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iv]의 이번 기획은 ‘지역의 음악 씬’이다. 보통 한국의 ‘인디 록’은 ‘홍대 앞’이라는 공간과 연관되어 사용되지만, 이미 다른 지역에서도 다양한 음악적 실천들이 수시로 벌어졌고, 또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인디 록이란 홍대 안에 있는 게 아니라 홍대 앞으로 집중된 결과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이런 맥락에서 서울 이외의 도시와 그 음악적 경험과 실천 들을 포괄적으로 살피고자 한다. 이번에는 1980-1990년대에 ‘메탈의 도시’라고 불렸던 인천과 부산을 비롯해, 대전과 제주의 과거와 현재를 다룬다. 이외의 다른 지역들도 차차 정리하도록 애쓸 것이니, 지역 음악 씬에 대한 글을 쓰고 싶거나 정보를 제공할 분들은 연락을 부탁드린다. 이를 통해 지역 씬과 음악 팬들에게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 차우진 nar7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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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에는 의미가 있다

휴대폰에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낯선 목소리의 사람이 전화를 걸어온다. 친숙하지 않은 목소리로 “여보세요?”라고 말하면 우리는 “어디세요?”라고 되묻는다. “누구세요?”라고 할 때도 있지만 “어디세요?”도 그만큼 횟수가 많을 것이다. 하나 더. 가족이나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그/그녀가 전화를 받으면 “어디야?”라고 묻는다. 어떤 때는 아주 정겨운, 다른 때는 의심스러운 마음으로 그렇게 물을 것이다. 이 정도면 이 글의 의도도 눈치 챘을 것이다. 맞다. ‘어디’는 매우 중요하다. 그 ‘어디’는 물리적 장소를 말하지만 사실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어디야?”라고 물었을 때 “클럽!”이라고 대답하는 것과 “박물관!”이라고 대답하는 것은 상대방으로부터 천양지차의 반응을 가져올 것이다.

장소에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시인이자 영화감독인 유하가 1991년 [바람 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는 제목의 시와 영화를, 소설가 양귀자가 1995년 [비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는 소설을 만든 것을 떠올려보자. 여기에는 ‘압구정동’이라는 장소와 ‘가리봉동’이라는 장소가 내포하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이 상징성에는 단지 거리와 건물 등의 환경뿐 아니라 그곳을 오가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 차이는 ‘오렌지족’과 ‘조선족’의 것과 거의 유사한 것이다. 그러니 방금 내가 한 말, 장소에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얘기는 부정확하다. 장소들에는 사람들이 서사와 의미를 부여한다. 학계의 수사를 조금 써도 된다면 장소는 문화적 건축(cultural construction)이고, 결과라기보다는 과정이다.

쓰다 보니 길어졌다. 나이 들면 말도 많아지고 글도 길어진다. 요지는 이것이다. 음악과 장소의 관계는 무엇인가. 여기에 1:1의 관계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주 단순하고 무식한 행태겠지만, 대중음악에 관한 담론들이 특히 장소와 사운드를 연결하는 쪽으로 발달해 있다는 건 인상적이다. ‘리버풀 사운드’, ‘내쉬빌 사운드’, ‘샌프란시스코 사운드’, ‘웨스트코스트 사운드’, ‘마이애미 사운드’, ‘시애틀 사운드’, ‘맨체스터 사운드’, ‘시부야계 사운드’ 등… 이 목록은 술을 마시다가 음악 역사에 대해 옆 자리의 누군가와 지식 배틀을 하기에 꽤 좋을 주제 같다. 영화나 드라마는 그렇지 않은 것 같고, 문학은 조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이런 ‘지역과 음악’에 대한 얘기가 너무 먼 나라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까? 땅덩이도 조그만 한국(남한)에서 대중 음악은 죄다 ‘가요’고, 최근 들어서야 ‘홍대 앞 인디’니 ‘청담동 인디’니 다소 ‘진지하지 않게’ 이야기되는 정도가 아닐까? 그렇지만은 않다. 음악 스타일과 장소를 연결 짓는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음악인들의 인맥을 논할 때 ‘명동파’, ‘무교동파’, ‘명륜동파’, ‘신촌파’ 등의 호칭은 실제로도 존재했다. 어쨌거나 명동, 무교동, 명륜동, 신촌, 홍대 앞, 청담동 등이 그저 행정구역이 아니라 특정한 의미들을 동반한다는 것에 동의해 주길 바란다!

