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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peranza Spalding │ Emily’s D+Evolution │ Concord, 2016

 

에밀리, 시공간의 여행자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여기 저기 균열되어 있는 낯선 공간에 한 여자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불시착해 있다. 그녀의 몸은 아직 흰 공백으로 남아있다.

앨범의 시작을 알리는 첫 곡 “Good Lava”의 뮤직비디오에서 그녀는 모든 방향으로 뻗어있는 매끄러운 공간에서 리드미컬하게 춤을 춘다. ‘이 예쁜 여자애를 봐. 이 예쁜 여자애가 거침없이 움직이는 걸 봐’ 청자에게 직접 말을 거는 듯한 대담한 보컬에 이어 그루브한 베이스라인 위로 협화음과 불협화음을 넘나들며 쟁글거리는 기타가 얹혀진다.  화산은 용암을 거침없이 내뿜고, 원색적이고 싸이키델릭한 영상 속에서 그녀의 비어있던 몸은 여러 시대와 여러 공간에 동시적으로 접속하며 배경을 흡수한다. 

에스페란자 스팔딩(Esperanza Spalding)의 다섯번째 앨범인 [Emily’s D+Evolution]은 그녀의 얼터 에고인 에밀리에 관한 컨셉앨범이다. 그녀는 이 앨범에서 어린아이 시절의 호기심과 자유를 구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에밀리가 내게 찾아왔을 때 뭘 원하냐고 물었더니 ‘움직이고 싶고 시끄러워지고 싶다’고 했다고.  그녀가 이번 앨범에서 구현한 것은 어떤 것으로도 한정되어지지 않는 자유로움이다. [Emily’s D+Evolution]에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모든 사회적 편견과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한 예술적 인간의 영혼이 담겨있다. 그리고 이는 ‘음악의 장르’라는 관습적 영역에서 탈주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번 앨범에서 기타를 맡은 매튜 스티븐스(Matthew Stevens)는 일렉트릭 스타일부터 트래디셔널 재즈까지 광범위한 연주경험을 갖고 있는 기타리스트이고 드러머인 캐리엄 리긴스(Karriem Riggins)는 재즈와 힙합에 골고루 연주 경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프로듀서인 토니 비스콘티(Tony Visconti)는 데이빗 보위와 오랜 기간 동안 호흡을 맞추며 13장의 앨범을 프로듀싱 했는데 그 중에는 그의 유작인 [Blackstar]도 포함되어 있다. 콘트라베이스를 들고 다니며 컨템포러리 재즈를 연주하던 에스페란자 스팔딩은 이 전형적이지 않은 경력의 소유자들과 함께 믿기 힘든 하이브리드 음악을 구현해냈다. 훵키한 그루브 재즈에서부터 프로그레시브 힙합까지 넘나들며 각 곡마다 개성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동시에 이 앨범은 락킹한 사운드로 프로듀싱된 락 앨범이기도 하다.

그녀는 듣기 쉬운 편안한 조화를 자꾸만 파괴하며 청자를 새로운 영역으로 인도한 뒤, 그 전까지 접해보지 못했던 기묘한 조화로 청자의 감성의 확장을 이룬다. 전통적인 음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비선형적 사운드가 긴장감을 유도하면서도 화산에서 분출하는 용암처럼 시종일관 걷잡을 수 없는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기존의 장르로 재단할 수 없는 이 독보적인 스타일의 음악은 바깥에서 레퍼런스를 찾는 게 아니라 ‘에밀리’라는 페르소나를 통해 내면에서부터 가능성의 공간을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그녀는 이 앨범에서 인종과 젠더, 헤게모니와 음악적 장르 등 사회적으로 구획되어진 모든 경계를 넘어서려는 시도를 한다. 서정적인 재즈팝인 “Unconditional Love”에서는 온갖 겉치레를 벗어던진 조건 없는 사랑을 꿈꾸고 “Ebony And Ivy” 에서는 로봇 톤의 단조로운 랩으로 노예제를 합리화하는 때 쓰였던 근대의 합리주의적 가치관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Funk the fear” 에서는 지금 이 순간 너 자신의 삶을 살아가라고 직접적으로 외친다. 이 앨범의 중간에 위치한 “One”은 한 실존자가 푸른 새벽에 맞이한 자각의 순간을 그리고 있다. “너무나 강한 어떤 것 세계를 멈추고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것. 내가 항상 알고 있던 걸 증명할 수 있는 것.” 이 ‘더 원(The One)’은 한 인간의 중심에 깃들어 있는 근원적인 힘이다. 억압되고 단절되었던 자연적 근원과의 연결을 회복하려는 시도는 영감과 확신으로 가득 차서 부르는 이 넘버에서 빛을 발한다.

데이빗 보위의 페르소나 지기 스타더스트가 화성에서 지구로 떨어진 외계인이었다면, 에스페란자 스팔딩의 에밀리는 근원과의 연결을 회복하기 위해 우주적인 시공간을 유영한 여행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린아이의 무한한 상상력과 경계를 넘나드는 대담함으로 그녀가 도달한 전대미문의 영역에 찬사를 보낸다. | 힐데 aquma09@gmail.com

 

Rating: 9/10

 

수록곡
1. Good Lava
2. Unconditional Love
3. Judas
4. Earth to Heaven
5. One
6. Rest in Pleasure
7. Ebony and Ivy0
8. Noble Nobles
9. Farewell Dolly
10. Elevate or Operate
11. Funk the Fear
12. I Want It Now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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