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하반기 쇼트리스트는 단편선과 선원들, 크루셜 스타, 제8극장, 던말릭 X 키마, 루싸이트 토끼 앨범에 대한 필자별 코멘트입니다. 단편선과 선원들 | 뿔 | 오디오가이, 2016.04.18 김세철: 여전히 기력이 넘실댄다. 퍼커션, 베이스, 기타로 뼈대를 세우고 보컬과 바이올린으로 살을 붙이는 단편선과 선원들은 이번에도 어쿠스틱 편성이 지닌 폭발력의 한계를 실험하고 있다. [뿔]에는 이 실험들이 정규 음반 규모로 몰아치는 압도감이 있다. 다만 [뿔]은 통일보다는 다양에 집중한다. 대부분의 곡이 한 주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기보단 돌발하는 주제들을 여러 차례 접붙인다. 음반의 초반과 후반에 놓인 “뿔”과 “불”이 특히 그렇다. “뿔”은 1분간 느릿하게 긴장감을 조성하다 갑자기 떼창을 선보이고, 2분이 지나 시작되는 가창은 끊어가지 않고도 몇 차례나 국면을 바꾼다. “불” 역시 퍼커션과 바이올린이 들어오는 1분 45초를 기점으로 완전히 다른 곡이 되고, 5분을 넘겨 다 끝났나 싶을 때 곡은 앞의 전개를 또 한 번 반복한다. 2분간 가쁘게 변모하는 “발생”은 종결어미를 한다체, 합니다체, 해요체로 옮겨가며 가사로도 전환을 꾀한다.[뿔]은 다른 음반에서는 곡의 앞이나 뒤에 연주곡으로 떼어놓았을 법한 대목들도 한 곡으로 묶어둔다. 덕분에 개별 수록곡들은 따로 들어도 좋을 완결성을 갖췄다. 음반을 대하는 태도가 팝에 가까워진 셈이다. 복잡한 구조 속에도 듣기 좋은 멜로디를 빼먹지 않은 것도 팝의 미덕이다. 게다가 연달아 놓인 “뿔”, “모든 곳에”, “거인”은 모두 막판에 전조를 집어넣었다. 전형적인 가요 작법이란 시선은 의식조차 않는다는 듯이. 이처럼 [뿔]에는 듣기만 좋다면 무엇이든 끌어들이려는 잡식성이 있다. 곽푸른하늘과 김사월이 더한 산뜻함이 있고, 모호한 발음에 비음을 더하거나 목을 긁는 단편선의 가창이 있고, 보컬 없이도 폭발하는 연주곡이 있다. 이토록 다양한 것들이 밴드를 거쳐 느슨하게 연결된다. [뿔]은 단 하나의 완벽한 세계 대신 여러 개의 별이 회전하는 우주를 담았다. 이들이 보일 다음 별, 그로 인해 다시 조정될 다음의 우주를 기다린다. 9/10 나원영: <죠스>의 OST 같은 “발생”의 도입부만 들어도 단편선과 선원들의 변화가 확연하게 느껴진다. ‘회기동 단편선’의 곡들을 리메이크했기에 전작 [동물]은 거칠고 주술적인 분위기는 있었지만 포크의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본작 [뿔]은 하나의 완전한 밴드로써 단편선과 선원들이 추구하는 음악을 들려준다. 더욱 거칠고, 치열하고, 변화무쌍하다. 미쳐 날뛰는 성난 황소의 뿔처럼 청자를 들이받는 음악이다. 박자와 분위기를 자유자재로 바꾸며 진행되는 “뿔”과 “모든 곳에”는 이곳저곳으로 날뛰는 동시에 하나의 분위기를 만든다. 난장판인지만 왜인지 잘 정돈된 ‘정리정돈 난장판’을 음악으로 옮긴 것 같다. 한편으로는 정갈하고 팝적인 “거인”과 거친 느낌과 정갈한 느낌 사이에서 중용을 찾은 “연애”도 있다. 긴장감 가득한 연주곡 “흙”과 그 긴장감을 그대로 터뜨리는 “낮”은 접신한 것처럼 격정적으로 흘러간다. 거칠고 서정적인 클라이막스를 들려주는 “그리고 언제쯤”과 그 모든 요소를 담은 “불”에까지 닿으면 [뿔]은 듣는 이를 이미 여러 차례 들이받았을 것이다. 보너스 트랙 같은 유일한 리메이크 곡 “이상한 목”은 단편선의 오랜 팬들을 위한 덤이 아닐까.