플에게서 국카스텐, 넬, 못, 아침, 언니네 이발관 등 국내 밴드들의 흔적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에 반해 송라이터인 윤성현은 음악을 만드는데 영향을 받은 뮤지션으로 라디오헤드와 피쉬만즈를 꼽았다. 이렇듯 레퍼런스로 거론되는 아티스트들이 많은 만큼 쏜애플은 다양한 음악적 색채들을 드러내는 밴드다. 특히 그들의 첫 앨범은 트랙들마다 서로 다른 특징들을 가지고 있었고, 그렇기에 그들이 하는 음악을 한마디로 쉽게 정의하기 힘들었다. 다만 곡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몽환적이고 어지러운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기 때문에 평론가들은 쏜애플을 싸이키델릭 밴드라고 불렀다. 윤성현과 심재현이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들은 이미 꽤나 인기 있는 밴드가 되어있었다. 방송에도 나갔고, 이름 있는 인디 레이블인 해피로봇레코드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락 페스티발에도 설 수 있었다. 그렇게 그들이 홍대씬의 ‘스타’가 되어갈 무렵인 2014년 여름, 그들은 두 번째 앨범 [이상기후]를 발매했다. [이상기후]는 전작에 비해 보다 정갈해졌다. 어쩌면 ‘덜 싸이키델릭해졌다.’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몇몇 트랙들에선 싸이키델릭한 색깔이 많이 덜어내졌으며, 조금 더 직선적인 사운드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단적으로 말해 이번 음반은 어느 정도 균일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노랫말에 있어서도, 윤성현은 열 개의 트랙 모두를 하나의 주제로 묶었다. 이 음반은 바로 ‘생존’, 즉 ‘그저 살아남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쏜애플이 유명해질 수 있던 것에는 날카롭게 고음역을 찌르고 들어가는 윤성현의 보컬이 큰 몫을 해냈다. 보컬리스트로서 그가 가진 매력은 첫 트랙 “남극”부터 여지없이 드러난다. 얇게 속삭이는 그의 여린 목소리는, 심벌즈와 기타가 만들어내는 한없이 가벼운 사운드와 섞여 마치 날아갈 것만 같다. 구름 속을 유영하듯 꿈결 같은 분위기로 시작한 음반은 바로 다음 트랙 “시퍼런 봄”에서 다시 땅으로 내려온다. 방금까지만 해도 하늘하늘하게 날갯짓을 하던 기타가 전력질주를 시작하는 것이다. 강렬한 펑크 리프는 “피난”까지 그 질주를 멈추지 않다가, “백치”에서 잠깐 쉬어가며 숨을 고르고, “살아있는 너의 밤”에서 다시 속력을 붙여 “암실”에까지 이른다. 보컬 또한 리프의 강약에 맞추어 날카로움과 나긋함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특히 “살아있는 너의 밤”, “낯선 열대”, “암실”에서, 윤성현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들은 짜릿한 쾌감을 느끼게 해준다. 앨범이 발매되기 전 공개되었던 “살아있는 너의 밤”은 주목할 만한 트랙이다. 곡 안에서도 비교적 다채로운 연주를 들려주고 있는 “살아있는 너의 밤”은 앨범의 중간에서 음반의 분위기를 전환시켜가는 역할을 한다. “살아있는 너의 밤”에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하는 어지러운 싸이키델릭함은 앨범의 타이틀인 “낯선 열대”를 거쳐, 시종일관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암실”에서 폭발한다. 불길한 느낌의 건반과 더불어 가라앉던 연주는 공격적인 리프와 엉켜 몰아치더니, 다시 서서히 침전한다. “암실”이 몰고 온 어두운 분위기에 이어 “베란다”에서는 그동안 묵묵히 리듬을 견인해온 베이스가 선두로 치고나온다. 베이스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음과 동시에 보컬과 기타는 힘을 뺀 채 한걸음 물러나고, 그 자리를 덥 음악에서 들을 수 있었던 음향들이 채워넣는다. 색다른 사운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아지랑이”의 인트로가 나지막이 흐르면서 이런 실험성은 이내 자취를 감춘다. “아지랑이”의 연주는 “베란다”까지의 분위기 보다 한층 심심하게 들린다. 