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프로젝트 팀 아카이뷰(Archiview)와 음악웹진 [weiv]의 콜라보레이션, [Critics Record X weiv]. 『크리틱스 레코드 2』가 출간되기 전, 전체 인터뷰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해 미리 선보인다. 일곱 번째 순서는 차우진 평론가다. [weiv]를 계속 봐 왔던 이들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을 이름이다. | 정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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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ritics Record X weiv 007. 차우진
2016년 6월 19일 수요일
홍대 Coalmine

Interviewed by 전대한
Photographed by 김이현
Designed by 송진경
Edited by 우주언

중견 비평가라는 포지션

전대한 (이하 전): 99년부터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비평을 해 오셨잖아요.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중견 비평가라는 말이 어울리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포토그래퍼 형이 조금 전에 우진 님 처음 보고선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처음 뵀는데도 되게 장난스러움이 묻어 나오는 사람인 것 같다고요. (웃음) 경력에 비해서 아직도 그런 느낌이 되게 강한 것 같아요. 질문드리고 싶은 것은, 본인이 스스로가 이제는 ‘내가 중견 비평가구나.’하는 인식이 들 때가 있으시냐는 거예요. ‘내가 이제는 중견 비평가가 되었구나.’하는.

차우진 (이하 차): 그건 약간 아이러니 같은 건데, 대략 2001~2002년에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제가 어느 정도 포지션이 됐고, 새로 나오는 친구들이 있는 상황이니까요. 그러면 저는 이 친구들에게 뭔가를 해주거나 조언을 하거나 판을 만들어주거나 하는 그런 역할인 거 같고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스스로 되게 움츠려들었어요.

 

나는 너네랑 경쟁할 거야

전: 우진 님이 글을 쓰실 때요?

차: 네, 글을 쓰거나 뭘 하려고 할 때요. 그런데 지금은 조금 바뀐 게 있어요. 그냥 그렇게 소위 말하는 뒷방 늙은이처럼 뒤에 빠져서 하는 건 저한테 중요한 게 아닌 거 같아요. 그건 내가 이 판에서 그 정도의 역할만을 할 수밖에 없거나 정말 내가 그 정도의 위치가 되었을 때의 이야기에요. 사실 이 판이라는 것도 정의하기가 되게 모호하긴 해요. 글을 쓴다거나 비평을 한다거나 기획을 한다거나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 판’이라고 일컬어지는데, 그렇게 정의할 만큼 시장이나 산업 같은 게 성숙한가를 물어보면 그건 또 아닌 거 같거든요. 아무튼, ‘여기에서 내가 무언가 판을 짠다거나 시장에 영향을 미칠 만큼 조언을 해줄 수 있나.’ 하는 의문이 있어요. 오히려 ‘그건 아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더 많이 들죠.

저한테 중요한 건 소위 말하는 플레이어 같은 게 되는 일이에요. 거기에서 저조차도 새로운 경험들을 해나가는 게 되게 중요한 절차인데, 플레이어로서의 제 정체성과 뒷방 늙은이 같은 역할을 동시에 반반씩 유지해나가기에는 저는 그럴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사실 어릴 때부터 ‘나는 나이 먹으면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하고 많이 생각했거든요. 그걸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젊은 친구들과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잘할 것인가.’ 에요. 제가 스물 몇 살 때 사십 대의 아저씨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되게 답답해했어요.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아저씨가 되면 나도 저렇게 되겠지. 하지만 저걸 최소화하고 싶다.’라는 생각도 했어요. 나아가서 제가 나이가 들어서 저렇게 아저씨가 되어 후배들도 있고 제자들도 있을 때, ‘그 친구들과 뭔가 재미있는 것을 하면 되게 좋겠다.’ 하는 생각이 저한테 엄청 중요했고요. 지금 돌이켜보면 계속 되게 헷갈렸었어요. 어느 순간 30대 후반이 되고 마흔이 넘고 하면서 제대로 커뮤니케이션한다는 건 무엇일까를 많이 고민했어요. 처음에는 다 들어주는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잘 들어주고, ‘그래그래.’ 해주고, ‘앞으로 열심히 해! 파이팅!’ 해주는 거라고요.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것도 아닌 거 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지적하고 꼰대질하는 건 더 아닌 거 같고요. ‘그럼 뭘까?’라고 묻게 되는 거죠.

