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웨이브를 “Shortlist”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시작합니다. 한 달에 두 번, 한 번에 더 많은 앨범들에 대한 코멘트를 담았습니다. 2016년 1월 하반기 첫 순서는 방백, 일리닛, 버벌진트, 사람12사람, Subbeat 컴필레이션에 대한 필자별 코멘트입니다. 방백 | 너의 손 | 프럼찰리, 2015.12.28 조지환: 첫 트랙을 다 듣고 앨범 자캣을 보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자캣이 마치 첫 트랙의 가사의 마지막 부분을 재현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어딘가 같은 곳으로 응시하고 있는 듯한 둘의 눈빛은 조금은 어색한, 묘한 느낌을 준다. 자킷 뿐만 아니라, 이들 듀오의 작업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가령 다짐에선, 정겨운 선율 위로 갑자기 이질적인 질감의 신스음이 등장하지만, 신스 멜로디가 크게 어긋나는 느낌은 들지 않눈다. 이런 방식의 전개는 다른 트랙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때론 절규하는 듯 때론 환호하는 듯 널뛰기를 하는 보컬과 포근한 느낌의 사운드가 꽤나 잘 어울린다.이 음반의 성공은 가사에 그 공을 돌려야 할 것이다. 해묵은 피로가 묻어있는, 우리와 가까운 곳에서 지금도 펼쳐지고 있는 삶의 이야기들이다. 백현진은 한국어 노랫말이 닿을 순 있는 문학적 기능의 경지를 간취한 듯 보인다. 흔하디 흔한 풍경을 흔한 언어들로 적어냈지만, 그렇기에 더욱 내밀한 곳까지 파고든다. 오랜만에 난 음악을 들으며 가슴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 새해 첫 번째 행운이다. 8/10 일리닛 (Illinit) | Made In ’98 | Triple I, 2015.11.25 이선엽: 비록 씬의 새 얼굴은 아니지만, 일리닛은 이번 [Made In ‘98]으로 비로소 큰 발자국을 남겼다. 이전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분명해진 발성을 접할 수 있는데, 그의 플로우는 특히 “Made In ‘98”이나 “항상 (I Am I)”처럼 붐뱁 트랙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하지만 전반부의 강렬함 탓인지, “눈 떠 (Interlude)”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이어지는 칠(chill)한 바이브가 주도적인 프로덕션 위에선 그다지 큰 활약을 보이진 못 한다. 혈기왕성하던 어린 날의 회상과 그 동안 체감해온 회의감, 그리고 1인칭 시점의 경험들과 감정선을 빼곡히 담았다. 과거의 경험담과 현재의 일상, 그리고 미래를 향한 낙관으로 끝을 맺는 식의 서사적 구성은 2015년 국내 힙합 대표작들인 딥플로(Deepflow)의 [양화]와 이센스(E SENS)의 [The Anecdote]와 공통점을 갖는다. 그러나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나 청각적인 즐거움까지도 비슷하지는 않다. 확고해진 목소리와 스토리텔링 솜씨를 주재료로 사용하면서, 1998년도에 탄생한 ‘일리닛’이라는 자아가 성장하며 완성된 과정을 전시해냈다. 7/10 버벌진트 (Verbal Jint) | Go Hard Part 1: 양가치 | 브랜뉴뮤직, 2015.12.19 정구원: [Go Hard Part 1: 양가치]가 [무명]과 [누명] 시절의 음악과 비교되고 있는 건 나에게는 사실 좀 당혹스러운 양상이다. 