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한

vi34io43hni35h백예린
“Zero”
(JYP Entertainment)

‘나’를 화자로 세우는 1인칭은 작품 속 화자를 아티스트로 착각하도록 하는 훌륭한 트릭이며, 동시에 듣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를 화자와 동일시하도록 만드는 매력적인 장치이다. 그래서 1인칭의 ‘나’를 좇다보면, 우리는 어느새 작품 속 화자가 되고 또 아티스트 본인이 된다. 그렇게 1인칭은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허물어버리고, 끝내 우리로 하여금 음악이 담고 있는 매력적인 세계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도록 한다.

백예린은 음악에서 1인칭을 잘 구현해내는 뮤지션이고, 그 중에서도 “Zero”는 특히 더 주목해야 할 곡이다. 백예린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듣는 이를 집중시키고, 동시에 깔끔한 고음 처리는 듣는 이를 편안하게 만들어, 노래가 담고 있는 이야기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준다. 또한 말하듯이 노래하는 방식은 그녀가 ‘나’의 이야기를 한다는 인상을 한가득 안겨준다. 그리고 보컬의 뒤에서 과하지 않게 받쳐주는 피아노와 종종 터져 나오는 기타 리프는 ‘나’의 이야기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이때의 ‘나’는 노래 속 화자일 수도, 듣는 이일 수도, 어쩌면 백예린 자신일 수도 있다. 다양한 측면에서 훌륭하게 구현된 1인칭은 모호함을 가져오는데, 이 모호함으로 인해 우리는 “Zero”를 ‘나’ (화자)의 이야기이자 ‘나’ (백예린)의 이야기이고 ‘나’ (자신)의 이야기로 듣게 된다. 올해의 트랙이라면 으레 갖춰야 할, ‘실험성’이나 ‘장르 문법에 대한 충실함’, 혹은 ‘돋보이는 음악적 완성도’ 같은 덕목들은 조금 부족할지라도 이 트랙을 선정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트랙만큼 내게 ‘나’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올해의 트랙은 찾기 힘들기 때문에.

+ 그 외 트랙
전용현 “남쪽 물결 (Southern Wave)”
3호선 버터플라이 “나를 깨우네”
레드벨벳 “My Dear”
딘(DEAN) “D (Half Moon)” (Feat. 개코)
OFFONOFF “Bath”
원더걸스 “Why So Lonely”
Graye X CIFIKA “D.A.”
이랑 “가족을 찾아서”
야광토끼 “나를 잊지 말아요”
스위머스(Swiimers) “싸움(Fight)”
아슬(Aseul) “Elephants Mobile”
권나무 “사랑은 높은 곳에서 흐르지”
못 “당신의 절망을 바라는 나에게”
곽푸른하늘 “나는 니가 필요해”
오왠 “오늘”
우효 “청춘 (Day)”
레이디스 코드 “Galaxy”
티파니 “Talk”
사람12사람 “Pitch Black Night”
주영 “Lucy (Deepshower Rework)”

 

김세철

o3uhn3oihmieh씨피카 (CIFIKA)
“Intelligentsia”
(Third Culture Kids)

‘여성 음악인들은 남자친구에 관해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가 되도록 허락받았다. [그러나] 만약 주제를 바꿔 원자, 은하계, 정치적 행동, 따분하고 수학적인 비트 편집을 논한다면 이들은 비판받을 것이다. (…) 마치 여성들의 언어는 감성뿐이라는 듯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비욕(Björk)의 글이다. 20년 넘게 전자음악을 해온 비욕조차 디제잉을 하거나 비트를 직접 만든다고 하면 의심부터 받는다. 기술과 여성을 떼어놓으려는 성차별 때문이다. 이러한 편견에 애호가는 반례들로 맞선다. 훌륭한 여성 음악가들의 이름을 발굴해 자꾸 들이민다. 한국에서도 하임(Haihm)이나 키라라(Kirara) 등의 이름을 꼽아볼 수 있었고, 이제 그 목록에 씨피카의 이름이 더해질 차례다.

