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프로젝트 팀 아카이뷰(Archiview)와 음악웹진 [weiv]의 콜라보레이션, 음악 평론가의 이야기를 살짝 엿보는 기획 [Critics Record X weiv]. 네 번째 순서는 주민혁 평론가와의 인터뷰다. 이 인터뷰를 편집하며 ‘주민혁’이 필명인 줄 처음 알았다. | 정구원 Critics Record X weiv 004. 주민혁2016년 4월 27일 수요일 구월동 모래내커피집 Interviewed by 전대한Photographed by 김이현Designed by 송진경Edited by 우주언 그의 이름은 “주민혁”이다. 전대한(이하 전): 제일 먼저 질문 드리고 싶은 게, 필명으로 글을 쓰고 계시잖아요? ‘주민혁’이라는 이름은 필명이라고 알고 있는데, 필명을 사용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주민혁(이하 주): 직업 말고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게 음악에 관한 글을 쓰는 일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했고요.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프란시스 뉴튼이라는 필명으로 재즈 평론을 했던 것처럼, 저도 제 직업과 무관하게 필명으로 음악 평론을 하고 싶었어요. 우디 앨런 감독도 클라리넷 연주자로 유명하기도 하잖아요. 그의 재즈 밴드도 있고요.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이 음악에 관한 글을 쓰거나 직접 연주를 하는 게 상당히 흥미로웠고 부러웠어요. 직업 외에 다른 좋아하는 일이 있으면 일상이 보다 즐겁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게 음악에 관한 일이라면 금상첨화죠. 전: 그러니까 기존에 하시던 일과 음악 비평가라는 정체성을 분리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으셨던 건가요? 주: 반드시 분리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이니까 아예 다른 이름을 걸고 하면 정체성이 다양해지는 거잖아요. 정체성의 다양화라는 점이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직업에 있어서는 본명으로 살고, 음악 평론을 할 때에는 주민혁으로 살면 일상이 보다 재미있어지는 것 같아요. ‘전업’ 비평가가 아니다. 전: 다른 비평가들, 무겁거나 진지하게만 쓰는 사람들, 일반적으로 비평의 권위라고 말하는 것을 비평가의 당연한 정체성으로 삼는 분들과는 다르게 민혁 님은, 그런 부분을 크게 신경 쓰지 않으시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렇게 말씀드리면 기분이 좀 나쁘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저는 이렇게 다른 이유가 민혁 님은 이미 음악 비평이 아닌 다른 본업을 가지고 계시고, 필명을 쓰고 있는 점에서 볼 수 있듯이 음악 비평가를 본업과 구분된 정체성으로 생각하고 계시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원래 하는 일은 따로 있고, 이건(음악 비평) 취미 혹은 좋아서 하는 일 이라는 구분이 명확히 있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음악 비평이 전업이 아닌 분이시니까.조금 더 다르게 말하면, 음악 비평으로부터 생계를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되게 크게 작용하는 부분이라고 느끼거든요. 이 부분에 대해서 혹시 의식해보신 적 있으세요? 내가 쓴 음악 글로 페이를 받고 생계를 유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 상황 자체가 본인이 글 쓰는 데 영향을 미치기도 하나요? 주: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아요. 그럴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죠. 요즘 전업 비평가의 지속 가능성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해요. 음악 비평뿐만 아니라 영화나 문학 비평도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요즘 전업 비평가는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대학에서 강의를 하거나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비평을 병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전업 비평가로 살고 계신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비평만으로는 생계유지가 불가능하잖아요.그러니까 ‘나는 전업 비평가니까’ 혹은 ‘나는 전업 비평가가 아니니까’ 하는 생각 자체가 무의미해진 상황 같아요. 처음에는 전업 비평가가 아닌 비평가로서의 자의식에 관해서도 생각해봤는데, 요즘에는 전업 비평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상황에서 굳이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전: 음악 비평 자체를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 말고, 음악을 듣거나 음악에 대해 글을 쓸 때만으로 범위를 한정하더라도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나요? 