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gh Draft In Progress]는 가장 파괴적이며 아름다운 한국 록 음반 중에 하나다. 숨막히는 이 음반이 나온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다. 그 사이 할로우 잰은 오랜 침묵 끝에 [Day Off]를 내며 건재함은 물론 발전을 당당히 드러냈다. 그리고 2년 만에 [Scattered By The Breeze EP]로 돌아온 이들은 전작의 연장선에 놓인 두 곡으로 여태까지 밟아온 여정을 돌이킨다.

[Rough Draft In Progress]에서 파괴적인 기운과 아름다운 분위기가 함께 숨쉴 수 있었던 이유는 기타 인스투르멘탈 중심의 포스트록과 임환택의 격한 스크리모 창법 간의 결합 덕분이었다. 일본에서 이미 엔비(Envy)가 시도한 바 있었지만, 할로우 잰은 오히려 그 스타일에 절망과 희망을 줄기로 깊은 한국어 노랫말을 더하며 그토록 빛나는 음반을 만들어냈다. [Day Off]도 8년 전의 전작과 비슷하지만, 오히려 한 발 더 나아가 정크클래스(JunkClass)의 앰비언트한 FX를 섬세하고 자연스럽게 포스트록과 스크리모의 조합에 담았고 이는 죽음의 탐구라는 전체적인 접근과도 묵직하게 맞아떨어졌다. 그러한 발전을 담아 2014년 1월에 나온 음반은, 어떻게 보면 3달 후에 일어날 일의 예고편 같은 음반이었다. 이후 [Day Off]의 죽음을 가로지르는 7일 간의 여정은 누군가에게 100번은 넘게 반복되었고, 그렇게 2년이 지나갔다.

2016년, 할로우 잰은 죽음을 다시 한 번, 더욱 직설적으로 노래한다. EP에는 “Scattered By The Breeze”와 “Brutal Romance”의 두 곡이 담겨 있다. 15분의 짧은 길이지만, 할로우 잰이 담으려고 하는 의도는 명확하게 드러나고 여전히 아름답다. 포스트록, 스크리모, FX의 삼중주를 통해 곡을 천천히 쌓아간 후 터뜨리는 과정은 이미 [Day Off]에서 증명된 바 있다. EP에 실린 두 곡은 상대적으로 짧은 길이의 곡들이지만, 오히려 그런만큼 그 과정은 더욱 밀도있게 담겨 하나의 완성된 서사 구조를 만들어낸다. “Scattered By The Breeze”는 FX 노이즈를 배경으로 나레이션으로 시작해 기타 트레몰로를 천천히 올려 멋진 폭발과 함께 그 기운을 마지막까지 이어간다. 전형적이지만 빈 틈 없이 탄탄한 구성 안에는 ‘부서져버린 몸과 마음’과 ‘외로움으로 가득 찬 빈 잔’이 담긴 ‘비극의 경험’에 ‘조금 더 따뜻한 그 곳으로 / 조금 더 편한 그곳으로’라는 진혼가를 남기는 이야기가 단편소설처럼 단단히 들어가 있다. [Day Off]가 의도치 않게 예견한 세월호 사건과 수많은 죽음의 경험들은 이 안에서 더욱 파괴적인 동시에 더욱 아름답게 나타난다. 임종을 앞둔 노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Brutal Romance”도 마찬가지다. 유래 없이 긴 임환택의 클린 보컬은 낯설기보다는 오히려 그 주제 안에서 절절한 초반부 분위기를 만든다. “Scattered By The Breeze”와 비슷하게 곡은 꽉찬 구성으로 서사를 완성하고, 할로우 잰은 죽음을 향해 온 몸으로 소리지르며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위한 축복을’ 바친다. 두 곡 모두 음악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완벽하게 흘러가며 15분을 어떠한 아쉬움도 없이 가득 채운다.

10년이 지났지만 할로우 잰은 여전하다. 맨발의 임환택은 온몸으로 부르짖고, 공연장은 짙은 향 냄새로 가득하며, 할로우 잰은 격렬한 서정을 들려준다. 다만 두 장의 정규 음반 사이에는 조그마한 차이가 있으니, [Rough Draft In Progress]는 절망 속 희망을, [Day Off]는 죽음의 슬픔을 노래했다는 점이다. 할로우 잰은 그들이 이미 다룬 두 묵직한 주제를 [Scattered By The Breeze]에서 동시에 담아내고 있다. 죽음과 절망, 슬픔과 고통을 탐구하지만 할로우 잰만의 진혼가를 통해 이를 희망과 축복, 공감과 추모로 승화한다. 그렇기에 [Scattered By The Breeze]는 할로우 잰의 지난 10년을 15분으로 깔끔하게 압축한 EP다. 스크리모와 포스트록, FX의 명민한 결합. 서사적 구성의 높은 완성도. 절망과 죽음을 노래하는 한 편 진혼과 희망도 노래하는 태도. 이 세 가지야말로 할로우 잰이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것인 동시에 할로우 잰을 그들답게 만드는 것이다. 할로우 잰은 다시 한 번,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가장 멋지게 들려주며 높은 성취를 이뤄냈다. 더불어 그들의 지난 시간도 깔끔하게 담아냈다. 10년이 지나도 이들의 파괴적인 아름다움과 격정적인 서정은 꾸준히 ‘꽃 핀 쪽으로’ (한강의 <소년이 온다>에서 차용) 나아간다. | 나원영 onezero9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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