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하반기 쇼트리스트는 장기하와 얼굴들, 허클베리피, 퓨쳐리스틱 스웨버, 저스디스, 엑소, 잠비나이, 극렬, 완태, 살갗, 고상지, 넌 아만다 앨범에 대한 필자별 코멘트입니다. 장기하와 얼굴들 |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 | 두루두루AMC, 2016.06.16 성효선: “때론 비우는 것이 채우는 것이다.”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걸 다 보여내겠다는 듯 한껏 힘을 주던 전작 [사람의 마음]과는 달리 이번 앨범은 한결 가볍고 편안해졌다. 전반적으로 사운드의 여백이 늘었다. 그래서 가사와 악기의 질감이 더욱 선명하게 잘 들린다. “싸구려 커피”를 부르던 때와 정서는 달라졌지만 재기발랄하고 위트 있는 가사가 여전히 재미와 공감을 자아낸다. ‘쿨쿨’ ‘쿵쿵’ ‘컴컴’ ‘콕콕’ ‘콜콜’ ‘크크’ 등 ㅋ을 이용한 단어를 나열하고 있는 “ㅋ”이나 ‘쌀밥 밥밥바밥바밥바밥’, ‘빠빠빠빠빠빠빠 빠바빠바빠 빠지기는 빠지더라’의 구절을 반복하고 있는 “쌀밥”, “빠지기는 빠지더라”의 노래는 재미뿐만 아니라 발음 그 자체로 그루브를 만들고 있어 노래 사이 사이의 공간을 채워 넣는다. 사운드의 여백이 늘었지만 노래가 비어 보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맥시멀리즘의 정점에 서 있는 3집을 선보인 다음의 선택이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고 있어서인지 이 앨범은 자신감으로 읽힌다. 역시나 악기의 구성은 단순해졌지만 사운드는 더욱 단단해졌다.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는 팝과 포크, 로큰롤과 펑크, 사이키델릭을 고루 섞고 있지만 이 앨범은 누가 들어도 ‘장얼 스타일’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모든 게 정교하게 계산되고 잘 다듬어져 있다. 장기하가 사랑엔 노련하지 않을진 몰라도 음악엔 이렇게나 노련하다. 잘하는 것을 더 잘하면서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앨범을 만난다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7.5/10 이선엽: 신선함과 식상함 그 중간을 아슬아슬하게 달리지만, 다행히도 듣는 재미는 보장되었다. 그 식상함의 원천은 주로 재치 있(으려고 노력하)는 발상이 엿보이는 노랫말인데, 창작자의 강박이 주는 무게가 순수한 청취적 흥미를 약간 짓누른다. “그러게 왜 그랬어”의 첫 후렴은 실제로 싫증을 내듯 생생하고, 키읔을 두음으로 활용하여 가사의 리듬을 살린 “ㅋ”, ‘빠진다’라는 단어의 이중적 의미를 주제로 한 “빠지기는 빠지더라” 등 일상 속에서 얻은 영감이 가득하다. 일상적이기에 공감되지만, 일상적인 만큼 평범하다. 위에서 언급된 두음이나 운율의 활용은 가사를 단순 노랫말 이상의 요소로 승화시켰다. 악기들의 조화를 통해 멤버 간의 케미스트리 또한 자연스럽게 엿볼 수 있다. 이제는 중견 밴드란 말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독창적인 색깔을 띄고 있다. 비록 사랑에는 노련하지 않더라도, 자신들이 해온 음악만큼에는 제법 노련해졌다. 지금까지 늘 그랬듯, 이번 앨범도 마찬가지로 “장얼”스럽다. 6.5/10 정구원: 나에게 [장기하와 얼굴들]과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 사이의 관계는 모디스트 마우스(Modest Mouse)의 [The Moon & Antarctica]와 [We Were Dead Before The Ship Even Sank] 사이의 관계와 비슷하게 들린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집대성해서 만들어낸 클래식한 명작과, 그 앨범에서 귀에 꽂히는 대중적 액기스만을 추출해내 만들어낸 ‘팝 앨범’. 