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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조월

프렌지-로로스-아폴로18을 거치며 2000년대 후반의 포스트록을 통과했다. 이번에는 푸른새벽 편과 비슷하게 완전히 포스트록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지만 지나치면 아쉬운 음악인에게 들려본다. 바로 조월이다. 속옷밴드의 기타리스트이기도 하지만 90년대의 진공악단을 시작으로 모임 별(byul.org)에서도 활동 중이며 2000년대 후반부터는 솔로로 활동하는 등 인디 씬의 최전선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오며 꾸준히 자신만의 세계를 들려줘왔다. 그 범주는 속옷밴드의 포스트록과 슈게이징, 모임 별의 드림 팝, 포크트로니카(Folktronica), 솔로 활동에서의 포크와 노이즈 팝, 최근 최태현과의 작업에서 들려준 노이즈까지 다양하다. 또한 여러 장르를 넘나들면서도 거의 모든 작업에서 특유의 서정성을 유지해내기도 한다. 인디 씬의 여러 굵직한 음악인들과 비교해 봐도 그 세계가 무척 넓고 깊기에, 이번에는 조월의 솔로 음반들을 중심으로 포스트록의 향이 짙은 작업들만을 발췌하듯 둘러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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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조월의 음악을 한 마디로 묘사하자면 ‘서정적인 소음’이라 할 수 있겠고, 이는 여러 부분에서 포스트록과의 교집합을 이루고 있다고 본다. 그의 솔로 프로젝트들에서도 이 특징이 최대한으로 나타나지만, 조월이 이전에 몸담은 밴드들에서도 이를 잡아낼 수 있다. 그의 첫 밴드라고 알려진 진공악단은 공식적인 음원은 없지만 다양한 경로를 통해 몇 곡을 찾아들을 수 있다. “너의 우주”와 “세포”의 후반부를 짙은 디스토션의 노이즈로 채우며 90년대 당시의 영미 슈게이징 밴드들에 못지않은 감각을 들려주는 것에서부터 이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이후 조월은 2000년대 초반, 당시에는 단순히 별이라고 이름 붙였던 모임 별과 속옷밴드에서의 활동을 시작한다. 속옷밴드야 이미 시리즈에서 한 번 다뤘으며 거의 모든 글마다 간간히 나타나니 여기서는 모임 별에서의 조월을 살펴보기로 하자.

모임 별은 전자음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드림팝과 포크트로니카 등 넓은 범위에서 장르적인 융합을 이뤄낸 밴드였다. 2001년부터 ‘월간 뱀파이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실험적인 앰비언트부터 이국적인 신스 팝까지 여러 음악을 다양하게 오갔고, 그 중에는 ‘서정적인 소음’이 빛나는 곡들도 한둘 있었다. 조월의 참여가 두드러졌다는 다섯 번째 음반 [지혜롭고아름다운사람을포기하는법]에 실린 “부드러운 인생”과 “카메라”가 대표적일 것이다. “부드러운 인생”은 속옷밴드의 곡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이 서정적인 선율의 리프를 차곡차곡 쌓아올려 만든 노이즈로 곡 전체를 강하게 이끈다. 그리고 “카메라”는 다양한 소리들을 주선율 주위에 배치한 후 점점 그 강도를 높이며 긴장감을 올린 다음 “부드러운 인생”과 비슷한 서정이 담긴 멜로디로 순식간에 들어간다. 이는 조월만의 슈게이징과 포스트록이 완벽한 조합을 이뤄낸 곡이라고 본다. 비슷하게도, 같은 음반에 수록된 “빛”이나 “세계의 공장”, “영원이시간을관통하는그순간나를보지말아요”도 기타가 중심이 된 노이즈들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재미있게도 이 음반은 속옷밴드의 정규 1집이 나온 2006년에 나왔다)

 

[네가이곳에서보게될것들], 2009

[네가이곳에서보게될것들], 2009

 