그래서 최근에 든 생각은 제대로 커뮤니케이션한다는 건 이것저것 다 떼고 ‘네 취향과 내 취향 사이에는 위계가 없어야 하고, 마찬가지로 내 경험과 네 경험도 동일선상에 놓고 봐야 해.’라는 생각을 기반으로 소통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대신 시간에 의한 것들은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서로 잘 듣고 해야겠죠. 그래서 제대로 커뮤니케이션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친구가 되거나 같은 필드에서 경쟁하는 구도가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나는 너네랑 경쟁할 거야.” (웃음) 저는 진짜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웃음) 얼마 전에 그 생각하면서 속이 후련해지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시발, 좆 됐다.’ 하고 생각했어요. (웃음) 왜냐하면 아까 말했듯이 지금의 20대는 훨씬 더 똑똑하거든요. 요즘 나오는 친구들 진짜 똑똑해요. 논리력이나 언어 능력까지 정말 뛰어나요. 그래서 저 같은 사람이 쫓아가는 게 진짜 힘들어요. 그런데 그런 친구들이랑 제가 경쟁을 한다고 생각하면 이건 그냥 망한 거죠. 그러니까 저는 되게 분발해야 하고 더 열심히 해야 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어떤 판을 만들 기회가 있으면 거기에 대한 씨 또래들을 끌어들여서 같이 뭔가를 할 거예요. 거기엔 ‘좋은’ 사람들이 필요한 거죠. 정말 잘하는 사람들. 잘하는 사람이 저와 같이 뭔가를 하는 걸 계기로 더 잘하게 되는 게 중요해요.

 

내 옆에 근사한 애들이 있으면 좋겠어

전: 이렇게 이야기를 직접 해주시니까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이 사람이 막 씬에 진입하는 20대 초반의 우리랑 같이 뭘 하고 싶어 하는구나.’ 하고요. 근데 솔직히 말하면 처음 진입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그렇게 보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처음 시작하는 사람 입장에서 우진 님을 보면 이 판에 예전부터 계속 있었던 사람이니까 ‘내가 이 사람을 이겨야 한다.’ 혹은 ‘이 사람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이 판 자체가, 비평한다는 것 자체가 지속가능성이 확률적으로 매우 낮잖아요. 사실 그게 가장 큰 문제겠죠. 여기에 들어오지 않는 이유의 8할은 그거 같은데 근데 어느 정도 감수하고 오겠다는 사람들마저 떨어져 나가는 건, ‘내가 차우진, 미묘, 김윤하, 서정민갑 같은 사람들과 경쟁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에서 오는 것 같아요.

차: 근데 이걸 그렇게 경쟁 구도로 생각을 하면 되게 답이 안 나오는 것도 있는 거니까요. 오히려 우리를 써먹어야죠. 저 사람들을 밟고 가겠다는 생각을 해야 하는 거니까, 최대한 써먹어야 해요.

전: (웃음)

차: 웃을 게 아니라 진짜 그게 맞아요. 이게 각각의 비평가들이 다이다이로 경쟁하는 구도라고 쳐요. 그러면 대한 씨하고 저하고 다이다이를 떠야 해요. 이를테면, 대한 씨한테 여긴 블럭이나 저 같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잖아요. 제 선배들도 있고요. 이미 이 사람들은 거기서 자기들끼리 잘하고 있어요. 근데 대한 씨는 계속 이 사람들을 의식하고 있는 거죠. 이 사람들을 이기고 싶고, 이 사람들에게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고, 자신만의 팬을 만들고 싶을 거예요. 어느 정도 그렇게 됐다고 쳐요. 하지만 어떤 면에서 대한 씨는 깨달아요. 대한 씨는 이 사람들과 경쟁하는 게 아니에요. 필드가 달라요. 경험도 다르고 지향도 다르고요. 결과적으로 경쟁 자체가 성립이 안 되는 거죠. 대신 ‘서로 어떻게 각자 자기 장점을 가지고 무언가를 할까.’ 하는 문제인 거예요. 각자의 장점을 가지고 해나가는 거거든요.