한국어 운율을 맘껏 가지고 노는 트랙은 어느 때보다 앨범 내에서 두드러진 위치를 차지하고(“ㅋ”, “가나다”) 전체적인 사운드의 질감과 연주는 2집과 3집의 발산적 사이키델리아에서 벗어나 훨씬 타이트하고 쫀득해졌다(“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 “빠지기는 빠지더라”). 아티스트 본인은 초심을 생각했다고 말하지만, 이 앨범은 장기하와 얼굴들이 지금까지의 커리어를 쌓아 오지 않았다면, 그리고 지금의 위치에 있지 않았다면 만들어낼 수 없는 순도 높은 ‘장얼식 팝’에 더 가깝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가지고 있던 재료가 원체 좋고 유니크한 만큼 여전히 신선하게 들린다. 다만 뽑아낼 대로 뽑아낸 이 액기스 다음에 이들에게서 무엇을 들을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그리고 비슷한 성격의 지난 곡들에 비해 명백하게 힘이 떨어지는 ‘착한’ 노래들이(“가장 아름다운 노래”, “살결”, “오늘 같은 날”) 섣부른 호평을 경계하게 만든다. 6.5/10 나원영: 지금의 장얼은 어떠한 기로에 선 느낌이다. 확실히 모든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장기하와 얼굴들] 이후의 장얼은 전작보다는 아니지만 멋진 행보를 이어갔다. 얼굴들의 연주에 많은 초점을 둬 [사람의 마음]이 나왔다. 이종민의 건반과 하세가와 요헤이의 기타가 돋보이는 충만한 연주로 장얼 만의 60년대식 싸이키델리아가 만들어졌다. “그 때 그 노래”나 “정말 없었는지” 등에서 느껴지던 서정미나 특유의 궁상맞은 느낌이 다분히 생략된 경향이 강하긴 했지만, [사람의 마음]은 참 좋은 음반이었다. 그 때문에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는 오히려 [사람의 마음]의 강점들을 줄이고 약점들만 늘인 느낌이다. 본격적인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고 하는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 (이하 [내사노사]) 이전에도 장얼은 지속적으로 연애의 여러 순간들을 다양한 느낌으로 담아왔다. 그 큰 주제와 초창기의 서정성, 그리고 얼굴들 자체의 합이 맞아 떨어지는 순간 “마냥 걷는다” 같은 명곡이 탄생했다. 하지만 [내사노사]는 장얼을 대중음악 씬의 한가운데에서 빛나게 한 서정적인 궁상맞음이나 이를 받춰주는 단단한 연주 합 대신에 지나치게 세련된 일상 속의 공감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세졌다. 다행스럽게도 얼굴들의 연주만큼은 훨씬 더 60년대로 파고 들어가 비틀즈, 비치보이스, 킹크스 등이 선보인 멜로딕한 화음과 중독적인 훅을 적극 이용한다. “가나다”나 “괜찮아요”가 그런 면에서 60년대의 느낌을 가득 담아 환히 빛나고, 다른 쪽에서는 “느리게 걷자” 이후 오랜만에 레게 비트로 전개되는 “ㅋ”나 이전부터 계속해서 레퍼런스로 삼은 토킹헤즈의 펑키한 뉴웨이브 색깔을 도입한 “빠지기는 빠지더라”나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처럼 장얼식 세련됨이 담긴 인상 깊은 곡들이 나왔다. 하지만 [내사노사]를 통해 돌아가겠다고 말한 [별일 없이 산다]가 일상성 짙은 가사와 능청맞은 장기하식 랩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이상의 궁상맞은 일상 속의 서정과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를 투박하게 담아낸 느낌이 있어왔기에 장얼의 음악은 항상 한국 록의 중심이 되었다. [내사노사]에 가득 담긴 ‘세련’은 양날의 검이 되어 작용한 것 같다. 