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egioeprgjspg2016년 6월 상반기 쇼트리스트는 종현, 루나, 사비나앤드론즈, 정새난슬, 쏜애플, 에고펑션에러, 카우칩스, 윤석철 트리오, 빈지노, TK, 서사무엘, 슬릭 앨범에 대한 필자별 코멘트입니다.

 

종현 | 좋아 | SM Entertainment, 2016.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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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 언젠가부터 종현의 음반은 정색하고 듣길 요구하는 듯하다. 팝으로서는 꽤나 밀도 높은 작업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는 것을 누군가는 종현의 얼굴이라 생각할 수도, 댄스 음악의 기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 앨범에서 그것은 선명하게 ‘노래’의 역할이다. 퓨처 베이스(Future Bass)와 퓨처 R&B 등의 요소를 다양하게 가져와 음반 곳곳에 심어 넣음으로써 주류 대중음악의 기준보다 한 발 ‘앞선’ 포지션을 취하는 한편, 그것을 구조의 중심인 ‘노래’와 유기적으로 결합한다 (이를테면 이유 없이 ‘힙해서’ 들어간 소리가 없다). 솔로 미니앨범 이후 소품집을 발매하며 성장한 송라이터로서의 자아의 발현으로 보인다. 물론 여기에 연극적인 가창과, 스튜디오 기술에 의한 보컬의 처리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보컬리스트 종현이 노래를 완성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이 음반은 어쩌면 아이돌에서 출발했음이 강점이 될 수 있는 싱어송라이터의 재발견일지도 모른다. 정색하고 들을 이유가 있다. 8/10

 

 

루나 (Luna) | Free Somebody | SM Entertainment, 2016.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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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 “Free Somebody”는 보컬이 전면으로 튀어 나왔다가는 공간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호흡 조절이 두드러지는데, 이를 특히 피아노와 대조하며 들어보면 좋겠다. 싸늘하게 빛나는 기조의 트랙이 힘 있는 보컬과 뒤엉키도록 하는 것이 곡의 핵심적인 의도임을 짐작게 하는 부분이다. 이는 히스테리컬한 카리스마(와 나이브한 가사)의 “Keep On Doin'”, 아쉽게도 다소 보컬이 밀리는 듯한 “Galaxy”로도 이어진다. 아이돌로서, f(x)의 멤버로서 루나의 캐릭터의 활용이 음반의 큰 주제 중 하나인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업템포 트랙들을 이용해 음악적으로 풀어낸 것은 강점으로, 이와 밸런스를 맞추는 차분한 곡들이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태도를 취한 것은 아쉬움으로 판단된다. “Free Somebody”가 차가운 성깔의 퓨처하우스와 무대 퍼포먼스 중심의 케이팝을 성공적으로 결합해낸 것, 여기에 루나의 씩씩하고 앙증맞은 캐릭터가 큰 축으로 작용하는 것은 주목할 만한 성과라고 본다. 6.5/10

김세철: 청량하고 또렷하다. 타이틀 곡 “Free Somebody”는 SM이 작년부터 꾸준히 선보인 퓨처 하우스를 변주하면서도 루나만의 고유함을 빼먹지 않았다. 예컨대 티파니의 “I Just Wanna Dance”에 리버브로 만든 공간감과 끈적함이 있다면, 루나에게는 무거운 베이스를 비집고 나오는 가창의 또렷함이 있다. “Free Somebody”나 본격적인 EDM인 “Galaxy”로는 [4 Walls]에서 이미 했던 f(x) 사운드를 농축하는 한편, “Keep On Doin’”이나 “예쁜 소녀”에서는 알앤비를 얹어 새 영역으로도 살짝 발을 뻗었다. 루나의 가창을 중심에 놓고 SM의 음악적 자원들을 잘 엮은 음반이다.
구원이란 주제로 요약될 가사들에 주목한다. ‘너’가 아닌 ‘누군가’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선언은 홀로 여럿을 구원하는 구도라는 점에서 아이돌의 어원, 우상의 형상에 가깝다. 그러나 이 우상은 자유를 명령하지 않는다. 그저 자유롭게 하기를 원한다(wanna)고, ‘진짜 널 찾길’ 바란다고 권유한다. 또 이 우상은 삶을 단죄하는 대신 긍정한다. 미움받는 아이에겐 그저 네가 ‘남들과는 조금 다를 뿐’이라고 위로하고 (“예쁜 아이”) ‘계속 그대로 가도’ 된다고 말한다 (“Keep On Doin’”). 이토록 섬세한 우상의 방문이라면 좀 더 잦아도 좋겠다. 7/10

