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프로젝트 팀 아카이뷰(Archiview)와 음악웹진 [weiv]의 콜라보레이션, 음악 평론가의 이야기를 살짝 엿보는 기획 [Critics Record X weiv]. 두 번째 순서는 박준우 평론가와의 인터뷰다. 아마 블럭(Bluc)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 정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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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cs Record X weiv 002. 박준우
2016년 1월 20일 수요일
홍대 Anthracite

Interviewed by 전대한
Photographed by 김이현
Designed by 송진경
Edited by 우주언

 

경계에 있고 싶다

전대한 (이하 전) : 블럭 님이 기성 비평과 다른 지점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면, 고결한 충돌, 그리고 통과의례라는 글을 논해야 할 것 같아요. 이 글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글이 음악 비평과 문화 연구, 특히 민속학적인 연구 사이에 놓여있는 글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에요. 실제로 이런 글을 대중음악 쪽에서는 찾기가 힘들더라고요.

박준우 (이하 박) : 저는 사실 그 경계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대학원에서) 공부를 계속하면서 너무 안으로 파고들지는 않더라도 계속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그냥 단순히 현상 분석을 하는 건, 저보다 더 잘하실 분들도 있어요. 특히 그 대상이 음악이 아니면 더 많고요. 또 현상 분석은 속도를 요구하잖아요. 한 사람이 먼저 분석해서 짚어내면, 나머지 사람들은 ‘아! 내가 쓰려고 했는데!’ 이렇게 되어버리잖아요. 그게 조금 싫었던 거예요. 내 시각이 필요하다, 그런 생각에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죠. 그 글은 그런 고민의 결과인 것 같아요.

 

최소한의 감수성 문제

전: 블럭 님 같은 경우는 그 사이에서 좀 다른 형태의 비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페미니즘 기반의 음악 비평이나 정치적인 비평이요. 그래서 페미니즘 이야기로 넘어가볼까 해요. 국내에서 대중음악과 페미니즘을 연결해서 쓰고 계신 거의 유일한 분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본인의 그런 포지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블: (웃음) 뭐라고 해야 하지. 그런 사람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은 해요. 더 많아졌으면 좋겠고. 글을 쓰는 사람한테도 그 사람의 감수성 같은 게 척도가 될 수 있잖아요. 실제로 척도가 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고. 굳이 내가 페미니즘을 가장 앞에 내세우지 않더라도,  적어도 그런 최소한의 감수성은 가지고 글을 썼으면 좋겠어요. 사소한 표현이더라도 보는 이가 불편할 때가 있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기존 가치관에 굉장히 익숙하다보니까 의식하지 못한 채 문제가 되는 글을 낳을 수도 있고. 그게 저는 좋다고 생각하지 않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바꿀 수 있는 거고,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부분이고, 오히려 그게 일반 기사가 아니라 칼럼이거나 하면 저도 더 잣대가 들어가요. 뭔가 의견을 쓸 때는 좀 더 섬세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죠.

 

페미니즘 기반의 대중음악 비평이 없는 이유들

전: 저번에 김윤하 평론가와 인터뷰를 할 때도 페미니즘 기반의 음악 비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했었어요. 비슷한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기본적인 젠더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한 것 같다고 하셨거든요. 저도 동의하고요. 근데 왜 없을까요?

블: 우선 이런 이슈가 제기된 게 얼마 안 된 걸로 알아요. 지금까지의 음악 비평이 단적으로 이야기하면 대부분 화이트 크리틱이었고, 영미권/백인/록 음악 중심의 음악 비평이 사실상 전체였고요. 그래서 흑인 음악이라고 불리는 힙합이나 R&B가 어쨌든, 80년대 말부터 90년대 – 2000년대 – 2010년대에 걸쳐서 대세가 됐잖아요? 대세가 됐는데도, 그리고 현재까지 대세가 된 시간은 꽤 길었음에도, 블랙 크리틱에 대한 이슈가 제기된 건 얼마 안 됐죠. 어떻게 보면 많은 사람들은 화이트 크리틱이 당연한 줄 알았고,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블랙 크리틱이 특정 장르에 국한된 영역이라고 생각도 했고요. 사실 그게 장르 안에서 갇히면 더 문제가 되는 건데, 이걸 깨고 나와서 대중음악 전체를 이야기하고 좀 뒤섞여야 재미도 있고 발전도 되고 그랬을 텐데 그렇지 못했죠. 정체된 순간이 꽤 길었다고 말해야 할까요? 그래서 여성주의 크리틱도 어떤 의미에선 당연한 것 같아요. 음악 비평 안에서 인종 문제도 이제야 나왔으니까요. 여성 문제가 나온 지 얼마 안 됐고 하니까 페미니즘 크리틱도 앞으로 더 이슈가 많이 제기될 거예요.