[동물]의 음반 속지처럼, 단편선과 선원들의 음악은 항상 피가 뚝뚝 떨어지게 날 것이었고, 신선했다. [뿔]에서 그 느낌은 더욱 어둡고 공격적으로 변했다. “동행”이나 “소독차”, “우리는” 등의 서정적이거나 일상적인 노랫말들은 “백년”이나 “노란방”의 그것처럼 애매모호하고 두루뭉술해졌고, 동화적인 은유들이 가득한 곡들도 있다. 그에 따라 [뿔]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서정적이기보다는 어둡고 공격적으로 변해 다가온다. 이 변화는 단편선과 선원들의 본모습일까, 아니면 또 다른 모습일까. 결론적으로, [뿔]은 생생하게 날뛰는 ‘동물’에게 직접 뿔로 들이받히는 것만 같은 음반이다. 단편선과 선원들만의 익숙한 특징들이 조금씩 비틀어졌을 뿐이지만, 왜인지 낯설어진 채로 새롭게 다가온다. 하나의 주술적인 목소리가 되어 단편선과 듀엣을 하는 것 같았던 권지영의 바이올린이 조금 더 악기로써 확실한 멜로디와 분위기를 만드는 장수현의 바이올린으로 바뀐 것도 익숙함이 낯설어지는 선상에 놓을 수 있지 않을까. [뿔]에서 단편선과 선원들은 수많은 극과 극을 오가는 동시에 그들만의 방식을 통해 ‘정리정돈 난장판’의 모습으로 극점들을 능숙하게 합친다. 그들은 극강의 포크-싸이키델릭-익스페리멘탈 대곡 같은 곡들을 들려주면서도 곽푸른하늘이나 김사월과 함께 아름다운 포크팝 듀엣 곡을 연주할 수 있는 밴드다. 어쩌면 이 기묘하고 생생한 음반, 수많은 극점들이 한 점에 모인 음반이야말로 단편선과 선원들이라는 밴드와 음악이 본격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9.5/10 크루셜 스타(Crucial Star) | Drawing #3: Untitled | FISB, 2016.03.30 이선엽: 크루셜 스타는 혹자에게는 다재다능한, 혹자에게는 힙합을 빙자한 발라드 랩퍼로 평이 양분화되는 대표적인 아티스트 중 하나이다. [Drawing #3: Untitled]는 그가 소울 컴퍼니를 지나, 그랜드라인 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을 마치고 홀로서기 후 처음으로 선보이는 오리지널 믹스테잎이다. (여타 유명 발라드 랩퍼들과 마찬가지로) 랩핑에 있어 흠 잡을 부분은 크게 보이지 않는다. 피쳐링 없이 홀로 40여분의 러닝타임을 능숙하게 몰고 간다. 고난들과 극복 과정들을 여과없이 토하는 트랙의 연속은 야릇한 페이소스를 유발시킨다 (“입양아”, ”Satan/Shit”, “신경안정제”). 그러나 그 외에는 이전 작품에서 보여준 상투적인 내용들이 반복될 뿐이다. 청자들의 비판에 대해선 상업적 성공을 앞세워 합리화시킬 뿐만 아니라, 일명 ‘셀아웃’(sell-out)으로서 체감한 인지부조화를 이야깃거리 삼아 연민을 구하려는 의도도 슬쩍 보인다. ‘진짜 남자라면 거칠어야해?’, ‘진짜 힙합이라면 욕을 하고 까야해?’ 같은 질문을 던지는 구절은 실소를 짓게 만든다. 무엇보다 전반적으로 제이 콜(J.Cole)의 [2014 Forest Hills Drive]의 프로덕션을 벤치마킹한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6.5/10 김민영: 로우톤의 목소리로 읊조리듯 가사를 내뱉는 스타일, 바로 크루셜스타의 대표적인 음악 스타일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기존의 정규 음반인 [Midnight]과 믹스테입에서의 음악 스타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여전히 사랑 노래의 일색이다. 