그 천착이 투박한 서정과 궁색한 일상을 너무 많이 없애버렸지만, 그럼에도 60년대 팝 록의 느낌을 확실하게 가져오는 것만큼은 [내사노사]에 제대로 담겼다. 7/10 허클베리피 (Huckleberry P) | 점 EP | Hi-Lite Records, 2016.06.10 김민영: 사색의 심연. [점]은 지독하게 심오하면서도 끊임없는 자기성찰이 돋보이는 음반이다. 처연한 사운드만큼이나 쓸쓸한 가사로 무감함을 고백하는 것 같지만, 황량한 가사 속에서도 그 이면에는 따뜻한 감상 또한 존재한다. 고독한 인생사에서도 정상에서 맛보게 될 쾌감을 미리 그려보는 “Everest”, 잃어버린 시간과 기억 속에서도 꿈을 갈망하는 내용의 “숨”이 바로 그 것이다. 허클베리피의 음악적 색채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고독함 속에서 갖는 ‘사색의 음률’이다. 특히, 고즈넉한 피아노 선율에 쏟아내듯 거친 랩을 뱉어내는 “Everest”는 [점]의 심오한 분위기를 가장 잘 표현한 곡이다. 우울한 단조의 무드를 심화시키는 “숨”의 경우, 음반이 내뿜는 서정적인 이미지를 충실하게 이어나가는 역할을 한다. ‘점’이라는 주제 아래, 각 수록곡들의 내향적인 사운드와 가사 내용이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어 있으며, 더 개인적이고 더 차분해진 음악으로 전작 [gOld]과는 크게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음악적 폭을 넓힌 어느 아티스트의 ‘조용한 반란’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7.5/10 이선엽: 허클베리피가 낯설게 느껴질 만큼 진지해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목에 핏대 세우며 현란한 스킬을 뽐내던 악동스러운 이미지는 온데간데 벗어버리고, 진중한 자세로 삶의 코멘터리를 읊조린다. 과잉된 의도와 강박이 엿보이면서 신파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제법 진정성이 전해진다. 첫 트랙 “Base Camp”가 “Everest”로 가는 길을 고른 후, 트랙의 후반부에서 몰아치는 랩핑은 앨범의 킬링 포인트 중 하나이다. 그러나 앨범을 가장 화려하게 장식하는 트랙은 “아름다워”다. 소울맨(Soulman)의 풍성한 목소리와 더불어 우리 삶은 아름답다고 청자를 타이른다. 타이틀곡 “달마시안”으로 EP의 제목에 담긴 의미를 풀이해주며 마지막을 장식한다. 그러나 한 장의 EP에 너무 많은 은유를 우겨담으려 하다 보니, “Everest”의 심볼리즘과 마지막 트랙 “달마시안”이 내포하는 은유의 사이가 단절되어있는 느낌이 아쉽다. 덧붙여 [점]에서 색소폰은 적잖은 비중을 차지한다. “숨”에서는 스토리텔링의 상징적 도구로도 활용되지만, “Espresso” 후반부의 색소폰 독주는 랩이 채 전달하지 못 한 감동을 선사하며 머리끝을 쭈뼛 서게 한다. 앨범의 프로듀싱을 전담한 험버트(Humbert)는 단연 올해의 프로듀서 감이다. 소울피쉬(Soul Fish)와의 케미스트리에 필적하는 조화를 이루며 유기적인 구성을 일궈냈다. 7/10 퓨쳐리스틱 스웨버 (Futuristic Swaver) | Futuristic Swaver Vs. The World EP | AVLX, 2016.06.14 박희아: 상여를 이고 나가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곡소리 모음집을 듣는 기분이다. 넘버 곳곳에 삽입된 곡소리 같은 샤우팅은 (그가 이전부터 강조해온) 자본주의에 의해 비틀어진 세상을 향한, 혹은 그로 인해 무너져버린 사람들을 위한 장송곡 모음집을 준비해왔다는 인상을 강하게 풍기는 요소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키치함을 동반한 스릴이냐 아니면 깊은 슬픔이냐 하는 것이다. 