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iv]의 이번 기획은 ‘지역의 음악 씬’이다. 보통 한국의 ‘인디 록’은 ‘홍대 앞’이라는 공간과 연관되어 사용되지만, 이미 다른 지역에서도 다양한 음악적 실천들이 수시로 벌어졌고, 또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인디 록이란 홍대 안에 있는 게 아니라 홍대 앞으로 집중된 결과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이런 맥락에서 서울 이외의 도시와 그 음악적 경험과 실천 들을 포괄적으로 살피고자 한다. 이번에는 1980-1990년대에 ‘메탈의 도시’라고 불렸던 인천과 부산을 비롯해, 대전과 제주의 과거와 현재를 다룬다. 이외의 다른 지역들도 차차 정리하도록 애쓸 것이니, 지역 음악 씬에 대한 글을 쓰고 싶거나 정보를 제공할 분들은 연락을 부탁드린다. 이를 통해 지역 씬과 음악 팬들에게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 차우진 nar7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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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은 서울과 가까운 듯 가깝지 않은 거리에 있다. 물론 KTX가 개통되며 ‘한 시간 생활권’ 안에 들어간 지금, 이러한 전제에 납득이 잘 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전까지는 대전에서 서울에 한 번 가려면 큰마음을 먹고 움직여야 할 정도로 어느 정도의 부담이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대전의 음악 씬을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거리에 대한 얘기를 서두에 꺼내는 것은, 음악 역시도 이러한 부분에 커다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대전의 음악 씬은 서울의 음악 씬과 연관된 듯 하면서도 단절되었다. ‘연관이 되었다’는 말은 서울에서 대전으로 내려오는 음악의 경우를 이야기하며, 단절되었다는 이야기는 그 반대의 경우를 의미한다.

언젠가 현재 백두산의 리더 유현상과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넌지시 대전의 유성이라는 공간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유현상의 대답은 “그때 음악 하는 친구들 치고 유성 관광호텔 나이트클럽에서 연주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어.”였다. 이는 세션맨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김효국과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70년대 중반의 ‘긴급조치 9호’, 소위 ‘대마초 파동’은 우리 음악사에 있어 커다란 암흑기를 초래했음은 물론, 국내에서 밴드 활동을 하던 뮤지션들에게서 일터와 수입원을 순식간에 앗아 가버렸다. 유성(당시는 대전시로 편입되기 이전이었다)은 어쩌면 그들의 도피처를 제공해줌과 동시에 생계를 꾸려갈 수 있도록 만들어준, 배수진과 같은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곳은 1980년대 유흥업소에 대한 시간제한이 생겨났을 때 ‘관광특구’라는 일종의 면죄부를 이어받으며 그 생명력을 이어갔다.

물론 이러한 유성의 상황이 지금 이야기하려는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클럽 문화’라는 단어가 생기면서 젊은 뮤지션들의 활동 공간이 클럽으로 이동했을 때에도 동일하게 적용시킬 수 있는 단서들은 분명히 있었고, 또 이러한 단서들은 대전의 음악씬을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1990년대의 대전 음악 씬에서도 앞서 이야기했던 ‘연관과 단절’이라는 부분이 정확히 적용된다는 얘기다.

좀 더 풀어 생각해보면 이렇다. 1970년대 이후 유성 주변의 나이트클럽에서 활동하던 밴드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라이브클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밴드들의 중심은, 서울에서 활동하는 혹은 활동했던 밴드들이다. 조용필과 그림자, 김정수와 급행열차, 검은 나비에서 비상구에 이르기까지 유성 나이트클럽의 간판스타 밴드는 모두 서울의 밴드들이었으며, 1990년대 이후 생겨난 라이브클럽의 무대에 섰던 밴드들도 당시 홍대를 거점으로 자생했던 소위 ‘인디’ 밴드들이었다. 물론 이들 사이에 대전을 거점으로 활동하던 밴드들이 무대를 만들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서울 밴드들의 인기에는 비하지 못했다. 업소의 입장에서 본다면 장사가 잘 되는 서울 밴드를 선호할 수밖에 없었고, 언제 밴드의 멤버가 교체되거나 해산할지도 모르는 대전 밴드들을 섣불리 무대에 올리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되지 않은 1980년대의 상황은 어땠을까.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대전 역시 헤비메탈을 하는 뮤지션들이 하나 둘씩 모이며 단체들이 만들어졌다. 1987년 생겨난 락컴퍼니(Rock Company)와 비슷한 시기 자생한 락커타운(Rocker Town)은 초기 대전 헤비메탈 뮤지션들의 집합소였다. 이들은 일 년에 한 번 밴드들의 정기공연을 치르며 조직의 유대를 강화시켰다. 제대로 된 공연장이 없던 시절, 이들의 공연 장소는 연극무대로 쓰이던 대흥동의 가톨릭 문화회관이나 문화동의 기독교 연합 봉사회관 등으로 한정되었다. 이러한 단체들이 가지치기를 하며 또 다른 단체들이 만들어지는데,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밴드 마하트마가 소속된 블랙 데쓰(Black Death), 뉴크, 락신이나 지킬의 전신 밴드였던 오르가즘이 속한 락클럽(Rock Club) 등도 1990년대 초반에 만들어졌다. 라이브 클럽이라는 개념이 없을 당시 등장했던 이들 역시 이전 락컴퍼니나 락커타운 시절 자신들이 해왔던 경험 그대로 커다란 공연장에서의 정기공연을 중심으로 활동을 펼쳤다. 그렇다면 이들 단체들의 음악이 과연 대전의 락씬, 혹음 음악씬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까? 아쉽지만 그렇지 않다. 이들 단체에 소속된 밴드의 멤버들 가운데에는 대전을 연고로 하는 뮤지션이 아닌 경우가 많았고, 밴드의 정기공연 역시도 서울의 밴드를 불러 함께하는 행사가 다반사였다. 당시 대전에서 이러한 무대를 함께 펼친 밴드 가운데는 인천의 파이오니아를 비롯 아이언 크로스, 혼과 같은 밴드들이 있다.