게다가 이번 음반에는 기존의 음반과는 달리 오토튠 사용을 아예 배제하여 본연의 목소리를 그대로 담으려 노력했으나, 랩핑의 운율과 어감을 찾지 못해 플로우가 떨어진다. 2011년에 발매한 첫 EP [A Star Goes Up] 만큼의 팝적인 요소 또한 감소되어 예전만큼의 재미가 달리 느껴지지 않는다. 플로우가 좋지 않아 가사 의미 전달이 제대로 되는 것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는 전작처럼 발라드적 기반이 깔리지 않을 경우, 그 어떤 재즈 샘플링이 덧붙여 져도 날것의 랩핑 자체가 어색하기 때문에 음악 자체의 묘미가 떨어지는 것을 드러내기도 한다. “One”의 경우, 리듬의 반복 위에 지나치게 훅에 의존한 까닭에 곡의 분위기를 변화시키는 점에서도 실패했다. “Can’t Take My Eyes Off You”에서 차분한 피아노 선율과 함께 랩이 이어지는 구조를 보이나, 곡마다 쓰이는 랩의 리듬이 단순할 뿐더러 짧아서 여러 번 반복된다. 듣자 마자 귀에 감겨오는, 인상적인 곡은 크게 보이지 않는다. ‘너는 왜 니 한계를 긋고 딴짓해’ 같은 반응을 불러오는 불성실함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이는 기존의 믹스테입이나 EP음반에 빗대었을 때, 크게 실망스러운 점으로 다가온다. “비스듬히 걸쳐”와 같은 신선하고 트렌디했던 곡을 보여줬던 크루셜 스타에게 이번 음반은 한국어 랩을 다루는 능력이 부족하단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로 남을 것이다. 3/10 제8극장 | 언제나 나는 너를 생각해 | 트리퍼사운드, 2016.04.19 나원영: 제8극장만의 주특기는 강렬한 레트로함이다. 그것도 요즘 힙하다고 주목받고 있는 8090의 레트로함이 아니라 훨씬 더 옛날인 5060의 레트로함. 그렇기 때문에 제8극장의 음악은 독특한 색을 가진다. 데뷔 EP [Welcome To The Show] 때부터 흥겹고 발랄한 뮤지컬 로큰롤 사운드를 능란하게 들려준 제8극장은 그 스타일의 집약인 1집 [나는 앵무새 파리넬리다!]에서 대항해시대의 이야기를 들려줬고, 2집 [양화대교]에서는 일상의 여러 순간들을 들려줬다. 그들의 스타일은 언제나 밴드 씬 안에서 독보적이었고, 뒤이은 3집 [언제나 나는 너를 생각해]에서 그들은 사랑에 대해 노래한다. [언제나 나는 너를 생각해]가 이전 음반들과 살짝 차이가 있다면, “대항해시대”나 “사람을 찾습니다”, “식물인간”같이 제8극장만의 독보적으로 웅장한 편곡들은 피한다는 점이다. 그 대신 제8극장은 원테이크 형식을 들고 왔다. 최근의 싱글 “너랑 뽀뽀할래”나 “문경록 파이팅” 때부터 제8극장은 로큰롤 스타일에 딱 맞는 원테이크를 멋지게 사용해 왔다. 따로따로 번거롭게 녹음하지 않고 밴드가 함께 불타오르는 라이브의 합을 담겠다는 포부일까. 12곡을 꽉꽉 원테이크로 채운 [언제나 나는 너를 생각해]는 제8극장의 음반 중에서 로큰롤 스타일이 가장 빛나게 들린다. 5060을 빛낸 클래식 영미권 로큰롤 밴드들의 분위기마저도 어렴풋이 담긴 곡들이 여전히 능청맞은 노랫말들과 함께 음반 여기저기에 넘쳐난다. “오늘부터 1일”나 “인생을 고쳐줘야 해요”, “언제나 나는 너를 생각해”의 코러스 부분에서는 비치 보이스의 느낌이 들리고, “월드부동산”이나 “할렐루야” 같은 곡에서는 로큰롤 시절의 비틀즈마저도 조금은 들린다. 원테이크와 그에 딱 맞는 편곡들 덕분에 [언제나 나는 너를 생각해]는 제8극장이 추구하는 5060의 로큰롤이 가장 알맞게 드러난다. 전작의 강렬한 웅장함, 뮤지컬 같은 ‘에픽’함, 희극과 비극이 공존하는 노랫말들을 좋아한 입장에서는 어딘가가 조금 부족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로큰롤과 원테이크를 섞어 ‘사랑’에 대한 컨셉 음반을 만든 신의 한 수는 절대 무를 수 없을 것이다. 