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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데이드림

2000년대 후반을 빛낸 포스트록 밴드들을 만나는 것도 조금씩 끝에 다가가고 있다. 이번 순서는 그 중에서도 그렇게 많이 이야기되지 못한 밴드, 데이드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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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데이드림은 포스트록보다는 슈게이징의 측면에서 조금 더 이야기되는 밴드인데 여기서 잠깐, 미숙하지만 장르를 조금 설명하고 시작해야할 거 같다. 슈게이징은 수많은 이펙트로 짙고 빽빽해진 기타 노이즈에 노이즈 팝이나 드림 팝의 몽환적인 멜로디와 여린 보컬 등을 더해낸 장르로, 포스트록보다는 간발의 차로 좀 더 일찍 시작되었다.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과 라이드(Ride), 슬로다이브(Slowdive)의 ‘삼대장’이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 실험적이고도 서정적인 음악은 포스트록에도 부분적으로 영향을 줬으며 최근에는 알세스트(Alcest)와 데프헤븐(Deafheaven)의 블랙 메탈, 제수(Jesu)나 더 앤젤릭 프로세스(The Angelic Process)의 드론 메탈, 더 호러스(The Horrors)나 해브 어 나이스 라이프(Have A Nice Life)의 포스트 펑크, 초기 M83과 스위트 트립(Sweet Trip)의 전자음악 등 장르적인 결합을 추구하는 ‘뉴-게이즈’로도 이어진다.

이렇게 두 장르 사이에 약간의 선후 관계를 두거나 계보를 짤 수 있는 해외에 비해, 국내에서의 슈게이징과 포스트록은 90년대 말부터 인디 씬에서 함께 영향을 주고받으며 특정한 경계 없이 자라왔다. 그런지라 옐로우 키친, 잠(Zzzaam), 속옷밴드, 불싸조 등이 슈게이징이라 해도 딱히 반박할 수는 없으며 이들은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 포스트록 뿐만 아니라 슈게이징의 양분이 되기도 했다. 포스트록과 마찬가지로 슈게이징도 이렇게 차곡차곡 쌓인 역사를 바탕으로 자랐으며 2000년대 중반부터 스타리 아이드의 [Lo-Fi Dancing Star]의 ‘왕십리 슈게이징’, 비둘기 우유의 [Aero] 등 훌륭한 음반들이 등장했다. 스타리 아이드는 로우 파이함에도 슈게이징의 색채를 확실히 담아냈고, 비둘기 우유는 가장 정통적인 슈게이징을 들려준 후 싸이키델릭 등 다른 장르와의 결합을 이뤄냈다. 그 중에서도 데이드림은 슈게이징과 포스트록의 적절한 교집합에 위치했다고 판단, 이렇게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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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컴필레이션 3: History of Bbang], 2007

20년이 넘는 오랜 시간동안 해체와 재결합 등 여러 굴곡을 겪어왔지만, 슬프게도 데이드림의 정규 음반은 딱 한 장 밖에 없다. 그럼에도 2007년에 나온 [빵 컴필레이션 3]과 [Gothic Compilation Vol.1]에서 그들의 첫 노래를 찾을 수 있다. [빵 컴필레이션 3]에는 당시를 빛낸 수많은 밴드들이 참여한 만큼 로로스와 프렌지의 초기 곡도 찾을 수 있으며, 데이드림은 “병신같이”라는 곡을 올렸다. 파격적인 제목과 달리 곡은 서정적인 기타 연주로 시작된다. 슬픔으로 찬 마음에 ‘병신같이’를 외쳐대는 가사와 함께 기타 리프는 조금씩 울리며 후반부에서는 기타 노이즈가 착 깔리면서 서정성에 조금 더 탄탄한 층을 더한다. 이러한 스타일은 모노(MONO)나 슈슈(Xiu Xiu), 짜르(Czars) 등 꽤 굵직한 해외 음악인들이 참여한 [Gothic Compilation Vol.1]에서 더욱 확실히 드러난다. 7분 반 동안 지글거리는 기타 소리들을 적절하게 배치하는 감각은 속옷밴드의 그것과도 닮아있으며, 오히려 조금 더 빽빽하고 짙은 공간감을 선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두 개의 곡을 통해 기대감을 부풀린 후 1년 뒤인 2008년, 겨우겨우 [A Land Of April]이 나온다. 이 음반은 포스트록-슈게이징 대잔치 같은 느낌이 드는데, 하나의 밴드와 느슨한 장르 안에서 나올 수 있는 미세하게 다른 스타일의 음악을 여럿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첫 곡인 “금호동 무지개”는 반복되는 리프와 함께 깊은 울림을 가진 기타 소리가 무지개같이 맑은 서정으로 곡 전체를 채운다. 별다른 굴곡 없이 느릿느릿 차분하게 진행되며 중간 중간에 건반 소리도 조금씩 들어가는 등 “금호동 무지개”는 슈게이징 쪽으로 기울어진 포스트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어서 나오는 타이틀곡 “A Land Of April”과 함께 데이드림의 서정은 조금씩 빨라진다. 데이드림만의 탄탄한 곡 구성이 이 곡에서 특히나 잘 드러난다고 보는데, 곡은 “금호동 무지개”에서 들려준 기타 소리를 여전히 끌어 오지만 조금 더 일정한 기승전결을 가지고 소리를 쌓아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중의 추진력을 위한 것인지 조금 조용한 초반부 이후 본격적인 하이라이트와 함께 청명하고 찰랑거리는 기타 소리가 강렬해지는 결말은 뒤이을 곡들에 대한 기대를 확실하게 키운다.