산울림의 “청춘”을 커버한 곡으로 씨피카를 처음 접했다. 울림이 큰 전자건반, 피치를 높이거나 낮춘 보컬 샘플이 빚는 분위기는 사운드클라우드 씬의 흐름과 어울렸다. 무엇보다도 ‘응답하라 1988’로 주목받던 곡을 재빨리 고른 영민함이 좋았다. 유행들을 섞은 뒤에 자기 색을 덧입히겠다는 자신감이 좋았다. 첫 EP [Intelligentsia]에 이르자 씨피카는 고유함으로 유행을 압도한다. 여러 프로듀서와 장르를 끌어들이면서도 스산한 정서와 독특한 가창으로 주도권을 지킨다. 무드 슐라와 만든 투스텝 “Intelligentsia”는 그중에서도 위력적이다. 자신에게 무심한 상대를 탓하는 듯하더니, 분위기를 갑자기 바꿔 ‘네 마음은 점령당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소리로도 가사로도 타협 없이 완고한 음반의 지향을 압축적으로 대변한다.

12월에 나왔으니 내년 연말결산으로 미룰 수도 있었으나 굳이 지금 골랐다. 2017년의 씨피카는 지금보다도 더 대단해지리란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무서운 기세로 위력을 키워가는 씨피카는 오직 이번에만 기록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그 외 트랙
윤상 “그게 난 슬프다”
선우정아, “그러려니”
레이디스 코드, “The Rain”
이소라,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
정미조, “미워하지 않아요”
이채언루트, “Night Drive”
3호선 버터플라이 “선물”
오마이걸 “Windy Day”
캐스커 “외계어”

 

김민영

3w93nh9853jhoi4비와이 (BewhY)
“Shalom”
(Self-released)

비와이는 2016년 한 해동안 국내 힙합씬에서 가장 대표적이고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아티스트다. 그런 점에서 “Shalom”은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자신의 목소리만큼이나 독특한 발성과 발음, 맛깔나게 끊어치는 랩 플로우로 국내 힙합음악의 트렌드가 되었다는 것이 하나이고, 세련된 작곡, 작사 능력을 통해 훌륭한 프로듀서이자 멀티 플레이어로서 입지를 굳혔다는 것이 다른 하나다. 전반적으로 곡의 분위기는 헤비하게 편곡된 다운비트의 트랩음악의 일종이나, 섬세하면서도 영민하게 그려내는 가사의 내용은 꽤나 자생적이다. 제목만 봐선 종교적인 찬송가가 아닌지 오해할 법도 하지만, 오히려 종교적 모티브를 통해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함과 동시에 삶에 대한 굳은 다짐을 노래하는 ‘자찬가’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Shalom”에서 기초가 된 ‘광활한 덥 베이스 라인’에 정확히 떨어지는 ‘비와이의 랩핑’은 이후 <SHOW ME THE MONEY 5>를 통해 새롭게 탄생된 “Forever”에서도 동일한 선상으로 남아, 대중적으로나 상업적으로 강력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동력이 되었다. 그런 맥락에서 “Shalom”은 전성기 비와이의 초석을 다져준 곡으로, 새로운 세대의 추종자를 만들어내는 전환점이 되었다는 점에도 크게 의심할 여지가 없다.

