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혹은 좋아했던 뮤지션들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그런 의문을 가져 봤던 적이 있다. 그런데 음악 비평가의 목소리는 누가 들어주나? 아니, 비평가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비평가라는 존재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어 보이)는 현상에 대해서 ‘비평가는 글로 말하는 사람이니까’라는 (자아도취에 가까운) 이유를 대고 싶지는 않다. 글을 쓰는 사람에 대한 관심은 글 자체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줄어들고 있으며, 그것이 원인인지 결과인지는 알 수 없지만 글이 지닐 수 있는 힘도 덩달아 약해지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비평가가 글이 아닌 자기 이야기를 들려줄 기회를 찾지 못하는 건 자연스러운 결과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 ‘비평은 죽었어, 이제 없어’ 같은 느낌으로 감정적인 시니컬함을 부리는 것 역시 자아도취의 다른 모습일 것이다. 음악을 듣는 한 사람으로서 음악 비평가의 이야기를 듣는 건 일차적으로 ‘즐거운’ 경험이다. 그 즐거움은, 그들이 음악 속에서 즐거움을 찾고 그 즐거움을 타인에게 (글의 형태로) 납득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대중음악 비평이라는 행위에 대해서 비평가마다 여러 가지 담론과 관점이 존재하고 서로 충돌할 수 있겠지만, 그런 ‘음악으로부터 비롯된 즐거움’이 비평가들을 묶는 공통분모라는 건 확실해 보인다. 그리고 그 즐거움이 그들로 하여금 음악에 대한 글을 계속해서 쓰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비평가들이 한 움큼씩 쥐고 있는 그런 즐거움을 느낀 사람이 나뿐만은 아닌 것 같다. [weiv]는 출판 프로젝트팀 아카이뷰(Archiview)와 함께 앞으로 4주 동안 음악 비평가의 이야기를 살짝 소개해 보고자 한다. 그들은 현재 대중음악 비평가 기록 프로젝트인 『크리틱스 레코드』 (Critics Record)를 준비하고 있으며, 오는 7월 이들의 첫 단행본이 발매될 예정이다. [weiv]에 실린 인터뷰는 원 내용의 일부를 편집한 맛보기 버전이며, 앞으로 발매될 단행본에는 평론가들의 더 자세하고 알찬 이야기가 담길 예정이다. 이 기록이 평론가들이 지닌 ‘즐거움’의 편린을 맛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아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으면 한다 (돌려 말하지 않겠다. 후원했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긴 서론이 끝났으니, [Critics Record X weiv]의 첫 순서, 김윤하 평론가의 인터뷰로 들어가 보자. | 정구원 Critics Record X weiv 001. 김윤하2015년 11월 14일 토요일 홍대 Idle Moments Interviewed by 전대한Photographed by 김이현Designed by 송진경Edited by 우주언 김윤하의 애정, 애정의 김윤하 전대한 (이하 전) : 윤하 님 글들을 읽으면 자연스레 “애정”이라는 단어가 떠올라요. 윤하 님께서 쓰신 대부분의 글들을 관통하는 키워드 같다는 느낌이에요. 대중음악 비평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어느 정도 애정을 갖고 있는 게 당연하겠지만, 다른 분들에 비해서 더 많은 애정을 갖고 있다는 느낌이에요. 또 예전이나 지금이나 늘 그 애정이 한결 같다는 느낌도 들고요. 김윤하 (이하 김) : 그건 어쩌면 시작이 달랐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저는 글을 써야겠다, 더 나아가 대중음악 비평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글쓰기를 좋아하긴 했는데 딱히 업으로 삼겠다 하는 생각도 전혀 없었고요.이런저런 계기들이 모여서 정말 자연스럽게 글을 쓰게 된 것 같아요. 단순히 좋아하는 마음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정말 자연스럽게. 가끔 저의 이런 바탕 때문에 치밀하게 씬을 분석하거나 음악을 엄청나게 진지하게 듣거나, 기술적인 면이나 비판적인 면을 더 부각시키고 싶어 하는 (비평가) 분들과는 조금 종류가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같은 걸 봐도 좀 더 긍정적으로나 호의적으로 보는 시선에서 시작하는 편이라고 할까요. 그렇게 시작이 달랐던 게 제 글에 ‘애정’이 많이 담긴 것처럼 보이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저는 우선 어떤 작품이 되었건 누군가가 자기 인생의 한 부분을 힘들게 깎아서 내놓은 결과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그것의 좋고 나쁨과 상관없이 작품의 존재 자체로 굉장히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고 믿어요. 