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iv]의 이번 기획은 ‘지역의 음악 씬’이다. 보통 한국의 ‘인디 록’은 ‘홍대 앞’이라는 공간과 연관되어 사용되지만, 이미 다른 지역에서도 다양한 음악적 실천들이 수시로 벌어졌고, 또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인디 록이란 홍대 안에 있는 게 아니라 홍대 앞으로 집중된 결과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이런 맥락에서 서울 이외의 도시와 그 음악적 경험과 실천 들을 포괄적으로 살피고자 한다. 이번에는 1980-1990년대에 ‘메탈의 도시’라고 불렸던 인천과 부산을 비롯해, 대전과 제주의 과거와 현재를 다룬다. 이외의 다른 지역들도 차차 정리하도록 애쓸 것이니, 지역 음악 씬에 대한 글을 쓰고 싶거나 정보를 제공할 분들은 연락을 부탁드린다. 이를 통해 지역 씬과 음악 팬들에게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 차우진 nar75@naver.com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뮤직 바 ‘도어즈’의 실내 귓것들의 아지트를 추억하다 내 고향 제주에서 ‘폭도’ 다음으로는 ‘몽근놈’ 그 다음으로는 ‘귓것’이 듣기도 싫고 남의 귀에 들어가면 부끄러운 욕이었다. 그럼에도 자의든 타의든 ‘Natural Born’ 귓것이기를 부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소가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대한 추억을 이제야 글로 정리할 수 있다는 게 소중하기도 하면서도 ‘과연 나에게 그런 자격이?’라는 자조 섞인 반성도 해본다. 다만 이 글을 통해 제주도 역시 음악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 모두가 ‘로컬 씬’의 구축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음을 증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백호기 축구대회에 울려 퍼지던 메탈리카(Metallica) 제주도 음악 씬의 근원을 파해져 보면 고등학교 밴드들이 알뿌리처럼 달려 있다. 그 알뿌리를 더욱 옹골차게 만들던 ‘백호기 축구대회’라는 밑거름이 있다. 제주도에서 운동으로 대학에 가려면 축구 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백호기 축구대회는 전통 사학들이 자신들의 건재함을 과시하는 도구인 동시에 신흥 사학이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기 위한 무대였다. 축구는 그렇다 치고 축구 응원 연습을 위해 전교생이 운동장에 열병하고, 대열 사이에 무서운 학생회 선배들이 자리 잡고 있던 웃지 못할 풍경도 있었다. 그렇게 며칠을 연습하고 선수들보다 더 설레는 마음으로 관중석에 서서 정작 경기는 보지도 못하고 응원을 하다가 어느덧 ‘고대하던’ 하프 타임을 맞이한다. 하프타임 시간에는 각 학교의 댄스부와 밴드부가 자웅을 가렸기 때문이다. 간식으로 받은 빵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밴드부의 공연을 넋 놓고 바라보았던 기억이 아직도 달달한 팥빵의 맛으로 각인되어 있다. 약속이나 했던 것처럼 저쪽에서 메탈리카(Metallica)의 “Enter Sandman”을 연주하면, 이쪽에서는 “For Whom The Bell Tolls”로 응수하던 풍경. 밴드 형태의 라이브 연주를 볼 수 있던 것은 분명히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렇게 축구로든 음악으로든 자웅을 겨루고 난 후 독서실로 돌아가는 길에는 꼭 상대 학교 학생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주먹다짐을 하기 마련이었고 다음날 아침 학교에서는 17대 1로 싸웠다는 변함없는 내러티브의 소설이 탄생하곤 했다. 여기서 굳이 제주의 고교대항 축구대회를 거론한 이유는, 제주도라는 비좁은 섬에서 사학들 간의 경쟁이 결과적으로 ‘동문’이라는 배타적 카르텔을 형성했고 이것은 제주도의 음악 씬에서도 마찬가지였다는 느낌 때문이다. 