 

[A Land of April], 2008

[A Land of April], 2008

그리고 당연히, 뒤이은 곡들도 그 기대를 확실히 채워주고, 주목할 만한 기타 연주는 더욱 많아진다. 방법론에서 보자면 여러 대의 기타 연주로 노이즈의 공간을 만드는 건 속옷 밴드와도 비슷하나 데이드림은 좀 더 선명한 소리를 낸다. 속옷 밴드는 무려 기타 세 대를 쓰는 것으로 소리에 소리를 겹치며 퍼지한 몽환을 만들어내지만, 데이드림은 기타 두 대에 건반 등 다른 악기들을 조금 더해 연주를 한다. 노이즈를 뽑아내는 기타와 찰랑거리는 리프를 들려주는 기타가 함께 나아가면서 데이드림의 곡은 조금 더 맑은 서정을 들려준다. 기타 노이즈와 함께 시작하는 “침전”이 바로 이러한 데이드림만의 특징을 보여준다. 우선 곡의 밑바닥에서 기타 노이즈가 짙게 깔리며 이전 곡에서 달아오른 분위기를 침전시킨다. 선명하고 천천히 메인 리프를 들려주는 다른 기타가 더해지며 새로운 감각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속옷밴드의 느낌이 가장 많이 생각나는 곡이기도 하지만, 데이드림은 소리를 느리고 맑게 쌓아 올려간 후 건반 소리를 더하며 마지막 순간에 이 모든 것들을 모아 노이즈를 터뜨린다. 짙은 노이즈들이 모든 공간을 차지하지만 그럼에도 선명하게 들리는 기타 리프 하나가 곡의 개성을 계속해서 끌고 간다. 이 지점이 노이즈의 깊숙한 공간으로 파고드는 속옷밴드와 조금은 위쪽에서 청명한 감각을 들려주는 데이드림 간의 차이라고 본다. “침전”은 슈게이징의 노이즈와 포스트록의 기승전결을 적절하게 섞어낸 곡이자, 긴장감을 탁월하게 조절하는 구성을 갖추고 있다. 그 후에는 여성 보컬을 앞에 둔 “Oscar Wilde”가 시작되며 데이드림은 언제 자기들이 노이즈를 냈냐는 듯이 다시 맑고 서정적으로 돌아온다. 포크 록이나 영국식 모던 록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곡은 앞에서 8분 정도 노이즈에 깊게 빠져 있었으니 조금은 쉬어가라는 의미의 곡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쉬어가는 걸 마치기가 무섭게, [A Land of April]은 노이즈로 달려간다.

음반의 딱 중간에서 하이라이트를 여는 “Shiny Road”는 슈게이징의 정석을 확실히 따라가며 소리의 결을 제대로 쌓아올리는 곡이다. 초반부터 팡 하고 터지듯 켜켜이 쌓인 기타 노이즈가 몰려오고, 몽환적이고 여린 목소리의 보컬이 올라온다. 그러면서도 하나의 맑은 기타 리프가 빛나는 길처럼 곡 전체의 멜로디를 이끌어가며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여러 쟁쟁한 곡들이 떠오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기타 리프를 통해 데이드림만의 색깔이 생겨난다고 본다. 데이드림의 슈게이징 혹은 포스트록은 겹겹이 쌓인 노이즈에서도 항상 하나의 확실한 리프를 병치했다. 이번에는 이 둘을 적절히 배치해 짙은 노이즈 위에 오른 맑은 기타 리프를 가져와 그 둘의 차이 속에서 그들만의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렇게 음반 중앙에서 확실한 슈게이징 사운드를 들려준 직후, 조금 더 빠르고 과격하게 노이즈를 내뿜는 “Red Violin”이 시작된다. 음반 초반의 느리고 서정적인 느낌은 어디 갔나 싶을 정도로 날 선 기타 소리가 곡을 채운다. 기타 노이즈와 더불어 보컬 또한 로우 파이한 느낌에서 더욱 강렬해지고, 이에 맞춰서 속도는 더욱 경쾌해진다. 빽빽한 노이즈의 공간 속에서 신나게 이어지는 연주는 마지막 기타 노이즈 한 음을 남기고 곧장 “Radiobox”로 이어지며 다시 한 번 천천히 진행된다. 하지만 곡은 음반 초반부를 채운 서정적인 감촉을 담아서 천천히 진행되기보다는 “Shiny Road – Red Violin”으로 이어지는 날 선 노이즈를 계속 가져오며 천천히 진행된다. 강한 기타 노이즈들이 빼곡하게 곡을 채운 초반부는 서서히 약해지는 중반부를 지나, 후반부로 들어가면 더욱 강하게 터져 나오며 포스트록적인 폭발의 색채를 더하기도 한다. 그 와중에도 한 켠에 남아있는 선명한 기타 소리 하나가 이 모든 노이즈와 잘 어우러지며 또 다른 느낌을 가져오기도 한다. 슈게이징 노이즈와 포스트록 구성 사이의 면밀한 조합이 담긴 “Radiobox”는 어떻게 보자면 비슷한 방식으로 두 장르를 합친 “침전”의 대칭에 있는 곡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9곡짜리 음반의 정중앙에 놓인 “Shiny Road”를 중심으로 보면 “Radiobox”과 “침전”은 멋지게 포개진다. 두 곡 모두 슈게이징-포스트록의 접점에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지만, 한쪽은 느린 템포의 서정이 담긴 곡이며 다른 쪽은 좀 더 날카로운 노이즈가 담긴 곡이다. “Radiobox”는 이 날카로운 노이즈에서 서서히 느린 서정으로 바뀌며 마무리 된다.

