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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퓨어디지털사일런스, 피와꽃

옐로우키친이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의 포스트록을 담당한 후, 국내 포스트록의 본격적인 흐름이 시작되는 2000년대 중반이 되기 전까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포스트록 밴드들은 적다. 단절적으로 흐른다고 할 수 있는 국내 록 음악의 특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2000년을 전후로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음악 씬에서 포스트록이나 슈게이징에 쓰이는 기타 노이즈와 전자음을 이용한 밴드가 한 두 팀 정도 있었다. 한 밴드의 이름은 퓨어디지털사일런스, 혹은 퓨어디지‘탈’사일런스. 줄여서 PDS라고 하고, 다른 밴드의 이름은 조금 더 간단한 피와꽃이다. 이번에는 90년대와 2000년대 중반 사이의 공백기에서 나타난 두 밴드의 음악으로 징검다리를 놓아보고자 한다.

자료를 찾아보면 ‘스팽글’이라는 클럽과 ‘벌룬 앤 니들’이라는 이름의 레이블이 2000년도 초반의 익스페리멘탈한 음악들을 담당했다고 한다. 실험적인 록은 물론이고, 막 고개를 들기 시작한 전자 음악까지 광범위하게 다뤘다고 하는데, 벌룬 앤 니들에 속하고 스팽글에서도 공연했던 밴드가 PDS다. PDS의 음악은 옐로우키친이 [Mushroom Echoway Kleidose]나 이어 [Random Elements ’60]에서 전자음과 기타 노이즈를 합쳤던 시도를 더욱 더 실험적으로 해냈고, 좀 더 나아가 두 요소 사이의 유기적인 결합을 목표로 삼은 음악을 들려준다. 그 음악을 듣다보면 이게 기타 노이즈에 디스토션과 퍼즈, 아니면 뭔지 모를 효과를 팍팍 넣은 소리인지, 아니면 정말 엄청나게 뭉개고 왜곡시킨 전자음인지 헷갈릴 정도다. 노이즈가 잔뜩 낀 이들의 음악은 이렇게 실험적이고, 어쩌면 우주적이다. NASA의 우주 탐사선들이 녹음한 우주의 노이즈와도 많이 비슷하게 들리니까 말이다.

그들의 1집 [Circumfluence]는 1998년에 나왔다. 30분이나 되는 충격적인 길이의 첫 곡 “Oceanview”가 엄청나게 길긴 해도, 그렇기에 아마도 그들의 음악을 제대로 알려주는 곡일 것이다. 이리저리 부유하는 전자음과 그와 함께 끊임없이 이어지는 노이즈, 75분이라는 긴 시간동안 흐르는 이 음악 속에 몸을 묻으면 자동으로 은하수 어딘가에 낙오된 히치하이커처럼 떠다니는 느낌이 든다. 기나긴 첫 곡 이후 “The Thaw”같은 지극히 앰비언트적인 느낌이 나는 곡부터 생생한 날 것 같은 “Seaweed”까지 PDS는 특유의 부유하는 몽환에서 다양한 분위기의 곡들을 만들어낸다. 200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전자음악가 데이트리퍼와의 합작인 “Image Eidetiaue”의 특이한 사운드까지도 두 음악인의 합 덕분에 엄청나게 몽환적이다. [Circumfluence]가 나왔을 때는 인디 음악의 많은 것들이 아직 확립되기 이전에 놓여있었고, 그 안에서 좀 더 새로운 시도들이 가능했기에 이런 색다른 결합과 시도들이 나온 게 아닐까.

 

라이브 중인 퓨어디지털사일런스

퓨어디지털사일런스의 라이브 장면

 

