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ijkmf2io34mtkio4

 

4. 푸른새벽

지금이야 ‘홍대 여신’의 원조 격으로 불리지만, 한희정은 인디 1세대 격의 모던록 밴드 더더(The The)에서부터 커리어를 시작한, 그러니까 관록 있는 인디 음악인이다. [The Man In The Street]에서 [Slow Dance]까지의 긴 커리어에서 가장 맘에 드는 기간이 있다 하면, 역시나 푸른새벽을 꼽고 싶다. 사실 제목만 보고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푸른새벽이 포스트록이라니-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포스트록이라니, 푸른새벽아.

 

이미지 출처

이미지 출처: nolja!’s…

 

여태까지의 밴드들에 대해 디스코그래피 순으로 찬찬히 그들의 발자취를 밟아봤다면, 푸른새벽과 포스트록을 잇기 위해 이번만큼은 조금 다른 방법을 골라본다. 가장 최근인 2012년, 밴드가 소설가 김연수와 함께 만든 캐럴 음반 [Blue Christmas EP]에서부터 소개를 시작한다. 기타 한 대에 나레이션이 들어간 “Blue Ball”이나 드럼 스치는 사운드가 함께하는 “깊고 고요한 밤”처럼 겨울 밤 같은 분위기에 딱 맞는 좋은 곡들도 많지만, 포스트록과는 정말 먼 곡들이다. 하지만 잘 찾아보면 “oooo”라는 제목의 곡이 있다. 한희정의 목소리와 피아노만이 먹먹한 느낌으로 곡을 이끌다가, 곡의 후반부에 다다르면 멀리서부터 어떠한 노이즈가 천천히 밀려오기 시작한다. 자연스럽게 피아노 소리가 노이즈와 합쳐지고, 나레이션이 들어가면서 전반부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알 수 없는 분위기, 기분이 훨씬 더 침울해지는 분위기. 이 분위기가 푸른새벽만의 포스트록이 아닐까, 하고 성급하게 생각해본다.

푸른새벽의 포스트록은 지금까지의 포스트록과 많이 다르다. 정상훈(ssoro, 투명 물고기)이 연주하는 먼 곳의 기타 노이즈로만 이뤄진 포스트록이며, 한희정(dawn)의 목소리와 포크 기타의 울림을 단단하게 받쳐 주는 포스트록이다. 때문에 푸른새벽이 들려주는 포스트록은 이전의 밴드들처럼 장르적인 성과를 만들었다고 하기보다는 전적으로 푸른새벽 특유의 우울한 감성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하고 싶다. 하지만 2000년대 초 인디 음악에 차가운 서정을 불어넣었던 초기작에서는 이러한 포스트록적 요소가 아직 잘 드러나진 않는다. 2003년에 나온 1집 [Bluedawn]의 첫 곡인 “집착”의 시작 부분에서부터 먼 곳의 기타 노이즈가 살짝 들려온다. 깨질 것 같은 한희정의 목소리와 모던한 기타 소리가 앞세워지는 포크 록이 담긴 앞부분을 지난 다음 “자위”에서 아직은 모던한 느낌에 가까운 기타 노이즈가 조금 더 앞으로 나와 몽환적인 분위기를 살짝 더해준다. 이 분위기는 “푸른자살”로 살짝 이어지다가 사그라지고, 다시 마지막 곡인 “잘 자”에서 돌아온다. 써놓았듯 [Bluedawn]에는 포스트록이 거의 없다시피 한다. 분명 엄청난 음반이라는 점은 사실이지만, ‘포스트록’이라는 주제에는 살짝 엇나간다. 하지만 1.5집이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

 

[Bluedawn] / [Submarine Sickness And Waveless EP] / [보옴이 오면] / [Blue Christmas EP]

[Bluedawn] / [Submarine Sickness And Waveless] / [보옴이 오면] / [Blue Christmas EP]

 

2005년에 나온 ‘1.5집’ [Submarine Sickness And Waveless]도 여전히 한희정의 목소리와 서정적인 멜로디의 기타가 중심에 있다. 여기서 포스트록 노이즈를 풍기는 기타 소리는 아직 조금 뒤에 머물러 있다. “낯선 시간 속으로”나 “우두커니 나의 우주는”같은 곡에서 잠시 나타날 뿐. 그리고 두 번째 CD가 시작된다. 사람을 꽤나 깜짝 놀라게 하는 “서”의 바이올린 소리와 함께 말이다. [Submarine Sickness And Waveless]의 첫 번째 CD는 여태까지의 푸른새벽을 들려줬다면, 두 번째 CD에 담긴 음악은 조금 더 다양해진 모습을 들려주고 있다. 여기서부터 푸른새벽만의 포스트록이 드러난다. 두 파트로 나눠진 “별의 목소리”가 바로 그 트랙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기나긴 8분 길이의 첫 파트와 이어지는 3분짜리의 두 번째 파트는 앰비언트한 전자음 노이즈가 다양한 소음들과 합쳐진 소리로 시작하며 기타 소리와 철금 소리, 정상훈의 목소리가 천천히 섞여 들어온다. 곡 제목이 “별의 목소리”인 점을 감안한다면 전자음 노이즈가 더 의미심장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각종 노이즈는 우주 같은 공간감 속에서 천천히 부유하기 시작하고 1부의 끝부분에 다다라서야 포스트록 느낌 가득한 노이즈가 등장하고 포크 기타 반주에 맞춰 착 가라앉는 연주를 들려준다. 그렇게 푸른새벽의 본격적인 포스트록이 선을 보인다. 다음 곡에서 한희정이 피아노와 함께 음계를 읊으며 다시금 원래의 느낌으로 돌아오지만 말이다. 하지만 마지막 곡인 “빵”에서 푸른새벽은 차분하면서도 따뜻한 노이즈로 앨범을 천천히 덮는다. 아직 포스트록의 지분은 부족하지만, 푸른새벽의 음악이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건 분명히 느껴질 것이다.