 

주민혁

5ouwn54oihn4oi5h김소담
“그댈 위한 노래”
(마들렌뮤직)

언더그라운드에서 소담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싱어송라이터 김소담은 2016년 4월에 싱글 “바람”으로 데뷔했다. 이어서 7월과 10월에 각각 싱글 “그댈 위한 노래”와 “내 마음 끝까지”를 발표했다. 김소담의 소속사 마들렌(소속사 이름도 그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감성과 더없이 근사한 조화를 이룬다)에서는 그의 음악을 ‘자연주의적인 음악’으로 지칭한다. 물론 마들렌에서 언급한 ‘자연주의’는 에밀 졸라(Émile Zola)를 위시한 문학에서의 자연주의와는 전혀 무관하다. 그들이 지칭한 ‘자연주의적인 음악’이라는 것은 우리가 흔히 ‘자연(自然)’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연상되는 풍경을 닮은 음악을 의미한다. 푸른 하늘에서 느긋하게 유영하는 몽글몽글한 구름, 가벼운 바람을 맞이하며 춤추듯 나불거리는 꽃잎 등의 풍경 말이다. 김소담의 데뷔 싱글 “바람”의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면,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자연’을 떠올리면 ‘소박(素朴)’이라는 단어가 연상된다. ‘소박’은 ‘꾸밈이나 거짓이 없고 수수’한 것을 일컫는 말이다. 김소담의 음악이 그렇다. “그댈 위한 노래”는 화려하거나 복잡하지 않다. 곡은 부드러운 피아노 연주로 시작된다. 이어서 김소담의 보컬이 속삭이듯 살포시 얹어진다. 곡은 중반까지 보컬과 피아노 연주로만 진행된다. 후렴부가 처음 마무리된 이후부터 차분한 첼로 연주가 더해진다. 다음으로 후렴부가 이어지고, 다정한 느낌의 브리지를 거쳐 후렴부가 다시 이어진다. 이렇듯 곡의 구성에서부터 악기 편성까지, 그야말로 소박하기 이를 데 없다.

소박한 곡은 싫증을 느끼기 쉽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한데 나는 이 노래를 처음 듣고 나서, 며칠 동안 이 노래만 반복 재생했다. 2016년 한국에서 발표된 노래 가운데 가장 빈번히 들은 노래이지만, 지루하다는 느낌이 든 적은 결코 없었다. 오후의 햇살처럼 다사로운 김소담의 보컬이 주된 원인이겠으나, 곡 전반에서 느껴지는 여백의 미에 기분 좋게 취할 수 있다. 가뜩이나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세상에서, 어디를 가나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화려한 사운드와 빽빽한 비트에 피로감을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때 한적한 곳에 앉아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황망했던 마음이 안식처를 찾은 듯할 게다. 이 노래는 자극적인 탄산음료가 아니라, 정갈한 녹차에 가깝다.

음악적 매력 못지않게 가사 역시 특기할 만하다. “그댈 위한 노래”의 가사를 음미하다 보면, 아동기에 읽은『꽃들에게 희망을 (Hope for the Flowers)』과『모모 (Momo)』가 떠오른다. 그 책들을 읽으며, 나는 절대로 기둥을 오르는 애벌레가 되거나 시간 도둑에게 시간을 빼앗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바쁜 일상에 쫓기다가 가끔씩 정신을 차려 보면, 정신없이 기둥을 오르고 있거나 시간 은행의 우수 고객이 되어버린 나를 마주하게 된다. 낯설어진 나는 “그댈 위한 노래”의 가사처럼 ‘이게 사는 건가’ 되뇐다.

숨은 붙어 있으되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벗어나, 진정 삶을 살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댈 위한 노래”의 가사처럼 ‘날 사랑하’고 ‘내게 자유를 주’어야 한다. 자유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본이 쥐고 흔드는 세상의 가치와 시선을 의식하면, 그것들에 휩쓸려 버리고 끝내 동화되기에 이른다. 지배적인 가치와 시선을 거부할 수 있는 용기를 낼 때,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게 된다. 오직 자유로운 이만이 자신을 사랑할 수 있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이만이 타자도 사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댈 위한 노래”에서 ‘그대’는 누구인가? 가사 속 화자에게는 청자가 ‘그대’이며, 청자에게는 ‘분명 따뜻’한 ‘두 눈’으로 바라보며 ‘두 팔’ 벌려 ‘안아줄’ 누군가가 ‘그대’이다. 그리하여 “그댈 위한 노래”는 사랑받지 못하는 것보다 사랑하지 못하는 것을 두렵게 여기는 모든 ‘나’와 모든 ‘그대’를 위한 노래이다.