꼭 둘 중 하나가 답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첫 트랙부터 “I Don’t Want To Die”라는 패기 넘치는 넘버로 싸움을 선포한 만큼, 이승에서 같이 싸워줄 이들에게는 둘 중 어떤 의미로 다가와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 앨범은 퓨처리스틱 스웨버가 만든 괴팍한 자의식 프레이밍 이상의 특별한 느낌표가 없어서 아쉽다. 걸러지지 않은 감정선 때문인지 그 분노의 원형에 의문을 제기하게 되는 순간도 있다. 한편으로는 이런 기운이 타이틀곡 “Freak Show”에 이르러 평범할 정도로 유순해지는데, 이건 ‘타이틀곡’이라는 이유 때문일까. 이 앨범이 작정한듯 내뿜던 극렬한 정서에서 다소 멀어진 타이틀곡은 영 심심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I’m Doing Numbers”의 경우, 후렴이 아주 쾌활하면서 피처링으로 참여한 던 밀스가 한껏 흐트러진 설정의 래핑을 들려줘 어느 때보다 반갑다. 다만 앞서 발표했던 퓨처리스틱 스웨버의 사운드와 비트가 그러했듯, 이번에도 역시 조금 힘겨운 음감 시간을 감당해야 한다. 의도적이라고는 할지언정 그가 사용한 사운드 이펙트의 조합은 무리하게 레이어가 겹치는 경우가 자주 들려 어떤 청자에게는 소화하기 힘겨운 부분일 수 있겠다. 그래도 마지막 트랙 “GANG”에서 드러나는 퓨처리스틱 스웨버의 진가는 무시할 수 없다. “콧수염 멋진 할아버지 / 될 때까지 hustlin / 돈 세느라 팔 아프지”라는 가사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세상’이 어떤 분노를 유발하는지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죽어도 지기 싫다’는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 터프한 앨범 제목만큼이나 터프한 앨범의 완성도. 6/10 저스디스(Justhis) | 2 Many Homes 4 1 Kid | Self-Released, 2016.06.14 이선엽: [2 Many Homes 4 1 Kid]는 불쾌할 정도로 현실적이고, 역겨울 만큼 사실주의적이다. 본토의 갱스터 랩을 그대로 우리말로 옮겨놓은듯 저스디스의 세계관을 한 앨범에 여과 없이 옮겨놓았다. 미국의 게토에는 갱스터, 마약, 그리고 폭력 진압 등이 있듯이 저스디스의 세계관(넓은 의미로는 대한민국 사회)에는 비행청소년, 가난, 가정의 불화 등이 자리한다. 그렇듯 [2 Many Homes 4 1 Kid]에는 뒤틀린 욕망으로 비롯된 집착이 적나라하게 그려져있다. 학창시절의 비행과 우울증부터 음악과 함께 변화된 자아, 그리고 그 속에서 경험한 고뇌를 고스란히 담았다 (“Motherfucker”, “씹새끼”, “HOME.3” ). 그의 스토리텔링은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반부로 갈수록 피로감이 점점 동반된다. 덧붙여 노골적인 표현과 욕설로 넘쳐나는 이 앨범 속에서 여성혐오적 테마는 마땅히 지적받아야할 측면이다 (“Veni, Vidi, Bitch”). 전반적으로 여성을 대상화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묘사하는 동시에, 남성우월적인 사상이 되풀이되어 서술된다. 바로 이 점이 앨범의 긍정적인 평가에 치명적인 감점 요인이 되었다. 6.5/10 엑소 (EXO) | EX’ACT | SM Entertainment, 2016.06.09 박희아: EXO-K와 EXO-M이 합쳐진 ‘완전체’ 형태로 탈바꿈하면서, 엑소는 메인보컬 스펙트럼에 있어 상당히 넓은 소스를 보유한 아이돌 그룹이 되었다. 이제 SM엔터테인먼트는 팀내 주요 보컬리스트 개인들에게 고음과 저음, 그 사이의 중음역대까지 완전히 고르게 배분했다. 이런 일련의 변화를 통해 가장 돋보이는 위치를 점한 멤버는 메인보컬 중 한 명인 첸이다. 