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하반기 쇼트리스트는 화지, 이아립, O.O.O, 김일두에 대한 필자별 코멘트입니다. 화지 | Zissou | 인플래닛, 2016.02.02 이선엽: 화지가 [Zissou]에서 다루고 있는 소재는 결코 가벼운 클리셰가 아니다. 앨범 아트만 봐도 그런 기운이 온다. 불바다가 되어버린 소위 ‘헬조선’이 필요로 했던 시대상이자, “누가 위 누가 아래” 따져대기에만 혈안이 된 작금의 국내 씬이 필요로 해온 상징적인 작품이다. 1집 [EAT]의 연장선 격인 이번 앨범에서 그는 그의 지극히 주관적인 세계관으로 청자를 초대한다. 취업 문제와 사회 생활에 찌든 20대 중후반 동갑내기들의 하소연에 무관심으로 일관하고(“그건 그래”), 힙합 씬 내에서 벌어지는 정치까지도 조소로 반응한다. 돈 혹은 ‘밥벌이’에 대한 이야기나 사사로운 고뇌까지도 진솔하고 무덤덤하게 털어놓는다. 굉장히 흥미로운 점은 이 모든 ‘썰’들이 개인적인 경험인 동시에 사회적 현상이기도 하다는 부분이다. 그런 측면에서 [Zissou]는 단순히 공감 혹은 일갈을 뛰어넘어 철학적이고 강력한 비판으로서 기능하는 예술 작품이다.또한 빠트릴 수 없는 점은 청각적인 부분이다. 앨범 전곡의 프로덕션을 맡은 영 소울(Young Soul)은 특히 샘플 운용 면에서 엄청난 재치와 내공을 뽐내는데, 붐뱁 특유의 그루브로 설명되는 곡(“상아탑”, “안 급해”, “Gypsy Girl”)이 있는가 하면 또 UGK 혹은 8Ball & MJG를 연상시키는 더티 싸우스(Dirty South) 느낌의 베이스라인으로 흥을 돋우기도 한다(“꺼져”, “히피카예”, “UGK”). 거기에 탁월한 훅과 선명한 표현이 더해지니, 어떻게 감히 감상 도중에 정지 버튼을 누를 수 있겠는가. 어렵지 않게 2016년 국내 명반감이다. 9/10 김민영: 걱정과 넋두리의 싸이퍼. 바로 얼마 전 청년실업률이 ‘최고치’를 찍었다는 뉴스를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화지의 음반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공감되는 점은 ‘서울을 떠야돼’였다. 2016년, 한국에서 살고 있는 ‘아파서 청춘’인 20대의 이유있는 자포자기를 대변하기에 가히 부족함이 없다. 불안한 국면에 처한 사회초년생 혹은 취준생들에게 ‘명분있는 아픔’을 외치면서 아무 생각 없이 단순히 놀고 먹자고 부추기는 ‘허영’만 가득한 음악이 아님을 분명히 한 셈이다. 지나치게 사색적이고 고뇌에 찬 가사보다는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면서 살지 말자는 것이 [ZISSOU]의 메시지다. “상아탑”을 시작으로 음반의 분위기는 ‘어짜피 돈 몇푼 벌겠다고 꿈을 포기하고 산들, 뒤질 거 똑같은데 그냥 하고 싶은거나 맘껏 해라’고 하는 듯하다. 전반적으로 음악들은 차분하고 나른한 템포로 전개된다. 거기에 ‘쾌락이 최선책’, ‘진정제가 필요해’ 라고 꼬득이는 노랫말까지 겹쳐지니 가히 멋질 수 밖에 없다. 특히, 타이트하고 삐걱거리는 래핑에 몽환적인 멜로디가 인상적인 “나르시시트”, 익살스럽게 재밌는 ‘파입오~(50)’ 추임새가 돋보이는 “UGK”는 화지의 디스코그래피를 더욱 빛나게 해주는 곡이다. 최대한 서울에서 반대쪽으로, 먼 곳으로, 모로가도 바하마로 가면 그만이다. 음반 자켓에서 볼 수 있듯이, 어딘가로 추락하는 비행기 안이지만 팝콘을 먹으면서 ‘뒈지더라도 차라리 맘 편히 지금 이 순간을 살자’라고 느끼게 하는 것, 바로 이 음반이 얘기하는 여유의 힘이다. 한번 사는 인생, 마음만 먹으면 팝콘보다 더 달콤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한 음반이다. 9/10 이아립 | 망명 (亡明) | 일렉트릭 뮤즈, 2016.02.03 김세철: 새로운 소리를 탐험하려는 음악가가 있는가 하면 익숙한 것들을 정성스레 세공하려는 음악가가 있다. 솔로 이후의 이아립이라면 아마 후자에 속할 것이다. [망명 (亡明)]에서도 그렇다. 흔한 사랑 이야기라는 점에서 익숙하고, 이번에도 흑백인 음반 커버처럼 하던 음악의 색채를 이어간다는 점에서 익숙하다. ‘지독한 사랑’에게 떠나라고 말하는 “계절이 두 번”, 옛 연인의 새 애인에게 충고하는 설정의 “조언”은 뻔하다 싶은 이별 가사를 담았다. 포크와 발라드를 오가는 구성도 여전하고 “그 사람”의 마림바 도입부는 괜히 전작의 “바람을 일으키다” 속 실로폰과 겹쳐듣게 되기도 한다. 익숙하단 말이 전부라면 좋은 음반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망명 (亡明)]에는 익숙함을 납득하게 만드는 미덕들이 함께한다. 우선 프로듀서 홍갑의 정갈한 편곡이 있다. 전보다 풍성해진 편곡은 목소리를 받쳐주는 한편 곳곳의 간주에서 듣는 재미를 더한다.