 

 

사비나앤드론즈 | 우리의 시간은 여기에 흐른다 (Our Time Lies Within) | Self-released, 2016.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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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영: 5년간의 긴 시간을 지나온 만큼 사비나 앤 드론즈의 정규 2집 [우리의 시간은 여기에 흐른다]는 우선 반가운 음반이다. 전자음악, 라틴음악, 록 등 다양한 혼합을 통해 사비나 앤 드론즈만의 ‘가요’를 들려준 [Gayo]와 본작 [우리의 시간은 여기에 흐른다]의 가장 큰 차이는 당연히 밴드로의 변화다. 조금 더 가라앉은 분위기의 음악을 들려주는 ‘밴드’ 사비나 앤 드론즈가 훨씬 더 좋은 구성력의 곡들을 들려주는 것만은 사실이다. 두근거리듯이 긴장감을 쌓아올리는 “Falling”의 연주가 좋은 예일 것이다. 사비나의 독특한 보컬과 함께 온 연주가 차분히 어우러지는 것만으로도 인상적이었고, 어쿠스틱한 편곡부터 노이즈 섞인 전자음을 담은 곡까지 다양한 자장을 오가면서 하나의 몽롱한 느낌을 담은 것도 그랬다. 다만 이러한 탄탄한 밴드 편곡이 날 것 같은 [Gayo]의 느낌을 고스란히 가져오지는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독기가 잔뜩 서려 깨져버릴 것 같았던 전작의 느낌이 너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고 할 수 있을까. 밴드 편곡과 함께 음반 자체의 느낌이 조금 더 편안해진만큼 [Gayo]에서 느껴지던 한 맺히고 날카로운 슬픔보다는 멜랑콜리하게 깔려오는 슬픔이 더 많이 느껴졌고, 이는 “Don’t Break Your Heart”나 “There Are (남겨진 곳에)” 같은 인상적인 순간들을 남겼지만 조금 더 격정이 들어갔다면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우리의 시간은 여기에 흐른다]가 [Gayo]에 이어 사비나 앤 드론즈만이 제대로 들려줄 수 있는 팝 음반이라는 점은 여전하다. 7/10

정구원: 전작 [Gayo]에서 느껴졌던 사비나앤드론즈라는 아티스트의 첫인상은 ‘목소리가 이끌고 (혹은 목소리에 기대고) 가는 음악’이라는 느낌이었다. 모던록과 재즈, 집시 음악, 트립합(Trip-Hop)을 넘나드는 수록곡들을 하나로 묶었던 것은 보컬 사비나의 목소리였고, 그 다양한 스펙트럼이 매력으로 작용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얇은 실로 연결된 듯한 불안정함을 전달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5년만의 신작 [우리의 시간은 여기에 흐른다]에서도 이러한 기조는 변하지 않는다. ‘사비나스러운’ 가요적 감성을 극대화한 발라드(“Don’t Break Your Heart”, “우리는 모두 (We Are)”, “So When It Goes”), 프렌치 팝과 보사노바의 향취가 가득한 트랙(“La Fee Verte”, “고양이로트 (Catrot)”), 공간감을 극대화한 앰비언트 팝 등(“Falling”, “There Are (남겨진 곳에)”).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일종의 좌충우돌이었던 데뷔앨범과는 달리 사비나의 목소리만이 아닌 ‘슬픔’이라는 감정적 기조와 밴드 편성의 레코딩이라는 또 다른 실이 추가되었다는 점이다. 그 새로운 실이 분절감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그녀의 음악을 비로소 ‘온전한 흐름’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데뷔작의 극단성과 낙차를 좋아했던 사람에게는 2집이 성에 차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 앨범이 추구하는 바가 제목 그대로 ‘우리의 시간’이라고 한다면 그 목표는 충분히 성공적이다. 7.5/10

 

 