그런데 그걸 한마디로 “아 구려” 혹은 “이게 어떤 폐품인지 살과 뼈를 분리해 주겠어.” 같은 식으로 단정 짓는 게 좀 겁이 나요. 왜냐하면 그 안에는, 그게 음악적인 부분이든 아니면 다른 부분이든,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모르는 부분들이 분명 존재할 테니까요. 그래서 작품에 대해 너무 단칼에 베어버리겠다는 식의 태도를 좀 부담스러워하는 편이에요. 오히려 나쁜 작품이거나 성에 차지 않는 작품이라고 해도, 아쉬운 부분을 캐치해서 다음에는 더 좋은 모습을 보고 싶다는 식으로 쓰고 싶어 하는 경향이 확실히 있어요.물론 저도 당연히 정말 별로라고 생각하는 결과물들이 있죠.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바로 아웃시켜버리거나 패대기치기보다는 ‘이런 부분은 다르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생각이 움직이는 편이에요. 저는 비평이라는 게 무엇보다 조심스러운 작업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작해내는 일과는 다르게, 이미 창작되어있는 결과물을 보고 듣고 다시 한 번 창작하는, 일종의 2차 창작 같은 행위잖아요. 그런 의미에서의 1차에 대한 존중이 바탕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고요. 한편으로는 하나의 창작물이 가지고 있는 가치가 모두 동등하다는 전제 하에 그 안에서 좋은 것을 찾아내고 싶은 욕구가 강한 사람이기도 해요. 좋은 작품 안에서 좋은 것을 찾아내는 건 사실 당연한 거고요, 썩 탐탁지 않아도 그 안에서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면을 찾아보고 싶은 거죠. 그래서 제가 쓰는 글들이 애정이랄까 정이 있어 보이는 인상을 주는지도 모르겠어요. 평론가도 결국은 팬이에요. 전: 윤하 님 글을 포함해서 <아이돌로지>의 글들을 보면, 재미있으면서도 어딘가 아쉽다는 느낌이 동시에 들 때가 있어요. 팬들 사이에서만 흥미롭게 소비될 수 있는 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할까요. 이건 비평을 하는 입장이기 이전에, 팬의 입장이 아니면 쓸 수 없는 글 같아요.그래도 제가 이런 글들에서 매력을 느끼는 건, 필자가 팬으로서 가지고 있는 마음가짐과 애정이 눈에 훤히 보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게 전제되지 않으면, 깊이 있게 보지 않았을 것이고, 또 보고 싶어도 보지 못했을 거예요. 김: 그럼요. 팬만이 볼 수 있는 것들이 분명 있죠. 그런 게 또 재미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구하지 못하는, 양면성을 띄는 상황이 되는 경우가 흔해요. 누군가는 ‘정말 획기적이다!’하고 꺼낸 테마인데, 나머지 대다수는 ‘전혀 모르겠는데?’ 혹은 ‘정말 뜬금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대표적이죠. 팬덤 안에서만 소모되는 콘텐츠가 아니라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어필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통찰력이 강한 흐름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 (아이돌 음악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 사이에서)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단순히 아이디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심화된 사고를 담은, 더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얻고 때로는 설득할 수 있는 글이요.사실 평론가라고 해서, 엄청 대단한 사람은 아니잖아요? 평범한 사람이에요. 솔직히 아무 것도 아니에요. 다만 좀 더 헤비리스너이고, 음악을 좀 더 좋아하는 사람이고, 나아가서는 똑같이 누군가의 팬인데, 그나마 조금이나마 통찰력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을 다른 재미있는 이야기들과 엮거나 좀 더 발전적인 콘텐츠랑 엮어서 이런저런 썰을 풀 수 있게 훈련된 사람들일 뿐이에요. 그래서 저는 평론가와 팬이 전혀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교집합이 엄청 크다고 생각해요. 대중음악에서의 큐레이팅 전: <헬로 스트레인저> 기획에서 큐레이팅이라는 단어를 쓰셨는데, 보통 대중음악에서 큐레이팅이라는 말을 쓰는 행위는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서 추천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이를테면, 현대카드에서 했었던. 대중음악 씬에 관계된 사람들이 자신의 선택을 추천해주는 형태였죠. 