“계절이 두 번”은 앞뒤에는 신디사이저를, 가운데엔 일렉 기타 솔로를 넣었고 “원더랜드”에선 기타와 오르간이 차례로 끼어든다. 피아노로 시작해 악기를 쌓아가는 “1984”는 갑작스러운 끝맺음 덕에 뻔하지 않은 방식으로 가사를 곱씹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여기에는 3년간 쌓였을 곡들을 딱 여섯으로 추린 신중함이 있다. [망명 (亡明)]은 여섯 곡만으로 진지한 이아립과 통속적인 이아립과 귀여운 이아립을 모두 담았다. 그러니 이아립을 모르는 이에겐 이 음반을 권하면 좋겠다. 물론 이미 이아립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실패할 리 없는 선택일 것이다. 7.5/10 O.O.O | Home EP | 파스텔뮤직, 2016.01.25 조지환: 아주 깔끔한 기타 톤으로도 꽤나 넓직한 공간감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맑은 톤으로도 가벼운 느낌이 들지 않도록 연주하는 밴드는, 특히 요즘 들어 흔치 않은 것 같다. 본작에 이들은 스무살 언저리의 젊은 고민들을 담았다. 스스로에게 건네는 말들을 적어낸 가사에서 그 고민들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클린한 기타 톤 또한 때 늦은 사춘기를 그려내려는 시도에서 나온 결과물일 수도 있다.이들의 일관된 서정은 음반에 유기성을 더해준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유기성이 트랙들 간의 유사성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특히 난 처음 이 음반을 들을 때 1번 트랙과 2번 트랙이 동일한 곡인가 착각하기도 했다. 다음 음반들에서는 그들의 치열한 고민들이 더 다양한 방식으로 그려졌으면 좋겠다. 6.5/10 정구원: 애매한 EP. “눈이 마주쳤을 때”초반의 깔끔하고 가벼운 터치와 “모래”의 묵직한 보컬 멜로디 등 상당히 잘 짜인 (장르로서의) 모던 록을 구사하는 광경을 보면 O.O.O가 범상치 않은 밴드라는 건 확실히 느낄 수 있다. 그러나 한국 모던 록의 선구자들이 쌓아 올렸던 성취를 떠올리면서 유보적인 입장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에게서는 분명한 가능성이 느껴지지만, 그 가능성은 다른 아티스트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지점에서 비롯된다기보단 선대 뮤지션들의 좋은 부분을 솜씨 좋게 재조합하는 능력에서 도출된다. 그런‘차별화된’ 지점을 바라게 된다는 점에서는 데뷔작으로서 성공적인부분이 존재하긴 하나, 아직은 갈 길이 멀다. 5.5/10 김일두 | Life Is Easy | 붕가붕가 레코드, 2016.02.01 정구원: 열다섯 곡을 훌쩍 넘었던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적은 수록곡의 숫자. 버전을 달리한 똑같은 곡이 2개나 들어있는 구성(“LifeIs Easy”, “마모”). 형식만 놓고 본다면 [Life Is Easy]는 소개 문구의 이야기대로 정규작이 아닌 특별 앨범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작품이다. 그렇지만 그 사실이 이 앨범이 지니고 있는 빛을 가리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앨범을 들으면서 그를 접하게 된 첫 작품인 [난 어쩔 수 없는 천재에요]를 듣던 그 순간이 유독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것은 원테이크로 진행된 녹음 과정에서 느껴지는 날것의 기운 덕분이기도 하지만, 이 앨범이 김일두가 단순히 진한 감성만을 가진 것뿐만이 아니라 뛰어난 송라이팅 능력도 가지고 있는 포크 뮤지션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동안 김일두를 정의해 왔던 투박함은 덜한 대신, 조용한 어쿠스틱 기타를 중심에 놓은 ‘이지(Easy)’한 방법론이 솜씨 좋게 청자를 감싼다. 그렇다고 머리 한구석을 별안간 때리는 표현들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앞으로 ‘늘 나보다 일곱 곱절은 신나라’라는 표현을 자주 써먹게 될 것 같다). 우리가 김일두를 왜 좋아했는지, 그리고 왜 계속 좋아할 것인지를 다시 일깨워 주는 ‘특별한’ 앨범. 7.5/10 Leave a Reply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CommentName* Email* Website 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