전업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요. 저는 개인적으로 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주: 음악(비평)이 제 직업은 아니더라도, 음악은 제 삶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거든요. 그래서 이게 직업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제게 크게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제 삶의 일부이고, 늘 일상에 존재하는 것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거죠. 평론가를 전업으로 할 수 있는 시기가 많이 지나가지 않았나 전: 민혁 님이 말하신 부분이, 제 개인적으로는 90년대부터 지금까지 활동해오고 계신 비평가들과 2000년대 이후 새로이 나타나고 있는 비평가들을 구분 짓는 중요한 특징 중에 하나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순수하게 자기 취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고, 무언가를 쓰고 싶기에 비평을 하는 것일 뿐, 씬에 대한 어떤 의무감이나 책임감 혹은 소명에 대해서는 크게 구애받지 않는 것이 최근 새로이 등장한 비평가들의 특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비평 자체와 씬에 대한 부담감이 덜해진 것 같다고 해야 할까요.저는 이게 비평가 개인에게는 부담이 없고, 그저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쓰면 되고, 비평으로 내가 꼭 무언가를 이뤄야겠다는 부분이 없으니까 그런 것 같아요. 좀 더 편안해지고 다양한 담론들이 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긍정적이라고 보지만, 반면 씬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무작정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거든요. 주: 저는 전업 비평가가 계속 존재할 수 있는 상황이 형성되기를 바라는데,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비평을 전업으로 한다는 건 갈수록 어려워질 것 같아요. 모든 면에서 비평이 활기를 띠고 있었던 1990년대와는 환경이 확연히 달라졌기 때문에, 전업 비평가가 설 수 있는 자리가 갈수록 줄어들 것 같아요.이건 딱히 음악 비평에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정보통신의 발달로 누구나 정보를 손쉽고 빠르게 접할 수 있는 상황에서, 비평가의 입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거든요. 저만 하더라도 1990년대에 「핫뮤직」이나 「서브」가 왜 중요했냐 하면, 그것들이 음반이나 아티스트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주요 통로였거든요. 그 외에는 별다른 통로가 없었어요. 집집마다 초고속 인터넷 깔려 있고, 모바일로 인터넷 접속하는 요즘 같은 시절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요즘에는 굳이 그런 잡지들을, 더 나아가서 평론가들이 쓴 글을 읽지 않아도,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아티스트나 앨범에 대한 소개를 접할 수 있거든요. 마음만 먹으면 작곡가가 누구이며 어떤 악기들이 사용되었는지까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대중이 평론가가 쓴 딱딱하고 어려운 글을 읽으려고 할까 싶어요. 이건 문학도 마찬가지이고, 영화도 마찬가지이고, 음악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겠죠. 평론가의 권위는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너희들만 알아? 나도 인터넷 뒤져보면 너희들만큼 알 수 있어’ 하고 생각하는 대중이 늘어나는 거죠. 굳이 평론가의 글을 찾아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대중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과연 평론가의 권위가 예전과 같은 유지될 수 있을까? 전업 평론가가 지속 가능할까? 이런 상황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를 따지기보다는, 현실을 직시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평론가를 전업으로 할 수 있는 시기가 지나가고 있지 않나,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요. ‘너희들이 모르는 걸 알려주마.’가 아닌, ‘이런 이야기를 같이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전: 전업 비평가에 국한해서는 위기이고, 그게 사실 시대에 뒤떨어진 감이 없지 않은 것 같아요. 