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틱스 레코드’ 1권이 나온 지 벌써 4개월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가을 바람이라기엔 너무 차거운 공기와 함께 이들의 두 번째 단행본이 찾아온다. 두 번째 ‘크리틱스 레코드’의 주제는 ‘우리 시대의 중견 비평가’. 대중음악 비평계에서 오랜 시간 동안 자신만의 시선을 쌓아 왔던 네 명의 비평가가 아카이뷰와의 인터뷰에 응했다. 두 번째 단행본과 함께 이들 인터뷰의 내용을 미리 맛보는 기획 [Critics Record X weiv]도 다시 시작된다. 다섯 번째 순서는 ‘대중음악의견가’로 잘 알려져 있는 서정민갑과의 인터뷰다. | 정구원 Critics Record X weiv 005. 서정민갑 2016년 2월 21일 일요일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 Interviewed by 전대한 Photographed by 신수민 Designed by 송진경 Edited by 우주언 대중음악‘의견가’ 전대한(이하 전) : 가장 처음에 할 이야기는, 직함 혹은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에요. 보통은 ‘비평가’ 혹은 ‘평론가’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독특하게도 ‘의견가’라는 단어를 선택하시더라고요. 그 둘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기에 구분해서 쓰시는 건지 궁금했어요. 서정민갑(이하 서) : 딱히 하는 일에 있어서 차이는 없어요. 그 명칭을 쓴 이유는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내가 평론을 한다고 할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자문을 했을 때, 그때는 평론가라고 하면 한 차원 높거나 완성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평론이라고 하는 게 결국은 굉장히 주관적인 것이잖아요. 저는 초기에 평론이라고 하는 게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던 기억이 있어요. 어쨌든 평론이라는 것은 자기 주관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누구도 완벽한 답을 내릴 순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리고 제가 하는 것도 의견 중의 일부라는 생각도 들어서 ‘대중음악의견가’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하겠다는 의미로 그렇게 쓰기 시작을 했어요. 그걸 부각시켜서 나만의 차별성으로 만들어야겠다는 그런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는데, 이 일을 오래하다 보니까 그리고 다른 분들이 이 명칭을 쓰지 않다보니까 조금 더 특별하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실제로는 특별한 의미는 없어요. 우리는 늘 1/n만의 진실을 가지고 있다 전: 저는 90년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대중음악 비평이 가장 주목을 받았던 당시를 경험하지 못했어요. 최근에 와서야, 구체적으로는 2000년대 이후의 ‘웨이브’나 ‘음악취향 Y’같이 젊은 비평가들이 운영하는 매체를 주로 보았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는데, 대중음악 비평이 파편화된 취향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90년대에는 말씀하셨듯이 어떤 이론이나 담론을 텍스트 속에서 찾아내거나 새롭게 만들어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면, 2000년대 이후에는 그런 건 많이 없어지고 인상비평이 주를 이루는 느낌이 들어요. 서: 그렇게 보실 수도 있죠. 그런데 사실은 되게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텍스트를 보느냐’ 혹은 ‘텍스트 속에서 컨텍스트를 보느냐.’ 둘 중에 하나인 거죠. 비평이라는 게 사실은 굉장히 주관적인 일이잖아요? 한 사람이 자라온 시대와 환경과 취향을 절대 무시할 수 없거든요. 처음 비평을 시작했을 때 김학선 씨하고 그런 이야기를 되게 많이 했었는데 ‘도대체 비평의 객관이라는 게 무엇이냐.’라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내가 좋다고 말할 때 좋다고 말하는 것의 근거가 도대체 무엇인지를 엄청 고민했고 결국 답을 내리지 못해서 되게 답답했어요. 예를 들면 제가 강의할 때마다 이런 얘기를 해요. 라면을 분석하면 밀가루 몇 퍼센트, MSG 몇 퍼센트 등등 이런 식으로 분석을 정확하게 할 수가 있잖아요. 그런데 좋은 음악이란 건 그렇지 않잖아요. ‘장필순 음악의 보컬 순도는 90%이고, 다른 뮤지션의 음악의 보컬 순도는 몇 퍼센트이다.’ 이런 식으로 결코 이야기 할 수가 없잖아요. 그냥 자기가 좋으니까 좋은 거죠. 그런데 그렇게 ‘좋다.’라고 말할 수 있기까지의 과정에서 음악을 많이 듣는다든가, 철학이나 사회학 같은 인문학을 공부해서 예술의 가치에 대한 자기만의 기준을 세운다든가 하는 방식들이 가능하지만 사실 그런 방식들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거든요. 그렇다고 주장을 할 뿐이죠. 그 주장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으면 대세가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소수의 의견이 될 뿐인 거죠. 그래서 자기가 좋다고 느끼는 것을 좋다고 말하는 것이 가장 솔직한 비평이라고 생각은 들어요. 그 주관과 그 개인적 취향 사이에 정답이 어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자주하는 말인데 우리는 늘 1/n만의 진실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1/n만의 진실을 가지고 있고, 김윤하 씨도 1/n만의 진실을 가지고 있고,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이고요. 