전: 전공을 비롯해서 어쨌든 블럭 님의 개인적인 관심사가 페미니즘에도 있으신 거잖아요.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당연히 비평을 하는데 영향을 미치겠지만, 직접적으로 혹은 구체적으로 미치는 영향 같은 게 있나요? 음악을 듣는 방식이나 글을 쓰는 방식에 있어서요.

블: 많이 주죠. 하다못해 누군가의 앨범 리뷰를 쓸 때도 최대한 섬세하게 쓰려고 노력을 해요. 별로다 / 못했다 대신에 아쉽다고 쓴다든지, 그런 사소한 부분부터 시작해서 조금 더 섬세하게 쓰려고 노력하는 것도 있죠. 아이돌을 볼 때도 당연히 그런 프레임이 적용이 되고요. 좀 불편함을 느낄 때도 있죠. 그런 불편함을 직접 말할 때도 있어요. 가사 같은 것도 좀 더 듣게 되고요. 사실 힙합 음악은 되게 오랫동안 좋아했는데 그 불편한 지점들을 계속 깨고 나오고 깨닫다 보니까, 예전에는 무비판적으로 그냥 ‘좋네. 잘하네.’ 했던 것들을 그런 쪽과 연관 지어서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는 거죠.

 

모든 비평은 어떤 의미에서 정치적인 것이다

전: 그런 섬세함이 블럭 님께서 비평을 통해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실 때도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것 같아요. 웨이브에 쓰셨던 음악으로 싸운다는 것 : 제이 콜, 펀치, 그리고 마이클 브라운처럼요. 그 글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이 글은 음악에 시작해서 사회적 이슈로까지 굉장히 자연스럽게 흘러간 글이었던 거 같아요. 지금까지 계속 이야기 나누었던 페미니즘 기반의 글들도 그렇고 이 글도 그렇고, 음악이 사회를 논하는 순간을 포착한 그런 글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굳이 워딩을 하자면, ‘정치적인’ 비평일까요? 물론 정치에 대해 직접적으로 다룬 그런 비평은 아니지만, ‘정치적인’ 비평이라고 할 수 있겠죠?

블: 사실 어떤 정치적인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정치에 방점을 찍고 글을 썼던 건 아니었어요. 음악 이야기를 하면서 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하기보다는 이런 음악도 있고 이런 음악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쓰고 싶었던 거니까요. 그래서 <음악으로 싸운다는 것 : 제이 콜, 펀치, 그리고 마이클 브라운>이라는 글을 썼던 거죠. 정치적인 이야기를 쓰는 데 있어서 저는 고민을 안 하는 건 아닌데, 딱히 꺼리거나 하지도 않는 거 같아요.
보내주신 질문지에서 읽었던 것 같은데, ‘모든 비평은 정치적이다.’ 라는 의미의 문장이요. 사실 맞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우리의 모든 행동이 정치적인 것과 연결이 안 될 수가 없죠. 되게 사소한 행동이나 사소한 요소까지도 정치적인 것에 개입되니까요. 정치가 엄청 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먼 것을 당장 잘못 선택했을 때 당장 내 가까이에서 오는 피로도가 굉장히 심각하거든요.
물론 즐거움을 추구하는 음악에 대해서 쓸 때, 거기다가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건 좀 억지라고 느껴질 수는 있어요. 다만 그런 게 아니라 정말 일상에서 느껴지는 정치적인 문제를 다룬 음악들도 꽤 많은데, 그런 음악을 논할 때는 당연히 정치적인 부분을 끄집어내주는 게 좋은 것 같거든요. 듣는 사람 입장에서나 쓰는 사람 입장에서나. 저는 딱히 모든 비평이 정치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비평에 정치적인 문제가 개입되거나 비평이 정치를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것이 비평과 별개의 또 다른 무언가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그것도 자연스러운 비평 중에 하나인 거죠. 애써 무리해서 정치적인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집어내는 것도 부자연스러워서 별로인 것 같고. 대신에 내가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그런 곡들을 찾아서 이야기할 수는 있잖아요. 그런 곡들이 정말 많으니까.