개개인의 취향이 너무 다양해지고 소비자들 혹은 청자들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많은 것들 중에서 내가 이걸 좋다고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거야.”하고 설명해 줄 수 있는 상황이 펼쳐지게 되어서 오히려 비평 자체는 역으로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시기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거든요. 주: 문학 쪽 이야기를 먼저 할게요. 저는 주변에 문학 비평가들이 음악 비평가들보다 많으니까요. 등단을 하고 문학지에 글을 쓰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있는데, 문학지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걱정하거든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 아니냐고 말하죠. ‘대중이 문학도 안 읽는데 문학 비평을 읽겠어?’ 하는 거죠. 저는 사람들이 문학을 읽는 것에 비해서 한국에 문학지가 너무 많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문학 비평가들이 너무 쓸데없이 많은 권위를 누려 왔다고 생각하거든요. 마찬가지로 영화 비평도 그렇고 음악 비평도 그렇고, 비평가들이 ‘내가 이렇게 권위 있는 사람이야. 너희들이 모르는 걸 내가 알려줄 수 있단다’ 하는 쓸데없는 권위의식에서 좀 벗어났으면 좋겠어요.제가 생각하는 비평은 ‘너희들이 모르는 걸 알려주마.’ 하는 건 아니거든요. ‘이런 이야기를 같이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 제가 생각하는 비평이에요. 문학 비평이든지 음악 비평이든지, 비평이 과거로부터 가지고 있던 권위의식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그러니까 저는 비평의 권위가 허물어지는 현상을 긍정적으로 봐요. 메르스 – “꺼내 먹어요” / 세월호 – “얼음들” 전: 민혁 님 글들 중에서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라는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준 글이 의외로 아이돌 음악에 대한 리뷰가 아니라 자이언티(Zion. T)의 “꺼내 먹어요” 리뷰와 악동뮤지션의 “얼음들” 리뷰였거든요. 좀 감동적이기도 했고 살짝 울컥하기도 했던 글들이었어요. 특별히 이 두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있나요? 주: 메르스 이야기를 꺼내려고 자이언티 노래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고, 또 세월호 참사 이야기를 꺼내려고 악동뮤지션 노래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에요. “꺼내 먹어요”가 나왔을 때 메르스가 창궐했고, “얼음들”이 발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끔찍한 사고가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노래를 듣고 있던 당시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거죠. 정치적 글쓰기를 해야 하겠다거나 사회적인 비평을 써야 하겠다는 생각을 특별히 하지는 않아요. 그냥 정치라는 것이, 혹은 사회 문제에 관한 관심이라는 것이 굉장히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해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에 무슨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건 부자연스러운 것 같아요.저는 그냥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제가 보고 듣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같이 꺼낸 거예요. “꺼내 먹어요”는 따뜻한 위로의 노래잖아요. 많은 청춘이 힘들어 하고 있고, 그 틈을 타서 힐링이니 멘토니 하는 것들이 큰돈을 벌었죠. 그런데 그런 것들을 보면, 저는 조금도 위로가 안 돼요. 우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힘 내! 열심히 노오력하면 너희도 나처럼 잘 될 수 있단다’ 이러는 거잖아요. 그런데 “꺼내 먹어요”의 가사는 우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하는 충고나 조언 같은 게 아니라, ‘힘 내지 않아도 괜찮아. 끼니 거르지 마’ 이런 식으로 연인에게 건네는 자상한 위로잖아요. 오늘날 청춘이 공감할 수 있는 건 이런 위로라고 생각했어요. 마침 그때 메르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있었고, 그 사람들에게도 “꺼내 먹어요” 같은 노래가 자상한 위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딱히 메르스 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질타한다든지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었어요. 