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듣고 배신감을 느낄 뻔했다. 연주가 너무 세련됬기 때문이다. 마치 현란하게 춤을 추는 듯한 베이스. 세련됬다. 깔끔하게 리듬을 견인하는 기타 스트로크.  갑자기 끼어들어 지루할 틈을 날려버리는 드럼 머신. 박자를 참 세련되게 쪼개놓는다. 아니, 이들의 연주가 너무 세련되어지지 않았나? 지금껏 이들의 가장 치명적인 매력은, 콜라텍 플로어에서 반짝이 옷을 입고 씁쓸한 표정으로 담배를 태우는 고독한 마초의 간지였다. 그런데 이들은 지금 마치 음향장비 빵빵한, 깔끔한 인테리어의 홀에서 트로트를 부르고 있는 듯한 묘한 간지를 뿜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왜일까. 처음듣고 느낀 이 묘한 간지에 이끌려 곡을 몇 번이고 재생했다. 재미있었다. 뜬금없이 튀어나와 눈물을 쏙 빼놓으며 최후의 신파를 향해가는 브라스. 세월이 지나도 뽕끼는 빠질 줄을 모르는 조까를로스의 목소리. 극한의 처절함을 보여주는 가사들. 가만 듣고 있자니 참 촌스러웠다. 촌스러우면서도 세련미가 묻어났다. 그렇다. 이제 이들의 내공은 세련되게 촌스러운 경지에 이르렀다. 세련된 촌스러움, 이보다 키치할 수 있을까. 이보다 간지날 수 있을까.

 

데뷔 십 년 차 밴드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은 이제까지 음악에 있어서나 커리어에 있어서나, 씬에서 가장 개성있는 행보를 보여주었다. 그동안 이들은 달라졌다. 우선 조까를로스의 기타 연주가 훌륭해졌고, 더 이상 처량한 멜로디언 소리는 찾아볼 수 없으며, 가사의 수위도 많이 낮아졌다. 그럼에도 이들은 여전히 일관되게 키치를 겨냥하고 있으며, 오히려 여러가지 음악적 장치들이 효과적으로 쓰임으로써 키치에 완성도가 더해졌다. 원숙해진 키치는 이들을 더 재미있는 밴드로 만들어주었다. 거의 매번 ‘알앤비’ 떼창으로 마무리되는 공연 레퍼토리는 구태의연해졌고, ‘독수리’를 연주할 때의 날개짓도 예전 같지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들은 재미있는 밴드다. 재미있는 노래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 조지환 qay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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