어떤 부분에서는 제가 절대적일 수 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저는 정말 일부분밖에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 파편과 또 다른 파편들 간의 종합이 진실이 아닐까 생각하곤 해요. 지금 인상 비평이라고 보이는 것이,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취향에 맞는 음악에 대해서만 글을 써내는 것이 어떻게 보면 굉장히 파편적으로 보이지만, 그게 어떻게 보면 하나의 진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늘 현재의 모습은 현재의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여기서 아쉬운 게 있다면, 자연적으로 또 다른 형태의 비평으로 변화하겠지만 그것도 돌고 도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완전히 다른 프레임이 나오지 않는 한. “세월호 침몰 사고, 음악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 전: 처음에 제가 인터뷰 요청을 위해서 연락드렸을 때 이야기했던 것처럼, 저는 서정민갑 이라는 비평가를 되게 정치적인 비평가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비평가 개인이 정치적이라는 말이 아니라 비평가로서 굉장히 정치적인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아무래도 그런 인상에 가장 영향을 미친 것은 미디어오늘에 세월호 사고 때 쓰신 “세월호 침몰 사고, 음악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1편과 2편이었어요. 첫 번째 글이 나오고 밴드 못의 이이언 님과 미묘 님께서 민갑 님과 주고받았던 트윗들, 그것들을 보면서 이 사람은 ‘정치적인 비평가’라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또 그 글이 좋다 혹은 나쁘다 식의 평가를 떠나서 최근의 대중음악 비평 중에서 굉장히 중요한 위치에 놓여야 하는 글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실제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글이라는 생각도 했고요. 최근의 음악 비평에서 정치적인 이슈를 이렇게 전면적으로 다루고, 음악이 취해야 할 스탠스를 논했던 글이 잘 없었던 것 같았기 때문에요. 서: 그 글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자면 사실 지금도 세월호 사건은 정말 충격이죠. 많은 이들에게 그리고 저에게도. 사실 너무 힘들었어요. 몇 달 동안 음악을 제대로 못 들었어요. 사실 대한 씨께서 사전에 보내주신 질문지에 쓰셨던 것처럼 두 편의 글에서 제가 한 이야기들은 새로운 주장이 전혀 아니에요. 80년대적인 아니면 전통적인 좌파라면 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였고, 어떻게 보면 되게 평이한 이야기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좌파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는 말이죠. 근데도 그렇게 많은 논란이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보면 일단 제가 ‘글을 많이 못 썼구나.’ 하는 생각이 있어요. 음악이 사회적인 맥락 속에 존재해야 하는 것이고 그리고 음악가는 사회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는, 딱 그 두 문장이거든요. 줄여서 봤을 때는 말이에요. 그게 이제 좌파적인 혹은 현실 참여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일관적인 이야기겠죠. 그냥 일관적인 이야기를 한 건데 그걸 가지고 제가 사람들을 설득시키지 못했다는 건 제가 글을 잘 못 썼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똑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글을 좀 더 잘 썼으면 설득이 더 잘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고요. 둘째는 그런 생각 자체가 제 세대만의 생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91학번인데 저는 대학 다닐 때 학생 운동 열심히 했고 저 말고도 학생 운동이 활발했던 시기였어요. 그 속에서 형성된 제 가치관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세상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거였어요. 책임이 있고 또 어떤 식으로든 자기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그것이 가장 폭발적으로 발현된다면 시위에 나가고 특정 정당의 당원이 되는 식으로 발현이 되겠지만, 그게 아니라 정말 양심적으로 자기 일을 하는 것 정도라도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 생각을 하는 것에 대해서 그분들(제 글을 읽고 피드백을 주신 분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지는 제가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제 글을 소비에트 식으로 당이 혹은 권력이 예술가에 대해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서 반응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어요. 이렇게 해야 한다 혹은 저렇게 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 개입이고 지시라고 느끼신 것 같거든요. 그런데 사실 저는 굳이 표현하자면 소비에트나 문화 혁명에서 벌어졌던 부당한 혹은 억압적인 통치가 문화·예술에 대해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나름 책도 많이 본 편이라 절대 그런 식의 주장을 하려던 게 아니었거든요. 