이렇게 속옷밴드 뿐만 아니라 다른 작업물들에서도 특유의 ‘서정적인 소음’을 바탕으로 여러 스타일의 곡들을 들려준 조월은 2009년 [네가이곳에서보게될것들]을 통해 그의 세계에 한걸음 더 깊숙이 들어간다. 그런 만큼 조월만의 ‘서정적인 소음’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더욱 가까이 알 수 있다. 음반을 여는 “This Is The Night”와 “기록”은 연주곡들이다. 각각 포크 기타와 전기 기타 소리를 중심으로 삼는 두 곡은 강한 이펙트를 통해(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딜레이나 리버브일 것이다) 짙은 노이즈를 만들며 이를 통해 소리 자체에 널찍한 공간감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기타 이펙트로 소리의 공간을 만들고, 그 사이사이에다가 다른 악기들의 소리를 이용한 다양한 노이즈를 집어넣으며 그 공간은 더욱 밀도를 더한다(비단 조월의 솔로 음반들뿐 아니라 속옷밴드와 모임 별의 앰비언트한 곡들에서도 비슷한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모든 과정을 겪으며 소리는 좋은 의미에서 모호한 노이즈로 바뀌고, 조월만의 특이한 ‘소음’이 완성된다. 여기에 조월 특유의 멜로디와 노랫말들이 들어가며 ‘서정’도 더해진다. 그리고 이 과정이 전체적인 ‘서정적인 소음’의 상을 그려낸다. 물론 이러한 방식은 굳이 하나의 장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위의 두 연주곡에서는 장르적으로는 포크에 가깝게 이 ‘서정적인 소음’을 들려주지만, 이후의 곡들에서는 포스트록적인 성향을 띄는 곡들이 많이 등장한다.

가장 대표적인 곡은 역시 “온도시가불타는꿈”일 것이다. 직전 곡인 “정말로행복하다”가 깨질 듯이 조용한 곡이어서 그럴까. 곡은 누군가가 조용하게 정말로 행복하다, 고 중얼거리는 순간 갑자기 온 도시가 불에 타기 시작하는 것처럼 똑같은 방법으로 순식간에 다른 질감과 분위기의 소리를 만들어낸다. 전기 기타와 포크 기타를 함께 등장시킨 다음 전기 기타에는 이펙트를 가득 입히고 포크 기타는 상대적으로 깔끔하게 내버려두는 것과 함께 스테레오 효과를 통해 공간감을 만들어낸다. 조월의 목소리 또한 하나의 소리가 되어 이 공간 사이를 맴돈다. 조월의 목소리는 천천히 사라지고 전기 기타의 노이즈가 천천히 커졌다가 작아지는 것을 통해 곡은 일정한 긴장감을 잡는다. 이후 점점 작아지며 사라질 것 같던 전기 기타의 노이즈가 갑자기 포크 기타의 소리보다 확 커지는 것을 통해 곡은 재빠르게 절정으로 향하고, 이후 노이즈가 소리보다 훨씬 더 짙어지며 곡이 끝난다. (이펙트가 약한) 소리와 (이펙트가 강한) 노이즈, 그리고 그 사이를 이용한 이 탁월한 구성이 곧 조월의 포스트록에서도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같은 음반에 실린 “Stay”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소리와 노이즈의 구성과 곡 자체의 시간적인 구성을 통해 일정한 서사를 만들어낸다. 이런 곡들이 곧 조월만의 포스트록을 나름대로 드러내는 곡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깨끗하게, 맑게], 2013

[깨끗하게, 맑게], 2013

 