물론 말로 쪼개가며 풀어서 설명하면 이런데, 실제로는 믿을만한 사람들을 자기 옆에다 둔다고 생각하게 돼요. 신뢰할만한 사람들과 같이 있자는 거죠. 항상 그렇잖아요. 자기 자신이 제일 똑똑하고 제일 근사하다고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되게 근사하고 똑똑한 애들이랑 같이 있으면 자신도 자연스레 근사하거나 똑똑한 사람이 되잖아요? 그런데 그러려면 걔는 정말 누가 봐도 똑똑하거나 근사하거나 해야만 해요. 혹은 되게 쿨하거나 힙하거나. 심지어 그런 애들이 드글드글 해야 하거든요. 그냥 어중간한 애들끼리 모여 있는 것보다 이왕이면 그런 애들이랑 같이 있는 게 좋은 거죠. 그때, 걔네랑 저랑 친해져야 하는데, 잘 생각해보면 걔네도 저랑 똑같이 생각할 거 아녜요? 걔네도 ‘내 옆에 좀 근사한 애들이 있으면 좋겠어.’하고 말이에요. 결국 제가 근사해지면 되는 거예요.

 

중요한 건 내가 어떻게 경험하느냐

전: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면, 저희 세대는 이미 ‘산업화’가 다 된 이후에 무언가를 접했어요. 그게 비평이건 음악이건 영화건 혹은 다른 무엇이건 말이에요. 홍대라는 판 자체가 문화 산업의 한 축이 된 이후에 접하게 된 세대니까 지금 상황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그건 저희가 태어나기 전부터, 다시 말하면 원래부터 그랬던 거니까요. 그래서 X세대라는 윗세대에 대한 반감을 갖고 그들을 꼰대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그 사람들은 홍대라는 씬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과정을 모두 지켜봐 왔고, 더 나아가서 홍대라는 씬을 본인들이 만들어냈다는 일종의 자부심 같은 것도 있는 것 같거든요. 자부심까지는 아니더라도 자기 삶의 일부 혹은 일상적인 경험의 일환이라서 비교적 익숙하니까요. 그러나 저희 세대는 완전히 다르죠. 일부러 찾아봐야 하고, 의도적으로 소비하지 않는 이상 이 씬의 산물들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어요. 그러다 보니까 이런 지점에서 저희 세대의 비평에 대한 태도나 소비하는 태도, 이 판에 대한 마음가짐 같은 것들이 이전 세대들과 차별화되는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차: 그러니까 제 생각은 이런 거예요. 옛날에 웨이브에서 비틀스 특집을 할 때, 저한테 비틀스 리뷰를 쓰라고 했어요. 근데 전 솔직히 비틀스 잘 몰라요. (웃음) 이렇게 말하면 아마 사람들이 다 저 욕할걸요? 그렇지만 전 정말 비틀스 잘 모르고, 심지어 50~60년대 음악도 잘 몰라요. 그것들은 그냥 다 글로 배운 거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 영국에서 어쩌고저쩌고, 이런 걸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그걸 이미 정리한 사람들의 글을 보고 한 거니까 사실 그 사람들의 관점을 내재화한 것뿐이잖아요. “비틀스 대단해!”라는 건 내재화된 거예요, 각자가 판단한 게 아니라. 이미 검증이 되었으니까요. 사실 거기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필요는 없죠. 비틀스가 대단한 건 사실이니까요. 근데 거기서 발생하는 고민은 이런 거죠. ‘왜 동시대의 음악이 아니라 예전의 음악에 집중하냐.’는 것. 동시대의 음악이 중요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데, 동시대가 중요하다면 적어도 비틀스에 대한 해석이 동시대적이어야 하는 거잖아요. 그게 중요한 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냥 “비틀스 1집은 이렇고 저렇고 해.”라고 말하는 것, 비틀스 디스코그래피 읊으면서 이야기하는 건 정말 의미가 없어요. 자신이 지금 2016년 홍대 콜마인 카페에서 비틀즈를 듣는 감각이 중요한 거죠. 그게 진짜 중요한 거예요.

