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리스트_4월상반기2016년 4월 상반기 쇼트리스트는 딘, 권나무, 장범준, 홍갑, 전범선과 양반들, W (Where The Story Ends) 앨범에 대한 필자별 코멘트입니다.

 

딘 (Dean) | 130 mood TRBL | Joombas, 2016.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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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엽: 2015년 싱글 “I’m Not Sorry”로 데뷔하며 전세계의 이목을 끌어낸 국내 R&B 아티스트 딘. 그가 자신의 첫 EP [130 mood TRBL]에서 지향하는 음악은 제법 매니아적인 동시에 대중적인 코드까지 조준하고 있다. 어쩌면 자칭 ‘인디고 차일드’로서 지닌 통찰력일지도 모른다.
첫 트랙 “어때 (outro)”가 아웃트로인 점이나 중간에 바이닐을 거꾸로 돌리는듯한 효과음에서 짐작해볼 수 있듯, 앨범의 스토리 전개는 흥미롭게도 트랙 순서와는 역방향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가사의 디테일이 부족하기 때문인지, 이 서사가 뒷심을 얻지는 못 한다. 그러나 그는 가사 면에서의 취약점을 청각적인 매력으로 덮는데, (대체적으로) 반복적인 후렴과 유기적인 프로덕션, 자유분방한 멜로디 그리고 티 없이 맑은 미성이 가장 두드러지는 매력 포인트로 꼽힌다. 이런 매력적인 부분들은 길지 않은 런닝타임 동안 귀를 쉴새없이 즐겁게 해주는데, 특히 타이틀곡 “D (half moon)”에서 가장 현저하게 부각된다.
프로덕션은 물론 보컬 스타일까지 전체적으로 앤더슨 팩(Anderson.Paak)이나 브라이슨 틸러(Bryson Tiller) 혹은 소울렉션(Soulection) 소속 골드링크(GoldLink)의 그것과 꽤 닮아있다. 다시 말해 딘은 최근 R&B/힙합 트렌드를 발빠르게 캐치해낸 후 자신에게 어울리도록 녹여냈다. 물론 위에 언급된 이들과 대조해보면 딘의 앨범은 훨씬 팝 지향적이자 한국적인 코드로 버무려져있다. 덧붙여 말하자면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의 리스너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강한 인상을 준다. 같은 선상에서 보면, 지코부터 크러쉬 그리고 제프 버넷(Jeff Bernat)까지 유명한 아티스트의 참여 또한 일종의 전략이었을 것이다. 이번 EP는 ‘130 mood’ 시리즈의 제 일보로써, 차기 앨범에 대한 기대감을 품게 만든다. 8/10

김세철: 전에 없던 음악이라고 말한다면 과장일 것이다. 협업한 이들의 특징이 고스란히 음악의 질감으로 이어지단 점만 봐도 그렇다. 느릿한 피아노 루프에 드럼 샘플이 얹힌 알앤비 “what2do”가 익숙하다 싶으면 크러쉬와 제프 버넷(Jeff Bernet)의 이름이 눈에 띄고, 좀 더 가요에 가까워졌다 싶은 “D”에는 개코의 랩이 자리한다. 어택이 도드라지지 않는 신스 패드와 베이스, 808 드럼에 얹힌 딘의 창법까지, 트랩이나 피비알앤비(PBR&B) 따위로 뻗어온 최근의 알앤비를 들어왔다면 익숙할 소리들이 담겼다.
[130 mood TRBL]의 장점은 새로움이 아니라 익숙한 것들을 켜켜이 쌓아가는 섬세함에 있다. “Bonnie & Clyde”는 반복되는 코드를 끊임없이 변주하다 막판에 분위기를 뒤집고, 짝사랑 이야기 위엔 ‘보니 앤 클라이드’라는 클리셰를 얹는다. “D”는 절반, 반달(half moon), 알파벳 D를 겹쳐가며 말놀이를 한다. 섬세하단 말은 가사에도 붙여볼 수 있다. 대번에 더 위켄드(The Weeknd)가 떠오르는 “21”에서 딘은 ‘다들 너에 대해 얘기할 뿐 너의 얘기는 듣지 않았’다고 노래한다. 이 장르가 흔히 받는 오해처럼 사랑을 자랑으로 과시하는 대신 사랑하는 이를 사려 깊게 살피거나 끝난 연애를 반추한다. 차분한 시선과 음악적인 욕심이 계속될 수만 있다면 딘의 다음을 기대해도 좋겠다. 7.5/10