다행이자 불행인 점은 PDS가 이후 또 한 번 스플릿 음반을 내며 활동을 마무리했다는 점이다. 같은 레이블의 피와꽃과 2000년에 발매한 기나긴 이름의 [Barcode For Lunch / 즐거운 한 때 우리는 외계 혹성을 방문했다]이 바로 그 음반이다. 여기서 피와꽃이 들려주는 새로운 음악과 PDS의 변화 모두에 주의를 기울여볼만하다. 음반 전반부(아마도 음반 제목의 ‘barcode for lunch’가 아닐까)를 채우는 피와꽃은 앞으로 나타나게 될 포스트록 밴드들과 제법 흡사한 음악을 들려준다. 나긋나긋하고 느릿느릿한 연주, 속삭이듯 중얼거리는 듯 이어지는 보컬. 기타와 보컬, 드럼, 베이스. 정석적인 밴드의 합으로 흐느적대는 포스트록을 연주하는 피와꽃은 조금은 러프한 구성이지만, 어떻게 보면 몇 년 후에 나타날 포스트록 밴드들의 음악을 미리 선보이는 것 같다. “Savior Song”이 좋은 예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타 중심의 포스트록을 들려준 피와꽃과 달리 PDS의 음악은 옛날의 밴드 음악과는 꽤나 바뀌었다.

음반의 후반부(‘barcode for lunch’와 마찬가지로 아마 ‘즐거운 한 때 우리는 외계 혹성을 방문했다’일 것이다)에서 PDS는 여러가지의 전자음으로 음반을 채운다. 게다가 전작에서 꿈결처럼 몽환적이었던 분위기는 악몽 같은 몽환으로 제법 어둡게 바뀌었다. 앰비언트적인 색감이 더욱 강해진 채 웅웅거리며 공간을 가득 채우는 전자음 너머로 기타 소리나 드럼 소리만이 들릴 뿐. [Circumflunece]에서 들려준 모습이 여기서는 잘 나타나질 않는다. 우주 공간 저 너머에서 해독 불가능한 전자음 신호를 받는 느낌이다. 옐로우키친이 [Random Elements ‘60]에서 들려준 전자음과는 차원이 다른, ‘노이즈’ 그 자체다. 무언가 뒤숭숭한 이런 소리들을 남기고 PDS는 포스트록 초기의 다른 밴드들처럼 사라졌다. 피와꽃도 마찬가지다. 기록을 조금 더 찾아보면 벌룬 앤 니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아스트로노이즈나 홍철기 등 노이즈 음악인들과 함께 아방가르드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슬프게도 그들의 현 작업 속에서 PDS나 피와꽃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 벌룬 앤 니들을 채우고 있는 여러 음악인들의 노이즈는 훨씬 더 실험적이고 전위적이라는데, 정확히 어떨지는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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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rcumfluence] / [Barcode For Lunch / 즐거운 한 때 우리는 외계 혹성을 방문했다]

 

생각해보면 2000년대 초반의 인디 씬은 여러모로 그런 것 같다. 대중음악의 내밀한 밑바닥에서 조용히 숨죽이고 실험적이고 기묘한 음악들을 열심히 하고 있었고, 멋지고 좋은 결과물들을 남기고 어느 샌가 사라졌다. 90년대 말의 반짝 인기 이후 팝적인 개성을 지닌 여러 밴드들이 주류 대중음악의 문을 두드리기 전까지의 국내 인디 음악은 그 어떤 때보다 내밀했다. 그 내밀한 한쪽에 넬이나 못, 3호선 버터플라이, 네눈박이나무밑쑤시기 등이 있었다면 훨씬 더 어둡고 깊은 내면으로 향하는 지점에 PDS의 음악이 놓여있는 게 아닐까 싶다. 사춘기 때 써놓은 이상한 소설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다시 꺼내 읽는 그 때의 소설이 이상하거나 오글거리지는 않고, 오히려 지금은 느끼지 못하는 새로운 느낌을 주는 것처럼 퓨어디지털사일런스의 음악도 전체적인 시점에서 보자면 그런 특징을 가진 것이 아닐까? 옐로우키친 등과 함께 실험적인 소리들을 내뿜던 밴드들은 그들의 길을 따라 사라졌고 이제 2000년대 중반, 국내 포스트록의 여명이 다가온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이어지는 첫 타자는 누구일까?