근데 제 생각에는 그건 그냥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추천해주는 것이지, 큐레이팅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거든요. 그렇기에 인터뷰를 통해 얻은 텍스트를 기반으로 해서, 기획자(혹은 필자) 본인의 음악 취향을 토대로 신인 밴드를 소개해주는 작업이, 언급한 두 형태의 작업과는 다르게 큐레이팅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했어요. 김: 대중음악에서의 큐레이팅 형태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대중음악에서 큐레이팅이 가능할까에 대한 대답부터 차근차근 드려야 할 것 같아요. 큐레이팅이 중요해지는 건 단순히 대중음악 비평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요. 예를 들자면, 음반 샵만 봐도 요즘은 큐레이팅이 개성있게 잘 된 곳이 훨씬 인기가 많거든요. 대표적인 게 홍대에 위치한 김밥 레코드죠. 예전 같이 앨범을 수십만 장씩 쉽게 팔지 못하는 시장상황에서, 뭐가 되었든 확고하게 취향을 가진 사람이 추천하는 음악에 대해서 선호도가 커지고 있다는 걸 많이 느껴요. 앞으로 그런 성향이 점점 강해질 거고요. 왜냐하면 요즘 음악 딱히 찾아 듣는 사람 정말 적거든요. 그냥 받아들이지. 음악을 소비하는 분위기 자체가 확실히 엄청 수동적인 형태로 바뀌었어요. 대표적인 게 ‘음악을 굳이 찾아 들어야 돼?’, ‘왜 돈을 주고 사?’ 이런 반응들이죠. 씬의 활기랄까, 움직임이 굉장히 둔해졌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음악이라는 문화를 함께 공유하고 향유하는 데 있어서의 에너지 같은 것들이요. 그래서 ‘다루어야만 하는 것’만을 다루는 건 이제 별 매력이 없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우리 흔하게 연말마다 1위에서 20위까지 베스트 앨범 리스트를 만들잖아요. 모든 필자들이 똑같이 숫자를 붙여서. 사실 올림픽 경기 기술 점수 매기는 것도 아니고, 순위를 매기는 당위 같은 게 어디 있겠어요. 재미로나 한 번 해보는 거지, 솔직히 순위 매기는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거거든요. 심지어 요즘은 재미도 없어졌고요. 대신 제가 예전부터 좋아했던 건 필자별 리스트 같은 거였어요. 필자들 각자가 한 해 동안 좋았던 음반들을 추천해주는 페이지들 있잖아요. 그걸 통해서 자기 취향에 맞는 필자를 찾고, 그 사람이 쓴 글을 찾아서 읽고, 또 그 사람이 추천해주는 다른 음악들까지 들어보고 하는 게, 제가 소비자 입장에 있었을 때 가장 재미있게 취향을 넓혀갈 수 있는 방식이었거든요. 그게 바로 조금 전에 말한 큐레이팅의 원시적인 형태가 아닐까 싶어요.앞으로는 소비자 / 리스너들의 니즈도 그렇고, 시장 돌아가는 것도 큐레이팅이 훨씬 중요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이미 그렇게 많이 변하고 있고요. 비평가의 권위가 예전보다 훨씬 유명무실해졌다는 생각이 드는 게, 이미 사람들의 취향은 무척 세분화 되어버렸잖아요. 그래서 비평가가 막 열을 올리면서 ‘이 음악이 우주 최고야!’라고 아무리 주장해봤자, 요즘 사람들은 자신과 합이나 주파수 같은 게 맞는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추천하는 음악에 더 솔깃하게 반응하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앞으로 비평 쪽도 이 ‘큐레이팅’ 영역을 더 가깝게 끌어안는 쪽으로 더 변화하지 않을까 싶어요. 자연스러운 변화죠.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기존에 전통적으로 존재해왔던, 1위부터 20위까지 뽑아냈던 그런 식의 비평도 건재했으면 좋겠다 생각하기도 해요. 시대가 변했다고 해서, 또 새로운 형태로만 우르르 옮겨 가버리면 예전이랑 뭐가 다르겠어요. 저는 어디서건 늘 다양성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그래도 어쨌든 지금은 큐레이팅의 시대를 따라서 세상이 많이 변해가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저는 제 성향에 맞아서 즐겁기도 하고요. 페미니즘과 대중음악 비평 전: 물론 대중음악 비평 쪽의 독자들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사회 전반적으로는 사람들이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은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그럼에도 왜 음악 비평에서는 페미니즘 기반의 담론이 많이 나오지 않는 걸까요? 일종의 불문율 같은 게 있는 건가요? 김: 기본적으로 저는 한국 사회 전반의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이나 인식 같은 것들이, 올해(2015년) 들어와서야 첫 걸음마를 겨우 떼었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개인적으로도 페미니즘이나 음악계 안의 여성의 위치 같은 것들을 늘 염두에 두고 글을 써야겠다 생각하게 된 것도 작년과 올해 즈음이었거든요. 