아직까지 부족한 포스트록을 더욱 채우기 위해 2006년에 나온 2집 [보옴이 오면]을 들어보자. 첫 곡 “Intro”에서부터 여태까지 들려준 차분한 포크 기타 소리는 잠시 사라지고 전자음과 피아노, 전기 기타와 노이즈가 섞인다. 눈이 온통 내려 흰색을 넘어 아예 회색빛으로 세상을 물들일 것 같은 음반의 멋진 인트로다. [보옴이 오면]은 그렇게 조금 더 밴드스러운 느낌과 전자음을 더한 채로 음반을 전개한다. “Undo”와 “사랑”을 지나면 1집과 비슷한 사운드를 기대한 사람들에게는 사뭇 충격적일 “하루”의 짙은 노이즈가 시작되어 “우리의 대화는 섬과 섬 사이의 심해처럼 알 수 없는 짧은 단어들로 이루어지고 있었다”로 이어진다. [Bluedawn]에서부터 아주 조금은 드러나던 포스트록의 기미는 [Submarine Sickness And Waveless]에서의 “별의 목소리”를 지나 마침내 [보옴이 오면]에서 엄연하게 음반의 한 부분을 이루게 된다.

 

 

푸른새벽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포스트록 밴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한국의 포스트록을 언급할 때 그냥 넘기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선외 가작’ (Honorable Mention)과 비슷한 위치라고 해야 할까. 푸른새벽은 포스트록의 지글거리는 기타 노이즈와 각종 소음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서정성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송라이팅을 해내면서 푸른새벽 특유의 따뜻하고 시린 우울을 만들었다. 이는 잠이 [거울놀이]에서 모던록의 사운드와 포스트록의 사운드를 엮은 것과도 비슷한 시도라 생각한다. “딩”, “Tabula Rosa”, “오후가 지나는 자리”, “명원”을 포스트록 노이즈 때문에 망쳐진 곡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멀리서 웅얼거리며 오르내리는 기타 노이즈는 사람들을 충분히 우울한 감성으로 이끈다. 그 점에 있어서 그들의 음악에 포스트록적인 방식을 더하는 푸른새벽의 시도는 아름답다. 생각해보자면 포스트록이 시작된 토크토크(Talk Talk)의 음악도 뉴웨이브에서 시작되어 특유의 팝적인 느낌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고, 시규어 로스(Sigur Rós)나 바크 사이코시스(Bark Psychosis) 등의 밴드들이 모던 록, 혹은 드림 팝의 영역과 포스트록을 훌륭하게 잇기도 했다. 이미 여러 번 말했다시피 포스트록이란 장르는 한계나 경계선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장르다. 바로 옆 동네에 있을만한 장르들인 슈게이징이나 드림 팝과도 끊임없이 연계점을 찾았고, 포스트록의 주된 방법론인 ‘기나긴 기타 노이즈’도 우중충한 노이즈 록부터 모던한 기타 팝까지 꽤 다양한 분위기에서 쓰였다. 그러니까 푸른새벽의 아름다운 노이즈들도 어쩌면 그 범위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넣을 수 있지 않을까. 정확히 포스트록의 중심부에는 들어갈 수 없겠지만, 넓은 범주에서 보자면 충분히 느슨하게 포함시킬 수는 있을 것이라고 충분히 믿는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푸른새벽은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서정적이고 우울한 세계를 만들었고, 서정적이고 차가운 포크 록과 각종 기타와 전자음 노이즈로 이뤄진 느슨한 포스트록을 들려준 뒤 피아노 하나와 목소리 하나로 “보옴이 오면”을 부르며 떠났다. 비록 6년 후에 난데없이 [Blue Christmas]를 들고 찾아오긴 했지만, 그 뒤로 이들의 소식은 다시 간 데가 없다.

결론적으로 푸른새벽을 완전히 ‘포스트록 밴드’라고 소개하는 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서정적인 포크 록 스타일에 포스트록 노이즈가 적절히 섞여들어 가는 것은 충분히 주목할 만한 장면이기에 살짝 언급하며 지나간다. 당연하게도 푸른새벽의 음악 세계에는 포스트록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시처럼 와 닿는 노랫말들이나, 알 수 없는 분위기를 내뿜는 한희정의 목소리, 정상훈이 만든 기타 노이즈와 함께 포스트록은 그들의 넓고 푸른 세계를 이루는 요소일 뿐이다. 그럼에도 푸른새벽이 만든 노이즈는 기록할 만한 노이즈다. 언젠가 보옴이 오면 이들의 3집을 들을 수 있을까. | 나원영 onezero96@naver.com

 

One Response

  1. 사차원

    푸른새벽이 포스트록 언저리에 걸쳐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ㅎㅎ

    응답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