2013년에 나온 2집 [깨끗하게, 맑게]에서도 ‘서정적인 소음’의 포스트록을 찾을 수 있다. [네가이곳에서보게될것들]이 상대적으로 내밀하고 깨질 것 같은 느낌의 포크에 집중했다면 [깨끗하게, 맑게]는 전자음악과 록 사이의 조합을 추구한지라 더욱 밝기도 하며 은근한 그루브까지 느껴지는 음반이다. 그에 맞춰서 ‘서정적인 소음’과 포스트록 또한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펙트를 넣고 같은 리프를 반복하면서 슈게이징 느낌을 내는 “깨끗하게, 맑게”와 약간의 ‘뽕끼’가 느껴지기도 하는 전자음 그루브로 시작해 서정적인 멜로디를 더하는 “전자랜드”같은 곡도 있지만 여기서는 “같은 마음”과 “노래”, 무엇보다도 “악연”을 골라보고 싶다. “같은 마음”과 “노래”는 모두 기타 노이즈를 통해 공간감과 분위기를 형성한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하지만 “같은 마음”이 처음부터 노이즈를 짙게 깔아 곡을 채우는 것에 비해 “노래”는 천천히 그 분위기를 고조시킨다는 점이 조금 다르다. 전기 기타 연주와 몽글거리는 건반 연주에서 시작해 천천히 드럼과 베이스를 추가한 다음, 서서히 속도를 올리며 박자와 분위기를 함께 만들어나간다. 곡이 살짝 멈칫한다고 느껴지는 찰나에 모든 악기들이 좀 더 격렬하게 폭발한다. 강렬한 분위기가 점차 고조되고, 점점 높아지는 밀도는 안정적인 분위기에서 마감된다. 변칙적인 박자가 특히나 돋보이는 “노래”는 정신없이 달려가는 후반부를 위해 초반부의 기조를 확실히 잡아놓아 그 서사를 뚜렷하게 드러냈다. 그래서 이 둘도 “온도시가불타는꿈”처럼 훌륭한 구성을 통해 포스트록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곡일 테다.

하지만 역시 “악연”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인상적인 노랫말로도 많은 사랑을 받지만, 개인적으로는 악기들 사이의 구성과 더불어 곡 자체의 전개 과정과 ‘서정적인 소음’의 사용 등으로 아름답게 녹아든 조월의 구성에 주목하고 싶다. 초반부에 곡은 포크 기타 연주를 중심에 두고, 이 주위에 전기 기타를 배치하며 분위기를 쌓는다. 이 곡에서 만큼은 조월의 목소리도 소리나 노이즈가 되기보다는 노랫말을 확실히 전달한다. 짧은 노랫말이 끝난 후, 전기 기타는 조금씩 몸집을 부풀리며 듀엣을 하듯 포크 기타와 함께 연주를 주고받고, 베이스가 들어온다. 천천히 산을 오르듯 진행되는 곡은 그 정점에서 노랫말에 담긴 모든 감정을 쏟아내듯 건반 소리를 통해 분위기를 전환시킨다. 개인적으로는 조월의 서정이 최고조에 달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짙은 서정이 이렇게 후반부를 깨끗하게, 맑게 채우고 일종의 수미상관처럼 다시 한 번 빈 공간에 포크 기타만이 울려 퍼지며 곡이 끝난다. 거칠거나 로우파이한 노이즈는 좀 더 가지런히 다듬어졌지만, 그럼에도 이 모든 소리들은 적재적소에 위치되어 확실한 구성의 서사를 만들었고, 이를 통해 매우 수려하게 서정을 담아냈다. 조월의 포스트록이 빛난다.

 

 

2집 이후에도 조월은 개인 활동에서도 EP [보난자]와 최태현과 함께한 [거울과 시체]를 냈으며, 모임별도 새로운 작업을 진행하고 속옷밴드도 다시 돌아와 무대에 서는 등 여느 때와 다름없이 꾸준히 활동 중이다. 오랜 시간동안 조월은 특유의 서정과 특유의 소음을 통해서 그 영역을 넓혀왔다. 이 ‘조월의 세계’ 속에는 위에서 언급한 수많은 장르들이 다양하게 모습을 바꾸며 합쳐지는 동시에 나뉜다. 포스트록도 그 중에서 일부일 것이고, 나름의 유동적인 성향 덕에 모임 별의 드림팝이나 속옷밴드의 슈게이징, 솔로의 포크 등 많은 장르들과 어우러지며 여러 아름다운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이는 물론 현재도 진행 중이다. 오래 전부터 이 세계를 확고하게 만들어내고 다양하게 발전시켜왔기에 조월의 포스트록은 한국 포스트록 역사에서도 무척 중요한 위치에 있다. 그렇기에 앞으로 서정을 이야기할 때, 아니면 소음을 이야기할 때 그의 이름을 더욱 많이 보고 싶고 그의 음악을 더욱 많이 발견하고 싶다. 그런 바람으로 이렇게 성글게나마 한 번 자리를 마련해보았다. | 나원영 onezero9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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