보이스 컬러가 서정에 가까운 디오와 백현에 비해 날카롭고 차가운 고음 담당으로 기능했던 첸은 K와 M이 결합하며 장르 및 음역대와 상관없이 수록곡 전반에 걸쳐 집중력을 높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첸과 백현의 목소리가 합쳐지는 “Monster” 후반부는 압권이다. 곡을 지배하던 드럼 사운드가 제거되면서 첸이 서늘하게 ‘creepy’를 읊조리고 여기에 백현이 마무리를 얹으면서 애증과 집착으로 읽히는 이 곡의 정서가 집약된다. 아울러 엑소의 이번 앨범에서 보이는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전주라는 개념이 완벽히 ‘목소리’로 치환됐다는 점이다. 멤버들을 중요한 개인으로 상정하고 이들의 ‘목소리’에 완벽히 집중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Artificial Love”와 “Cloud 9”, “Heaven”, “백색 소음” 등에 이르기까지 각각 다른 멤버들에게 첫 소절을 안배했고, 이는 R&B든 팝이든 해당 장르에 최적화 된 보컬과 래퍼를 적재적소에 활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 모든 장점이 결합된 곡으로 프로그레시브 R&B “Cloud 9”, 무심한 듯 코러스를 넣는 디오의 음색이 인상적인 그루비한 팝 “Artificial Love”를 반드시 추천하고 싶다. 아무튼, 이번에도 SM은 ‘아이돌 EXO’를 위한 매끄러운 결과물을 내놓았다. 9인 체제에 대한 적응을 완벽하게 유도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7/10 잠비나이 | A Hermitage (은서 隱棲) | The Tell-Tale Heart/Bella Union, 2016.06.17 조지환: 잠비나이의 음악에 락과 국악이 퓨전되어있다고 할 때(그렇다고 이들을 퓨전국악 밴드라고 부르는 것은 경솔한 일이다), 그 융합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명백하게 록이다. 이들은 포스트록의 형식에 국악적 내용을 채워넣었다. 이렇게 탄생한 이종적 사운드는 어떤 특정한 장르로 규정짓기 어렵다. 이것이 포스트록이라 하더라도 그 장르적 형식이 전형적이지도 분명한 구분점을 가지고 있지도 않으며, 국악기의 소리들은 곡마다의 장르적 형식을 내부에서부터 균열시켜 놓는다. 리듬악기로써의 거문고나 노이즈로써의 해금과 태평소 소리는 이들의 음악을 다만 한국적인 혹은 오리엔탈한 음악일 뿐만 아니라, 아방가르드 록일 수 있게 해준다. 이들은 날카로운 기타와 드럼의 헤비니스를 지반으로 삼아 한껏 시끄럽고 스산한 사운드 스케이프를 풀어놓는다. 그것을 규정하기에 기존의 장르적 틀은 충분하지 못하다. 이렇게 탈-장르적인 새로운 사운드야말로 본작의 가장 큰 매력이며, 이들은 장르 갱신의 최전방에 서게 만드는 요소다그렇다고 본작의 매력이 다만 실험적인 새로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일관적으로 어떤 분위기 혹은 온도를 그려내려고 노력한다. 이들은 아주 차갑고, 그러면서도 강렬한 정서를 탁월하게 표현했다. 넘치는 에너지를 응집력 있게 하나의 주제로 풀어낸 것이다. [은서]가 그려내는 분위기를 극단적으로 응축시킨 “무저갱”의 가사를 보자. 서로 끝업는 반목과 화합 너머의 화합을 바라보고 있는 가사임에도 그 어조는 희망차다기보다는 비관적이고 냉소적이다. 거기다 서늘하게 날이 서있는 신경질적인 해금은 노랫말이 반추하는 폭력을 그대로 들려주는 듯하다. 또 다른 주목할만한 트랙인 “Echo Of Creation”의 거칠게 폭발하는 사운드 속에서도 해금과 짧은 기타 트레몰로, 그리고 한탄하는 듯한 보컬은 서늘한 냉기를 발한다. 9/10 정구원: [은서]에서 우선적으로 느껴지는 인상은 ‘잘 들린다’는 것이다. “Wardrobe (벽장)” 서두부터 격렬하게 날뛰는 거문고 소리, “Abyss (무저갱)”에서 들리는 이그니토의 랩, “Deus Benedicat Tibi (부디 평안한 여행이 되시길)”에서 울려퍼지는 태평소 소리와 교차하며 해일처럼 밀려드는 기타 노이즈 등의 요소들은 분명히 새로움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고 귀에 꽂히는 지점을 지니고 있다. 