물론 페미니즘이 음악 비평에 있어서 아주 필수적인 요소냐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기 어렵겠죠. 다만 그에 대해 도드라지는 이슈가 있고 지금껏 숨겨왔던, 혹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부분에 대한 자각이 된다면 비평적인 부분에서 당연히 다루어야 할 테마라고 생각해요.한국은 전반적으로 젠더 감수성이 엄청나게 낮은 나라고, 그 중에서도 문화예술계 상황은 더 심각하니까요.또 하나 신경 쓰이는 건 비평가 가운데 여성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적다는 사실이에요. 아시다시피 비평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여자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죠. 음악 비평이라는 분야자체의 여성이 무척이나 소수 집단인데다가, 음악이라는 문화 안에서 다뤄지는 여성의 모습이란 극적으로 수동적이거나 대상화되어 다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여러모로 페미니즘이 갈 길이 아주 먼 분야죠. 그래서 아마 차우진 씨나 블럭씨처럼, 페미니즘을 전면적으로 내세운 글을 자주 기고하는 분들이 유독 눈에 띄어 보이는 거겠죠. 이전에는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 건 커녕 신경도 쓰지 않았으니까요. 저 같은 경우에는 앞으로 더 의식하고 공부하고 더 예리하고 정교하게 쓸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중이고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양가적인 감정도 있어요. (같은 말을 하더라도) 남성이 하는 것과 여성이 하는 것은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지잖아요. 똑같이 여성비하나 여성혐오에 대해 이야기하더라도, 저와 남성 평론가가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이나 형태가 다를 것이고, 글쓴이의 성별을 알고 있다면 받아들이는 사람도 전혀 다르게 받아들일 거에요. 그래서 오히려 말을 좀 더 조심하게 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가뜩이나 숫자도 적은데, 잘못 이야기했다가는 제가 씬의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저 자체도 완전한 인간이 아닌데, 걱정스러운 거죠. 여성 평론가가 썼다는 것만으로 ‘아 저게 여성들의 보편적인 생각인가? 저게 페미니즘인가?’하는 인식을 갖게 만들 수도 있다는 점에서 두 번 세 번 네 번 고민하고 곱씹게 되는 것 같아요. 생각과 걱정이 많은 개인적인 성격에서 기인하는 문제일 수도 있겠고요.어쨌든 전 여성이 행하는 뭐가 어떻든, 그것을 행하는 주체가 확실한 여성 자신이고 주체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가치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포미닛의 현아 같은 아이돌 가수를 얘기해 볼게요. 어떤 분들은 현아가 자신의 성적매력을 앞세워 마치 성을 파는 듯한 행위를 보이는 것을 강도 높게 비판해요. 어쩌면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와 가장 먼 곳에 위치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겠죠. 저런 노래와 무대가 성을 돈 주고 파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분도 있고요. 하지만 저는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의 의도나 속마음과는 상관 없이, 그 행위의 주체가 ‘나는 내가 섹시하게 보이는 것이 좋고, 내가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라는 확실한 자기분석과 자각이 있다면 그것대로 존중 받아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행위의 주체가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서 명확한 판단을 내리고 그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데, 그것에 대해 자극적이고 일차원적인 비난의 화살을 보낸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게 폭력이죠. 아무튼 많이 드러내고 이야기하려 노력하고는 있지만, 워낙 생각이 많은 타입이라 보시는 분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거나 페미니즘에는 전혀 관심 없는 사람이라는 시선으로 보셔도 할 말은 없어요. 