 

 

권나무 | 사랑은 높은 곳에서 흐르지 | Self-Released, 2016.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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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영: 1집 [그림]에서의 권나무는 소심하지만 속 깊은 소년 같았다. 초등학교 선생님으로서 소년소녀들과 만나는 그의 모습이 [그림] 속 내밀한 이야기들과 살짝 겹쳐지는 건 그 때문일 수도 있겠다. 기타 한 대에 목소리, 가끔씩 첼로가 들어오기도 하는 소박한 구성이어도, 내밀하고 깊은 서정과 맑은 울림으로 이를 전해주는 멜로디가 있기 때문에 권나무의 음악은 마음 한 가운데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여행”을 떠나는 마부는 “배부른 꿈”을 꾸었던 “어릴 때”의 이야기부터 “이건 편협한 사고”나 “내 탓은 아니야”라고 반성하고 성찰하는 생각까지를 찬찬히 그린다. 그래서 [그림]은 권나무의 자화상 같은 음반이었다.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티 없는 목소리로 풀어놓은 마부의 다음 여정은 사랑이다.
기타와 목소리의 단출한 구성은 여전하고, 서정적인 노랫말과 멜로디도 여전하지만, [그림]에서의 소년은 사랑의 과정을 통과하면서 미묘하게 달라진다. 정말로 간단히 말하자면, [사랑은 높은 곳에서 흐르지]는 “솔직한 사람”을 만나 사랑을 시작하는 화자가 결국 그 사랑이 끝난 이후 “아무것도 몰랐군”하며 자책하는 이야기다. [그림]에서 ‘나’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사랑은 높은 곳에서 흐르지]에서 ‘너’의 이야기들과 만나 한층 더 깊어지고, 내밀해진다. ‘너’와 함께했다가 함께하지 못하는 과정은 ‘나’의 내면으로 더욱 더 다가가는 길이 된다. 화분을 가꾸는 ‘나’와 그 화분 속의 꽃인 ‘너’의 이야기를 담은 “화분”의 비유가 아마 그 성찰의 중심에 있을 것이다. ‘이제 살아가는/보살피는 법을 좀 알지 않나’라 자부하지만 ‘나는 살고 너는 살지 못하’는 관계 속에서 ‘이유를 알지 못했네’라고 읊는 이 곡은 [사랑은 높은 곳에서 흐르지]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그림]보다 내밀하고 슬픈 분위기를 대표한다. 이 성찰은 음반 내내 켜켜이 쌓여 후반부의 “너를 찾아서”에서 무려 10분 동안이나 나와 너에 대해 사려 깊게 이야기하다 ‘너무 복잡한 아무것도 남지 않은 버려진 집들로’의 후렴구에서 맑고 강하게 울려퍼진다. 먹먹하고 아름다운 순간이다.
단출하게 출발한 [그림]의 여행가는 이렇게 [사랑은 높은 곳에서 흐르지]에서 물처럼 흐르는 사랑의 과정을 겪은 후 “너를 찾아서” 자신의 깊은 내면으로 들어간다. 사랑의 시작과 끝을 통과하며 내면을 향한 가장 쓰라린 길을 걷는 그의 여정은 언니네 이발관의 [가장 보통의 존재]가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사랑은 높은 곳에서 흐르지]는 [그림]에서 맑고 티 없는 이야기를 해주었던 목소리로 이 아픈 여정을 들려주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절절하고 와 닿는다. 한 폭의 자화상과 한 편의 사랑 이야기를 남긴 마부의 여정은 이제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아마도, ‘나’와 ‘너’의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걸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그 곳에서 여행자는 무엇을 노래할까. 9/10