프로듀싱 역시 전작들에 비해 또렷해졌으며, 전체적인 상보다 악기 자체의 소리에 집중하게 만드는 방향을 띠고 있다(어느 곡을 들으나 도드라지게 고막을 사로잡는 거문고 소리처럼). 이렇게 잘 들리는 게 우리가 이미 잠비나이의 ‘혁신적인’ 음악에 익숙해졌다는 증거라고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넘겨버리기엔, 밴드가 자신들이 만들어낸 ‘혁신’이라는 패러다임에 갇히지 않기 위해 분투한 지점이 계속해서 관측된다. 포스트 록/포스트 메탈 문법의 매력적인 부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곡 하나하나에서 느낄 수 있는 긴장감과 즐거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며, 그저 퍼져나가도록 놔둘 수도 있었을 혼란을 세밀하게 컨트롤하면서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식으로. 그렇게 잠비나이는 ‘대단한 음악’이라는 자장 안에 스스로를 묶는 대신 치열하게 돌파해 나간다. 존재하지 않던 음악을 존재하게, 더 나아가 ‘자립’하게 만드는 일이, 그 치열함으로 인해 가능해진다. 8.5/10 극렬 | 우리가 서 있다 EP | 인디053, 2016.06.07 나원영: 90년대 후반과 00년대 초반 펑크씬을 이끌었던 감성을 지금, 다시 가져오는 것에 ‘언제적 펑크냐’ 등의 의문을 가진다면 극렬을 들려주고 싶다. 실로 [우리가 서 있다]는 가장 정석적인 느낌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펑크를 선보인다. 이름처럼 무언가 힘세고 강한 하드코어 펑크가 아닌 멜로딕한 팝 펑크의 느낌에 닿았지만 말이다. 오히려 이들은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이 들려준 조선펑크를 열심히 판 사람, 혹은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조금이나마 국내의 펑크 음악을 접한 사람이 익숙할 법한 그 느낌과 감정들을 다시금 가져온다. 그 때문에 [우리가 서 있다]는 오래되었지만 사라지지는 않은 한 펑크 밴드의 자존심이 담겨있고, 20년이 넘은 지금의 조선 펑크의 뚝심을 다시금 들려준다고도 할 수 있다. “광야에서”나 “소가 되어”에 담긴 소박한 순간들과 열정적인 외침, 펑크의 열정과 서정이 절묘하게 공존하는 “길을 걷다” 등의 순간들을 통해 극렬은 투박하지만 진실했던 그 느낌을 훌륭하게 되살린다.다만 그 투박함 때문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옛 것의 심심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도 묵묵하게 위치를 고수하는 태도를 그대로 전해주는 것만큼은 정석적이고 단단해서 오랜만에 만난 동네 형이 그대로인 것처럼 마냥 든든하다. 어떻게 보면 묵묵히 이 자리에 서있는 레트로함이 가진 진정한 가치일 것이다. 6.5/10 완태 | 노을이 EP | Self-Released, 2016.06.09 조지환: 포스트록 사운드에는 보다 더 조용한 종류의 것도 있고 보다 더 시끄러운 종류의 것도 있다. 완태의 이번 EP는 전자에 속한다. 로로스나 시규어 로스(Sigur Rós) 같은 밴드들의 레퍼런스가 짙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러한 ‘서정적’ 포스트록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장르적 맥락에서 자연스러운 연주를 들려준다. 하지만 이 말은 그만큼 연주가 평이하고 전형적이라는 말도 된다. 가령 공간계 이펙터가 잔뜩 걸린 기타 트레몰로가 보컬을 덮듯이 혹은 보컬 뒤에 깔리듯이 사운드를 펼쳐놓는 방식은 이런 류의 음악에서 아주 흔하게 쓰이는 방식이다. 