제주의 음악 씬도 동문과 인맥으로 똘똘 뭉쳐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고교 이후 대학 밴드들은 각각의 대학끼리 뭉치고, 학교를 벗어난 밴드를 결성하는 데도 이전의 궨당들을 기준으로 뭉쳤다. 장르 혹은 스타일은 부차적인 문제였다고나 할까. 대학 밴드들의 정기 공연 역시 문예회관 소극장으로 귀결되기 마련이었다. 동문으로 맺어진 고교 밴드들의 실력에서 별 발전 없이 다시 대학이라는 궨당으로 재편된 밴드들은 그들만의 잔치를 펼쳤다. 다만 대학생이라는 신분의 상승은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들었다. ‘홍대 씬’에 편입되고자 하는 욕망이 바로 그것이었다. 음악 좀 한다던 친구들은 그 안에서 모두 ‘서울’을 꿈꾸고 있었다. 요망진 레코드 가게들 연주자들뿐만 아니라 음악의 소비자 입장에서도 암울했던 기억이 있다. 레코드 가게들이 영세해서 폭넓은 라이브러리를 구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중앙로 지하상가의 ‘ABC 레코드’와 ‘아리랑 레코드’가 음악 마니아들의 소스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담당했다. 서울의 대형 음반 매장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작은 규모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음반 가게를 섭렵하며 나름대로 탄탄한 음악 소스들을 그러모았다. 제주 시내 모든 음반 가게를 다 돌아본다 해도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는 지역적 특성, 그리고 음반 매장끼리 동업관계라고 보아도 무방할 만큼 친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음반 가게의 아르바이트를 담당하시던 분들이 모두 친구였다는 점은 굉장히 유용했는데, 예를 들자면 오아시스(Oasis)의 [The Master Plan]을 사러 이쪽 가게에 갔는데 재고가 없으면 저쪽 매장에 전화를 걸어 그쪽으로 가보라는 식이었다(실제 있었던 경험이다). 라이브러리가 작았어도 촘촘히 엮인 인맥이 보완을 해주었던 셈이다. 그래서 용돈을 받으면 걸어서 음반 매장을 다 돌아보고 원하는 음반을 기어코 쟁취한 후 다시 걸어서 집으로 올 수 있던, 지금 생각해보면 꽤나 상큼하면서도 이상적인 풍경이 연출되었다. 그럼에도 우리들 사이에서는 ‘홍대 앞의 음악 씬’을 경험할 수 없다는 패배의식이 있었고 부족한 음악 소스에 대한 욕구불만도 있었다. 하지만 패배의식과 욕구불만으로 가득한 우리들을 따뜻하게 맞아주던 음악 공간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폭도’로 변하지 않았다. 제주의 음악 공간들이 가장 뜨거웠던 때는 1997년부터 월드컵이 있던 2002년까지다. 구 도심권(제주시 동문 로타리와 중앙로 일대)이 서서히 영락의 냄새를 풍기던 시기였지만, 그런 위기의식 따위는 술안주에 불과했다. 제주 의료원(구 제주대학병원)을 기준으로 반경 500m 지역에 산재해 있던 음악 공간들은 매일 밤 귓것들로 가득 찼다. 1990년대 후반임에도 불구하고 7080 풍의 DJ부스가 있던 ‘헬리콘’이라는, 레스토랑도 카페도 바(bar)도 아닌 곳이 성업 중이었다. 점심시간에는 돈까스나 함박스테이크 같은 것을 먹으러 들리던 손님도 있었고, 신청곡의 범위도 서태지에서 킹 크림슨(King Crimson)까지였던, 참 대중없던 곳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음악 공간들이 문을 열기 전 낮 시간에 마땅히 갈 곳이 없던 귓것들을 수용해 주는 공간이었다. 도어즈(Doors)와 레드 재플린(Led Zeppelin)의 시대 ‘도어즈’와 ‘레드 재플린’이 당시 가장 뜨거웠던 음악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이 두 공간과 걸어서 1분 거리인 ‘플레이 하우스(Play House)’, ‘취한 배’ 그리고 택시로 5분 거리인 시청 부근의 ‘파블로’ 입장에서는 이 두 곳을 양대산맥이라 말하는 찬사에 배알이 뒤틀릴 수도 있겠지만, 분명 당시 음악 마니아들의 1차 선택은 그 두 군데에서 갈렸다(물론 새벽의 2차는 논외). 