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iv]의 이번 기획은 ‘지역의 음악 씬’이다. 보통 한국의 ‘인디 록’은 ‘홍대 앞’이라는 공간과 연관되어 사용되지만, 이미 다른 지역에서도 다양한 음악적 실천들이 수시로 벌어졌고, 또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인디 록이란 홍대 안에 있는 게 아니라 홍대 앞으로 집중된 결과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이런 맥락에서 서울 이외의 도시와 그 음악적 경험과 실천 들을 포괄적으로 살피고자 한다. 이번에는 1980-1990년대에 ‘메탈의 도시’라고 불렸던 인천과 부산을 비롯해, 대전과 제주의 과거와 현재를 다룬다. 이외의 다른 지역들도 차차 정리하도록 애쓸 것이니, 지역 음악 씬에 대한 글을 쓰고 싶거나 정보를 제공할 분들은 연락을 부탁드린다. 이를 통해 지역 씬과 음악 팬들에게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 차우진 nar7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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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감상실 ‘심지’가 있던 자리

 

음악이 인천을 지배했던 때

1991년. 나는 막 고등학생이 됐다. 인천 변두리를 오가던 중학생이 당시 ‘인천의 명동’이라 불리던 동인천의 거리를 활보하는 ‘주류’ 고등학생이 된 것이다. 주말이 되면 또래 친구들은 즐비한 의류샵과 인천의 헤어스타일을 선도하는 미용실을 들락거렸지만, 나의 관심사는 오로지 음악과 영화였다(는 건 거짓말이고 쇼핑도 드문드문 했다). 인천의 메이저 개봉관이었던 애관극장이 걸어서 15분 거리인 데다가, 거짓말 좀 보태어 세 집 건너 한 집이 음반샵이었다. 수업을 끝내고 큰 길로 내려오는 동안, 곳곳에서 여러 음악이 흘러나왔다. 토미 페이지와 머라이어 캐리가 여고를 지배하던 그 시기에, 나는 밴드하는 오빠를 둔 친구 덕에 처음으로 헤비메탈과 인연을 맺었다. 친구가 멋있다면서 알려준 밴드들은 건스 앤 로지스, 스키드로우, 넬슨, 포이즌, 본 조비, 익스트림, 머틀리 크루 등이었다. 또한 그 친구는 종종 동인천 거리를 걸어가다가 “사하라!!”라면서 긴 머리 휘날리며 지나가는 남자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곤 했다. 동인천 고등학교를 다녔던 친구의 오빠는 막 베이스 기타를 배워 밴드에 합류한 상태였고, 친구는 오빠의 어깨 너머로 인천 록커들과 인연을 맺고 있었다. 관계의 핵심은, 그 친구네 집이 동인천에서 유명한 식당을 하던 관계로 친구의 오빠가 배고픈(?) 록커들을 데려와 이따금 식사대접을 했다는 데 있었다. 어찌됐건 당시엔 그 친구가 블랙 신드롬이나 사하라 같은 ‘인천 음악계의 셀리브리티’를 꿰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1992년. 공부에 관심 없던 내 짝과 뒷자리 친구들이 음악학원을 함께 다니더니 덜컥 밴드를 결성해버렸다. 이름은 아이스(ICE)였다(나름 심각한 작명 이유가 있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짝은 연습한다고 자율학습 시간에 계속 메탈 음악을 녹음한 믹스테이프를 들으며 손놀림을 해댔다. 그러던 어느 날 공연을 보러 오라며 티켓을 내밀었다. 3000원 정도를 주고 강매당한 티켓에는 ‘게스트: ICE’라고 아주 작게 쓰여 있었다. 메인 밴드는 메탈곡 커버를 매우 잘 하는, 실력 있는 ‘오빠들’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짝과 친구들 덕에 처음으로 주안 어딘가의 라이브 하우스에 발을 딛게 됐다. 협소한 공간에 밴드의 친구들로 보이는 고등학생들이 모여서 환호성이 아닌, 체육대회 응원 같은 걸 외치는 분위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메인 밴드의 노림수는 어글리 키드 조의 히트곡 “Evrything About You”였으나 거의 노래방 수준에 가까웠고, 이제 막 데뷔한 ICE 또한 밴드의 미래를 점치기엔 곤란한 연주를 선보였다. 그래도 아이들은 좋다고 소리를 질러댔다. “스키드로우도 데뷔할 때는 엄청 못한다고 욕 먹었대…”가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위로였다. 하지만 ICE는 학교의 비공식 밴드쯤으로 인정받아 그해 축제 무대에도 섰다. 축제에 놀러온 남고 학생들은 보컬리스트와 기타리스트가 예쁜 ‘여성’ 록밴드에 마냥 열광했다. 내가 듣고 있던 음악과는 비교도 안 되는 실력이었지만, 나는 왠지 무대 위에 함께 서 있는 그들이 자랑스러웠다.