아마도 ‘감성 발라드 랩’이라고 흔히 표현되는 2010년대 버벌진트의 행보가 상대적으로 ‘하드’한 접근을 취한 이번 앨범을 2000년대 말의 두 작품과 견주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앨범은 [무명]과 [누명]의 재림이 아닌, [무명]과 [누명]이 쌓아 놨던 이미지를 착취하는 앨범에 가깝다. 혹은 버벌진트에게 우리가 가졌던 ‘언젠가 하드한 걸 다시 하겠지’라는 기대를 착취한다고 볼 수도 있다. [Go Hard]에 담긴 공격성은 표적 없이 방황하고 있고, 자기성찰은 어디서 많이 들은 듯한 기시감만 남긴다. 과거 그의 음악에 가득했던 날카로운 냉소와 비꼼에서 오는 쾌감은, 여기에 없다. 다만 공허하고 모호한 – 그래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접근하고 소비하기 쉬운 – ‘하드함’만이 떠돌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앨범이 그의 커리어 중에서도 역대급으로 쏙쏙 꽂히는 랩과 깔끔하게 다듬어진 비트를 자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그것이 잡다한 인간들을 멸종시키고 착한 형이 된 버벌진트의 현재 모습일 것이다. 꽤나 지루하다. 5.5/10 김민영: 양가치, 왠지 쓸쓸한 어감이다. 한없이 감미롭기만 한 기존의 사랑 이야기에서 인생의 허탈함과 번뇌에 대해 허심 없이 털어놓은 본 음반을 대표하기에 적절한 표현이다. 갈 데까지 가고 난 후에도 방황하는 “현자타임”, 누구나 완벽한 세상을 꿈꾸지만 현실은 정작 강자의 순리대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질색을 보여준 “세상이 완벽했다면” 등 대부분의 수록곡들이 온통 어두운 분위기다. 양가치는 1990년대의 자신의 모습과 그 시절 리스펙트를 보냈던 래퍼들의 명가사를 나열하면서 초심을 잊지 말자는 다짐으로 시작한다. 이어서 30대가 된 지금과 먼 미래의 이야기까지 꽤 넓은 시간대의 스펙트럼을 동시에 얘기한다. 그러나 대체로 그 흐름은 비관적이며, 끝없이 우울하다. 긴장과 경계가 오가는 중에도 음악과 가사의 내용은 꽤 치밀하고 빈 틈이 없다. 과거회상은 물론 미래를 바라보는 정서가 꽤나 비관적인 탓에 [Go Hard Part 1: 양가치]에 대해 ‘대략 지루하다’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최근 트랩이나 조악한 사운드가 난무하는 음악들 사이에서는 꽤 변별력을 제공한다. 흔한 유행보다는 내면의 성찰에 충실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것이 비록 칙칙한 얘기일지라도. 하지만 언제나 낙담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을 떠올리며. (덧: 다소 어둡기만 한 음악들 중에서 ‘빵셔틀’에서 ‘잘 나가는 동창생’으로 변모한 블랙넛의 스토리는 이 음반의 또 다른 재미다) 7/10 사람12사람 | Feels Too Letter EP | 영기획, 2015.12.12 조지환: 마지막 트랙부터 이야기하고 싶다. 차가우면서도 여린, 지음의 관능적인 목소리와 기타 스트로크가 곡의 이끌어간다. 전작에서는 전면에 나섰던 전자음은 한 발 뒤로 빠져 앰비언트 사운드로 기타를 보조한다. 그 사이로 간간히 이국의 언어로 속삭이는 대화와 웃음소리가 들린다. 이 음반의 모든 곡들은 어떻게 설명하기 힘든 분위기를 그려내고 있다. 다만 그것은 너무 절망적이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은 우울감을 그려내고 있다. 말로 형용하기 힘든 멜랑콜리. 사람12사람이 가지고 있던 가장 큰 강점은 바로 그 감성이었다. 전작에서도 이들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지음의 보컬이다. 