 

 

2-2. 잠 (Zzzaam)

옐로우키친의 90년대가 전자음 섞인 노이즈를 팍팍 뿜으며 포스트록의 주된 색을 만들었다면, 2000년대 초중반은 슈게이징과 기타 노이즈를 잔뜩 뿜으며 조금 더 다른 색으로 포스트록을 채운다. 뭔가 사정없을 정도로 실험적인 전자음 등이 들어간 연주보다는 좀 더 따뜻하고 몽환적이며 잔뜩 뭉개진 연주가 많았다는 점이 그 미묘한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밴드마다 전부 똑같은 건 절대 아니고 각각의 스타일이 있는 거지만, 2000년대의 첫 반절은 전반적으로 2000년대식 포스트록보다는 90년대식 슈게이징에 좀 더 가까웠다. 그렇기에 잠(Zzzaam)은 국내 슈게이징 씬에 있어서 첫 번째 밴드라고 할 수 있겠다.

 

잠의 라이브 장면

잠의 라이브 장면

 

여담을 먼저 얘기하자면, 잠은 이름이 정말 맘에 드는 밴드들 중 하나다. ‘Zzz’를 가지고 ‘잠’이라는 일종의 언어유희를 만들었고, 그것이 또 놀랍게도 밴드의 색깔과 제대로 어울리기 때문이다. ‘잠’의 음악은, 말 그대로 잠의 음악이다. 2000년에 나온 그들의 1집 제목부터 [낮잠]이다. “낮잠”같이 기타 노이즈와 함께 느릿느릿하게 이어지는 곡들이 음반에 기본적인 느낌으로 자리 잡는다. 하지만 잠은 단지 느린 노이즈만을 중심으로 음반을 전개하는 것은 아니고 “독감”처럼 백마스킹을 이용해 낯선 느낌을 가져다준다거나, “향”이라는 똑같은 이름을 가진 두 곡처럼 다른 방식으로 한 곡을 연주하는 식으로 여러모로 개성 있는 변주들을 더한다. 국내 최초의 록밴드 중 하나인 키보이스의 명곡 “해변으로 가요”을 슈게이징스럽게 재해석하는 것 또한 여름바다 같은 노래를 겨울바다처럼 만들며 음반의 백미를 장식한다. 이렇게 다양한 슈게이징 노이즈로 잠은 현실과 꿈을 오가며 나른한 어느 날 얕은 낮잠을 자는 것 같은 음반을 만들었다.

2002년에 나온 2집 [Requiem #1]은 [낮잠]에서 들려줬던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조금 더 색다른 시도들을 들려준다. 우선 [낮잠]의 주된 테마였던 나른한 슈게이징은 여전하다. “Song 10”을 들으면 좋은 의미로 졸음이 몰려오는 것만 같고, 이전의 백마스킹을 이용한 “Requiem #1” 또한 전작에서 들려준 잠의 분위기를 유지한다. 그러나 [Requiem #1]은 이전까지 이어져온 나른한 분위기를 부숴버리며 반전시키는 트랙들로 그들의 세계를 넓힌다. 음반 중간 지점의 “No 20”과 “Or”를 지나가면서 분위기가 살짝 바뀌기 시작하는데, 제목처럼 발로 차고 달려가듯이 흐르는 “Kick & Dash”나 마찬가지로 경쾌한 연주를 들려주는 “Untitled Event”부터 밴드는 기존의 노이즈를 유지하면서도 이전까지의 나른함을 벗어던지고 빠른 속도감으로 한 차례 변화를 시도한다. 특히나 “Halfway Time”같은 곡은 약간은 따뜻했던 분위기를 살짝 얼리는 것처럼 꽤나 날 선 슈게이징 연주를 보여준다. 색다른 분위기를 연달아 들려주는 부분들을 지난 다음 마지막을 장식하는 “I’m Right Here Now”는 곡의 빠르기를 시종일관 바꾸면서 음반을 마친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얕은 낮잠 같았던 전작에서는 느릿느릿하게 꿈의 세계를 산책했다면, [Requiem #1]은 조금 더 활발하게 조깅하듯이 꿈속의 세계를 더욱 넓게 돌아다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은근한 박진감이 더해진 잠은 또 다른 느낌을 성공적으로 들려준 셈이다.