앞으로도 더 연구하고, 공부하고, 고민해서 여성과 대중음악에 대한 새로운 시각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늘었으면 좋겠어요. 노력하겠습니다. 그래서, 비평가는 무엇일까. 전: 좀 오글거리는 마지막 질문인데요. (웃음) 비평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김: 저는 비평가는, 일부 리스너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좋은 의자에 앉아서 거만하게 펜대나 굴리는 모습이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건 비평가의 가장 나쁜 예라고 생각하고, 그런 인상을 주는 비평가는 결코 좋은 비평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늘 부지런하고, 남들이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고, 수집하고, 그걸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이 비평가 아닐까요? 전: 결국 비평가는 팬에서 출발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김: 그렇죠. 저 같은 경우는 비평을 해야겠다는 자각이 없었던 사람이라 유독 그 생각에 더 공감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아직도 팬으로서의 베이스를 잃지 않고 있고, 또 앞으로도 절대 잃고 싶지 않아요. 그 사실이 비평가로서 제 유일한 장점이자 특징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해요. 비평을 한다고 해서 갑자기 신분이나 지위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팬으로서 하던 것을 계속 지속하면서 비평가로서 제가 새로이 보고 느낀 걸 (팬과 비평가의) 중간에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포지션에 있고 싶어요. 개인적인 목표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접하는 일을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자신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천착하는 건 예술가들의 일이고, 비평가는 늘 시선을 밖에 두고, 끊임 없이 바삐 움직여야 하는 사람들이죠. 비평가를 마차를 끄는 ‘말’에 비유한 것도 그런 의미고요. 전: 혼자 달리는 말이면 안 되겠네요. 김: 그렇죠. 업고 안고 이고 곁에서 계속 달려야죠. 고되죠, 사실. 아무도 안 좋아하잖아요. 비평가를 누가 좋아해. 창작자는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들 때문에 고통 받기도 하지만, 좋아해주는 사람들 때문에 행복하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비평가는 아무도 안 좋아하거든요. 나만 늘 짝사랑 하는 거죠, 날 좋아해주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래서 비평가는 늘 외로운 존재인 것 같아요. 권위 같은 건 개뿔도 없고, 욕만 먹고, 외롭기만 해요. 어쩌면 비평가는 짝사랑에 능한 사람들일지도 모르겠어요. 어째 점점 불쌍해지네요. (웃음) * Archiview 소개저희는 출판 프로젝트팀 ‘아카이뷰(Archivew)’입니다.아카이뷰는 Archive와 View의 합성입니다. 저희만의 시선을 담은 기록을 출판합니다. 저희는 가치 있지만 그 가치를 주목받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디자인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소규모이지만 글을 쓰는 전대한과 편집자 우주언, 사진작가 김이현, 디자이너 송진경, 마케팅의 최지윤까지, 나름 완벽한 조합으로 모인 작은 출판사 ‘아카이뷰’는 주목받지는 못하지만 가치 있는 것들에 대해 계속해서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관련 사이트『크리틱스 레코드』텀블벅 후원 페이지 https://tumblbug.com/criticsrecord/ One Response 전태용 2016.05.31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는 모습에 격려와 박수를 보냅니다. 비평가 본인의 마음속 이야기를 담은 글이기에 기대되고 진지하네요. 기대되는 마음을 억누르며 기다려봅니다. 응답 Leave a Reply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CommentName* Email* Website Δ
전태용 2016.05.31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는 모습에 격려와 박수를 보냅니다. 비평가 본인의 마음속 이야기를 담은 글이기에 기대되고 진지하네요. 기대되는 마음을 억누르며 기다려봅니다. 응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