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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작은 2005년이었다. 본격적으로 ‘진지하게’ 음악을 듣기 시작했던 무렵, 어디서 앨범을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내 안에서 자라나기 시작했다. 살던 동네에 있던 CD 가게는 그 당시 폭발하던 나의 음악적 욕구를 채워주기엔 이미 그 효용가치를 상실하고 있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의 CD가 없었다). 고민하면서 인터넷을 뒤지던 내게 정말 가뭄에 단비와도 같이 딴지일보의 오프라인 음반 매장 특집 기사가 나타났고, 부품 마음(과 큰돈)을 안고 강서구에서 신촌으로의 여정을 떠났다.

향음악사의 입구에 들어선 뒤 처음 든 생각은 ‘작다’였다. 아마 향음악사에 들어서기 전에 지금은 사라진 신나라레코드에 먼저 들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핫트랙스를 연상케 하는 넓은 공간과 깔끔한 배치를 맛보고 난 다음 동네 CD 가게보다 작은 향음악사의 몰골을 보니 살짝 김이 빠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작고 낡은 공간 안에 빼곡하게 들어찬 앨범과 그 앨범 사이에 자리잡은 [Funeral]을 발견하고 난 뒤 처음 느꼈던 약간의 실망감은 저 너머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 순간 한두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좁디좁은 공간이 갑자기 내 마음 속에서 팽창해 나가기 시작했다.

아케이드 파이어의 [Funeral], 요 라 텡고(Yo La Tengo)의 [I Can Hear The Heart Beating As One], 윌코(Wilco)의 [Yankee Hotel Foxtrot], 프란츠 퍼디난드(Franz Ferdinand)의 [Franz Ferdinand], 인터폴(Interpol)의 [Turn On The Bright Lights], 매드빌런(Madvillain)의 [Madvillainy]. 그 날 나는 밥을 사먹을 돈까지 쏟아부어 가면서 6장의 앨범을 샀고, 그 앨범들은 이후 내가 음악에 대한 취향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다. 물론, 앨범뿐만이 아니라 신촌 앞의 조그마한 레코드 가게 향음악사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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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그래픽뉴스팀 장성구 팀장, 2012년 <인포메이션 그래픽 디자인전 K-POP 인포그래픽으로 피어나다> 전시회 중

 

 #2

2003년, 한국 음악 시장에서 온라인 매체와 오프라인 매체의 시장 규모는 역전됐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한 해 동안 음반을 1장 이상 구입한 사람의 비율은 2005년 53%에서 2013년 19.2%로 단 한번의 증가세도 없이 줄어들었다. 사람들이 CD로 음악을 듣는 건 더는 일반적인 현상이 아닌 ‘기행’에 가까워지고 있다. 애초에 CD를 재생할 수 있는 플레이어, 혹은 CD 드라이브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일반화되었다.

영기획 대표 하박국은 LP에 대해서 “지금의 LP는 음악을 듣기 위한 도구보다 머천다이즈에 가깝다.”고 썼다. 2016년 현재 한국에서는 CD 역시 동일한 상황에 처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인류 역사상 어떤 때보다도 간편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대에 CD는 음악을 듣기 위한 고유한 수단보다는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있는 예쁜 기념품이 되었다. 그러한 지위의 격하가 음반 매장의 몰락을 가져온 건 필연적인 결과였다. ‘동네 음반가게’라는 단어는 대다수의 사람에게 과거의 유산이 되었으며, 살아남은 음반 매장은 핫트랙스 등의 대형 매장 혹은 카탈로그에 있어서 자신만의 특성을 가지고 있던 일부 가게로 한정되었다.

