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하반기 쇼트리스트는 룸306, 레드 벨벳, 제리케이, 푸르내, 몬구 앨범에 대한 필자별 코멘트입니다. 룸306 (Room306) | At Doors | 영기획, 2016.03.07 정구원: 작년 영기획 3주년 컴필레이션 앨범 [3 Little Wacks]에서 룸306의 “Enlighten Me”를 처음 접했을 때 든 감정은 사실 양가적이었다.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는 목소리와 멜로디에 취하다가도 이들이 가지고 있는 처연한 감정선이 음악 자체를 넘어서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느낌. [At Doors]에서, 이들은 이 걱정을 보란 듯이 잠재운다. 정확히는 정면으로 돌파하고, 설득시킨다. 일견 밸런스를 무시한 것처럼 크게 키워진 홍효진의 보컬 소리는 역으로 청자로 하여금 그녀의 목소리에 온전히 집중하게 만들고,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것에서 더 나아가 듀오의 음악적 특성을 결정짓는 ‘사운드’로 기능하게 만든다. 또한 퍼스트 에이드(First Aid)가 만들어낸 앰비언트하고 로파이한 배경소리들은 이들의 음악을 흔한 팝의 영역으로부터 분리시키면서도 홍효진의 목소리가 지닌 힘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지점에 자리한다. 그런 식으로 세심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직조된 고유한 사운드 위로 홍효진의 목소리가 흐른다. 깨지기 쉬운 물건을 바라볼 때 느껴지는 위태로운 아름다움을 담은 목소리가, 감정으로 가득 차 있지만 설사 넘쳐흐른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말하는 듯한 목소리가. “Seems Like (같아요)”의 노랫말처럼, 이 앨범은 자신이 지닌 마음을 쿵 내려놓고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울림과 소리를 따라, 걱정은 저 멀리로 사라진다. 그리고 이 일렉트로닉 팝 앨범이 오랫동안 많은 이들의 밤을 함께 지새울 작품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8/10 성효선: 음반을 사서 듣는 것보다 스트리밍 서비스로 음악을 듣는 게 더 당연한 시대에서 2CD 라니! 룸306의 앨범 발매 소식에 가장 먼저 외쳤던 말이다. 같은 곡인가 싶을 정도로 일렉트로닉 버전이 담긴 CD1과 라이브 밴드 버전의 CD2의 느낌은 사뭇 다르다. 두 앨범은 다른 사운드로 음악을 표현하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묵직한 감정은 같은 방향을 향해 흐른다. 두 앨범을 어떤 순서와 방식으로 들어도 통일성이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CD2는 두 곡만이 스트리밍 서비스가 되어 이러한 비교는 앨범을 통해서만 가능한데, CD를 사서 듣는 사람만이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차별화는 일종의 팬 서비스 같아서 이러한 기획이 참으로 반갑다.[At Doors] 앨범 대부분의 가사가 영어로 되어 있지만, 음악에 쉽게 몰입이 될 수 있는 건 서사가 있는 멜로디 라인과 단연 홍효진의 목소리 때문이다. 앨범의 모든 곡은 멜로디부터 악기 파트, 보컬의 감정까지 더하거나 덜함이 없다. 오히려 일부러 비워 놓음에 가까운데 과잉되지 않은 덤덤한 감정선이 되려 마음을 건드린다. 간결하고 여백이 많은 멜로디 라인의 나머지 부분을 채우는 건 시적이고 철학적인 가사다. 타인과 관계를 맺어 본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을 감정을 섬세하게 이야기하는 가사는 음악을 듣는 내내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자꾸 질문을 던지게 한다. 그래서 앨범은 들을 때마다 다른 감정의 문 앞에 서게 한다. 