대전에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본격적인 라이브 클럽이 생긴 것은 1990년대 후반이다. 유성의 궁동에 자리한 클럽 트렁크가 그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트렁크는 서울의 다른 클럽들과 연계하여 서울의 밴드들이 내려와서 공연할 수 있는 무대를 많이 만들었다. 2000년대 이후 생겨난 대흥동의 비스켓과 아우성 그리고 이후 아우성의 자리에 생긴 퍼지덕과 같은 클럽들, 또 한남대 주변에 생겨난 마이너, 인 스카이 등 많은 클럽들이 이러한 트렁크의 공식을 따랐다. 물론 꾸준하게 이들 클럽에서 활동했던 밴드들도 없지는 않았다. 퍼지덕에서는 마하트마와 버닝 햅번이, 인 스카이에서는 뉴크, 락신, 잭 인 더 박스, 지킬 그리고 블러디 매리와 같은 밴드들이 정기적인 공연을 했다. 때문에 홍대의 인디 씬과는 확실하게 다른 음악을 했던 이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대전의 음악 씬은 하드록/메탈 음악이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정말 대전의 음악씬을 대표하는 밴드들인가 하는 문제는 또 다른 시선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어쨌거나 이들은 지금의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핫뮤직 주최 ‘K-락 챔피언쉽’을 통해서든지, 그렇지 않으면 홍대의 클럽 무대에 데뷔하고 또 서울에서 음반을 발표하며 ‘탈 대전’의 성향을 띠는 밴드들이기 때문이다. 오롯이 대전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또 대전에서 음반을 발표하며 ‘대전 씬’이라는 하나의 사조를 만들었던 집단은 애초에 없었던 것이다. 그 이유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앞서 이야기 했듯 대전의 클럽도 온전히 그들의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고, 자체적인 프로모터나 레이블의 부재 등도 있다. 대전을 제외한 몇몇 대도시들에서는 언제부턴가 자체적으로 녹음하여 음반을 발매하고 그를 기반으로 공연을 펼치는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었지만, 대전은 그러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예전보다 음반을 발매하기 쉬운 상황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 음반을 발표한 뮤지션들이 그렇게 많았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2010년으로 접어들면서 대전에도 조그만 움직임이 생기고 있다. 한남대 근처에서 대흥동으로 확장 이전한 클럽 인스카이II에서는 서울 밴드와 대전 밴드의 공연이 이전의 다른 클럽들이 밟은 방식 그대로 열리고 있으면서도, 시설에 과감한 투자를 하며 예전과는 다르게 대전과 서울간의 교류를 주도하고 있다. 또 대흥동의 소규모 클럽 벗지는 클럽과 함께 그린빈(Green Bean)이라는 독자적인 레이블을 만들어 지역의 밴드들을 하나둘씩 규합하고 있다. 또 몇몇 지방 행사들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스스로의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2000년대 초반, 많은 클럽들이 생기며 양적으로 풍요로웠던 대전 씬의 밴드 수만큼은 아니지만, 어쩌면 지금부터가 정말로 ‘대전의 음악 씬’이라는 용어를 붙일 수 있을 만한 기회가 생긴 건지도 모른다. 물론 이 가운데 활동하는 밴드 및 뮤지션 들이 ‘인디 워너비’, 다시 말해 ‘홍대 워너비’라는 유혹을 어디까지 떨쳐버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 미지수지만, 그 움직임만큼은 지켜볼 필요가 분명히 있다. 적어도 지금 이 시점에서는 말이다. | 송명하_[Hot Music] 에디터 http://www.facebook.com/myoungha.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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