그리고 음반을 꾸준히 구매하던 사람들 역시 그 소비 패턴을 변화시켰다. 공연을 자주 보러 다니던 사람들은 공연에서 직접 해당 뮤지션의 음반을 사는 경우가 많아졌으며, 레코드 가게뿐만이 아닌 카페나 예술공간 – 한잔의 룰루랄라, 아메노히 커피점, 무대륙, 재미공작소 등 – 에서도 인디 뮤지션들의 음반을 취급하기 시작했다. 아마존이나 레이블 직접 주문 등의 루트를 통해서 해외 앨범을 구입하는 일은 이전보다 훨씬 쉬운 일이 됐다. 음반을 수집하는 적극적인 수요층에 있어서도, 레코드 가게는 더 이상 ‘유일한’ 구매의 수단이 아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점점 더 안 좋아지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남아 있었던 레코드 가게가 언제까지고 남아 있을 거라는, 지금껏 그래 왔으니까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근거 없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2010년대를 기점으로 깨져나가기 시작했다. 2014년에 미화당 레코드가, 2015년에 퍼플레코드와 레코드포럼이 문을 닫았다. 그리고 올해 3월 2일, 향음악사가 매장을 정리한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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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동한 성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라고 적힌 커다란 흰 현수막이 걸린 향음악사의 모습은 어색했다. 평소였다면 신보를 낸 뮤지션들의 커다란 포스터와 함께 한쪽 구석에 신보 도착을 알리는 조그만 화이트보드가 놓여 있어야 할 텐데. 대신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왔을까 싶을 정도로 (안 그래도 작은) 매장을 꽉꽉 채우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으면서 음반을 골랐다.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앨범은 당연하다시피 전부 쓸려나간 뒤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숨어 있는 괜찮은 앨범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섯 장에 2만 7천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에 계산을 마치고 문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매장을 둘러봤다. 신보를 전시하던 매장 중앙의 아크릴 매대에는 그 동안 나왔던 향뮤직 샘플러들이 꽂혀 있었다. 이렇게 많이 나왔었나 싶을 정도로 매대를 가득 채운 샘플러의 모습이 이 장소의 긴 역사를 다시금 상기시켰다. 그리고 새삼, 마음 속 커다란 부분이 뻥 하고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사라질 것들은 사라진다, 단순히 그렇게만 생각할 수도 있다. 음반 매장이 사라진다고 해도 음악을 듣지 못하는 것도, CD를 사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향음악사 역시 오프라인 매장이 사라지는 것일 뿐, 온라인 사이트에서의 판매는 계속해서 이루어질 예정이다. 하지만 영국 레코드 가게의 흥망성쇠를 다룬 다큐멘터리 <라스트 샵 스탠딩> (Last Shop Standing)에서 레코드 컬렉터 매거진(Record Collector Magazine)의 에디터 제이슨 드레이퍼(Jason Draper)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음반 가게는 일종의 커뮤니티 허브(Hub) 역할을 한다. 모든 가게에는 단골이 생기고, 그들이 오고 가면서 더 큰 커뮤니티의 일원이 될 수 있다. 단순히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의 말대로, 향음악사는 오랜 세월 동안 땅값 비싼 신촌을 지키고 있었던 작은 음반 가게, 그리고 수많은 인디 씬의 앨범을 청자들에게 선보이는 큐레이터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더 넓은 세계를 만나볼 수 있는 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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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창구는 이제 없다. 그리고 같은 다큐멘터리에서 뮤지션 리처드 홀리(Richard Hawley)가 말했던 것처럼, “생각해둔 음반 하나 사려고 했다가 10장에서 20장 정도 더 사가지고 나오는” 바보 같지만 즐거운 짓도 더 이상 할 수 없다. 좁은 매장과 빽빽하게 들어찬 앨범들, 낡은 CD장 위를 감싸고 있는 뮤지션들의 스티커, 좋은 물건이 없나 고민하면서 CD들을 뒤적이던 기억, 이런 것들은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추억보다도 지금 여기에 향음악사가 더 오래, 변해도 좋으니까 계속해서, 남아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런 종류의 슬픔을 맛봐야 할까? 이것은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일인 걸까? | 정구원 lacele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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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음악사의 마지막 날을 장식한 음악은 검정치마의 음악들. 내가 향음악사를 들릴 때마다 항상 맞아주던 점원분은 검정치마의 열렬한 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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