정구원: [사랑은 높은 곳에서 흐르지]의 앨범 커버는 깨어진 구조물에 흘러내리고 있는 푸른 액체를 담은 사진이다. 그 액체는 아마도 흐르고 흘러서 구조물을 삼키고 주변을 뒤덮을 것이다. 그 모습은 한 화자의 사랑의 시작과 끝을 풀어내는 앨범 내의 느슨한 서사로도, 그리고 그 서사에 따라 점진적으로 깊고 어두운 곳을 향하는 음악적 구조를 상징하는 광경으로도 읽힌다.
권나무는 그의 첫 앨범에서 보여줬던 빛나는 요소들을 놓치지 않고 다음 앨범에도 옮겨온다. [그림]에서 권나무가 보여줬던 그만의 음악적 장점 – 길고 느린 흐름을 지녔지만 동시에 그 긴 시간 동안을 흐트러지지 않고 집중력 있게 끌고 나가는 호흡 – 은 [사랑은 높은 곳에서 흐르지]에서도 여전하고, 그 긴 호흡은 이번 앨범에서도 “화분” – “어두운 밤을 보았지”(이 두 곡은 꼭 함께 이어서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나 “너를 찾아서” 같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포크 대작을 만들어낸다. “사랑은 높은 곳에서 흐르지”와 “나의 노래” 등에서 울려퍼지는 현악기는 [그림] 때와 달리 사운드의 ‘전면’에 나서면서 권나무의 목소리와 대화하듯이 트랙을 이끌어 나가고, ‘그대는 너무 솔직해서 비밀이 많군요’ (“솔직한 사람”), ‘사랑을 도망칠 때 / 자연스럽게란 말은 하지 마’ (“사랑은 높은 곳에서 흐르지”) 처럼 단아하고 멋진 문장은 권나무의 맑은 목소리로 인해 힘을 얻는다.
그리고 이러한 개별적인 음악의 요소를 넘어(혹은, 그 요소들의 집합을 통해), [사랑은 높은 곳에서 흐르지]는 권나무 특유의 길고 긴 호흡을 앨범 단위의 서사로 구현해내고 있다. 개별의 합이 그대로 전체로 이어진 인상이었던 [그림]과 달리, [사랑은 높은 곳에서 흐르지]의 노래들은 (비록 느슨할지라도) 끊기지 않는 서사와 호흡을 따라 ‘사랑’에 대한 묵직한 통찰을 전달한다. 설렘과 고뇌, 회한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노랫말은 물론 그 노랫말을 따라 침잠하거나 격렬해지는 음악까지. 의심의 여지 없이 이 앨범은 올해 나온 어떤 작품보다도 앨범이라는 ‘단위’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고, 그것을 실제로 구현해낸다. 그 응집력과 밀도가 이 앨범을 듣는 우리로 하여금 사랑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고민하고, 돌이켜보게 만든다.
그 고민과 돌이킴을 만들어내는 힘이, 아마도 사람들이 흔히 ‘음악의 힘’이라고 부르는 개념에 가까울 것이다. 그 개념에 대해서 대체로 믿지 않는 편이지만, 때로 그 불신을 되돌리고 싶게 만드는 작품과 음악가가 등장한다. 권나무가 그 중 하나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사랑은 높은 곳에서 흐르지]는 그 증명이 될 작품이다. 9/10

 

 