 

그런 역할을 가진 비평이라면, 딱 좋다고 생각해요.

전: 그럼 정치적인 함의에 대한 것 말고서라도 대중음악 비평이 해야 될 일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하세요? 일종의 소명 같은.

블: (웃음) 글쎄요. 개인적으로는 비평이라는 행위 자체에 회의를 느낄 때가 굉장히 많거든요. 가끔 어떤 앨범을 다루는 글을 쓸 때도 내가 뭐라고 이 앨범에 대해서 글을 이렇게 쓰나 싶어요. 이 사람은 진짜 몇 년에 걸쳐서 만든 작품인데, 내가 뭐라고 이걸 겨우 일주일-한 달 정도 듣고 이렇게까지 쓸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실제로 들기도 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평은 필요하긴 해요.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필요하고,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거창한 의미에서의 발전이 아니더라도 좀 더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거죠.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역할을 가진 비평이라면, 딱 좋다고 생각해요. 그 이상의 의무를 갖는다거나 하진 않다고 생각해요. 비평이 비평 자체로써 기능할 수 있는 게 분명히 있고, 그 존재 자체로 가치를 가지고 있는데, 비평이 수동적이라는 말도 저는 개인적으로 동의하진 않거든요. 작품이 나와야 비평이 나온다고 수동적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제 비평이 주체고 작품은 연결되는 하나의 테마지, 그 작품에 제 비평이 끌려 다닌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전: 비평 자체만으로도 온전한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네요?

블: 그렇죠. 저는 비평이기 이전에 글이기 때문에, 글 자체로도 기능을 온전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쳐낸다 > 쓴다

전: 저는 원래 비평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라고 믿는 입장이지만, 블럭 님께서 말하셨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은 비평이라는 게 작품에 종속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신형철 평론가가 이렇게 말하셨더라고요. ‘비평 분야 중에서 음악 비평은 음악이 되지 못하고, 미술 비평은 미술이 되지 못하며, 영화 비평도 영화가 되지 못하지만, 문학 비평은 문학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의 문장이었던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은 안 나네요.
여튼 저는 ‘과연 그럴까.’ 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물론 형식 자체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지만, 비평도 정말 좋은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어요. 다만 음악 쪽에서는 찾기가 어렵다는 생각은 해요.

블: 음악비평이라고 했을 때, 글에도 되게 여러 종류가 있지만 전통적인 매체에서의 비평을 고수한다고 했잖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걸 그냥 쳐내는 글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글이 내 것으로 남는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의뢰를 받고 내가 빨리 완성을 해서 납품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이 과정 자체에 문장에 대한 고민이 들어가기가 힘든 거예요. 물론 그만큼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좋은 글에 대한 고민이 많이 수반되기가 힘들어요. 이건 누굴 탓하는 게 아니라 여기 시스템 전체가 그런 식이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이 계속 마감을 한다고 하잖아요. 글을 쓴다고 하지 않고요. 계속 쓰고 납품하고의 과정이 반복되다 보니까 조금 힘든 것 같아요.

