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셋째 주 위클리 웨이브는 가을방학, 해일, 자이언트베어 앨범에 대한 필자별 코멘트입니다. 가을방학 | 세 번째 계절 | 먼데이브런치, 2015.09.01 조지환: 가을방학의 노래가 지금까지 매력적으로 들려왔다면 거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우선, 듣기 편한 멜로디. 심심하지 않으면서도 깔끔한 편곡. 정감이 묻어나면서도 꽤나 날카롭게 꽂히는 노랫말. 이런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칫 진부해질 수 있는 노래를 세련되게 만들어주었던 것은 계피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를 너무 따뜻하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온도에 머무르게 할 줄 알았으며 이것은 노래에 큰 굴곡을 주지 않는 정바비의 송라이팅과도 맞닿는 지점이었다. 그러나 이번 앨범에서 계피의 음색이 조금 변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이번 앨범에서 그들이 더 많은 시도를 한 탓인지도 모르겠으나, 그녀의 목소리에 이전에는 느낄 수 없던 어떤 감정이 실린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153cm, 플랫슈즈”, “재채기”에서 한껏 들떠있는 목소리나, “사랑에 빠진 나”에서 처럼 오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목소리는 이전까지의 계피와 사뭇 다르다는 느낌이다. 어떻게 보면 호소력이 더해진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이전까지의 조금은 시니컬했던 계피의 목소리가 그립다. 분명 괜찮은 앨범이다. 전작들이 그려온 궤도를 따라가면서도, 그것을 똑같이 반복하려 하지는 않는다. 곡들이 자아내는 분위기가 다양해졌기 때문에 전작들보다 훨씬 재밌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단지 부족한 것이 있다면, 계피의 보컬이 예전처럼 차분하지 않았다는 점. 나만의 투정일지도 모르겠다. 6.5/10 박준우: 가볍다고 하기에는 뚜렷한 색을 지니고 있으며, 무던하게 좋아할 수 있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서도 앨범은 가을방학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들려준다. 소위 말하는 소풍형 음악 페스티벌에 어울리는 이런 음악적 색채나 분위기가 이제는 가을방학만의 것은 아니지만, 나이를 먹은 뒤에도 찾을 것 같은 밴드는 가을방학이 가장 우선인 듯하다. 정제된 결에서 오는, 듣는 이의 나이에 따라 감성의 층위가 다를 것 같은 앨범은 은근히 이중적인 구석이 있다. 8/10 김윤하: 포크나 기타 팝이 아닌 ‘팝’의 원류에 한 발짝 가까워졌다. 포근한 멜로디나 일상의 특별한 순간을 재치있게 포착하는 노랫말 등 그간 가을방학이 사랑 받아온 요소들은 그대로 살리면서도 이전과는 다른 무언가를 시도해보려는 궁리가 매 곡마다 느껴진다. 그 움직임은 일종의 ‘랩’이 되기도 하고(“재채기”) 가을방학 치고는 다소 과격한 현악 세션 도입이 되기도(“사람의 홍수 속에서”) 한다. 모두 유의미한 결과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가을방학 어법을 순진하게 잇는 “사하”나 “난 왜 가방에서 낙엽이 나올까”가 계속 귓가와 입가에 맴도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그것이 세 번째 계절에 맞이한 우리가 가장 사랑한 방학이니까. 6/10 해일 | 세계관 | 음악부, 2015.08.03 박준우: 트랙을 가득 채우는 소리의 향연, 그리고 보컬을 빌려 가사를 이야기하는 것 이상으로 상상을 주는 뚜렷한 사운드스케이프는 이것이 이 장르의 매력이구나를 느끼게 해준다. 특히 길다고 느껴지지 않는 인스트루멘탈의 전개와 각 악기 간의 구성은 높은 짜임새와 함께 몇 가지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려 넣는다. 공간의 확장과 함께 등장하는 악기 소리는 거칠지만 풀어내는 정서만큼은 섬세하다. 예술이 예술로부터 영감을 받고, 또 그걸 통해 누군가에게 영감을 전해주는 순간이란 이런 것일까 싶다. 8/10 김윤하: 해일의 [세계관]은 천천히 소리와 감정을 쌓아 올리다 한 순간 터뜨려버리는 포스트 록의 도식에 어느새 익숙해진 우리의 타성에 매 순간 긴장을 전한다. 