 

이선엽

24seijg0349h5jyy허클베리피 (Huckleberry P)
“Everest”
(Hi-Lite Records)

인생을 논할 때, 마라톤을 비유로 삼는 이도 있고 윤회의 굴레를 이야기하는 이도 있다. 반면 어떤 이가 바라보기에 삶이란 에베레스트 등반과도 같은 천로역정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것이 바로 허클베리피가 “Everest”에서 이야기하는 바이다. 이번에 그는 ‘정복을 쉽사리 허락지 않는’ 꼭대기를 향한 여정 속에 있는 진중한 화자로 탈바꿈했다.

거친 바람 소리와 함께 건반이 나지막히 흘러나오고, 예전과는 사뭇 달라진 톤으로 입을 떼기 시작한다. 곡의 진행과 함께 서사와 랩핑은 그 강세를 점차 더해나가고, 더욱 풍성해지는 악기들과 조화를 맞추며 짜릿한 감동을 준다. 특히 두번째 벌스의 끝을 향해 절정으로 치닫는 식의 곡 구성은 이센스(E SENS)가 참여했던 프라이머리(Primary)의 “독”을 연상시킨다. 물론 그 효과는 비슷할지 몰라도, 전달하는 감동과 그 잔상은 엄연히 다른 맛을 내고 있다. 여정 속에서 겪는 탈진과 고독 그리고 실망감으로 번진 화자의 갈등이 이 감정선을 타고 생생하게 전해져온다. 무엇보다 이 감정선의 폭발적인 진행이 있게끔 해준 프로듀서 험버트(Humbert)의 건반 연주와 악기 배치까지 더할 나위 없이 탁월하다. 악동 이미지의 ‘랩 바다하리’로 기억되어온 허클베리피였기에, 그의 이런 낯선 모습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본 트랙이 실린 [점 EP]도 마찬가지로 듣는 내내 위로와 격려를 아낌없이 선사해주었던 작품이다.

 

20i4mgi03mg0i3jh0넉살
“밥값” (Feat. Koonta)
(VMC/Stoneship)

비록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이 격언으로 삼는 성구가 있다면 바로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일 것이다. 막스 베버가 이야기한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자본주의 정신에 깊이 스며듦을 우리는 몸소 체감하고 있다. 나태가 악이 되고 노동이 기본 도덕으로 여겨지는 사회 속에서, 넉살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를 돈벌이의 사유이자 목적이라 말한다.

무엇보다 노랫말 속에서 그가 꾸준히 강조하는 것은 유대감이다 (“일하러 가/ 너도 이 다리를 건너 일하러 가?/ 우린 참 비슷하네”). 그리고 이 유대감을 증폭시키는 지점이 바로 넉살만의 은유와 표현법이다. 이를테면 평범한 집밥과 반찬을 나열하는 가사와 “기타를 맨 사람은 악보를 몇 장 / 서류 가방 속에선 미결재 시안이 몇 장 / 떨어졌을 때 마주친 눈빛”의 장면을 묘사하는 부분을 통해 시각적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든다. 또한 엄마의 노동을 귀하게 바라보며 감사를 표하는 노랫말 속에서 앨범명인 [작은 것들의 신]의 함의를 짐작해볼 수 있다. 넉살은 사소하고 보잘 것 없이 비춰지며 당연시되어온 일상 속에서 신성을 발굴해내고 한장의 앨범 안에 가득히 담아냈다.

2016년은 너무나도 고단했던 한 해였다. 비록 삶의 방식은 다르더라도 우리는 각자 맡은 자리에서 ‘밥값’을 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이와 같은 시국과 형편 속에서, “밥값”은 시대적으로 매우 큰 의미와 여운을 남긴다.