문제는 이들은 이러한 방법론을 자신들만의 가공 없이 감정선에 복무하는 한도 내에서만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써내는 노랫말이 사운드에 힘입어 감정을 증폭시키는 것도 아니다. 진부한 주제와 문장들로 이루어진 노랫말은 사운드의 평이함을 한껏 도드라지게 한다. 특히 EP의 제목과 같은 제목의 트랙인 “노을이”에서 이들이 풀어놓는 이별의 이야기는 후렴구에서 ‘~건’으로 각운을 맞췄다는 것 이상의 인상을 청자들에게 남기는 데 실패하며, 후반부의 노이즈와 섞이지 못하고 겉돌고 있다. 다만 단 한 트랙, “까마귀 소년”만이 어쿠스틱 기타 스트로크를 통해서 향토적이고 수수한 심상을 성공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모난 부분 없이 로파이한 슈게이징/포스트록 트랙을 들려주지만, 그 점을 제외하면 특이점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게 아쉽다. 4.5/10 살갗 | 면역 EP | Salgat Records, 2016.06.14 나원영: 클래식 음악의 자장에 놓인 악기들을 밴드 음악과 함께 배치하는 건 어떻게 보면 다양한 가능성이 열린 시도다. 그럼에도 두 편곡 사이에서 깔끔한 조화를 이루는 건 여러모로 힘든 일인데, 살갗은 그 적절한 선에서 그들만의 지점을 찾았다. 오히려 기타 대신에 첼로와 피아노의 선율을 넣은 구성을 통해 살갗은 일반적인 클래식과 밴드의 조화보다 조금 더 다른 방향의 음악을 들려준다. 첼로와 피아노 사이의 조합을 차분히 풀어가는 “면역”과 이어지는 밴드 편곡의 “위로”가 담긴 전반부는 밴드보다는 어떠한 팝이나 발라드의 색깔에 걸쳐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후반부로 넘어가며 살갗은 엄연한 모던록 밴드의 색깔을 잃지 않으며 곡을 전개한다. 놀랍게도 이러한 편곡에는 현악 발라드 특유의 감성과잉의 지루함보다는 클래식과 모던 록을 오가는 미묘한 느낌과 알맞게 조절된 감성 사이의 조화가 돋보인다. 특히나 이 사이에서 감성적이고 부드럽게 와 닿는 멜로디는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적재적소에 들어오는 피아노와 첼로가 정적인 긴장감을 잡는다. 다만 “위로”에 이은 곡들의 분위기가 조금씩 반복되는 느낌이 들어 “악마들” 같이 조금 더 웅장하며 밴드의 합이 더 잘 느껴지는 인상적인 곡이 좀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특히나 후반부의 모든 악기들이 어지러이 울리며 마지막으로 향하는 환상적인 부분들을 들으니 “악마들” 같은 곡이 적다는 게 훨씬 더 아쉬워졌다. 그럼에도, 살갗은 피아노와 첼로를 통해 절제되고 감성적인 모던 록을 들려주는 좋은 시도를 깔끔하게 해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 특유의 전개와 느낌에서 2000년대 중반을 빛낸 다양한 국내 모던록 밴드들이 생각나기도 한다. 살갗은 그 감성을 클래식 편곡을 통해 다시 불러온 셈이다. 7.5/10 고상지 | Ataque del Tango | 프라이빗커브, 2016.05.27 나원영: 탱고와 반도네온이라는 낯선 장르를 가져오는 것에 있어서 고상지는 놀랍게도 자신의 또 다른 시절을 담당한 애니메이션 음악을 끌어왔다. 그런 방향성을 타고 [Maycgre 1.0]는 “Red Hair Herion”이나 “출격” 같이 낯선 동시에 열정적인 탱고의 느낌과 애니 음악 특유의 느낌이 공존하는 곡들을 여럿 담았다. 탱고와 애니 음악, 좀 더 나아가 서브 컬처 음악이라는 두 개의 축을 고르게 파고 들어가는 열정이 확연히 담겨 항상 일반적으로 느끼던 탱고와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이런 과정에서 현대적인 탱고의 선구자들인 가르델과 피아졸라의 곡을 고상지만의 방식으로 담은 [Ataque Del Tango]는 여러 의미로 정말 공격(Ataque)에 가까운 음반이다. 