곡의 메인이 되는 기타 리프를 에누리 없이 전면에 배치하고 쉼없이 곡 구성을 바꾸며 호기심을 자극하는 “Santa Fe”는 그런 밴드의 대표곡. 다른 슈게이징/포스트 록 밴드들이 흔히 그러하듯 보컬을 거대한 소리의 일부처럼 흡수통합하지 않는 점도 돋보이는 개성이다. 마지막으로 “세계관”과 “어딘가 여기에” 두 곡이 함께 선사하는 긴 호흡의 눈부신 시퀀스를 놓치지 마시길. 소리의 화마가 할퀴고 지나간 폐허 속을 몽롱하게 헤집고 다니는 기분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7/10 자이언트베어 | Man Without A Dog | 음악부, 2015.09.04 조지환: 앨범 이름은 잊어도 좋다. 들리는 것에 집중하라. 그리고 생각해보라. 펑크는 어떤 음악인가. 펑크가 들려주는 사운드는 어떠해야만 하는가. 펑크의 당위성은 어디 있는가. 펑크를 왜 듣는가. 난 펑크가 시원해서 듣는다. 펑크는 시원해야 한다. 듣는이의 마음 속 답답함을 단번에 날려버릴 정도로 시원하다면 내게 그것은 좋은 펑크이다. 그리고 이들의 음악은 시원하다. 첫 트랙을 비롯해 몇 개의 트랙에서는(특히 곡 제목부터 감이 잡히는 ‘Ballad #1’과 ‘Ballad #2’) 기타가 코드를 때려박을 듯이 강하게 대드는 순간이 많지 않거나 없다. 보컬의 목이 걱정될 정도로 소리를 지르는 강렬한 순간도 없다. 그래도 시원하다. 솔직히 가사도 잘 들리지 않지만 어쨌든 시원하다. 연주도 사운드도 아마추어 같다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시원하다. 마지막 두 트랙에서는 무궁화호가 KTX를 추월해 달리는 듯한 시원함이 느껴진다. 귀가 뻥 뚫린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어쩌면 펑크는 한물 간 음악일지도 모르겠다. 이들이 연주하고 있는 것도 이미 시들어버린 음악인지도 모르겠다. 펑크 중에서도 기운 빠진 펑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교를 부리지 않는, 디스토션 잔뜩 머금은 기타의 파괴력과 청량감을 믿는 이들이라면 기분좋게 들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6.5/10 정구원: 데뷔앨범 [눈물과 좆물]의 화끈하고 지저분한 펑크 사운드를 기대했던, 그리고 ‘개셰끼들아 우리가 왔다’라는 일갈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첫 트랙 “그래도 괜찮아 (It’s Alright Baby)”의 달콤쟁글한 기타 멜로디가 귀에 들어오는 순간 당황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에 이어 ‘무브유어바디 쉨유어바디’라고 나른하게 노래하는 목소리(“Shake Your Body”), ‘우-우-우-우-‘하고 뒤를 받치는 백킹 코러스(“Ballad #1”)을 듣다 보면 당황은 확신으로 바뀐다. 자이언트베어의 두번째 앨범 [Man Without A Dog]는 팝한 소리로 가득하다. 공격성은 줄어들었고 사운드는 깔끔해졌다. 이러한 변화가 꼭 성공적인 것만은 아니다(“19″와 “Nirvana And Me” 같은 곡에서 밴드는 자신들의 멜로디 감각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는 송라이팅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1집에서 지저분한 사운드도 가리지 못했던 팝적 감수성(“서울 태양”이나 “조이” 같은)이 분명히 존재했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러한 변화는 의외라기보단 자연스러운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밴드 특유의 감수성 – 나른한 울분과 지리멸렬한 위악 – 이 펑크 사운드와 만나서 발생하는 정체불명의 화학작용은 [Man Without A Dog]에서도 건재하다. 자이언트베어는 여전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펑크 밴드다. 7.5/10 Leave a Reply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CommentName* Email* Website 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