저는 그 글에 담긴 생각이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세월호 사건 터지면 당연히 그것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든, 최근에는 굳이 그런 노래를 만들지 않더라도 집회 가서 노래하는 경우도 많으니까 나름의 방식으로 모두가 사건에 대해서 발언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던 거예요. 그래서 부정적인 반응들을 접하고 ‘그러면 이런 이야기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어요. 그러면 ‘그냥 모두가 각자 알아서 해야 하는 건가.’ 하고요. 물론 이이언 씨의 주장은 그런 게 전혀 아니었지만요. 되게 벽 같은 게 느껴졌죠. 그러면 각자 알아서 하는 것만이 정답인가요? 그런데 사실 한국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알아서 하고 있나요? 알아서 안 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비판들이 나오고 있는 거겠죠. 어쨌든 그 이야기를 할 때 좀 더 섬세했어야 한다는 생각은 많이 들어요. 혹은 ‘그 생각을 뛰어넘는 패러다임을 내놓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제가 내보일 카드가 그것이라면 있는 그대로 내보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게 맞는 생각인지 틀린 생각인지 혹은 맞더라도 어떤 부분에서 문제가 있고 어떤 부분에서 보완해야 하는 건지 그 카드를 내보이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게 되겠죠. 사실 짬이 오래되면 분위기를 알아요. 여기서 어떤 이야기를 하면 돌을 맞을지에 대해서요. 근데 정말 자신이 그 이슈에 대해서 생판 모르는 게 아니라면 저는 비평가는 어지간하면 발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발언해서 검사받아야 한다, 검사받고 토론하고,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이론이나 생각을 갱신하거나 밀고 나가거나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자신이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자기만의 생각은 어찌 됐건 바꿀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걸 바꾸면 정말 거짓말을 하는 거겠죠. 시대에 따라서 계속 생각을 바꾸는 것이 세련된 것처럼 보이지만 저는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그런 시대에서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요. 그리고 그 관점이 저는 부분적으로 문제가 있을지언정, 근본적으로는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도 그때 했던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다만 ‘더 잘 설득할 방법을 찾았어야 했구나.’ 하는 생각은 들어요. 어쨌든 많은 분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면 그건 저의 부족함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고민을 좀 더 깊이 가져가지 못했거나 표현을 좀 더 설득력 있게 가져가지 못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악이 해야 할 일(X)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사회에 대한 책임(O) 전: 그럼 여전히 그때의 스탠스는 변함이 없으신 거고 또 이야기하신 걸 들어보면 음악에는 전제된 당위 혹은 음악이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믿으시는 거잖아요. 정치적인 메시지 혹은 정치적인 이슈에 대해 다루는 게 전부일 필요는 없지만 그걸 해야 하는 음악도 있어야 한다고 하시는 거니까요. 서: 음악이라고 표현하면 너무 한정되는 것 같고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이 사회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보는 거죠. 그러면 그 책임은 어떻게 다할 것인가. 그것은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이 사회의 올바름이나 혹은 건강함을 위해서 복무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닌 방식일 수도 있겠죠. 예를 들어서 음악을 하는 사람이 음악인이 아닌 일반적인 시민으로서 시민단체 회원이 된다든가, 서명운동을 한다든가, 글을 쓴다든가 하는 식으로 할 수 있겠죠. 그렇지만 자신이 하는 일을 가지고도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죠. 이를테면 음악인이 집회에 나가서 노래를 하는 식으로요. 음악이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 사회적인 역할을 하는 방식 중에 하나겠죠. 그런데 굳이 음악을 그렇게 만들지 않더라도 가능은 하다는 거예요. 예를 들면 돈을 많이 버는 뮤지션이 녹색당에 매달 후원한다거나 하는 거죠. 저는 두 방식 모두를 포괄해서 말하고 싶었어요. 어떤 방식이건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경우가 적고 그러다 보니까 음악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역시 적어서, 어쨌든 좀 그런 활동들이 다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차원이었던 거였죠. 방식에 상관없이 전체적으로 늘어나면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늘어날 것이고 다른 방식으로 참여하는 경우도 늘어날 테니까요. 