우선 정통 탱고를 담은 것이 첫 번째 공격일 것이다. 탱고 속의 모든 현란한 열정들이 가득 담겨 [Maycgre 1.0]보다도 훨씬 더 농염한 순간들이 음반을 채운다. 이것까지만 보아도 탱고, 혹은 ‘땅고’ 자체에 대한 고상지의 열정이 모든 구석에서 느껴진다. 두 번째 공격은 놀랍게도 서브 컬처 음악에 대한 여전한 고수다. 음반의 소개 글에서 고상지는 두 거장의 곡에서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같은 JRPG의 음악이 떠오른다고 했는데, 강렬한 정통의 열정 이면에서 들리는 웅장하고 긴박한 ‘퀘스트’같은 서브컬처의 그 느낌은 [Maycgre 1.0]만큼 짙지는 않았지만 고상지의 여전한 덕심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단서가 되었다. 세 번째 공격은 의외로 펑키한 기타의 도입인데, 연주자 김동민 등의 힘을 더해 9곡의 탱고 명곡들은 더욱 다채롭고 새로운 느낌을 입는다. 음반 초반을 휘어잡는 “Primavera Portena”와 “Libertango”가 물론 대표적일 것이고, 두 느낌이 가장 열정적으로 얽힌 “Chin Chin”과 “La Muerte Del Angel”의 놀라운 순간들, 8분 동안 느려지고 빨라지면서 현란한 전개를 깔끔하게 들려주는 “Adios Nonino”도 그렇다. 지금까지는 고상지만의 결합이 담긴 창작을 오롯이 들려주었다면, [Ataque Del Tango]는 ‘원곡’이라는 한계를 한참 뛰어넘어 탱고와 서브 컬처 음악, 그리고 펑크까지 휘어잡아 원펀치같은 탱고의 공격을 선사한다. 할 수 있는 건 최종보스처럼 묵직한 한방을 받아 처참히 무너지는 것뿐이다. 8.5/10 넌 아만다 | 열대야 EP | 음악부, 2016.06.16 정구원: 작년 ‘나는 네가 웃는 것이 두려워 / 아직 작은 내 맘에 들어올까'(“소년”)라고 수줍어하던 넌 아만다의 가사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학창 시절의 우울이라는 폐부를 담담한 묘사에 실어 부드럽게 찌르는(‘먼지 쌓인 체육관에선 / 누군가 얻어맞고 있어요 / 때린 아이도 맞는 아이도 / 같은 표정을 하고서’) 첫 트랙 “열여섯”의 가사를 들으면서 살짝 당황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작년 싱글 버전보다 한층 또렷하고 맑은 사운드메이킹을 선보이는 “밤걸음”, “고양이”와 “서로의 서로”의 기타 멜로디를 통해 불어오는 따뜻하면서도 싱그러운 바람, 여름밤의 설렘과 들끓음을 그대로 형상화하는 듯한 “열대야” 막바지의 폭발을 이어서 듣고 나면 이들이 더 큰 무언가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열대야]는 언니네 이발관, 델리스파이스, 스위트피 등의 모던록 1세대 밴드들의 불안 섞인 수줍음과 쟁글거리는 기타팝 사운드의 전통이 끊기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낸다. 작년 2개의 싱글에서 얼핏 느껴졌던 범상치 않은 연주력은 이번 EP 들어 깨끗한 프로듀싱과 함께 비로소 빛을 발하며, “열대야”에서 보이는 모던록과 포스트록의 이질감 없는 통합은 이들이 단순히 장르의 ‘반복’이나 ‘계승’을 넘어서 ‘쇄신’을 꾀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기대를 걸게 만든다. 장르 특유의 감성과 사운드적 클리셰가 현대적 방법론에 힘입어 여전히 새롭게 들릴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기억해둘 만한 데뷔 레코딩. 8/10 Leave a Reply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CommentName* Email* Website 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