그러니까 아까 이야기하던 것처럼 제 또래의 아저씨들이 “홍대는 이래야 해, 인디는 저랬어.”라고 말하는 건 대한 씨한테는 다 소용없어요. 대한 씨 입장에서는 “됐고요, 제가 이해하는 홍대는 ~ 예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거죠. 물론 역사적인 맥락은 앞뒤 전후 관계가 다르니까 달라질 수 있어요. 감수성이라는 것은 일종의 감각이거든요. 그 시대의 감각, 그 시대의 감수성이라는 게 따로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같은 시공간을 점유하고 있다고 해도, 각자가 보고 듣는 게 달라요. 아는 만큼 보이기도 하고 겪어 온 경험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감각도 다르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거죠. 또 정답이 없는 거고. 이를테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그 감각을 서술하거나 설명하고 묘사할 때 쓰는 단어나 문장이나 구성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나의 감각이 항상 기본이 되어야 한다.

전: 그런데 우진 님 세대의 많은 분이 관습적으로 그리고 관성적으로 글을 쓰고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요. 지금 막 홍대에서 소비를 하고 홍대를 굴려 나가는 20대들이 지금의 비평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X세대가 만들어내는 담론들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거든요. 그 세대 자체적으로 홍대를 현재화하는 것이라면 이건 세대가 다르니까 그럴 수밖에 없겠다고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 과거에 대한 향수나 기성의 산물들을 토대로 새로 나오는 것들을 판단하려고 하는 태도가 눈에 보여서 불만이기도 하고요.

차: 그게 대한 씨 세대의 입장인 거죠. 근데 이런 생각은 있어요. 세대론을 이야기할 때 함정은 세대가 인위적인 구분이라는 거예요. 실제로 거기 속한 사람들은 자신이 그 세대에 속한다는 자각이나 정체성을 가지고 활동하지 않아요. 그냥 자신이 중요한 거죠. 거기에 집중해야 하는 것 같아요. ‘나’에 대해서.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묘사하고 어떤 결과를 낼 거냐.’ 하는 문제인 거라고 생각해요. 이건 작가도 마찬가지이고 기획을 해도 마찬가지고 일을 해도 마찬가지에요. 어떤 분야이건 자기 감각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저는 여기에 대해서 좀 확신에 가깝게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자신의 감각이 항상 기본이 되어야 하고 그 감각에서 모든 게 나와야 한다고 봐요.

그러면 ‘아! 얘 감각을 보니까 얘는 X세대야’가 아니라 ‘X세대로 통칭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의 감각은 이런 식이구나’ 해야 하는 거죠. X세대라고 불리는 사람들 전부 모아놓고 ‘너네 X세대야.’라고 말하면 엄청 싫어할 거예요. 왜냐하면 그들은 결국 ‘난 나야!’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웃음)