전제된 당위는 한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책임에 대한 부분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네요. 다만 많은 분들이 오해를 하시는데 그렇다고 해서 메시지가 있는 음악이 다 좋은 음악은 아니거든요. 물론 당연히 음악적으로 설득이 가능한 음악이어야 하는 거죠. 보시면 아시겠지만, 예를 들어서 세월호 사건을 노래로 표현했다고 해서 제가 다 좋다고 쓰진 않아요. 얼마 전에 뮤지션 유니온에서 만든 세월호 음반이 있었는데 그걸 듣고 제가 아쉽다는 표현을 썼어요. 칭찬을 별로 안 했어요. 음악이 음악으로서 존립을 하려면 음악적으로 설득이 가능해야죠. 공감이 가능해야 하고 그게 안 되면 소비에트 식의 앙상한 이념만 있는 예술이 되어버리는 거겠죠. 그래서 음악은 사회적 컨텍스트 내지는 어떤 식으로든 순기능을 하는 매체로 남아있어야 하는 동시에, 음악다워야겠죠. 그래야 순기능을 할 수 있다고 봐요. 그게 아니면 순기능을 못하죠. 감동이 전혀 없으니까요. 그게 예술의 당위라면 당위겠죠. 제가 메시지가 있는 음악이면 무조건 다 좋다고 말하는 사람인 줄 아시는 분들이 계신 것 같은데 절대 그렇지 않거든요. 그리고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소위 말하는 민중가요들도 굉장히 노래가 많은데 그중에서 대중에게 사랑받고 인기를 얻은 건 음악다운 곡들이에요. 음악다운 음악이 되지 못한 곡들은 묻혀버렸어요. 아무리 가사가 세고 사회과학적으로 맞는 말을 하더라도 다 묻혀버렸거든요. 실제로 음악이 음악다운 것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죠. 비평이 해야 할 일은, 비평을 비평답게 하는 것 전: 조금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서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정치적인 부분 말고도 비평이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서: 그 외에 비평이 해야 할 일이라면, 비평을 비평답게 하는 거죠. 텍스트를 더 깊이 바라봐야 하는 것. 그리고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관계를 더 밀접하게 연결시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설득 가능한 또는 공감 가능한 언어로 풀어내는 것. 그것이 비평의 책무겠죠. 그리고 지금은 평론이 읽히려면 ‘평론 자체가 하나의 텍스트로 존재해야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지 않나.’ 하고 생각을 해요. 요즘 이동진 평론가나 신형철 평론가가 제일 잘 나가는 평론가잖아요. 분야를 아울러서 봤을 때요. 그 두 평론가가 왜 잘 나가고 있는지를 보면, 그 둘의 비평은 그 자체로 하나의 텍스트처럼 재미있어요. 가독성이 굉장히 높고, 문학적이에요. 모든 평론이 그럴 필요는 없지만, 그런 평론이 사랑받는다고 하는 것은 ‘방법론적으로 그런 방법을 채택할 필요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해요.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그 둘처럼 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에 대해서도 누군가는 좀 더 고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누군가는 지고지순하게 옛날 방법 그대로 한다면 또 다른 누군가는 이렇게 잘 읽힐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써내는 것도 나쁘진 않다는 생각이에요. 다만 그렇다고 해서 둘 중 한쪽이 절대화되어야 한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사람이 있으면 저런 사람도 있어야 하는 거죠. 성실함이라는 매력적이고 중요한 요소 전: 제가 왜 민갑 님을 선택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하셨는데, ‘성실함’이라는 지점이 다른 비평가들과는 서정민갑 님을 구분 짓는, 되게 매력적이고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이 작업을 시작한 개인적인 이유를 말씀드리면 차우진 비평가가 전업으로서 비평을 그만두겠다고 했던 것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거든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비평가이고 잘 쓴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그만두었잖아요. 심지어 10년 이상 오래 해 온 사람조차도 끝내 버티지 못하고 떠나는 곳인 만큼 꾸준히 글을 써내고 있는 사람이 참 드물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또 민갑 님처럼 이렇게 꾸준히 해오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비평가도 등장할 수 있는 것 같고요. 서: 사실 꾸준히 쓰는 분들이야 많죠. 저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고요. 다만 제가 성실하게 보이는 건 그런 거겠죠. 안 하면 못 사니까. 근데 저도 사실 글만으로는 생계가 안 돼요. 아시지만 윤하 씨도 생계의 절반 이상은 방송국 일을 통해서 해결하실 거고, 김학선 씨도 생계의 많은 부분은 EBS 스페이스 공감 기획위원이나 온스테이지 기획위원 그리고 각종 심사 이런 걸로 버티는 거죠. 저도 마찬가지로 강의, 심사, 음악 관련된 연구, 이런 걸로 글 쓰는 것보다 돈을 더 많이 벌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많이 버는 건 아니지만 비중이 그렇다는 이야기에요. 이렇게 다른 일들이 있어서 먹고 사는 건데요. 그러다 보니 기본적으로 성실하려고 노력을 할 수밖에 없죠. 책도 많이 읽으려고 노력하고, 공연도 많이 보려고 노력하고, 음악도 많이 들으려고 노력하는데 그걸 토대로 글을 많이 쓰려고 노력하죠. 