들으면 들을수록 앨범을 듣기가 쉽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것이 이 앨범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힘이자 이 앨범을 오래도록 귀에서 뗄 수 없게 만드는 장점이다. 8/10 레드 벨벳 (Red Velvet) | The Velvet | SM Entertainment, 2016.03.17 이선엽: 필자가 2015년 연말결산에서 예언(?)한 [The Velvet]이 이렇게나 금세 실현이 되었다. 장르적인 측면으로 보면 “Automatic”과 “Be Natural”와는 달리 발라드에 훨씬 강세가 실렸다. 또한 “Ice Cream Cake”와 “Dumb Dumb”과 상반되는 애절하고 아련한 보컬이 주를 이루고 있다. 세련된 드럼이나 악기 배치 등으로 차별된 일명 ‘SM 발라드’까지도 거뜬히 소화해내며 한 단계 더욱 도약한 레드 벨벳을 접할 수 있다. 이번 미니앨범에서 특별히 부각되는 점은 바로 두 메인보컬 사이에 가려져있던 조이의 재발견이다. 비록 여전히 대부분의 고음역대는 슬기와 웬디가 맡고 있지만, 조이의 청아한 음색이 엄청난 활약을 펼친다. 동시에 아이린과 (특히나) 예리의 존재감이 과할 정도로 줄었는데, 파트를 조금 더 공평하게 안배했더라면 조금은 더 이상적이었을 듯 싶다. (아이린을 향한 개인적인 팬심은 결코 아니다)“처음인가요”와 이수만 원곡의 “장미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는 90년대 SM식 발라드 스타일에, “Cool Hot Sweet Love”와 “Light Me Up”은 R&B 특유의 색깔에 매우 근접해있다. 그러나 [The Red]의 강렬함과 다양성을 대조해보면 [The Velvet]이 내는 색깔은 다소 모호하고 장르의 범위가 제한적이다. 레드 벨벳이 ‘레드’ 컨셉트 (또는 세계관)에서는 무엇을 추구하는지는 확실하게 감이 오지만, ‘벨벳’의 경우에는 아직까지는 어렴풋한 방향밖에 안 보이기 때문이다.인터넷상에서는 타이틀곡 “7월 7일”에는 세월호 추모곡으로서의 의도가 숨겨져있다는 의견이 분분하다. 사실 여부는 확인할 길이 딱히 없지만, 분명 전달하려 했던 감정만큼은 온전히 담겨 청자에게까지 오롯이 전해졌다는 점은 의심할 수가 없다. 새빨간 드레스에서 고운 비단 옷으로 새로이 갈아입은 후 내딛는 발자국으로써는 꽤 흡족스러운 결과물이다. 7.5/10 조지환: 일단 첫 트랙부터. 손이 많이 간 흔적들이 엿보인다. 여러가지 소리들이 꽤나 다양하게 보컬 주변을 채워넣는다. 비트가 들어오는 때부터 곡은 더욱 재밌어진다. 다만 아쉬운 점은 곡의 전개와 멜로디가 진부하게 들린다는 것이다. 그 동안 SM식 발라드(더 넓게는 한국형 발라드)에서 너무 많이 활용했던 요소가 많은 탓이다. SM에서 최근 1, 2년 간 시도해 온, 보컬 주위를 감싸는 다채로운 음향들과 발라드적 요소가 겹치는 탓에 그 진부함이 더 부각된다. 특히 ‘just for a minuite’이라고 코러스를 넣는 부분은 곡의 세련됨을 한층 격하시킨다. 아마 이것만 아니었어도 이 곡을 훨씬 높이 쳐줄 수 있었을 것이다.발라드 넘버였던 첫 트랙이 지나가고 두 번째 트랙부터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 힙합 리듬을 타고 흘러가는 “Cool Hot Sweet Love”부터 이제 이 음반은 흑인음악의 색채를 띄게 된다. 그 흑인음악적 색채가 어설프게 재현되었다는 느낌이 없진 않지만, 어찌되었건 첫 트랙의 신파를 벗겨내고 남은 것들은 꽤나 재미난 결과물들이다. 가령 공격적인 베이스 라인 뒤에 따라오는 “Light Me Up”의 나레이션은 지루하지 않게 들리는 몇 안되는 아이돌 노래 속 나레이션이다.그 와중에 “처음인가요”는 또 한 번 분위기를 바꿔놓는다. 이 같은 전환에는 스트링이 큰 역할을 한다. 전환된 분위기는 어째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차분한 건반으로 시작하는 “장미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에서는 이전까지의 큰 매력을 담당하던 다채로운 전자음마저 빠져 곡이 한층 더 심심해진다. 