정새난슬 | 다 큰 여자 | 응석부리지마, 2016.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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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원: 정새난슬의 목소리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주목하게 되는 것은 그 목소리의 ‘맑고 고움’이다. 그것이 “클랩함 정션으로 가는 길”의 미니멀한 구성이나 필터 너머로 아련하게 들려오는 “파인애플” 등의 곡을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드는 힘이다. 하지만 그 외의 음악적 요소가 ‘솔로 싱어송라이터’의 관습에서 벗어나기를 주저하는 것처럼 들린다는 것은 이 앨범의 어쩔 수 없는 한계다. “다 큰 여자” 등의 곡에서 활용되는 현악 세션은 충분히 아름답지만 때로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서라는 목적이 아름다움보다 앞서 느껴지며, “김쏘쿨”이나 “퍼키팻의 나날” 등의 날카로운 가사는 조금 더 다듬을 수 없었던 걸까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정새난슬의 목소리만으로, 가능성은 이미 충분하다. 그녀가 어떤 오르막길을 오를지에 대해서 천천히 상상해보자. 6/10

 

 

쏜애플 | 서울병 EP | 해피로봇 레코드, 2016.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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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환: 쏜애플이 지금껏 잘 해왔던 것들을 쭉쭉 뽑아 담아낸 EP다. 여러 종류의 이펙터를 사용해 한껏 어지러운 소리를 내는 기타는 때론 거칠게, 때론 부드럽게 울어댄다. 트랙들을 굳이 나누자면, 보다 포스트 펑크에 가까운 곡들(“한낮”부터 “어려운 달”)과 보다 기타팝에 가까운 곡들(“장마전선”과 “서울”)로 나눌 수 있겠다. 다만 그런 구분이 분명한 것도 아니거니와, 모든 트랙에서 멜로디에 특히 신경쓴 흔적이 보인다. 멜로디는 언제나 이들의 강점이었다. 쏜애플의 가장 또렷한 음악적 특색은 가사에서 드러나는 특유의 서정에 있을 것이다. 음반에서도 윤성현은 다른 사람(들)과 섞일 수 없는 불안, 두려움, 고독 등을 섬세한 문장들로 길러냈다.
세 번째 트랙인 “어려운 달”과 마지막 트랙 “서울”은 주목할 만한 트랙들이다. “어려운 달”은 윤성현의 목소리가 조금 더 다채로운 방식으로 쓰인 곡이다. 이 트랙에서 그는 평소보다 더 힘을 꾹꾹 주어 노래를 불렀고, 탄식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들을 마치 노이즈처럼 활용하기도 했다. “서울”은 첫 음반의 “도롱뇽”이나 “아가미” 같은 느낌이 나는 곡이다.  “너와 난 잠투정을 부리는 억양이 달라서 농담밖에 할 게 없었네”라는 구절은 이 음반 뿐만 아니라 쏜애플의 모든 노래들의 주제를 관통하는 정서를 담고있다.
기타리스트 한승찬이 자리를 비우기도 했으나, 사운드가 비거나 많이 달라졌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쏜애플의 커리어가 길어지고 있는 와중에 다음 작품을 위해 한 차례 지난 작업물들을 정리하고자 만든 EP라고 생각하면, 다소 평이함에도 불구하고 나쁘지 않은 결과물이다. 6.5/10

정구원: 쏜애플이라는 밴드가 지닌 매력을 좋아했던 당신이라면 첫 트랙 “한낯”과 둘째 트랙 “석류의 맛”의 전반부를 들으면서 만족할 것이다. 인디 록과 매쓰 록, J-록과 ‘민요풍 멜로디’ 사이의 경계를 날렵하게 넘나들며 그 요소들의 좋은 부분을 취하는 밴드의 솜씨는 여전히 살아 있다. 그렇지만, 혹은 그렇기 때문에, [서울병 EP]에서 지나칠 정도로 팽창한 자의식에 밴드의 음악이 집어삼켜지는 광경을 듣는 건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석류의 맛” 후반부에서 어울리지 않게 몰아치던 싸이키델릭한 파도는 ‘새로운 시도’라고 칠 수 있다고 치자. 자기혐오와 그에 따르는 자기연민의 지리한 스토리텔링에 5분을 넘게 쏟아붓는 “어려운 달”, 느린 리듬으로 뭔가를 해보려 하지만 공감이 우러나온다기보간 공감을 애써 짜내야 할 것 같은 “장마전선”과 “서울”까지 듣고 나면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자의식을 투사하는 걸 문제삼고 싶진 않다. 다만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자의식을 투사하기 위해 밴드가 지녔던 장점을 (살려내는 게 아니라) 어그러뜨려야 하는지가 궁금하다. EP 소개문 중 ‘음악가로서, 한 인간으로서 스스로 끊임없이 의심하고 파괴하고 해체한 끝에 도달한 하나의 결론이다’라는 설명이 나오는데, ‘인간으로서’는 빼도 되지 않았을까. 3.5/10