장범준 | 장범준 2집 | 버스커버스커, 2016.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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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영: 여전히 봄날은 간다. [장범준 2집]은 장범준 본인이 겪어온 20대의 사랑을 노래하며, 음악적 차원의 연장선을 보여주는 음반이다. 청춘에 대한 감정적인 통찰력은 이 음반을 어쿠스틱 연주 기법과 고백적인 이야기가 적절히 배합된 작업물로 만들어 준다.
본 음반은 전자악기를 배제하며 전적으로 통기타, 드럼, 베이스, 키보드만을 이용한 ‘UNPLUGGED’ 파트와 ‘버스커 버스커’ 풍의 기타리프와 훅적인 요소가 강조되는 ‘장범준 트리오’, 두 파트로 구성된다. 전반적으로 음악의 ‘포크 락’적인 뿌리는 음반 전체에서 감지 되는데, 특히 장범준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허어어어~’ 허밍과 단순한 코드 진행은 이번 음반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비슷한 노래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흔들림이 없다는 점은 팬들의 입장에서는 만족스러운 요인일 것이다.
그러나 약 2년 만에 내놓은 음반치고 크게 인상적인 부분은 없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사랑에 빠졌죠”, “빗속으로”, “봄비” 등 모든 수록곡들은 장범준의 기존 자작곡을 편곡한 퍼레이드에 불과하다. 오히려 버스커 버스커로 데뷔하기 전에 활동했던 ‘핑키핑키’ 시절 때의 본 곡들이 더 즉흥적이고, 더 라이브한 느낌이 살아 있었다. 단순히 과거 자작곡들의 ‘데모테입’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이유가 기본적인 악기 요소로만 연주되었기 때문은 아니다.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코드진행과 미니멀한 멜로디와 기타리프, 그리고 젊은 날의 사랑을 노래했다는 수록곡들의 가사는 지나칠 정도로 한정적이고 단순하다. 물론 [장범준 2집]이 그 동안의 음악 스타일로부터의 변화한 그의 모습에 대한 가능성을 시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버스커 버스커가 아닌 1인 체제에서 밴드 외 작곡가나 프로듀서와의 협업, 혹은 전자음악의 활용 등 사운드의 다양화가 그 예다. 하지만 그 부분조차 오랫도록 이어진 ‘장범준표’ 음악의 단순함을 보완하기엔 어딘가 부족하게 느껴진다.
장범준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음악을 만들어 내는 뛰어난 싱어송라이터다. 하지만, ‘장범준’과 ‘버스커버스커’를 떠올릴 때, 제일 먼저 ‘여전히’와 ‘자가복제’라는 단어들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변화 없는 음악적 연장선. 이대로라면, ‘퍼펙트올킬’, ‘음원깡패’라는 타이틀 마저 곧 반납해야 될 상황이다. 더 이상의 레파토리는 위험하다. 5/10

 

 

홍갑 | 꿈의 편집 | 일렉트릭 뮤즈, 2016.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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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원: 아티스트가 착실하게 한 걸음 한 걸음씩 자신이 들려줄 수 있는 소리의 영역을 확장시켜 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음악을 즐기는 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즐거움이다. 홍갑은 세 번째 앨범 [꿈의 편집]에서 1집의 나른하니 청명한 포크 록과 2집의 조곤조곤한 어쿠스틱 선율을 어울러 깔끔하게 재단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그 결과물은 어느 모로 들어도 매력이 넘치는 훌륭한 작품의 탄생이다. 더 이상 따스해질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지는 멜로디도(“봄날의 봄”), ‘야 다음달에 만나자 / 야 요즘 내가 좀 그래’ (“11시에 봅시다”) ‘질투는 귀여워 고양이도 아니면서 / 사랑은 두렵지 호랑이도 아니면서’ (“마이 러브”) 처럼 마음 한 구석을 훅 하고 찌르는 간결한 노랫말도, 80년대 동아기획를 연상시키는 투명하기 그지없는 슬픔도(“손톱”, “바람”) 모두 이 앨범 안에 들어 있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을 포크 트랙의 향연이다.
1집과 2집 당시의 소박한 내밀함과 로파이한 사운드가 그립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꿈의 편집]은 아티스트 자신이 무엇을 들려주고 싶은지에 대한 열망,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들려줄 수 있다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는 앨범이다. 그 열망과 확신이 나의 ‘로파이 투정’을 별볼일 없는 투정으로 만들어버린다. 많은 이들의 마음 한 구석 틈새에, 이 앨범이 풀잎을 틔워 주리라 기대해본다. 8/10

 

 