중간에 치고 들어오는 기타 솔로는 촌스러움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보다 일관적으로, 여러 방향으로의 욕심을 줄였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두 번째 트랙과 세 번째 트랙만 떼어 싱글을 냈어도 나쁘지 않았겠지만, 아쉬울 뿐이다. 5/10 제리케이 (Jerry. K) | 감정노동 | Daze Alive/Stoneship, 2016.03.15 이선엽: 국내 힙합/랩 아티스트 중 가장 활발하고 뚜렷하게 정치적 견해와 사회적 이슈에 목소리를 내는 이가 제리케이 외에 몇 명이나 더 있겠는가. 아니, 어쩌면 유일무이할 것이다. 그의 [감정노동]도 마찬가지로 많은 랩퍼들이 외면해온 (또는 기피해온) 주제들로 가득 채운 앨범이다.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랩퍼들, 성공을 맹종하며 조급하게 편법을 쓰는 랩퍼들, 방송 매체들의 기믹(gimmick)에 묵종하는 랩퍼들에게 가감없이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고 시원시원하게 내뱉는다 (“축지법”, “Studio Gangstas”). <SHOW ME THE MONEY>, <언프리티 랩스타> 등 특정 매체를 거침없이 언급하는 일말의 대담함도 목격할 수가 있다. 씬의 변질에 대한 비판뿐만 아니라 한 명의 랩퍼이자 사람으로서 수반되는 책임감과 신조 그리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도 당당히 밝혀내기도 한다 (“#MicTwitter”, “기립박수”, Life Changes”). 또 주관적인 삶의 반경을 넘어 더 넓은 메시지를 담으며 랩 음악 그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고 있다. 몇년 전 그가 발매했던 “You’re Not A Lady”와 남성의 성역할에 사로잡힌 전형적인 삶을 논하는 “You’re Not a Man”을 비교해 보면 그의 사상이 얼마나 포용적인 방향으로 성장했는지도 엿볼 수 있다. 그의 특기인 1인칭 시점의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콜센터 직원의 삶을 대변하는 “콜센터”는 청자에게 큰 울림을 남긴다. 마지막으로, 첫 트랙 “No Role Models”와 마지막 트랙 “No More Heroes”가 지닌 평행성에서 앨범의 완성도뿐만 아니라 그의 스탠스가 지닌 타당성과 일관성을 나타난다. 오랫동안 국내 힙합씬은 확고한 롤모델이 되어줄 존재를 기다려왔다. 그런 존재의 부재와 씬의 몰락을 누군가가 설득력 있게 까발리기까지 또 한번 긴 시간이 걸렸다. 8/10 김민영: [감정노동]은 ‘감성적인 힙합’이 아니다. 지독하게 적나라하다. [감정노동]은 말 그대로 감정노동에 따른 스트레스로 괴로워하는 갑과 을에서 을도 아닌 ‘병’과 ‘정’까지 대변하는 지극히 제리케이의 개인적인 정서다. 바로 냉소와 분노, 진중함이다. 특히 수록곡 “콜센터”는 음반의 이러한 극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이 곡은 이전에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했던 직접적이고 지극히 현실적인 마치 ‘누군가의 오늘날’과도 같다. 서울대를 졸업한 후, 대기업 금융권에서 근무하면서 느꼈던 ‘영혼의 계약’을 부정하고 과감하게 사직서를 던진 주인공이 바로 제리케이다. 그가 그랬던 이유는 간단하다. 더는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 곡을 통해서 동시에 그와 반대로 과감하게 던져 버리지 못하는, 혹은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위로한다. 이어서 “축지법”은 연속적으로 불의가 벌어지는 줄거리의 걸작이다. 몽롱한 리듬 변속과 숨막히게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이 조화를 이루는 매혹적인 곡이다. 힙합 컴페티션 <SHOW ME THE MONEY>에 대한 분노를 가득 담은 내용으로 ‘시켜서 하는 디스배틀’, ‘랩 자격증 시험쇼’로 지칭하며 격렬하게 비판한다. [감정노동]은 제리케이의 내제되었던 사회에 대한 부조리와 답답함, 불편한 감정을 시원하게 토해내는 작품이다. 