도어즈가 문을 열기도 전에 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던 많은 날들이 있었다. 국산 병맥주와 새우깡이 전부인 메뉴였지만, 한 병에 2500원 하던 술값이 가벼운 주머니에 부담이 되지 않았다. 도어즈의 최대 무기는 방대한 라이브러리에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우리를 기다리던 거대한 LP장과 CD 꽂이에 빼곡하던 음반들, 게다가 그 모든 음반을 들어봤다는 사장, L누님은 신화적 존재였다. 웃음소리가 재니스 조플린(Janis Joplin)을 능가하던 L누님은 도어즈의 여왕이었다. 그리고 시내 음반점에서 일하던 L누님의 친구들이 저마다의 ‘포스’를 내뿜으며 바에 앉아 있을 때면 마치 교무실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록 스쿨’의 교무실 말이다. 레드 재플린도 도어즈와 같은 컨셉트의 바였지만, 당시 제주도에서는 유일하게 밴드 공연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현재 99앵거(99anger)의 전신인 오뎅국물을 비롯한 제주의 여러 인디 밴드들이 공연을 했는데, 사장님의 넓은 인맥은 급기야 크라잉 넛과 윤도현 밴드의 공연도 성사시켰다. 그 공연은 제주도 역시 동시대의 음악 씬과 함께 하고 있다는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한편 음악 공간들에 외국인은 또 하나의 큰 손이었다. 그들은 ‘Happy Hour’라는 선진(?) 시스템을 도입했던 플레이 하우스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새벽에는 도어즈나 레드 재플린으로 기어들어 왔다. 음악 공간의 사장님들과 아르바이트생들이 술을 마시기 위해 일찍 문을 닫고는 아직 영업 중인 다른 공간으로 옮겨가던 훈훈한 풍경도 눈에 선하다. 그 시점에는 종종 시청 부근에 있던 파블로에 갔다. 파블로는 재즈와 블루스 음반이 잘 갖춰져 있었고, 또한 고가의 음향 시설과 영상 장비로 음악 감상의 격을 높여 주었다. 고수들의 틈에 끼어서 내공 가득한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었고, 어느새 얼큰하게 취해서 서로 부축하고 쓰러지며 근처의 해장국집(‘미풍’과 ‘모이세 해장국’), 제주 의료원 앞의 포장마차(뽀글이 라면이 예술이었다)나 고기국수 집으로 몰려갔다. 그리고 다음날 숙취가 풀리기도 전에 어머니의 “아이고 이 귓것아!”를 들으며 잠을 깼다. 구 도심권에 몰락의 기운이 목 아래까지 쳐들어온 2003년, 음악 공간들은 뒤늦게 자구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어떤 곳은 영업을 포기했고, 어떤 곳은 새롭게 각광받기 시작한 시청 주변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이미 그곳에는 1세대 음악 공간의 단골들이 자기들만의 가게를 마련해 놓은 상황이었다. 이쯤 되자 각자 무엇인가 뒤틀려버린 분위기가 생겼다. 그것은 소중했던 지역(지역과 기억은 왜 이리 비슷한 발음인가)을 떠나버린 죄책감일 수도 있고, ‘니가 그럴수 있냐’는 식의 의리의 문제기도 했고, 단순히 상권 이동 때문일 수도 있다. 여하튼 그 와중에 여전히 동시대와의 괴리감을 느끼던 많은 젊은이들은 과감히 서울로 떠나갔다. 그중엔 나도 끼어 있었다. 2012년 현재 제주도의 음악 공간은 새롭게 재편되었다. ‘팩토리(Factory)’는 신선한 음악, 영상, 공연까지 두루 포섭하는 매력이 있다. ‘B동 301호’는 국내 인디 음악이 주축이 되는 플레이리스트가 돋보인다. ‘블루힐’은 제주도의 인디 밴드들에게 공연 무대를 적극적으로 마련해 주는 보석 같은 곳이며, ‘엘리엇스 체어’는 제주도보다는 홍대 앞의 냄새가 더 많이 느껴지는 곳이다. 게다가 ‘간드락 소극장’이 마련되면서 한정적이던 공연 공간에도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추억과 기억의 애잔함이 나에게는 존재한다. 