+ 그 외 트랙
전범선과 양반들 “아래로부터의 혁명”
단편선과 선원들 “연애” (Feat. 김사월)
권진아 “끝”
루나(Luna) “Free Somebody”
딘(Dean) “D (Half Moon)” [Feat. 개코) 
이민휘 “빌린 입”
레드벨벳 “7월 7일 (One of These Nights)”
이랑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박희아

fixb985jh96j4h이소라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
(Seiren)

새삼스럽게 이런 생각을 한다. 그의 음악을 ‘기획’한다는 ‘기획사’의 이름이 세이렌(Seiren)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비록 이소라에게 기획사라는 존재가 큰 의미는 없을지라도, 앨범 크레디트에 표시된 저 한 줄마저도 우아하되 비극적인 의미가 담겨있음을 상기하면 아무래도 그렇다.

선공개한 싱글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가 가져다주는 평온함은 퀴퀴한 현실과 신비로운 음악의 선에 걸쳐있는 경계를 낮추고 안도를 불러온다. 그 가운데 슬픔에 대한 집착적인 메시지가 엿보인다면, 이는 그가 ‘그녀풍’으로 비극을 형상화한 결과물을 우리가 제대로 받아들었다는 소리다. 비극적인 순간을 노래하면서도 지중해 한가운데를 유영하는 듯한 그의 보컬은 아름다움과 고독의 공존을 상기시킨다. 어쩌면 2016년의 한국은 사랑을 노래하기엔 너무 검고 냄새나는 현실이었다. 그래서 그의 입을 통해, 또 고즈넉하게 멜로딕한 건반 소리를 따라 전해지는 ‘사랑’이라는 통속적인 단어가 주는 힘을 믿고 싶다. 혹 지금 이 순간, 당신과 나는 차라리 고통스러운 사랑에 코 박고 죽어버리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니까.

이토록 순간에의 망각을 불러오는 이소라의 목소리는 여전히 초현실적이다. 지난 2014년에 들려준 <8>에서처럼, 가던 길을 잊게 만들 정도로. 계산된 로직 없이 자신의 무비판적인 사랑(애정이 아니라 더 흔하고 뻔한 ‘사랑’)을 이 이상으로 신비롭게 설명할 수 있을까. 경외를 보낸다. 가파른 절벽과 억센 암초들 사이를 건너가다 문득 홀리더라도, 키를 잃고 헤매다 어느새 난파라는 비극을 맞이해도 어쩔 수 없다. 아름다운 세이렌의 노래를 멈추게 할 방도가 없다.

 

나원영

se0j09y5j094j언니네 이발관
“혼자 추는 춤”
(블루보이)

2016년은 안 좋은 의미에서 무척이나 다사다난했던 해로 기억될 것이다. 그런 2016년이 시작되기 직전, 두 곡의 노래로 오랜만에 찾아온 언니네 이발관은 [가장 보통의 존재]로 가 닿은 장소에서 다시금 새로운 발걸음을 (지금도 느리긴 하지만) 산들산들 시작했다. 그 첫 발걸음으로써 “혼자 추는 춤”은 무척이나 훌륭하며, 노래에 담긴 이야기들은 어떻게 보면 2016년의 예고편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일단 그 이야기들을 잠시 밀어두고 언니네 이발관의 지난 행보와 엮어서 보자면, “혼자 추는 춤”은 [가장 보통의 존재]의 미니멀하고 완벽주의적인 기타 팝을 이어간다. 음반에서도 가장 빛나는 “아름다운 것”과 비슷하게도 반복적인 리프와 변주를 통해 깔끔하면서도 긴장감 잃지 않는 구성은 세밀한 결과 빽빽한 질감의 연주와 함께 다가온다. 이석원의 여지없이 깔끔한 멜로디와 ‘큰 그림’의 힘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곡이 진행될수록 조금씩 쌓여가며 세밀한 공간감을 형성하는 이능룡의 짙은 기타 톤과 그 사이사이에서 박자를 함께 쌓으며 기조를 받춰주는 전대정의 드럼의 힘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혼자 추는 춤”은 [가장 보통의 존재]의 강점들을 끌고 와 현재에 맞춰 조금 더 깔끔하게 재단했다. 그 소리는 지금도 유효하고, 여전히 독보적이다.