 

[낮잠] / [Requiem #1] / [거울놀이]

[낮잠] / [Requiem #1] / [거울놀이]

 

이렇게 [낮잠]과 [Requiem #1]이 몽환적인 슈게이징 노이즈를 근간으로 때로는 무척이나 나른하게, 때로는 신나고 경쾌하게 풀어가며 잠과 꿈의 두 부분을 들려준 음반이라 하면, 2004년에 나온 3집이자 마지막 음반인 [거울놀이]는 전작들과 좀 더 많이 다른 음반이다. 먼저 밴드 내부적으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나중에 로로스로 활동하며 국내 포스트록의 금자탑을 쌓아올릴 도재명이 드럼으로 들어왔다는 점이다. 이것이 [거울놀이]에서 잠이 스타일을 바꾼 주된 원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거울놀이]는 잠의 아이덴티티 같았던 기타 노이즈를 조금은 줄였다. 기타는 노이즈가 끼어 음악의 밑바닥에서 지글지글 퍼져가는 대신에 맑고 명랑한 색채를 띤 채로 여기저기에 울려 퍼진다. 여기에 맑디맑은 철금 소리까지 더하며 [거울놀이]는 전체적으로 전작의 슈게이징스러운 분위기에다가 모던록의 느낌을 살짝 얹었다. 시기적으로도 줄리아 하트나 마이 앤트 메리 등 2000년대 초반의 기타팝 밴드들이 등장할 때니 그 영향권에 조금은 걸쳐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70’s Once More”이나 “싸이킥”, “덥덥”같은 트랙을 들으면 이러한 변화가 미묘하게나마 들려온다. 물론 잠의 나른한 슈게이징 노이즈는 “따뜻했던 겨울밤이었지”같은 곡에서 여전하지만 말이다. 게다가 이러한 맑은 사운드만이 전작들과의 차이점은 점은 아니다. “Sonicboom” 같은 곡은 전작의 “Kick & Dash”같은 빠른 전개를 아예 더욱 더 날 선 분위기로 바꾸면서 잠 특유의 몽환적 분위기 자체에도 일종의 반전을 더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거울놀이]는 [Requiem #1]에서부터 잠이 진화해오던 방향성을 유지한다. 하지만 곡의 분위기는 더욱 다양해지고, 그 속도나 질감도 전보다 훨씬 달라진다. 무언가 잔뜩 흐린 창밖을 보는 초기와는 다르게 거울처럼 보일 정도로 맑은 창밖을 내다보는 분위기로 바뀐 잠은 그들만의 음악을 여전히 유지하면서도 새로워졌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낮잠], [Requiem #1], [거울놀이]를 지나가며 잠의 음악은 천천히 바뀌고, 그 직접적인 변화를 각 음반마다 느낄 수 있다. 아마 시간 순으로 음반을 듣는 재미가 많은 밴드 중에 하나일 것이다. 단지 나른한 꿈의 한 부분 같았던 음악은 조금 더 활발해지고, 맑아지고, 가끔은 어두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잠의 음악은 어쩔 수 없이 잠의 음악이다. 꿈결을 헤매는 것 마냥 늘어지는 기타 노이즈를 밑바탕으로 깔고 잠은 ‘zzz’ 소리를 내며 그 속의 여러 세계를 오가는 슈게이징을 들려준다. 이렇게 따스한 꿈의 세계를 슈게이징의 기타 노이즈를 통해 표현하는 국내 밴드는 잠 이전에는 없었으며, 잠 이후에도 그들만큼 잘 해내는 밴드도 적었다. 잠만의 따뜻함은 도재명의 드럼을 타고 이후 로로스의 피아노와 첼로 선율로 새롭게 옮겨진 것 같지만, 특유의 기타 노이즈는 역시나 잠만의 것이다. 이런 지점에서 잠의 슈게이징 기타 톤은 2000년대 초반을 꽉 쥐었다고 할 수 있으며, 전자음악 중심이었던 이전 밴드와는 다르게 기타를 중심으로 나아간 포스트록 밴드들의 시초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나원영 onezero96@naver.com

 

One Response

  1. fishman

    잠, PDS, 피와꽃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되다니 감회가 새롭네요.
    (이대 후문)빵, 스팽글에서 들었던 잠의 음악이 아직도 귓가를 맴돌아요.
    죽기 전에 잠의 공연 한 번만 볼 수 있었으면 소원이 없겠네요.
    (성우형~ 어디 계신지 모르겠지만 진짜 보고싶어요.
    이 기사 보시면 저같은 옛 팬을 위해서라도 공연이든 음원이든 나타나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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