여태까지 데이드림은 한 음반 안에서 포스트록스러운 슈게이징, 슈게이징스러운 포스트록, 서정적인 슈게이징, 서정적이고 노이즈 낀 슈게이징, 그냥 노이즈 낀 슈게이징… 등 어떻게 확실히 나눠서 얘기하기가 참 힘든 슈게이징 혹은 포스트록을 들려줬다. 음반의 중앙에서 노이즈와 함께 한 세 곡을 지나, 다시 처음의 서정적이고 느린, 상쾌한 꿈결 같은 기타 리프로 돌아온 “별”은 음반 초반의 맑은 연주와 음반 중반의 노이즈 가득한 연주를 기가 막히게 합쳐낸 곡이다. 8분 동안 청명함에서 날 선 느낌으로 바뀌고 이 둘을 합쳐낸 몽환적인 느낌으로 나아가는 곡은 맑은 연주가 천천히 노이즈의 세계로 들어가는 구조라고도 볼 수 있으며, 이는 포스트록의 그것과도 많이 닮아있다. 이렇게 [A Land of April]은 처음의 낭만적인 슈게이징과 중반의 날 선 포스트록을 확실히 합쳐내는 정반합스러운 구성과 함께 마지막으로 나아간다. 빵에서 라이브로 녹음되었다는 마지막 곡 “야시장”은 왜인지 제목처럼 정말 야시장 한가운데에 있는 것만 같다. 좀 구질구질하고, 좀 시끌벅적하고, 좀 낭만적인- 주공 아파트 단지에서 나름은 크지만 나름은 또 조촐하게 벌이는 그런 야시장 같은 느낌이다. “금호동 무지개”나 “별”의 맑은 느낌을 고스란히 가져온 곡은 청명한 연주에서 촘촘하고 빽빽한 연주로 이어진다. 물론 맑은 기타 소리는 저 편에서 여전히 이어지지만 말이다. 여기에 그 ‘라이브’의 독특한 느낌이 “야시장” 자체에 개성을 더한다. 조금씩 노이즈를 줄이고, 서정을 깔아가는 페이드아웃으로 곡과 음반이 모두 끝난다.

 

 

[A Land Of April]은 사월의 날씨처럼 하나의 틀 안에서 여러 가지 다른 것들이 감겼다. 사월이라는 한 달이 끝나지 않은 꽃샘추위와 벚꽃 피는 초봄의 따스함, 점점 무르익는 봄 기운과 급격하게 더워지기 시작할 것을 예고하는 늦봄의 날씨를 모두 가지고 있는 것처럼 데이드림도 마찬가지로 음반을 통해 다양한 온도와 강도와 속도의 슈게이징-포스트록을 들려준다. 그 모든 과정 속에서 데이드림만의 맑고 선명한 기타 소리가 음반을 이끈다. 슈게이징의 짙은 노이즈와 차분한 서정성도, 포스트록의 감각적인 구성과 넓은 공간감도, 때로는 은근한 싸이키함도 들려오는 [A Land Of April]은 기타로 만들어낼 수 있는 다양한 감각의 노이즈들을 제대로 섞어내어 들려줬고, 그러면서도 밴드의 전체적인 특징까지 놓치지 않는다. 그렇지만 밴드도 음반도 그 가치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뻔한 이야기겠지만, ‘숨겨진 명반’이나 ‘숨은 음악인’ 같은 말들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단어 같다. 숨겨진 명반 하나를 남기고, 하루의 꿈처럼 데이드림은 사라졌다. 다시 재결합했다고는 하지만 빠른 시일에 2집을 만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더라도 데이드림과 [A Land Of April]이 국내 포스트록-슈게이징에 남긴 소리는 꽤나 크고 확실하다. 하지만 이 맑고 시끌벅적한 소리가 많은 이들에게 아직 들리지 않았다는 점이 못내 아쉽다. | 나원영 onezero96@naver.com

One Response

  1. marilyncrom

    포스트락과 슈게이징 장르 좋아하는데 연재 시리즈중 처음으로 안들어본 밴드가 나왔네요.
    당장 들어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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