제8극장만의 흥겹고 발랄한 행보는 여전히 독보적인 동시에 몇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8/10 던말릭 (Don Malik) X 키마 (Kima) | Tribeast | Daze Alive/Stoneship, 2016.04.19 이선엽: 두 어린 피가 뭉쳤다. 프로듀서 키마(Kima)의 재단에 맞춰 던말릭이 혈기왕성한 플로우와 성숙한 태도를 뽐낸다. 던말릭은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와 드렁큰 타이거(Drunken Tiger)를 비롯한 선구자들에게 오마주를 표하고(“Dead Hero”, “Tribeast”), 키마의 비트는 올드스쿨 작법과 미래지향적 요소를 절묘하게 정제시켰다. 한편으로는 천진난만하고 자유로운 모습을 보이는 반면 (“FLAB (Fly Like A Bird)”), 또 다른 편으로는 철학적 깊이와 음악적 조예를 드러내기도 한다. 특히 도시를 정글에 빗댄 “Rodeo (Safari)”는 흥미 이상의 울림을 선사하고, 90년대 뉴욕 프로듀서들의 향기를 풍기는 붐뱁 비트에서 한번 더 감탄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LP 샘플링으로 재현해낸 로파이 질감이 소리헤다의 엔지니어링으로써 한층 강조되었다. ‘올드스쿨의 재발견’이라는 단순한 찬사 이상의 것을 보여주는 랩핑과 프로듀싱이다. 8/10 루싸이트 토끼 | L+ |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2016.03.25 조지환: 루싸이트 토끼는 팝 듀오이다. 팝 아티스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자질은 듣기 편하면서도 심심하지 않은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능력일 것이다. 루싸이트 토끼의 작업물들 중 가장 사랑받았던 곡들([Grow To Glow]의 “Go”처럼)은 그저 사랑스러운 멜로디만으로 충분히 매력을 지녔던 곡들이었다.이 음반은 일렉트로 팝 음반으로써, 전자음악적 시도들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음반이다. 곳곳에 아기자기한 음향들이 박혀있고, 너무 빡빡하지도 비어있지도 않게 사운드를 채워넣었다. 리듬악기를 다루는 솜씨도 정교한데, 특히 “Wallflower”의 베이스 라인은 기존의 ‘루싸이트 토끼’ 하면 떠오를 법한 이미지를 기분좋게 깨뜨리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러한 사운드적 시도가 멜로디에서의 성취를 가로막고 있다는 점은 아쉽게 느껴진다. 아홉 개의 트랙들 중 귀를 잡아끌 만한 멜로디를 들려준 곡은 “You Who” 뿐이었다. 다른 곡들의 멜로디는 너무 단조롭거나 짧은 구간의 반복이 많아 심심했고, 어떤 곡들에선 유치하게까지 느껴졌으며(특히 “콩벌레”), 어떤 곡들은 아예 멜로디에 큰 공을 들이지 않은 듯 보였다. 다음 앨범에서는 사운드적 성취와 뛰어난 멜로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으면 한다. 5.5/10 Leave a Reply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CommentName* Email* Website 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