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밴드에 대해서 ‘노련해졌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 순간은 언제일까. 이전 행적에서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방향의 (좋은) 결과물이 탄생했을 때? 일취월장한 연주력이나 노래 실력을 뽐낼 때? 물론 그런 경우에도 노련하다는 수식어를 달아 줄 수는 있다. 하지만 한 밴드가 정말로 노련해진 것처럼 느껴질 때는 그들이 여태껏 잘해왔던, 그래서 익숙하게 들리던 음악에 새로운 매력을 불어넣을 때가 아닐까. 지금까지 들려줬던 좋은 부분을 단단하게 다지는 동시에 자신들의 음악이 ‘지속적으로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순간. 파블로프의 새 싱글 “이럴 때가 아냐”를 들으면서, 이들이 처음으로 노련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이럴 때가 아냐”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완급 조절 능력이다. [반드시 크게 들을 것 EP]와 [26]에서 각 트랙 속 구석구석까지 터질 것처럼 채워져 있던 류준의 기타와 오도함의 보컬은 이번 싱글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있다. 대신 밴드는 치고 나갈 부분(‘이럴 때가 아냐!’라는 외침이나 중반부의 기타 솔로 파트 등)에서는 확실하게 치고 나가고, 빠져야 할 부분에서는 박준철의 그루비한 베이스와 조동원의 감칠맛 나는 드러밍에 디디고 앉아 차분하게, 그러나 긴장감을 유지한 채로 숨을 고른다. 결과적으로, “이럴 때가 아냐”는 밴드의 커리어를 통틀어 봐도 가장 훅이 돋보이는 트랙이 된다. 과거의 곡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다양한 악기(어쿠스틱 기타, 신시사이저, 그리고 카우벨)의 활용과 [26]에 비해 훨씬 까랑까랑해진 사운드는 트랙의 완급 조절과 적절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시너지 효과를 낸다. 그리고 이러한 완급 조절은 밴드가 자신들이 갖춰 놨던 형식미에 변주를 주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아마 밴드 스스로도 자신들이 노련해졌다는(혹은 노련해져야 한다는), 그리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시점이 됐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단순히 노래 제목만 가지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데뷔작 [반드시 크게 들을 것 EP]의 “난 아닌가 봐”에서 오도함은 ‘차가운 의자에 앉아 짧은 한숨을 내쉬었을 뿐인데 현실이 내게 다가와’라고 노래한다. 뜨겁지만 어쩔 수 없이 깔려 있었던 그러한 열패감은 이번 싱글에서 ‘이미 늦어버린 걸 나도 알고 있지만 하루에도 몇 번 씨익! 이럴 때가 아냐!’라는 외침으로 전환된다. 이미 늦어버렸을지도 모르지만, 파블로프는 어쨌든 ‘이 다음’을 바라보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까지 포함해서, 이들은 확실히 노련해졌다. 그리고 이 밴드를 듣는 모두가 ‘이 다음’을 기대하게 만들어준다. | 정구원 lacele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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