마찬가지로 “전대한”이라는 친구가 있으면 이 친구가 자신의 감각에 집중하는 게 중요한 거죠. 그 감각을 어떻게 드러내고 표현할 것인가, 거기에서 차별화되는 지점이 생기는 거예요. 그건 되게 자연스러운 일이잖아요, 일시적인 게 아니라. 이번에 인터뷰 때문에 제가 쓴 글에 대해서 대한 씨가 다시 정리해서 주고 그러면서 되게 웃기고 재미있었어요. ‘아, 이렇게도 읽을 수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웃음) 그리고 ‘기분 나빠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읽었어요. (웃음) 여튼 저한테 중요한 건 그렇게 써 준 대한 씨의 글이 아니라 대한 씨가 써준 것을 읽고 느낀 제 감각이에요. 이게 뭔가 설명할 수 없는, 뭔가 아리까리한 감정이긴 해요. 또 한편으로는 되게 뿌듯하고 기뻐요. 그리고 내용을 보면서 ‘얘는 이걸 이렇게 해석을 하는구나’ 싶기도 했고요. 근데 그게 ‘내가 생각한 건 아닌데’ 싶기도 했거든요. 이건 ‘내가 설명을 더 해야 하나’ 하는 고민도 생기고요. 그러면서 다시 돌아보게 되었어요. ‘내가 잘 못 썼나? 내가 너무 나의 언어로만 정리하는 건가? 내 글이 보편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렇게 오는 제 복잡한 감각들과 흐름이 있잖아요. 그게 저한테는 훨씬 더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이런 과정이 되게 의미가 있는 건, 이런 과정에서 ‘내가 너한테 이런 역할을 했어.’ 가 아니라 오히려 이 상황 자체가 저한테 자극을 주는 무언가가 있어서에요. 그것을 제대로 들여다봐야만 하고, 그것을 제 자산이자 양분으로 삼아야 해요.

 

역할 VS 위치

전: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말을 하셨지만 어떻게 보면 비평가 스스로 자기가 하는 비평에 대해서, 더 넓게는 비평의 위치나 역할에 대해서 고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와도 일맥상통하는 거네요?

차: ‘비평이 필요하냐.’는 질문의 발단은 ‘왜 사람들이 비평에 관심이 없을까.’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건 포지션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대답해야 할 것 같아요. 90년대와 지금은 비평의 역할이나 실제로 수행하고 있는 기능 같은 것들이 달라졌다는 거죠. 그리고 담론을 만드는 일이, 이건 음악뿐만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예전 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 잠깐이긴 했지만, 학계와 현장이 좀 겹쳐지던 때가 있었어요. 물론 아주 대중적이진 않았지만, 지금보다는 더 대중적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게 없어졌어요. 흐릿해지고 고리가 약해진 거 같은데 그 이유를 찾자면 비평의 포지션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봐요.

이건 결국 다시 ‘나’에 대한 이야기인데, 아까 처음에 했던 말 중에 중견 비평가라는 말을 하면서 저한테 제가 해야 할 역할을 물어봤잖아요. 그 질문을 받고 생각했던 것들인데, 제가 진짜 ‘이 정도’의 급이라고 칩시다. 그러면 사람들에게는 ‘이 정도’의 급인 인물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들과 역할들이 있어요. 그렇게 되면 저는 또 당연히 이렇게 생각하겠죠. ‘내가 이 정도의 급인데 그러면 좀 후배들 딱 모아서 뭔가를 하고 해야 하지 않나? 또 나한테는 발언권이라는 것도 있는데 그러면 말할 때 좀 조심하면서 비전도 제시하고 해야 하지 않나?’ 하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을 하는 제가 너무 우스워요. ‘그걸 왜 해?’ 싶은 거죠. 결국 중요한 건 역할에 집중하면 중요한 걸 놓치는 거 같아요. 역할에 집중할수록 좁게만 보기 때문에 이상해질 수 있어요. 반면에 위치는 계속해서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가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이 보이고, 하면 안 되는 것도 보여요.

그러니까 역할보다 위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위치는 상호적인 개념이고 역할은 고정적인 개념이라고 할 때, 항상 관계성에 의해서 포지션이 바뀌는 거니까요. 이 컵을 봐요. 얘는 여기에서는 무언가를 담는 역할인데 바다에 던져 놓으면 쓰레기가 돼요. 어디에 놓이느냐에 따라서 정체성이 달라지는 거죠. 그래서 포지션이 다른 무엇보다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비평은 더듬거리는 것

전: 마지막 질문을 드릴게요. 비평은 무엇일까요? 혹은 비평가는 무얼 하는 사람일까요? 다들 이 질문을 좀 싫어하시더라고요.