또렷하지는 않은 발음에, 또한 서로 어울리지 않을 법한 단어들이 나열되어있는 노랫말이지만, 읊조리듯 노래하는 그녀의 목소리만 들어도 어떤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자칫 과하면 신파적인 넋두리로 변질될 수 있었을 분위기 속에서 지음의 목소리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거기에 은천의 사운드 디자인이 더해주는 공간감으로 곡들은 밋밋함을 피해간다. 정교한 음반이다. 이들이 얼마나 명민한 듀오인지 알 수 있다. 8/10 카미캣: 일렉트로 팝 듀오 사람12사람의 두번째 EP. 전작 [빗물구름태풍태양 EP]가 ‘일렉트로’에 무게가 실려 있었다면 이번 앨범은 ‘팝’ 쪽에 더 기울어졌다. 멜로디의 진행에 있어서는 전작과 유사한 방식으로 움직이는 지점이 많지만, 그것을 갈무리함에 있어서의 방향성은 달라졌다. 전작에 비해 송라이터이자 보컬인 지음의 색깔이 더 강하게 드러나고 있으며, 잘 짜여진 섬세함으로 모든 사운드를 지휘하던 은천은 보다 가벼워진 터치로 곡에 관여한다. 대부분의 곡들의 사운드 편성은 이전보다 단촐해졌고 그것이 다소 심심한 첫인상을 갖게 하지만, 특유의 ‘은밀한 공간감’은 분명 강화되었다. 보컬 지음은 단순히 ‘목소리’만이 아닌, 입술이 부딪히는 소리, 잇새로 바람 새는 소리, 한숨쉬는 듯한 콧소리를 골고루 사용하며 청자의 감각을 고조시키고, 프로듀서 은천은 가벼워졌지만 더 뾰족하게 침투하는 글리치 사운드로 서포트한다. 바람 소리 혹은 비명처럼 감겨드는 앰비언트 사운드가 곡의 상승에 톡톡히 기여하며 일종의 소리풍경을 만드는 “Pitch Black Night”, 보컬 뒤로 속삭이는 목소리·카우벨·두꺼운 스트링의 마찰음 등 수많은 종류의 ASMR 트리거를 솜씨 좋게 배치한 “Everything Feels All Damn Too Tight”, 멜로디는 가장 이질적이지만 편곡방식에 있어서는 가장 전작과 닮아 있는 규모 큰 사운드 편성의 “Shatter Guy” 등, 늘 그랬듯 이 듀오가 일하는 방식은 효율적이고 개성적이다. 분명 사람12사람은 더디고 일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움직이며, 그 결과물은 아직 전작과 유사한 지점에 머무른 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체하기 어려운 감성을 강력한 방식으로 들려주고 있다. 7.5/10 김세철: 전작과는 꽤 달라졌다. [빗물구름태풍태양 EP]에서는 은천이 빚은 전자음이 도드라졌지만 [Feels Too Letter EP]에선 지음이 연주한 어쿠스틱 기타가 중심에 놓인다. 다섯 곡 중 “Shatter Guy”를 뺀 네 곡의 진행을 어쿠스틱 기타가 이끌고 “Pitch-black Night”는 드럼의 질감마저 어쿠스틱을 노렸다. “Shatter Guy” 역시 간주의 신스 아르페지오 위에 현악을 얹어 익숙함을 더했다. 곳곳에서 돌출하는 전자음으로 긴장을 일으키던 전작에 비하자면 안정적인 팝이 된 셈이다. 그러나 대중의 눈치를 봤기에 생긴 변화는 아닐 것이다. 이들은 덜 위태로워진 대신 더 짙고 처연해졌다. 호흡을 힘겹게 뱉어내듯 노래하는 지음의 목소리 덕분이며, 목소리에 집중하도록 주변에 머무르는 나머지 소리들 덕분이다. 은천은 화려한 소리를 자랑하는 대신 소리를 적소에 배치해 공간감과 분위기를 만드는 데 집중한다. 뜻 모를 가사가 모호한 발음에 담겼는데도 곡에 담긴 울적함만은 정확히 전달되는 것도 그 덕이다. [Feels Too Letter EP]는 다양한 장르를 담는 대신 울적한 기분만을 시종일관 밀어붙인다. 재생시간이 20분을 조금 넘기는 EP가 아니었다면 못 했을 결정이다. 두 장의 EP를 통해 사람12사람은 지음과 은천의 조합 안에서만 가능한 여러 세계들을 찬찬히 실험하고 있다. 