이것은 ‘어디’에 대한 이야기다

한편 외국에 나갈 때 주류와 인디(혹은 그냥 비주류) 사이의 차이도 있다. 빅뱅과 소녀시대와 2PM은 ‘K-pop’이라는 이름으로 외국에 나간다. 하긴 청담동과 상수동의 대형 엔터테인먼트사 빌딩들은 태릉선수촌과 비슷한 수준의 강훈련으로 ‘국가대표’를 만들어내는 곳이긴 하다(문화부 장관이 아이돌 공연에 가서 격려하는 것과 복싱 세계챔피언이 경기 직후 대통령과 통화하는 것 사이에도 무언가 연관성이 있을 것이다). 반면 인디가 외국에 나가는 것을 보면, ‘서울소닉(Seoulsonic)’이라든가 ‘서울-도쿄 사운드 브리지(Seoul-Tokyo Sound Bridge)’라는 타이틀을 가진다. 아마도 이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것보다는 ‘서울의 사운드’라는 것을 내세우면서 K-pop과 차별화하고 싶었던 것 같다. 서울-도쿄 사운드 브리지를 주최한 측은 ‘서교음악자치회’였다. ‘한국’도 ‘서울’도 이제는 너무 커서 그 장소감을 느끼기는 힘들어서였을까. 지난 10년을 돌이켜 보면, ‘관악’청년포크협의회, ‘서교’그룹사운드, ‘동묘’폴리스박스처럼 도시의 한 구역 명칭을 명시적으로 내세우는 경우도 있다. 노래 제목이나 가사에 삼청동, 선유도, 신대방, 삼성동, 이화동의 이름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최근 발매된 [Seoul Seoul Seoul]이라는 컴필레이션이 나온 배경도, 지난 10년 정도의 경험이 몇몇 기획자들의 눈에 예민하게 포착된 결과가 아닐까.

그런데 아직까지도 ‘서울’이다. 언젠가부터 서울이 한국을 대표하는 것조차도 아니라, 한국이 서울을 대표하게 된 것 같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서울에 붙어 있지만 마음은 서울을 떠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weiv]에 차우진이 쓴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서울 사람”에 대한 글을 보면, 촌에서 올라온 저 밴드 멤버들이 서울을 떠날 행렬의 첫 번째 줄에 설 것 같다. 소문에 밝은 사람이라면, 조금 앞선 세대의 음악인들 중에 누군가 “제주도로 갔다”는 말을 들었을 것이고, 그들이 아직 거기에 머물고 있다는 것도 알 것이다. 이걸 두고 ‘지방시대가 왔다’느니 어쩌니 떠들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대체로 저런 말들은 사기다. 그렇지만 뭔가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느낌은 든다. 대도시에서 사람들이 정을 붙이고 살기란 힘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매일같이 어딘가 때려부수는 일이 반복되면 심리가 불안정해진다. 어려울 것까지 없는 개념을 쓰자면, 장소에 대한 접착(attachment)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접착을 애착으로 바꿔서 이해해도 좋다. 장소에 접착하기 위해, 그 장소가 특별히 아름다울 필요는 없다. 가리봉동이나 광희동에 가면 중국이나 중앙아시아에서 온 이주자들이 살고 있다. 대도시의 틈새에 기묘하게 인클레이브(enclave)가 만들어진 것이다. 보기에 남루하고 허름하고 지저분하지만, 그 사람들은 그곳을 집처럼 편안하게 느낀다. 그 공간의 여러 장소들에서 여러 가지 서사와 내러티브와 사연이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다.

이 기획은 ‘어디’에 대한 이야기다. ‘어디’란 장소를 말하고, 이 장소는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이다. 그리고 서울 외부의 장소들이다. 사실 나같이 서울에서 살다가 서울 교외로 쫓겨난 사람은 서울 밖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잘 모른다. [개그콘서트]의 ‘네 가지’에서 양승국이 “마음만은 특별시다!”라면서 “우리도 인디 록 들어!”라고 할 수도 있다. 아무래도 좋다. ‘서울 내부에서 흥미로운 것이 더 이상 나올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음에 등장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해보자. 그러니까, 누구(아티스트)가 무엇(작품)을 만들고 어떻게(미디어) 전달되는가에 주목하는 것을 넘어서 ‘어디’에도 더 많이 주목해 보자. 어떤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과, 그 일상을 벗어나려는 욕망과, 그 욕망을 담은 사운드가 창조되기를 바란다. 앞서 언급한 서양의 저 알싸한 ‘○○○ 사운드’에서 ‘○○○’이란 장소들은 그 나라들에서는 보통 ‘촌동네’들이다. 그게 이 뺀질뺀질거리는 대도시 공간에서 영악해질대로 영악해진 사람들이 만드는 사운드와는 무언가 다르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품어보자. 일단은, 이게 내가 아는 ‘로컬 사운드’다. | 신현준 hyunjoon.sh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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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Respon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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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HIZAKI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각국의 대도시이란 상징성 보다 더 하류 도시에 내포하는 음악적 씬이 그런 상관관계있었다니, 음악이란 모르는 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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