또 한 번 1992년. 친구들은 밴드를 했고 나는 음악감상실 죽순이가 됐다. 너바나가 빌보드 차트를 장악하던 시기였다. 여전히 메탈 밴드들이 내 참고서 커버를 장식하고 있었지만, 이미 속마음은 너바나, 블라인드 멜론, 사운드가든, 앨리스 인 체인스, 펄잼, 스매싱 펌킨스, 알이엠 등의 모던록 밴드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좋아하는 모든 앨범을 구매할 돈은 없었다. 매일 [배철수의 음악캠프]와 AFKN 라디오만으로 음악에 대한 갈증을 달래야 했다. 그리고 주말에는 1500원을 주고 입장하면 하루 종일 뮤직비디오를 볼 수 있는 음악감상실 ‘심지’에 갔다. 동인천 극장([내 마음의 아이다호]를 여기서 봤다) 뒤쪽에 위치했던 음악감상실 심지는 가난한 고등학생 음악팬들의 성지(聖地)였다. 작은 쪽지에 듣고 싶은 곡을 빼곡하게 적어서 DJ(?)에게 건내주면, 그들이 내키는 대로 뮤직비디오를 틀어줬다. 두 개의 층을 점유하고 있던 심지는 각 층을 분리해 아랫층은 팝과 록, 윗층은 메탈과 하드코어를 틀었다. 내 거주지는 아랫층이었다. 커다란 스크린 옆으로 다른 층의 뮤직비디오를 볼 수 있는 작은 모니터가 있었기 때문에 윗층에서 좋아하는 뮤직비디오가 나오면 잽싸게 계단을 올라갔다. 돌이켜 보면 심지나 ‘유진’ 등 인천의 음악감상실은 인기 팝송부터 R&B, 힙합, LA 메탈, 모던록, 브릿팝, 스래쉬 메탈, 멜로딕 메탈, 블랙 메탈 등등 각종 장르의 최신 외국 음악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그와 함께 발전한 내 취미는 동인천의 메이저 문화공간이었던 ‘지하상가’를 배회하며 [핫뮤직] 최신호를 사들고, 최신 음악을 연구하며 신청곡 리스트를 계속 갱신해가는 것이었다. 음악을 듣고 알게 될수록 호기심은 점점 늘어났다. 지하상가에서 1000원에 염가 판매하던 [핫뮤직]의 과월호도 열심히 뒤지게 됐다. 수입 록앨범을 많이 파는 음반샵의 주인과도 안면을 텄다. 학교에서 이어폰을 교복 뒤로 숨긴 채 열심히 AFKN을 들으며 열심히 제목 받아쓰기를 하는 것도 큰 일이었다.

한편 친구들은 서태지와 아이들과 듀스를 놓고 누가 더 훌륭하냐며 끊임없는 실랑이를 벌였고, 음반샵엔 점점 R&B와 힙합 앨범이 많아졌다. 그리고 어느날, 같이 너바나를 칭송하곤 했던 친구가 말했다. “엑스재팬이 최고야.” 서울에서 인천을 방문할 일이 생겼다던 사촌동생도 비슷한 말을 했다. “인천에 엑스재팬 앨범 사러 가야돼.” 심지에서도 언제부턴가 수시로 “Endless Rain”이 흘러나왔다. 일본 음반 수입이 불법이던 시절이었지만, 인천은 항구가 있어서인지 동인천의 거의 모든 음반샵에서 일본 수입 앨범을 팔았다. 문제는 일본 록이 전혀 내 취향이 아니었다는 데 있었다. 사회에 울분을 토하는 록과 메탈을 버리고 요시키의 화장에 넘어간 애들을 ‘변절자’라고 부르고 싶은 마음이었다.(엑스재팬 팬들이여, 이 망언을 용서하소서!) 그러지 않아도 록음악 듣는 애들 적은 여자 학교에서 서태지와 아이들도, 엑스재팬도 안 듣던 나는 점점 대화 상대를 잃어갔다. 1994년 봄에는 커트 코베인의 죽음마저도 심지에서 뮤직비디오를 보며 혼자 삭여야만 했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대학생이 되과, 나의 음악 동네는 신촌과 홍대 앞이 됐다.

5~6년 전에 고등학교 근처에 갈 일이 있었다. 한때 문화의 중심지였던 동인천 역 부근은 쇠락한 변두리 동네가 됐다. 남아 있는 음반샵은 없었다. 워런트의 “Cherry Pie” 뮤직비디오를 보며 즐겁게 쫄면을 먹곤 했던 (당시에는 비교적) 고급스러운 분식점은 손님이 거의 없는 낡은 식당으로 변했다. 물론 심지도 문을 닫았다. 한때 경쟁하듯 음악이 흘러나왔던 거리는 고요했다. 인천의 록/메탈 키드를 사로잡던 그 공기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인천에서 그렇게 음악으로 들떴던 시기가 다시 올 수 있을까? 그 시절, 쏟아지는 음악을 흡수하기에 급급했던 10대 소녀의 머리로 과거를 가늠하는 건 한계가 있다. 어쩌면 더 큰 맥락의 틀이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누군가 인천 혹은 동인천 음악 씬의 흥망성쇠를 기록해주길 바라며. | 홍수경_컬럼니스트, 전 [무비위크] 기자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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