그런 기분이 들 때 ‘꼰대’가 된다고 1997년에는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덧 내가 추억과 기억의 애잔함이 음악 취향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는 나이가 되었다. 제주인임을 철저히 감추고 서울인이 되기를 갈망했던 죄책감 때문이기도, 명절 때마다 고향에 내려오면 옛 음악 공간에서 만취하기 때문이기도, 단지 호르몬 분비 감소의 영향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작년에 헬리콘에서 DJ를 했던 친구 녀석이 도어즈를 인수했다는 소식에 잠시 얼떨떨해졌다. 예전에는 우리 모두의 로망이었지만 이제는 무형문화재 전수자가 되겠다는 결심과 맞먹는 일을 감행한 친구가, 자랑스럽기도 걱정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2012년, 분명 동시대적 흐름이 지금의 제주도를 변화시키고 있다. ‘취향’이라는 가치가 제주도민들에게 서서히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패밀리 레스토랑이 붐비기 시작하고, 커피 전문점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브랜드 아파트 단지들이 세워졌다.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것들이 ‘자생했다’기보다 ‘이식되었다’는 확신이 든다. 그 이식의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과거의 무엇을 지키는 것이 결심이 되어버리는 상황이 슬프다는 것뿐. 끝으로, 혹시나 이 글을 읽고 등장했던 인물들과 음악 공간 혹은 먹거리라도 느껴보고 싶은 분이 있을지도 모를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그리고 그것들이 당신이 알지 못하는 제주도의 진정한 로컬 씬이라고 말하고 싶다. 제주도의 모든 귓것들의 명예를 걸고 말이다. | 노루_제주의 음악평론가 808drugs@naver.com * 귓것은 ‘귀신의 것’으로 해석되는 제주 방언이다. 그런데 어감상 ‘귀신이 데려가도 시원치 않을 놈’으로, 보통은 부모들이 ‘놈팡이 같은 자식’에게 쓰는 말이다. * 몽근놈은 ‘몽고놈’을 말한다. 몽고의 침입으로 핍박받던 제주의 어른들은 몽고인을 아예 욕으로 쓰고 있다. * 궨당은 제주도 사투리로, 표준어로는 ‘친척’이라는 뜻. ‘돌보는 무리’라는 뜻을 지닌 권당(眷黨)의 제주도 방언이다. * 제주시 문예회관 소극장은 고교 밴드와 대학 밴드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던 공연 공간이었다. * ‘요망지다’는 똑부러지다, 야무지다란 뜻의 제주도 방언이다. ‘요망스럽다’와 혼동해서는 안된다. 관련 글 [special] 지역 음악 씬: 이것은 ‘어디’에 대한 이야기다 [special] 지역 음악 씬: 제주의 음악 공간과 씬의 형성 [special] 지역 음악 씬: 제주에 과연 ‘씬’이 있는가 [special] 지역 음악 씬: 2012년, 부산의 인디를 말한다 [special] 지역 음악 씬: 개봉박두, [변방의 북소리-갈매기 공화국 리턴즈] [special] 지역 음악 씬: 인천 음악 씬의 전성기 [special] 지역 음악 씬: 1990년대 초반, 동인천 록 키드의 일상 [special] 지역 음악 씬: 대전 음악 씬의 형성 [special] 지역 음악 씬: 대전에서 보낸 스무살 8 Responses [special] 지역 음악 씬: 이것은 ‘어디’에 대한 이야기다 — weiv 2012.05.16 […] 지역 음악 씬: 이것은 ‘어디’에 대한 이야기다 [special] 지역 음악 씬: 제주의 음악 공간과 씬의 형성 [special] 지역 음악 씬: 제주에 과연 ‘씬’이 있는가 [special] 지역 […] 응답 [special] 지역 음악 씬: 인천 음악 씬의 전성기 — weiv 2012.05.16 […] 지역 음악 씬: 이것은 ‘어디’에 대한 이야기다 [special] 지역 음악 씬: 제주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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