 

 

에고펑션에러 (Ego Function Error) | Epepshake EP | The Valiant, 2016.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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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환: 에고펑션에러의 남다른 개성은, 첫째로 이들이 꽤나 묵직하고 클래식한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힘 있게 밀고 나가는 밴드라는 점에 있다. 우선, 이들의 사운드가 묵직하다는 것은, 퍼즈와 디스토션을 잔뜩 먹인 기타 톤을 두고 한 말이다. 그리고 클래식하다는 것은, 이들이 펑크 리듬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과 더불어, 이번 음반에서는 꽤나 끈적한 블루스(“한올락”)까지 재현해냈다는 것을 말한다. 그야말로 사이키델릭 록의 뿌리를 들려주는 밴드다. 이들은 스스로의 사운드 메이킹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마지막 트랙에서 이들은 무려 33분 동안 자신들이 들려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자신감있게 쏟아낸다.
두 번째로, 이 점이 더 눈에 띄는 개성인데, 보컬 김민댕의 목소리는 이들이 그저 훌륭한 밴드가 아닌, 특별한 밴드일 수 있게 만든다. 아마 그녀의 목소리에는 말괄량이 같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릴 것이다. 그녀는 로큰롤을 수식하는 말로 귀여움이나 새침함이 쓰일 때, 이 말들이 형용모순을 범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한다. 특히 “삐뚤어져버릴테다”에서의 그 목소리는 가히 심쿵할 만하다. 아마 그 매력은 누구도 거부하기 힘들 것이다. 이런 밴드는 정말 흔치 않다. 8/10

나원영: 전작 [Ego Function Error]에서 에고펑션에러는 싸이키델릭과 펑크/포스트 펑크, 블루스 록 등 다양한 장르 사이를 오갔다. 그러면서도 김민정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한 통통 튀는 색깔로 ‘확고한 개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훌륭하게 들려주었다. 퍼지 톤 가득한 삐삐밴드를 떠오르게 한 데뷔 후에 나온 [EpepShake]는 그 ‘확고한 개성’의 기묘함과 개성을 최대로 올린 에고펑션에러만의 실험실이다. 무려 33분짜리 싸이키델릭 대곡을 들고 오는 등 여태까지 듣지 못했던 것들을 들려주겠다는 일종의 자부심도 들어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음악적 자부심을 밑바탕으로 에고펑션에러는 지금까지 들려줬던 ‘확고한 개성’을 부수고 새로운 개성들을 쌓아 올려냈다. “파인”과 “어떤 날” 등에서 짙은 인상을 남겨준 강렬한 퍼지 톤은 많이 줄인 대신 끈적한 블루지함이 가득한 기타 연주를 들려주는 “한올락” 같은 곡이 그러하다. 특히나 “에러잼”의 거대한 중반부를 채운 연주는 블루스 록과 펑크, 싸이키델릭을 에고펑션에러식으로 명쾌하게 합쳐내 그 긴장감을 놓지 않고 달려간다. 이러한 개성 강한 혼합에 있어서만큼은 에고펑션에러는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레퍼런스는 더욱 깊고 넓어졌다. 퍼지한 디스토션으로 산울림마냥 오토바이 소리를 내는 “삐뚤어져버릴테다”의 첫 부분처럼 실험 정신은 이곳저곳에서 빛난다. 이러한 넓은 시도 속에서도 에고펑션에러는 탄탄하고 당당하기만 하다. 8/10

 

 