두 번째 실험을 다 듣고 나니 또 달라질 세 번째를 기대하게 되었다. 7.5/10 Subbeat | Future Seoul Collective #1 | Subbeat, 2015.12.12 정구원: 귀여운 댄스 튠. [Future Seoul Collective #1]에 담긴 소리들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귀여움'(좀 더 면밀하게 표현하자면 ‘카와이함’)이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물론 폭발사산하는 강렬한 신시사이저 소리와 두툼한 베이스 비트 등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에 빠지면 섭섭한 요소들도 충실하게 갖추고 있지만, 서브비트(Subbeat)의 첫 컴필레이션 단위 레코딩에는 우리가 흔히 들을 수 있는 댄스 음악과는 분명하게 결이 다른 사운드 –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리듬게임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사로잡힐 수밖에 없는 “Primula”-“Glimmer”-“Sakura Effect”의 멜로디라인, “Daydream Illusion”의 슈퍼 마리오 샘플링, 쉴새없이 궤도를 바꾸는 “F For 160″의 갑작스러운 구조 등 – 가 담겨 있다. 서브컬처에 기반을 둔 이런 독특한 결은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수많은 공연과 파티를 통해 다져진 서브비트(Subbeat)라는 무브먼트의 정체성이자 자산일 것이다. 이것이 ‘Future’ 같은 거창한 단어까지 붙일 정도로 새로운 소리냐는 질문에는 아직 유보적일 수밖에 없지만, 최소한 이들이 한국 일렉트로닉 씬에 지금껏 보지 못했던 명확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는 런던의 PC 뮤직(PC Music)이나 밴쿠버의 1080p 레코드(1080p Records)를 더 이상 부러워하지 않아도 될 무브먼트를 이미 목격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7.5/10 김세철: 담긴 소리의 성분을 따져본다. 우선 밝은 멜로디를 자극적으로 쏘아대는 신스 리드가 뼈대를 이룬다. 그 위에 피치를 올리거나 내려 변조한 보컬 샘플들이 얹히고 여러 효과음이 주변을 감싼다.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에서 따왔을 소리도 있고, 트랩 장르에서 자주 들어온 끽끽 대는 소리나 물방울 소리도 있다. 특색 있는 열두 곡의 맛을 이렇게 간추리고 나면 입안에는 단연 단맛이 맴돈다. 애니메이션 문화를 섞은 하드코어 음악을 선보여온 Zekk의 “Glimmer”, 동화 같은 소리가 영국의 일렉트로니카 뮤지션 보 은(bo en)을 연상시키는 IMLAY의 “Green Dolphin St.”, 제목만으로 맛이 짐작되는 Nor의 “Lemon Candy”는 특히 그런 곡들이다. 한국의 전자음악 컴필레이션이란 점에선 영기획의 [3 Little Wacks]와도 비교할 법하지만, 단맛을 중심으로 둘의 지향점이 갈라진다. 두 음반 모두에 참여한 Theoria의 곡들을 비교해보면 차이는 분명하다. [3 Little Wacks]에 실린 “Impulse Drive”이 잡음에 가까운 기계음을 실험적으로 몰아붙이는 글리치를 시도했다면 [Future Seoul Collection #1]에 실린 “F for 160”은 또렷한 멜로디와 브레이크비트를 쏘아대는 풋워크를 선택했다. [3 Little Wacks]를 들었을 때처럼, 이 음반을 듣다 보면 이들이 꾸리고 있는 전자음악의 생태계에 기대를 걸어보게 된다. 전에 없는 소리를 들려주겠다는 욕심 따위는 없는데도 그렇다. 이 음반은 사탕 같은 달콤함 만으로도 더 나은 미래를 예감하게 한다. 8/10 Leave a Reply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CommentName* Email* Website 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