저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상시적인 위기의 체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가 극복되지 않는 이상 우리는 계속 위험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이 불안하고 위험한 체제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서로 위로하고 지탱하면서 살 수 있을까 고민하는 거죠.그리고 “얼음들”의 경우에는 세월호 참사보다 먼저 발표된 곡이기 때문에, 참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곡은 아니죠. 그런데 특정한 노래를 들으면서 떠올리는 건, 듣는 사람마다 다르잖아요. 듣는 사람이 처한 상황이나 맥락이 노래에 관한 감상에도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고요. 참사 후에 참담한 마음으로 “얼음들”을 듣고 있는데, 우리가 맞닥뜨린 상황에 잘 어우러질 수 있는 노래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리뷰를 썼죠. 친구들과 “이거 한 번 들어봐.” 하는 것처럼 전: 덧붙여서 비평이 해야 할 일이나 비평의 이상적인 기능이라고 생각하는 부분들이 있나요? 일종의 소명이나 의무라고 믿는 것들이 있나요? 주: (마오쩌둥이 새겨진 가방과 목걸이를 보여주며) 여기 보면, 중국어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고 적혀 있거든요. (웃음) 저는 어차피 이런 사상을 가진 사람이니까, 제 글을 통하여 인민을 위해 복무하겠다는 생각을 하죠. 그런데 글을 통해서 정치 이야기를 하거나 사회 문제를 비판하는 것만이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맛있는 커피를 내려서 그걸 마시는 사람이 그 맛과 향에 감화되면 그것도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고,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서 듣는 사람을 즐겁게 할 수 있다면 그것도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거죠.저는 비평이 인민에게 탁월한 음악성과 실험성을 갖춘 음악을 소개해야 한다든지, 정치적 맥락이나 사회적 의미를 언급해야 한다든지 하는 목적의식을 굳이 가질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제가 생각하는 비평은 이런 거예요. 「하이 피델리티」라는 소설을 보면, 친구들끼리 음반 1번 트랙에 수록된 곡 톱 5 같은 걸 꼽으면서 대화를 나눠요. 제가 생각하는 음악 비평은 그런 거예요. 장마철에 듣기 좋은 노래 톱 5ㆍ월요병 퇴치에 좋은 노래 톱 5ㆍ한밤중에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듣기 좋은 노래 톱 5 같은 것들에 관하여 친구와 편하게 대화하는 것 같은 글을 쓰고 싶어요. 결국 어떤 글쟁이가 되느냐의 문제 전: 불특정 다수, 그러니까 대중에게 설득력을 가지려면 ‘좋은’ 비평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나쁜’ 비평이면, 그리고 그게 티가 난다면 읽지 않을 테니까요. 물론 ‘좋다’는 기준은 무척 다양할 거예요. 음악 비평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말하자면, 좋은 비평은 정치적이다, 음악을 잘 소개하는 것이다, 사운드 분석을 꼼꼼히 한 것이다 등 정말 다양하게 논의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렇지만 큰 틀에서 보았을 때는 비평도 글쓰기잖아요. 좋은 글쓰기, 좋은 문장이 결국 모든 비평의 핵심인 것 같기도 하거든요. 읽고 싶은 글, 읽을 만한 글이 되면 좋은 비평이라는 생각도 해요.사실 두 글은 사운드에 대한 분석이나 음악 내부의 서사에 대한 분석이 여타의 음악 비평에 비해서는 많이 실려 있는 편이 아니잖아요. 민혁 님의 생각이 약간 에세이처럼 담겨 있던 글이니까요. 어떻게 보면 좀 문학적이었던 글들 같기도 해요.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영화나 음악 혹은 문학 같이 1차적인 원전 텍스트가 있고, 비평은 그걸 해석하거나 분석하는 2차적인 텍스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민혁 님 글은 그 자체가 1차 텍스트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고 생각하거든요.민혁 님의 글쓰기 형태가 이 위기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글 자체를 읽고 싶으면 이게 소개하는 음악이 좋건 나쁘건, 혹은 음악을 소비하고 싶게 만들건 아니건 상관없이 그 비평 글 자체로 좋으니까 사람들이 계속 읽게 될 것 같거든요. 주: 비평가가 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어요. 제가 강조하는 건 글쓰기를 열심히 하라는 거예요. 왜냐하면 비평이라는 건 결국 텍스트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글로 풀어내는 힘이 핵심이에요. 