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모로 두 번째인 노래다. 우선 장수빈은 2007년 배슬기의 원곡 “왠지 모르게”를 두 번째로 불렀다. 장수빈에게 이 곡은 ‘월간 윤종신’ 수록곡 “연습생”에 이은 두 번째 노래고, 미스틱엔터테인먼트에게 이 곡은 음원 플랫폼 ‘리슨’의 두 번째 노래다. 노래가 품은 우연을 따라 글도 둘로 나눠 쓴다.

 

1. 정석원의 편곡, 장수빈의 가창

멜로디와 가사만 들으면 확실히 윤종신의 곡이다. 비교적 긴 후렴, 후렴의 앞 16마디를 반복하는 듯하다 멜로디를 틀어 상승감을 고조시키는 작법, 예쁜 말로 쓴 이별 후 짝사랑까지, 이 노래엔 윤종신이 그간 잘해온 것들이 고루 담겨있다. 유종호와 이근호가 맡은 원곡의 편곡은 하림이 편곡해온 윤종신의 노래들과도 비슷했다. 익숙하고 안정감 있는 노래였지만 그래서 너무 무난하기도 했다.

9년 전에도 무난했던 노래에 새로운 설득력을 불어넣는 건 정석원의 편곡이다. 세계 곳곳의 유행을 꾸준히 채집해온 정석원은 이번에도 해외 음악의 경향을 끌어들인다. 흔들리는 음정으로 깔리는 전자 건반, 살짝 밀린 박자에 꽂히는 드럼, 출렁이며 반복되는 햇, 소리의 여백을 비집고 나오는 보컬 샘플까지, 새로워진 소리들은 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가 이끈 유행, 특히 1집의 “Unluck” 같은 곡을 연상시키고 몇몇 소리들은 트랩 장르까지 품었다. 따뜻했던 가요에 영국 전자음악의 우울과 트랩의 난폭함이 섞인 셈이다. 여기에 화성까지 바꿔 입히자 멜로디와 가사는 그대로임에도 이질적인 정서들이 새로이 달라붙는다. 소리의 정서가 복잡해지니 화자의 심리에 대한 상상마저 자연히 풍성해진다. 이 곡을 9년 전 원곡보다 높게 평가하는 것도, 해외 장르를 단순히 이식한 것 이상이라고 평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James Blake “Unluck”

 

미스틱이 발견한 장수빈의 목소리도 노래에 독특한 맛을 불어넣는다. 언뜻 김예림이나 장재인의 계보를 잇는가 싶지만, 장수빈은 힘을 좀 더 확실히 주고 뺀다. 원곡보다 단단한 장수빈의 목소리는 복잡해진 곡의 정서와 어울리면서 가사 속 짝사랑하는 화자마저 조금은 덜 유약하게 만든다. 이별 후 돌아오지 않는 ‘너’에게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라, 여전히 사랑하기로 한 자신의 선택을 긍정하는 사람을 상상하게 한다. 장수빈은 영상에서 얼굴 한 번 비추지 않고도 목소리만으로 화자를 달리 떠올리게 한다. 그런 한에서 성공한 가창이며 성공한 리메이크다. 신인 가수를 궁금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면 리슨 역시 성공한 기획인 셈이다.

 

2. 리슨의 미래

성공이란 단어를 세 번이나 썼지만 차트 성적은 성공하지 못했다. “왠지 모르게” 뿐만이 아니라 여태 나온 모든 리슨의 곡들이 그랬다. 대표 프로듀서 윤종신은 인터뷰에서 ‘창대한 시작보다 2년 뒤’를 기약한다고 했지만, 음원 플랫폼으로서 순위에 무심하기는 어렵다. 장수빈, 민서 등의 신인이 월간 윤종신에서 이미 이름을 알렸던 걸 떠올려보면 리슨은 월간 윤종신을 회사 차원으로 끌어올린 기획에 가깝고, 월간 윤종신의 여러 곡이 ‘슈퍼스타K’를 통해 재조명받았던 걸 고려하면 리슨 또한 한동안은 윤종신의 개인기에 의존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리슨에 월간 윤종신이나 ‘SM 스테이션’과는 다른 기대를 해보는 건, 리슨이 느슨한 플랫폼을 자처하기 때문이다. 월간 윤종신이 한 달이라는 마감을 창작의 동력으로 삼으면서 그 압박감을 소속 음악가들에게 ‘아웃소싱’하는 방식으로 버텨왔다면, 리슨은 가능한 부담과 제약을 줄이겠다고 밝히기 때문이다. 솔로 활동을 오래 멈췄던 하림이 곡을 내고, 미스틱에 합류한 이래 자작곡을 못 냈던 퓨어 킴(Puer Kim)이 자기만의 노래를 내고, 신인 프로듀서 퍼센트(PERC%NT)가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것도 자율성이 보장된 느긋함 덕일지 모른다.

 

퓨어킴 “How Are You, The Love of My Life”

 

의심은 남는다. 느긋한 음원 플랫폼이라는 게 가능하기는 할까. 오래 만들어 오래 듣는 음반의 시대가 끝났다는데, 회전율이 관건인 음원의 시대가 와버렸다는데, 꾸준히 규모를 불려가고 있는 기획사에서 너그러이 음원을 쌓아갈 수 있는 걸까. 희망을 품어볼 곳이 ‘사장님의 뚝심’뿐이어서 미래를 장담하기는 어렵다. 다만 “왠지 모르게”가 보여주는 가능성이 있다. 잊힌 노래와 새 목소리에 기회를 주려는 기획, 여러 경향을 끌어들여 근사하게 세공할 역량이 있다. 리슨의 미래에 대해서는 딱 “왠지 모르게”가 이룬 성취만큼의 기대를 품고 있다. | 김세철 nolonelysquar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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