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럿지(Sludge)는 진흙, 혹은 진창을 뜻하는 단어다. 그렇다면 슬럿지 메탈(Sludge Metal)이 어떤 느낌의 메탈일지도 감이 잡힐 것이다. 더럽고 지저분한 기타 사운드, 둔탁한 드럼, ‘지른다’기보다는 ‘쥐어짜내는’ 듯한 느낌의 스크리밍 보컬, 느릿느릿하고 늘어지는 템포로 일관하다가도 때때로 빠르고 격렬한(그러나 이 역시 짜릿하거나 상쾌한 기분이 전혀 들지 않는) 연주를 보여주는 변칙적 구조 등을 특징으로 하는 이 음악은 메탈의 하위장르 중에서도 듣는 사람이 얼마 안 되는 마이너한 장르다. 하지만 진흙밭 속에서 고막을 굴리는 듯한 슬럿지 메탈 특유의 쾌감은 대중적인 메탈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이며, 아이헤이트갓(Eyehategod), 버조*벤(Buzzov*en), 크로우바(Crowbar) 등 선대 슬럿지 메탈 밴드들이 남긴 특유의 사운드와 기법은 메탈 씬 내의 타 하위장르와 융합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공구리는 장성건(기타/보컬), 자레드 버그(Jared Berg, 드럼), 이유영(베이스)으로 구성된 한국의 슬럿지/둠 메탈 밴드다. “Oranke Guixine”은 올해 발표된 일본의 슬럿지/둠 메탈 밴드 시쓰터(Sithter)와의 스플릿 앨범에서 시작을 알리는 트랙이다. ‘오랑캐 귀신’이라는 어딘가 우습게 들리는 제목과는 다르게, 무심하게 울리는 스네어 드럼 3연타 뒤에 터져나오는 기타는 당신의 귀를 진창 속으로 끌고들어간다. 직후, 지저분하지만 묵직하기 그지없는 리프와 다이나믹하게 울부짖는/그르렁대는 보컬, 장작을 쪼개는 듯한 드럼 비트가 진득하게 이어진다. 후반부 들어 연주는 점점 더 격렬해지고 빨라지지만, 그 격렬함은 오히려 리스너를 더 깊은 수렁으로 파묻으려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파묻히는 느낌, 짙고 빽빽한 사운드 덩어리에 매몰되는 것이야말로 슬럿지 메탈의 매력이며, 공구리는 그 장르 특유의 매력을 잘 이해하고 있는 밴드다. 여전히 제목은 좀 우습게 느껴지긴 하지만서도. | 정구원 lacelet@gmail.com Leave a Reply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CommentName* Email* Website 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