음악을 많이 알고 음악 이론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문장이 좋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어요. 글이 지루하고 특색이 없으면, 화성을 설명하고 사운드 분석을 잘하는 게 무슨 소용이겠어요. 그냥 음악 논문 되는 거죠.비평가가 되는 것은 결국 어떤 글쟁이가 되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아까도 말했지만 저는 글을 통해서 저를 드러내고 싶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고, 세상에 대한 제 생각을 나누고 같이 고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제 문장은 제 생각을 담는 그릇인 거죠. 단어를 잘 고르고 문장을 잘 꾸민다고 좋은 글이 되지는 않아요. 좋은 생각을 담고 있어야 좋은 글인 거죠. 그릇보다는 그릇에 담겨 있는 내용물이 중요한 거잖아요. 하지만 어떤 그릇에 담겨 있느냐 하는 것이 그 내용물에 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죠. 제가 문장에 신경을 쓴다면 결국 제가 전하고자 하는 사유에 더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기 때문이지, 문장을 꾸며내는 재주에 탄복하기를 바라는 건 아니에요. 비평가라고 불리는 사람들 중에는 내용보다도 문장 자체를 꾸미는 데 열중하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사유가 빈곤한 사람을 좋은 비평가라고 할 수는 없겠죠. 그냥 문장 기술자인 거죠. 제가 비평을 통해서 드러내고 싶은 건 문장 꾸미기 실력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사유라든지 깊이 있는 성찰이거든요. 물론 그걸 다수 대중이 쉽고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녹여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비평이란 무엇일까 전: 마지막 질문입니다. 여태까지 이야기 해주신 것들 모두가 결국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될 수 있겠지만, 비평은 무엇일까요? 비평이라는 행위 자체, 작업 자체에 대해서 본인의 생각을 정리해주실 수 있나요? 주: 사람은 결국 대화적 존재이고, 저도 당연히 그렇죠. 저는 사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거나 사교적인 성격은 전혀 아니에요. 스펙터클의 사회에 압사당하지 않기 위해서 필명을 쓰고 사진 촬영도 피하지만, 대화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하지 않는 건 아니거든요. 비평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매우 꺼리는 제가 그나마 세상과 대화하는 창구인 것 같아요.비평가는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할 때, 저는 보다 세심하게 향유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음악 비평가는 음악을 보다 세심하게 듣는 사람, 문학 비평가는 문학을 보다 세심하게 읽는 사람, 영화 비평가는 영화를 보다 세심하게 보는 사람 정도가 아닐까 하는 거죠. 다수 대중이 지나치는 부분까지 보다 세심하게 듣고, ‘이런 생각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을 거는 게 비평가의 역할이겠죠. 더 고급 취향을 가진 사람으로서 대중을 가르친다거나 이끄는 게 비평가의 역할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보다 애정 어린 마음에서 세심하게 듣고 읽고 보는 게 비평가의 역할인 것 같아요. ‘오늘처럼 좋은 날씨에 오후의 카페에 앉아서 듣기 좋은 노래 톱 5는?’ 같은 질문에 자기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사람, 같이 공감하면서 대화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제가 음악 비평을 하는 이유예요. * Archiview 소개저희는 출판 프로젝트팀 ‘아카이뷰(Archivew)’입니다.아 카이뷰는 Archive와 View의 합성입니다. 저희만의 시선을 담은 기록을 출판합니다. 저희는 가치 있지만 그 가치를 주목받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디자인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소규모이지만 글을 쓰는 전대한과 편집자 우주언, 사진작가 김이현, 디자이너 송진경, 마케팅의 최지윤까지, 나름 완벽한 조합으로 모인 작은 출판사 ‘아카이뷰’는 주목받지는 못하지만 가치 있는 것들에 대해 계속해서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관련 사이트『크리틱스 레코드』텀블벅 후원 페이지 https://tumblbug.com/criticsrecord/ Leave a Reply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CommentName* Email* Website 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