그건 직업적으로 당연히 갖춰야 할 성실성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실할 수 있는 것은 어쨌든 제 글을 좋게 봐주거나 저라는 인간 자체를 나쁘지 않게 봐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일이 들어오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성실할 수 있는 것도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무리 음악 많이 듣고 글 열심히 블로그에 써도 돈이 안 되면 저는 그만둬야 하잖아요. 현실적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속된 말로 금수저가 아니면 성실할 수밖에 없죠. 대한 씨가 절 잘 모르셔서 그럴 수도 있는데 제가 캐릭터적으로 성실하긴 해요. 근데 그거하곤 좀 다른 이야기를 하셔서 말씀드리는데 이 판에 있는 누구나 다 성실하다고 생각해요. 민중의 소리와 미디어 오늘에 일주일에 한 번씩 글을 쓰는 것도 그렇게 써야지 제가 의견가로서 명함을 내밀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게 아니면 매체에 쓰는 게 별로 없으니까요. 그리고 평론가라면 당연히 현장 비평을 해야죠. 현장 비평도 안 하고 심사만 다니면 그게 평론가에요? 그냥 꼰대지.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기회를 주는 매체에 대단히 감사해요. 제 글에 대한 오더나 니즈가 없으면 그때 그만둬야겠죠. 내 글의 약발이 떨어졌구나 생각하면서, ‘사회적으로도 더 이상 나를 찾지 않는구나.’ 하면서.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이와 같이 들었소 전: 마지막 질문을 드릴게요. 비평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서: (웃음) 아, 이런 질문 별로인데. 전: 그러면 왜 굳이 대중음악 비평을 하고 계신 건지를 말씀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서: 저는 성격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옳고 그름을 따지고. 비평을 하게 된 이유를 생각해보면 텍스트에 대해서 자기주장을 가지고 단언하듯이 이야기하는 게 매력적으로 보였던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게 되게 멋있어 보였던 것 같아요. 텍스트를 만든 사람도 멋있지만, 비평은 그 속의 뭔가를 꿰뚫어 보인다고 해야 하나. 그게 너무 멋있어 보였던 것 같아요. 동경했던 것 같은데. 제가 평론을 하는 이유도 그런 것 같아요. 밝혀주는 것. 이 작품이 어떠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고 있고, 그 이야기를 어떻게 하고 있는데, 그것이 현재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고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밝혀주는 것. 마치 소 발골하는 사람처럼 정말 꼼꼼히 발골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보여주는 것. 그래서 길잡이가 되기도 하고, 뛰어난 감식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정받는 것. 이런 부분들에 대한 욕망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그런 부분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안 하고 기계적으로 쓰지만요. 실제로 그렇죠. 평론이라고 하는 것은 텍스트가 말하는 것 그 이상을 말하거나 텍스트가 말한 것을 최대한 정확하게 해설해주는 그런 역할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런 역할을 잘 해내고 싶어서 제가 계속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비평은 비평으로서 작품이 말하지 않은 것까지도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요즘은. 저를 드러내는 거겠죠. 저의 생각과 저의 취향을. 요새는 그쪽으로 관심이 더 많이 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긴 하네요. 음악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 나를 들키는 행위라고 생각하거든요. 음악을 듣는다는 것이 말이에요. 근데 비평을 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로 저의 관점과 안목과 수준과 취향을 드러내는 행위가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불교에서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나는 이와 같이 들었소.” 저는 그 말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저는 결국 비평도 여시아문이라는 생각을 해요.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이 음악을, 그거죠. 하지만 또 다른 비평가는 그만의 여시아문이 있겠죠. 비평은 그런 게 아닌가 생각이 들고요. 그래도 ‘제가 좀 더 깊이 있게, 그리고 좀 더 매력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은 해요. 제가 잘하고 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요. * Archiview 소개 저희는 출판 프로젝트팀 ‘아카이뷰(Archivew)’입니다. 아카이뷰는 Archive와 View의 합성입니다. 저희만의 시선을 담은 기록을 출판합니다. 저희는 가치 있지만 그 가치를 주목받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디자인을 하고 있습니다. 관련 사이트 『크리틱스 레코드 2』텀블벅 후원 페이지 https://www.tumblbug.com/criticsrecord2 Leave a Reply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CommentName* Email* Website 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