차: 어려운 질문이니까요. 저한테 비평은……. (한숨) 저한테 비평은 더듬거리는 거예요. 책에도 썼었어요. 잘 더듬거리는 것이 좋은 비평이라고 생각해요. 이건 미묘가 했던 말이랑 비슷할 텐데, 비평은 거대한 무언가가 있는데 그것을 계속 더듬더듬하는 거 같아요. 그렇게 더듬더듬해서 ‘이건 어떻고 저건 저렇다.’라고 설명을 하고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비평은 어차피 창작자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없어요. 결과를 보고 유추하는 거니까요. 그게 미학적인 관점의 것일 수도 있고 의도를 파악하는 것일 수도 있고 산업적인 측면의 것일 수도 있어요.

이미 나온 결과물에 대해서 이 결과가 왜 이렇게 나왔나를 이야기하는 거니까요. 그래서 저는 비평은 항상 실패할 것이라고 말해요. 더듬거리는 거니까 그럴 수밖에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더듬거리는 게 중요하겠죠.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비평을 할 때 우리는 어떤 대상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 대상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이 그 대상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과정을 보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중요한 거예요. 이를테면 f(x)의 신곡에 관해서 이야기한다면 f(x)의 신곡과 저의 관계나 SM과 저의 관계가 중요한 게 전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걸 보고 있는 어떤 불특정 다수의 사람과 저의 관계가 중요한 거죠. 그게 독자라고 한다면 그 사람들한테 어떤 인사이트를 주느냐가 비평가의 미션인거예요. 어떤 인사이트를 주기 위해서 우리는 보다 잘 더듬거려야 해요. 어차피 우리 모두는 장님이니까요. 어차피 장님이고 어차피 더듬거려야만 한다면, 비평가는 조금이라도 더 잘 더듬거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 그게 비평인 거 같아요. 비평가의 역할도 결국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어떤 인사이트를 줄 수 있느냐.’인 거 같고요.

전: 다시 말하면 객관적인 판단이나 분석을 제공하자는 것이 아니라 객관화할 수 있는 지점에 관해 이야기를 하자는 거네요.

차: 객관성이라기보다는 보편성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보편적인 지점에 관해서 이야기해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보편적인 감각, 보편적인 경험 같은 것. 그게 대중성 같은 개념이 될 수도 있겠고요. 이런 지점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들이 공감을 얻는 과정도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비평은 사실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 거 같아요. 하나는 “됐고! 나에겐 내가 배우고 익힌 절대적 관점이 있어. 그래서 이 관점에 비추었을 때 이 결과물은 좋고, 저 결과물은 나빠.”하는 식의 비평. 또 다른 한쪽은 “이건 지금 그냥 이러저러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거 같고 나도 이게 지금 좋아.”하는 식의 비평인 거 같은데, 저는 후자에 가까운 거 같아요.

전: 가이드에 가까운 사람을 의미하시는 건가요?

차: 네, 저는 가이드라거나 해설가 같은 사람인 거고요. 그런데 가장 좋은 해설가는 실제 선수로 뛰었던 사람들이잖아요, 스포츠 해설가 같은 경우를 보면. 그 기준에서 저는 약간 수준 미달인 거죠. 그래서 저는 제 자리와 역할을 새로 찾겠다고 말해요. 그게 제 숙제인 거 같아요.

 

* Archiview 소개
저희는 출판 프로젝트팀 ‘아카이뷰(Archivew)’입니다.
아카이뷰는 Archive와 View의 합성입니다. 저희만의 시선을 담은 기록을 출판합니다. 저희는 가치 있지만 그 가치를 주목받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디자인을 하고 있습니다.

관련 사이트
『크리틱스 레코드 2』텀블벅 후원 페이지 https://www.tumblbug.com/criticsrecord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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