카우칩스 (The CowChips) | 귀가 (歸歌) | Ginger Records, 2016.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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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영: 국내 블루스 록에 속속들이 인상 깊은 신인들이 등장하는 건 기쁜 일이다. 재밌는 건 여러 굵직한 밴드들에 힘있는 여성 보컬들이 있다는 점인데, 빌리 카터나 웨이스티드 쟈니스 등의 블루스 록 밴드와 카우칩스 사이에서 확연히 갈리는 건 이들이 어떠한 ‘정통’에 중심을 둔다는 점이다. 빌리 카터와 웨이스티드 쟈니스가 얼터너티브나 개러지, 하드 록 등의 다양한 단서들을 끌어온 블루스 록을 들려주는 것에 비해 카우칩스는 정공법으로 본토에서 바로 온 것만 같은 블루스 록을 들려준다. “호접지몽”이나 “달과 빛”에서 재니스 조플린(Janis Joplin)처럼 소리 지르는 최세련의 강렬한 보컬이나 이 밑에 깔리면서 확실한 블루지함을 더하는 유원석의 기타 연주는 블루지함에 이어 무게감도 더해준다. 새로 들어온 정다미의 건반까지 힘 있는 두 소리 너머의 기조를 유지해주며 카우칩스는 이 열정적인 연주 합을 통해 단단한 정통 블루스 록 스타일을 탁월하게 구성한다. 그 구성은 흥겨운 “Get Up Your Mind”부터 차분한 “10월의 그늘”까지 스타일적으로도 넓게 닿는다. 그렇기 때문에 ‘홍대 블루스’의 느낌이 나는 다른 블루스 록 밴드들과는 조금 다르게 카우칩스의 음악은 ‘신촌 블루스’와 닮았다. 이러한 완벽한 장르적인 재현 속에 담긴 블루지함이 많은 순간 본토와 너무 많이 닮은 것처럼 느껴져 단순한 ‘재현’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정통과 본토의 음악을 제대로 담아와 풀어냈기에 [귀가(歸歌)]는 국내 블루스 록의 범위를 훨씬 더 넓힐 것이다. 6.5/10

 

 

윤석철 트리오 | 자유리듬 EP | 프라이빗커브, 2016.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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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영: 윤석철 트리오는 무언가 낯선 동시에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오묘한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온갖 전통과 유행, 심지어 재즈라는 장르 자체까지 자유롭게 벗어나는 윤석철의 피아노는 평범한 밴드 음악보다도 훨씬 더 거침없이 느껴졌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리듬]은 그 속에 담긴 음악을 가장 제대로 설명하는 제목일 것이다. 레게 비트와 함께 진행되는 “독백이라 착각하기 쉽다”나 전자음 잔뜩 섞인 건반으로 무언가 장난스럽게 존 콜트레인을 커버하는 “Giant Steps” 등 [자유리듬]은 일정한 리듬과 스타일을 빠져나와 그냥 손 가는대로, 맘 가는대로 만든 것만 같은 EP다. 윤석철 트리오는 매우 가벼운 느낌으로 [자유리듬]을 채우면서도 그 미묘한 무게를 담아낸다. EP에 담긴 미묘한 느낌은 지극히 가볍고 자유롭지만 속없이 둥둥 떠나니는 가벼움이 아닌, 언제건 지상으로 진지하게 내려오는 가벼움이다. 전자음을 실컷 뿜어내다가 갑자기 일반적인 재즈 트리오 연주로 돌아오는 “Giant Steps”의 여러 부분들이 그렇고, “독백으로 착각하기 쉽다”에서 레게 비트에 우아하게 깔리는 재즈 피아노 연주가 그렇다. 하나의 만담이나 소극 같았던 “렛슨 중2”에서 김간지가 들려준 기묘한 연주마저도 그 맥락에 포함할 수 있지 않을까. 특히나 12분 동안 하나의 잼처럼 유쾌하고 열정적으로 이어지는 “자유리듬”은 그 가벼움을 유지하면서도 실험적인 긴장감은 놓지 않는다. 8/10

 

 