의미적으로 보자면 “혼자 추는 춤”은 이전의 언니네 이발관이 닿지 못했던 곳의 이야기를 한다. 그 때문에 “혼자 추는 춤”은 2015년 12월에 나왔음에도 2016년의 노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보통의 존재]에 담긴 이야기를 지나가며 ‘인생은 금물 함부로 태어나지는 마’라고 읊었던 언니네 이발관(혹은 이석원)은 조금씩 변했다. “혼자 추는 춤”은 여태까지 언니네 이발관의 노랫말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왜 이따위니 세상이’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여전히 일상적인 동시에 날카로운 이석원의 노랫말은 자신과 그 주위에 향해있던 시선을 ‘이따위’인 세상으로 옮기며, 사람들을 쳐다보는 ‘썩은 눈’과 모두가 외롭게 살아가는 이곳에 너무도 많은 ‘슬픈 일’을 목격한다. 타인과 더불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 모든 ‘가장 보통의 존재’들로 확장된 시선은 이윽고 ‘작은 희망들이 있는 곳’과 ‘누구도 포기 않는 곳’, 그리고 ‘다함께 몸을 흔들며 / 노래하고 춤추며’ 살 수 있는 곳에 대한 소박하지만 담대한 바람으로 바뀐다. 스스로와 삶에 대한 끝없는 냉소에서 출발해 차가운 세상에 대한 따스한 연민으로 서서히 바뀌는 그 노랫말은, 어떻게 보면 거대한 변화다.

그런 점에 있어서 “혼자 추는 춤”은 2014년 4월 16일과 이를 포함한 모든 ‘슬픈 일’들의 연장선에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노래고, 그 수많은 ‘슬픈 일’들이 버틸 수 없이 많아져버린 2016년의 노래다. 이 모든 슬픈 일들과, 죽음들과,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작은 희망을 꿈꾸고 그 작은 희망들이 가득한 세상을 바라기 시작한 언니네 이발관은 여전히 섬세하고 완벽한, 가장 보통의 말을 통해 가장 보통의 사람들에게 닿는 가장 보통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 보통의 모든 것들이 어느 하나도 빠짐없이 춤을 출 수 있기를, 사라지거나, 슬퍼하거나, 죽어가지 않기를 꿈꾸는 작은 희망이 힘겨운 해를 빠져나온 지금 여기에 가장 필요할 것이다.

+ 그 외 트랙
3호선 버터플라이 “선물”
실리카겔 “두 개의 달”
이랑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김창완밴드 “시간”
전범선과 양반들 “아래로부터의 혁명”
잠비나이 “그들은 말이 없다”
황푸하 “해돋이”
나잠 수  “ZomB-Boy” (Feat. 넉살)
이사히 “The Plague”
전자양 “His Theme (Undertale)”
조덕환 “Fire In The Rain + Long May You Run”
아시안 체어샷 “사랑이 모여서”
고상지 “Primavera Portena”
조동진 “그 날은 별들이”
권나무 “어두운 밤을 보았지”
장기하와 얼굴들 “괜찮아요”
XXX “승무원”
구릉열차 “Taxi”
파라솔 “베개와 천장 + 멀어진 축제”
에고펑션에러 “에러잼”
단편선과 선원들 “모든 곳에”
넉살 “팔지 않아”
못 “Perfect Dream”
미역 수염 “Hello, Death”
제 8극장 “언제나 나는 너를 생각해”
이상의 날개 “검은 바다”
노벰버 온 어스 “They All Have Their Own Beauty”
ABTB “시대정신”
허클베리 피 “박상혁”
하현우 (우리동네 음악대장) “Lazenca, Save Us”
마치킹스 “현기증”
김해원 “불 길”
할로우 잰 “Scattered By the Breeze”
웨이스티드 쟈니스 “강”
줄리아 드림 “My Queen”
프롬 “달의 뒤편으로 와요”
옷옷 “OO + AA + i-ing”
빅베이비드라이버 트리오 “This Time Is Your Time”
팎(PAKK) “분신”
블루 터틀랜드 “그녀의 숨결 + 변화의 바람”
로 바이 페퍼스 “3”
더 모노톤즈 “여름의 끝”
구텐버즈 “가나다 별곡”
9와 숫자들 “언니”
레드벨벳 “Russian Roulette”
세븐틴 “아주 Nice”
방탄소년단 “피 땀 눈물”
원더걸스 “Why So Lonely”
마마무 “넌 is 뭔들”