전: 블럭 님 본인은 어떠세요? <힙합LE>와의 인터뷰를 보면 거의 찍어내는 공장장 수준 이었다고 하던데. (웃음) 조금 포장하자면,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블: 전혀 없습니다. 찍어내지 않기 위해 노력은 하고 있어요.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여유를 두고 쓰려고 하고, 써놓고 나서도 최소한 한두번이라도 읽어보고 넘겨야겠다고 생각을 하죠. 노력은 해요. 그렇다고 제가 막 주체적인 예술가가 되긴 힘들겠지만, 어쩌면 제가 하는 일이 정말 그런 비평이나 의견을 전달하는 글 외에도 사실을 전달하는 일도 하다보니까 완벽하게 그런 좋은 문장을 쓰는 건 힘들 것 같아요. 그럼에도 좋은 문장을 쓰려고 노력을 해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의식적으로 계속 조금씩이라도 그렇게 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어쨌든 제가 쓴 글은 남기 때문에.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 중요한 거 같아요.

 

씬의 고령화

전: <힙합LE> 인터뷰에서 나이 이야기 하시면서 그 이야기도 하셨잖아요. ‘20대에서는 힙합 LE를 제외하고는 글 쓰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다.’라고. 그걸 문제적인 상황으로 인식하시니까 그렇게 말씀하신 거잖아요?

블: 저는 되게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해요. 다 같이 고령화가 되면 그만큼 가질 수 있는 문제점이 엄청 많고, 음악을 듣는 것에 있어서도 Refresh도 안되고, 계속 듣는 음악만 듣게 된다거나 듣는 음악의 연장선에 있는 것만 듣게 된다거나 하고요. 그리고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물론 한계가 없는 분들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 한계는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세대 교체 이런 걸 꿈꾸는 게 아니라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이만큼 밖에 없으면 시장 자체가 발전이 안 돼요. 좀 많은 사람이 들어오고 그래야 판이 더 활발하게 움직이고, 파급력도 가지고,  하나의 온전한 영역으로 자리를 잡고, 공생이라는 게 가능할 텐데 그게 안 되다 보니까 여기서 나가는 사람들은 많아져요. ‘난 그만 할래.’ 하고 회사를 간다든지, 아니면 정말 시골로 내려가서 사신다든지 하는 분들이 많거든요. 나가는 사람이 생기면 들어오는 사람이 생겨야 되는데 그렇지 않으니까 문제가 되는 거죠. 그래서 제가 좀 더 열심히 찾았던 것도 있어요. 같이 열심히 해보면 길이 보이지 않을까 해서.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 글을 쓰는 사람을 더 열심히 찾았던 것도 있고.

 

비평이란 무엇일까, 또 비평가는 뭐하는 사람일까

전: 마지막 질문인데요. 계속 했던 이야기이긴 한데, 결국 비평이란 뭘까요? 또 비평가는 뭐하는 사람일까요?

블: 전 사실 비평가는 종말, 종말이라고 하기는 좀 그런데……. 직업으로서의 비평가는 힘들다고 봐요. 비평만 해서는 먹고 살기 어렵기 때문에. ‘비평가라는 게 계속 존재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비평이란 무엇인가.’ 라고 물었을 때, 저는 비평이 무언가를 다루는 글이라고 한다면 저는 그 무언가를 단순히 작품으로만 국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음악 비평이라고 했을 때, 음악과 관련된 모든 것을 다룰 수 있는 게 음악 비평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그것을 외부에서 봤을 때, 어느 정도의 분석이 개입되고 사실 열거만 되어있는 정도의 글이라면 그건 기사겠죠. 거기에 더해서 자신의 의견과 생각이 개입되면 그냥 그게 비평인 거 같아요. 그 방식이 꼭 글이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하고요.

 

 

* Archiview 소개
저희는 출판 프로젝트팀 ‘아카이뷰(Archivew)’입니다.

아카이뷰는 Archive와 View의 합성입니다. 저희만의 시선을 담은 기록을 출판합니다. 저희는 가치 있지만 그 가치를 주목받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디자인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소규모이지만 글을 쓰는 전대한과 편집자 우주언, 사진작가 김이현, 디자이너 송진경, 마케팅의 최지윤까지, 나름 완벽한 조합으로 모인 작은 출판사 ‘아카이뷰’는 주목받지는 못하지만 가치 있는 것들에 대해 계속해서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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