빈지노 (Beenzino) | 12 | Illionaire Records, 2016.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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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원: 자전적 서사를 빈지노 랩의 장점만 쏙쏙 골라잡은 듯한 유러한 플로우로 풀어내는 “Time Travel”을 들을 때까지만 해도 이 앨범이 올해의 클래식이 될 거라고 확신했을 사람들이 (나를 포함해서)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토요일의 끝에서”, “I Don’t Mind”, “Flexin”… 이게 뭐지? 왜 이렇게 재미가 없지? 앨범을 듣고 있을수록, 이것이 ‘의도한 대충미’인지 진짜 대충 만든 건지에 대한 경계가 흐려져간다. 빈지노식 나른함의 정점을 찍었다고 말할 수 있을 법한 “Imagine Time”이나 다시 들어도 훌륭한 “Dali, Van, Picasso”가 그나마 체면치례를 해 주지만, 대부분의 트랙은 지나치게 유려해서 깃털처럼 붕 뜨거나(“토요일의 끝에서”, “젖고있어”) 뭘 하고 싶은 것인지 모를 시도로 인해 우스워진다(“I Don’t Mind”, “Break”).
그러면서 희한하게도 [12]은 ‘빈지노 자신의 음악’이라기보다 ‘빈지노를 따라한 누군가가 만든 음악’처럼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방황한다. 다른 래퍼들을 향해 ‘고양이 새끼들 busy jocking my style’이라고 일갈하는 빈지노의 스왝은 일정 부분 사실이지만, 그것이 “Being Myself”를 하고 있는 빈지노 자신에게도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 점이 빈지노가 한국 힙합 씬에서 얼마나 영향력이 큰가를 보여준다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그 영향력이 ‘빈지노니까’로 설명되는 게 아니라 그의 음악으로 증명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12]는 한참 부족하다. 4/10

이선엽: 빈지노는 한마디로 몸만 커버린 철없는 고등학생 같다. 첫 트랙 “Time Travel”에서 학창 시절로 돌아가 앨범 내내 동일한 톤을 유지한채 스토리텔링을 이어나간다. 그런 모습은 브래거더치오에서도 여전한데, 재치 있다 못 해 익살스럽고 능글 맞기도 하다 (“Flexin’”, “Being Myself”, “January”). “Being Myself”에서는 군복무를 앞둔 이의 우려(?)를 진솔하게 풀어놓는데, 나레이션 부분은 청자를 폭소케 만들만큼 웃프다. 또한 (늘 그랬듯) 예술가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서슴 없이 드러내며, 씬에서 독주적인 위치를 유쾌하게 뽐낸다.
빈지노는 예전부터 감각 있는 멜로디 메이킹과 훅으로 유명했었지만, 이번 앨범에서 보컬이 주를 이룬 트랙은 흐물거리는 멜로디가 금세 흥미를 잃게 만든다 (“Imagine Time”, “젖고있어”). 반면 프로듀서 피제이(Peejay)가 대부분의 프로덕션을 주도하며 다양한 색채의 넘버들이 펼쳐냈다. 절묘한 컷팅이 돋보이는 샘플링 기법부터 팝락 스타일로 장르를 탈피하려는 시도까지 제법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5.5/10

김민영: 최근 일리네어 레코즈 아티스트들과 거의 같은 시기에 신보를 발표한 ‘여름 힙합’의 전략은 괜찮았다. 때마침 다시 한 번 <SHOW ME THE MONEY> 열풍도 불어줘서 다행이다. 트랩 위주의 힙합 트렌드에서 듣기 편한 말랑말랑한 플로우의 재즈힙합을 들고 나오니 차별화에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따라 부르기 좋은’ 기존 공개곡들을 ‘또’ 들고 나온 것에서 ‘음반 판매 이외의’ 상업적인 성공도 기대해 볼만하다. 어쨌든 간에 한 마디로 딱 잘라 말하자면 이 음반은 ‘세련되게’ 만들어진 힙합 음반이다. 자유로운 사운드 운용이나 유순하게 내뱉는 랩 실력은 크게 나무랄 데가 없다. 특히 “토요일의 끝에서”는 빈지노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멜로디컬한 음악’과 미드 템포 속에서 ‘자유로이 흘러가는 래핑’은 꽤 멋지다. (그리고 ‘빈지노가 되고 싶은’ 블랙넛이 참여했다!) 하지만 신선하다는 느낌은 후반부까지 듣게 되면 완전히 맥빠진 느낌으로 변한다. 후반부는 대체로 ‘부드러운 발라드’의 연속이다. 부드러움도 지나치면 느끼하듯이 슈게이징 풍의 “January”을 제외하면 수록곡들이 대부분 비슷비슷하다는 인상이다. 정말 흔히 말하는 ‘노오력’이 부족한 음반이다. 허나, 가볍게 들을 수 있는 곡들의 연속이다 보니 아무 생각 없이 듣기에는 좋겠다. 커버와 같이 12라 써진 숫자는 12시를 상징하는 듯 하다. 졸리다. 4/10

 

 