이는 쉴새없이 쏟아지는 랩에서 당당하면서도 냉담하게 현실을 바라보는 그의 또 다른 엄숙한 시국선언과도 같다. 비록 그의 뚜렷한 정치색깔이 음악으로 표현되고, 이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도 존재한다. 그러나, [감정노동]은 과감한 조롱을 섞었어도 음악이나 가사에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들 투성이다. 음악적 자유를 외치며 다시 한번, 사회현상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며 강도 높은 비판을 하는 것은 실로 용기 있는 결단이다. 따라서, [감정노동]이 걸작이 될 것이라는 데에는 아무런 이견이 없다. 9/10 푸르내 | 야생의 밤 | 푸르내, 2016.03.03 정구원: 음악을 통해서 특정한 정서를 드러내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정서가 끌고 가는 음악’을 만드는 것은 예상외로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비대해진 정서가 음악을 잡아먹거나 정서를 효과적으로 발현시킬 수 있는 음악적 형식과 요소를 골라내는 데 실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그래서 [야생의 밤]의 한 트랙 한 트랙에서 끊김없이 이어지는 투명한 비애는 참으로 반갑게 느껴진다. 앨범을 가득 채운 맑은 기타 소리와 테크니컬하면서도 과시적이지 않은 연주는 소박하지만 가슴 한 구석을 아리게 만드는 우울의 색깔을 칠하고, 가사는 푸른 그리움부터 (“아주 먼 곳”, “유소년의 비애”) 나른한 욕구까지 (“겨울남자”, “야생의 밤”) 비애의 갖가지 양태에 대해 간결한 문장을 프리즘 삼아 노래한다. 앨범 안의 모든 요소는 푸르내가 추구하는 정서와 단단하게 맞물리며, 그렇게 형성된 정서가 다시 앨범을 이끌어가는 동력으로 작용하는 튼튼한 순환구조를 이룬다.물론 그 비애에 이입하기 어려운 이에겐 [야생의 밤]의 매력이 반감될 수도 있다. 하지만 굳이 정서가 아니더라도 얄개들 시절부터 보여줬던 탄탄한 기타 록 사운드와 귀를 사로잡는 멜로디를 그냥 지나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스미스(The Smiths)와 XTC, 동아기획과 캡쳐드 트랙(Captured Tracks)을 오가는 넓은 레퍼런스를 찾아내는 재미는 보너스다. 정서를 작품의 원동력으로 삼는 다른 좋은 작품과 마찬가지로, [야생의 밤]도 자신의 가치를 정서에만 두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 명제가 유효함을 이 앨범이 증명한다. 8.5/10 몬구 | Mongoo 1 | 블루보이, 2016.03.10 정구원: 한강의 불꽃놀이 아래에서 춤을 추며 서로를 껴안는 연인. 비가 쏟아지던 여름밤에 ‘별걸 다 기억하는 여자’와 나눴던 대화. 몽구스(The Mongoose)와 네온스(Neons)에서 보여줬던 몬구 특유의 감성과 테마는 그의 첫 솔로 EP에서도 여전하다. 여전하지 않은 게 있다면 귀에 쏙쏙 꽂히는 일렉트로팝을 능수능란하게 뽑아냈던 그의 사운드메이킹 능력이다. 귀엽다기보다 당황스러운 유머로 가득한 “꿔바로우” 같은 트랙은 그렇다 치더라도, EP에 담긴 트랙들은 몬구 특유의 활력과 댄서블함을 잃은 채로 평범함만을 내세우고 있다. “여자들도 다 똑같애”를 여타의 인디팝 뮤지션이 만들었다고 해도 몬구만한 퀄리티가 안 나왔을까? “몽중인”의 멜로우한 선율이 분위기 있다기보다 축축 쳐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왜일까? [Mongoo 1]은 늙어 버린 아저씨가 아직도 자신의 청춘을 못 잊고 떠난 자아찾기 여행처럼 들린다. 그리고 보통 그런 이야기는 주인공이 자신의 쇠락을 재확인하는 결말로 끝난다. “불꽃놀이”에서 들리는 생기 넘치는 신스 멜로디도, 그 인상을 지우기엔 역부족이다. 4.5/10 Leave a Reply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CommentName* Email* Website 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