기타는 다시 직선적인 달리기를 시작하고, 호루라기 소리로 시작해 기운차게 내달리는 “물가의 라이온”은 “시퍼런 봄”처럼 시원시원한 연주로 음반을 마무리한다. “암실”-“베란다”에서 “아지랑이”-“물가의 라이온”으로 이어지는 귀결은 더 싸이키델릭하게 흐트러지는 연주를 기대했던 팬들에게는 다소 시시하게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랫말의 전개에 있어 “아지랑이”와 “물가의 라이온”은 굉장히 중요한 순간을 그리고 있는 트랙들이다. [이상기후] 이후, 쏜애플의 단독공연들에선 대부분 “남극”이 오프닝에, “아지랑이”가 거의 엔딩 즈음에 연주되었다. 이는 “남극”에서 던져진 화두가 “아지랑이”에서 답을 찾게 되는 [이상기후]의 서사구조와 상응한다. [이상기후]에서 윤성현이 천착하는 ‘생존’에 대한 사유의 시작점은 ‘나는 아직 죽고 싶지 않아’라는 “남극”에서의 고백이다. 날은 무더워져 가고, 서있을 땅도 녹아간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남극”의 화자에게 삶이란 그 자체로 버거운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때로는 외톨이가 되어 고독 속에 던져지고(“피난”, “백치”, “암실”), 때로는 좌절과 불안에 휩싸인다(“살아있는 너의 밤”, “낯선 열대”). 그 지독한 고독과 불안 속에서의 몸부림, 그것이 삶이다.(“시퍼런 봄”). 요컨대 삶은 어두운 밤처럼 가혹한 것이다.(“베란다”). 그래도 화자는 말한다. 무더운 날씨에 아스팔트가 녹아 흐르는 ‘이 세계를, 분명 나는 좋아한다 생각해’. 이는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 그 자체에 대한 긍정의 선언이다. 그토록 삶은 힘겨운 것임에도 그는 삶을 열망하고 있다. 삶에 대한 그의 실존적 열정은 “물가의 라이온”에 이르러 니체의 자기 초극적 삶으로 옮겨간다. “물가의 라이온”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가 말했던 ‘정신의 세 가지 변화’에 영감을 받아 쓰인 곡이다. 니체는, 낙타는 사막에서 노예로써 무릎을 꿇고 살아가지만, 사자는 스스로 사막의 주인이 되어 신에 대적하며, 모든 것을 초극한 아이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며 살아간다고 말한다. “물가의 라이온”의 거침없는 연주와 함께, [이상기후]는 가장 역동적이고 자기주도적인 삶에 대해 노래하며 막을 내린다. 쏜애플은 한동안 잠잠하던 홍대씬에 신선한 센세이션이 되어준 밴드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라디오헤드식 사운드를 표방한 밴드들이 서서히 홍대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그중에서도 쏜애플은 지금에 이르러 가장 핫한 밴드가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족할 수 있는 동시에 다른 많은 사람들도 만족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었다. 오랫동안 홍대씬에서 대중적 인기를 끌어왔던 것은 포크를 기반으로 한, 부드럽고 따뜻한 음악을 하는 싱어송라이터들이었다. 그런 와중에 꽤나 차가운 감각의 음악을 하는 록밴드가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이는 쏜애플이 날 선 사운드 속에서도 확실히 매력적인 멜로디를 들려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그들의 음악이 누군가에게는 진부하게, 누군가에게는 식상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들은 분명 성공적인 활동을 해왔고 또 그만큼 괜찮은 음악을 해왔다. [이상기후]는 그들이 가진 장점과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음반이다. 다소 진부하고, 그다지 새롭지 않다. 그럼에도 [이상기후]는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를, 그리고 쏜애플 특유의 차가움뿐만 아니라 뜨거움과 강렬함을 가지고 있다. 적어도 필자에게는, 2014년도 가장 많이 들었던 음반이다. | 조지환 qaya@naver.com Rating : 8/10 Leave a Reply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CommentName* Email* Website 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