TK | Tourist | VMC/Stoneship, 201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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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엽: TK는 힙합 레이블 VMC 소속 프로듀서로서 수많은 명곡들의 배후에 있는 주인공이다. 그러나 정작 [Tourist]는 [양화]와 [작은 것들의 신] 등 명반을 배출해낸 사단의 차기 주자로서 기대감을 충족시켜주기엔 다소 부족하다. ‘이방인’이라는 테마 아래 씬에서 내로라 하는 아티스트들을 대변인 삼았으나, 비장함의 과잉과 완급 조절의 부재로 흐름이 흐트러진다 (“Pathfinder”, “Good Days”, “Audrey”). 물론 트랙 단위로 뜯어보면 인상적인 부분도 적지 않다 (“Feel Alright”, “Local Market”, “Tomorrow”). 특히 VMC의 리더 딥플로우(Deepflow)가 장식해준 마지막 트랙 “Tomorrow”는 내용으로 보나, 두 아티스트 간의 케미스트리로 보나 매우 희망적이다. 건반을 이용한 서정적인 코드 진행이 다수 트랙들의 척추를 이루는데, 샘플링이나 미디 기반의 기존 프로듀서들과 구별되는 특징이다. 인트로와 인터루드 트랙에서 비행기 안내음 등을 활용한 발상은 현장감을 살린다.
예상 외의 신선한 발견은 바로 TK의 보컬이다(“In The Hand”, “One More Night’). 타 아티스트의 참여보단 자신의 목소리가 좀 더 큰 비중을 차지했더라면 훨씬 응집력 강하고 방향성 있는 음반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6.5/10

 

 

서사무엘 (Samuel Seo) | Ego Expand (100%) | Craft And Jun/Stoneship, 201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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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엽: 특별히 튀는 구간도 강렬한 고음도 거의 없지만, 청자를 꾸준히 끌어들이는 마성이 존재한다. 제이 딜라(J Dilla)나 넵튠즈(The Neptunes)를 일례로 여러 혁신가들의 영향이 드러나는 프로덕션이 매혹적이다. 그 위로 노래과 랩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그의 보컬 또한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유기적인 앨범의 구성에 끌린다. 첫 트랙 “Ego Death”에서 이전의 자신에게 작별을 고한 후, 일련의 성장 과정을 지나 마지막 트랙 “Ego Expand (100%)”에서 확장되고 완성된 자아를 선언함과 함께 막이 내린다.
각자 벌스 하나씩을 보탠 랩퍼들의 참여는 앨범의 차분한 진행을 붕 뜨게 만들지만, 넉살의 경우는 다르다. 넉살은 서사무엘의 오랜 동료로서 또 다른 1인칭 시점의 서사를 덧붙이며 감동을 더한다. 고독을 덤덤히 토로하는 트랙 “Sandwich”에서는 정인과 놀라운 조화를 보인다. 전반적으로 힙합 음악에 뿌리를 뒀지만 기존의 영역 너머까지 확장한 결과물이다. 장르 팬들과 더불어 일반 대중들에게도 충분히 어필 가능할 만큼 담백하다. 7.5/10

 

 

슬릭 (Sleeq) | Colossus | Daze Alive/Stoneship, 2016.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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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엽: 남성성이 유독 두드러지는 국내 힙합씬 내에서 소수자인 여성 래퍼들은 주로 섹스 어필을 앞세우거나 마초성을 차용해왔다. 그러나 슬릭(Sleeq)은 젠더에 대한 강박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꿋꿋이 해온 예외적인 캐릭터이다. ‘여성 래퍼’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아티스트들이 미처 해결시켜주지 못 한 갈증을 슬릭과 [Colossus]가 어느 정도 해소시켜주었다. 그녀의 플로우는 자신이 소속된 데이즈 얼라이브(Daze Alive)의 수장 제리케이의 그것과 굉장히 닮아있는데, 예리한 라인들과 절묘히 맞물려 쾌감을 자아낸다 (“Rap Tight”, “Toothache”). 그러나 가장 깊은 페이소스는 날카로운 스킬을 거침없이 휘두를 때보다 자조적이고 성찰적인 서사에서 찾을 수 있다(“9174”, “Liquor”, “Monologue”). (주로 한영혼용에서 오는) 어눌한 발음이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슬릭 특유의 발성과 더불어 그녀의 랩이 지닌 긍정적인 특징일지도 모른다. 앨범의 제목에서부터 비장미가 전해지지 않나. 슬릭은 이미 제목 그대로, 작은 거인이다. 7.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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