전범선과 양반들 | 혁명가 | 두루미 레코드, 2016.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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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영: 전범선과 양반들은 정규 1집 [사랑가] 때부터 한국적인 색깔을 담으려 노력했다. 그 연장선에 놓인 2집 [혁명가]는 구한말의 민중들이 일으키는 ‘아래로부터의 혁명’이라는 독특한 컨셉의 ‘조선 록-큰롤’을 들려준다. 비장한 녹두 장군의 표정을 한 전범선이 실린 음반 커버와는 다르게 [혁명가]의 음악들은 비장하기보다는 오히려 호쾌하게 시작한다. 영미권 클래식 헤비메탈과 마그마, 작은 거인 등 80년대 하드록 그룹사운드, 그리고 국내 인디씬 개러지 락을 합친 [혁명가]의 전반부는 아시안 체어샷이나 잠비나이와는 또 다른, 정통 록의 어법을 띤 한국적인 색을 들려준다. 분노로 가득 찬 전범선의 칼칼한 목소리는 이스턴 사이드킥의 [굴절률]에 담긴 강렬한 분노가 떠오르기도 한다.
직선으로 호쾌하게 치고 달리며 “아래로부터의 혁명”이나 “불놀이야”를 외치고, 춤판과 봉기를 오가는 “강강술래”를 지나면서부터 [혁명가]는 호쾌하기보다는 점점 진중해진다. “칠석”에서 사랑 이야기를 나누고 “벗님”에서 친구 맺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는 음반 후반부는 구한말 혁명이라는 강렬한 컨셉과 그에 걸 맞는 폭발적인 호쾌함을 떠난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서 의문을 품을 수 있지만, “구운몽”의 자조적인 노랫말인 ‘나는 철학자도 선비도 아니야 / 나는 혁명가도 영웅도 아니야’에서 여태껏 거칠고 호쾌하게 달려온 분노 밑에 깔린 진한 비애와 자조를 들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혁명가]는 일종의 실패한 혁명의 기록이다. 구한말의, 아니면 7080의 선배 양반들을 따르는 청년들의 분노로 똘똘 뭉친 혁명은 짐짓 거칠고 끓어오르는 감성으로 시작되지만, 선배들의 발자취를 온전히 따라가지 못하고 ‘구운몽’ 같은 꿈을 꾸며 마무리되고 그 순간 그 뒷이야기를 상상하게 된다. 재치 있는 컨셉과 이야기가 그에 딱 맞는 음악에 알맞게 맞아 돌아가는 모습은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의 [석연치 않은 결말]이나 제8극장의 [나는 앵무새 파리넬리다!] 이후 참으로 오래간만이고, 실패한 혁명가들의 슬픈 기록은 더욱 많은 생각을 떠오르게 한다. 더군다나 정통으로 치고 달리는 전반부의 클래식 ‘조선 록-큰롤’의 소리만큼은 그 어떤 음악보다도 ‘엎어보자!’에 어울린다. 8/10

 

 

W (Where The Story Ends) | Desire | Office 8, 2016.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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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철: 귀환만으로도 반가웠다. 코나를 거쳐 WTSE(Where The Story Ends), W&Whale, W&JAS로 이름과 구성원을 바꿔온 W가 다시 셋으로 돌아왔다. 음악도 여전하다. 첫 소절 멜로디가 어쩐지 [케세라세라 OST]의 “마릴린먼로”와 닮은 타이틀곡 “미식가”만 들어도 알 수 있다. 전형적인 팝의 구조 위에 모나지 않을 만큼의 전자음만 깔아두는 작법도 여전하고, 그 전자음이 딜레이 정도만 살짝 건 날것의 신스 아르페지오 위주인 것도 여전하다. 여기에 일렉트릭 기타까지 동원해 기력을 더했으니 이번에도 늙지 않은 소년의 음반이다. 낯간지럽지도 않은 듯 에두르지 않고 풀어놓는 위로의 가사까지, W의 많은 미덕은 이번에도 그대로다. 소속사를 옮긴 후에 필요했던 안정감 있는 한 방이다.
그대로란 평가가 칭찬일 수만은 없다. 전작들 대신 [Desire]를 들을 이유가 있느냐는 물음이 남기 때문이다. 소리만 따지자면 1집 [안내섬광(眼內閃光)], 혹은 2002년 토이의 컴필레이션 음반에 실린 “Velvet Crush”와 견주어도 크게 갱신되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있다. 곳곳에 깔린 연주곡들이 지닌 전형적이지 않은 날카로움이 노래로도 이어졌다면 더 근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아쉬움을 이유로 [Desire]를 외면하는 건 그보다도 아쉽고 아까운 일이다. 벤조와 전자음을 섞은 “카우걸을 위한 자장가는 없다” 같은 컨트리, 전자음이 부유하는 “I’m Your Desire” 같은 발라드는 오직 [Desire]에만 있기 때문이다.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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