 

 

정구원

kv43024m042w013jr이민휘
“부은 발”
(Self-released)

어떤 노래는 그 자체로 세계를 담는다. 그리고 이민휘는 “부은 발”에서 극도로 따뜻한 방식으로 가장 잔혹한 세계를 그려낸다.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계에서, 사람들은 있는지조차 불투명한 구원을 찾아 산을 오른다. 그 비참한 광경은 그러나, 가느다랗게 떨리는 이민휘의 목소리와 조곤조곤한 신시사이저, 그리고 황홀한 트럼펫 소리를 통해 청자에게 전달된다. 그 낙차를 통해 우리는 슬퍼한다. 왜 이 세계에선 실수가 용납되지 않은 것인가. 왜 우리는 거짓말만이 용납되는 문지기 앞에 서야만 하는가. 왜 이들은 이렇게까지 구원을 바라는 것인가. 왜 구원을 바랐을 뿐이었던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는가. 그리고 왜, 이 잔혹한 세계는 이토록 따스한가.

그러나 나는 이 곡이 그 ‘따스함’을 통해 위안이나 위로를 전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산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파도 소리가 끊이지 않는 바닷가에서, 이민휘는 꾸며낸 위로의 상찬 대신 정갈한 시선으로 세계를 그려낸다. 마치 세계는 원래부터 잔혹하고 동시에 따스할 수 있다는 듯이. 그 성찰은 모순적이지만, 우리는 이미 우리의 삶이 잔혹함과 따스함 사이에서 모순의 나선을 그린다는 걸 알고 있다. 혹은, 이 곡을 통해서, 잊고 있었던 그 모순을 비로소 알아차리게 된다.

음악이 어떤 ‘정직함’을 실현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러한 방식으로 가능할 것이다. 세계를 담아냄으로써 개인이 각자를 성찰하는 매개체가 되는 것. “부은 발”은 그 정직함을 곧게 간직한 채 모순을 직시한다. 그 흔들림 없는 시선이, 우리를 거짓된 위로나 위안에 잠기지 않게, ‘슬픔’에 눈이 가려지지 않게 만든다.

+ 그 외 트랙
이채언루트 “Night Drive”
NCT U “일곱 번째 감각”
루나(Luna) “Free Somebody”
단편선과 선원들 “국가”
파라솔 “베개와 천장”
새벽 “Oblivion”
야광토끼 “서울하늘”
로 바이 페퍼스 “Cut Me Half”
75A “Man Ray System”
푸르내 “유령”
넌 아만다 “열대야”
구토와 눈물 “Zeal”
곽푸른하늘 “열꽃”
룸306 “Seems Like (같아요)”
비솝(B-Soap) “짝사랑의 실패자들 [Feat. Youngcook]”
불싸조 “18 1/2 (for Skateboarding)”
생각의 여름 “두 나무”
PPUL “Lee Was Dead”
피기비츠 “파쿠리 러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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