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주차 위클리 초이스는 심규선, 할시, 시그리드의 트랙, 그리고 로직 앨범에 대한 필자별 코멘트입니다. 본 위클리 초이스는 음원 사이트 멜론에도 연재되고 있습니다.

 

심규선 (Lucia) | 파탈리테 | 헤아릴 규, 2017.5.12

심규선(Lucia)의 음악은 조용하지만 강렬하다. 에피톤 프로젝트, 윤덕원(브로콜리너마저) 등과의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고 여러 드라마의 OST 참여하는 등 내실 있는 커리어를 이어나가던 심규선이 5월 12일에 발매된 싱글 “파탈리테”에는 비장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파탈리테(fatalité)’, 프랑스어로 ‘운명’을 뜻하는 제목과 섬세한 어쿠스틱 기타 연주는 곡의 도입부부터 긴장감을 전한다. 트레이드마크인 감미로운 보컬, 대구를 이루는 듯 유사한 음절 내에서 쓰여진 가사는 언뜻 표준적인 발라드 음악의 특징과 일치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곡의 감정선을 지배하는 현악, 두드러지지 않지만 극적인 부분에서 효과를 더하는 드럼은 가사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이젠 눈이 멀어도 좋아 / 이제는 결코 전과 같지 못하리 / 파탈리테 / 나는 너를 따라 어디든 가리’

지난 2월 1일 기존 소속사와의 계약이 만료된 후 발표한 첫 음악인 “파탈리테”는 새로운 레이블 ‘헤아릴 규’에서 발매되었고, 이는 심규선 이름의 ‘규’ 자의 한자 뜻과 동일하다. 어쩌면 “파탈리테”는 지난 행보와 차별점을 두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심규선의 각오가 담긴 한 획일지도 모른다. | 김태윤

 

 

Halsey | Eyes Closed | Astralwerk, 2017.5.9

할시(Halsey)라는 이름이 아주 낯설지는 않을 것 같다. 설령 그녀의 이름이 조금 낯설지라도, 체인스모커스(The Chainsmokers)의 대표 트랙인 “Closer”와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의 “The Feeling
“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녀가 들려주었던 매력적인 듀엣을 금방 기억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피처링으로 참여했던 곡들은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정작 그녀의 EP [Room 93]과 1집 [Badlands] 모두 그 완성도에 비해 국내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1집 [Badlands]가 빌보드 앨범 차트 2위를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새 싱글 “Eyes Closed”는 이전보다 더 주목받아 마땅하다. 할시만의 독특한 음색은 여전히 인상적이다. 몽환적인 분위기를 띠면서도 밀도를 잃지 않는 음색은 곡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를 R&B 느낌의 보컬 스타일이 뒷받침한다. 그렇지만 변화된 지점도 있다. 그녀는 전작에서 구사해 온 어둡고 내밀한 드림 팝의 맥락을 벗어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곡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여유로워졌고, 악기 편성도 단출해졌다. 장르적 색채가 지배적이었던 드림 팝에서 변화하여, 대중적인 팝으로 어필할 수 있는 여지가 늘어났다고 해도 좋겠다. 변화에는 늘 위험이 따른다고 하지만, 이번만큼은 아닌 것 같다. 예전과 달라진 그녀의 음악은 분명 더 많은 이들의 귀에 울려 퍼질 것이다. | 전대한

 

 

Sigrid | Don’t Kill My Vibe | Island, 2017.5.9

“내 기분 잡치지 마.” 이토록 직설적이고 당찬 가사를 쓴 주인공은 노르웨이의 1996년생 싱어송라이터 시그리드(Sigrid)다. 그는 열일곱 살부터 시그리드 라브(Sigrid Raabe)라는 이름으로 노르웨이에서 활동하면서, 감성적인 포크 송부터 일렉트로닉 뮤직까지 소화하는 실력으로 리스너들의 입소문을 탔다. 특히 그의 보컬은 버디(Birdy), 케이티 페리(Katy Perry), 케샤(Kesha)를 동시에 떠올리게 할 만큼 양가적이면서 풍부한 매력을 지녔다. 그는 올해 초에 유니버설 뮤직과 계약하면서 노르웨이는 물론 미국, 영국, 호주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음악 신의 영 제너레이션이 궁금하다면 시그리드를 주시해야 할 것.

“Don’t Kill My Vibe”는 반복해서 변하는 곡의 흐름과 함께 보컬이 지닌 스펙트럼을 다양하고 파워풀하게 드러낸다. 차분한 키보드 멜로디를 바탕으로 둔탁한 비트가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가운데, 보컬이 곡의 흐름을 전적으로 리드한다. 여기서 시그리드는 조용히 읊조리다가 갑자기 소리를 내지르거나, 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며 노래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 트랙을 두고 ‘자신을 신으로 착각하는 건방진 고양이에 대한 메시지일 수도 있고, 이미 관계가 끝난 사람에 대한 메시지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귀엽거나, 시니컬하거나. 어쨌거나 상큼하고 거침없는 활기로 가득하다. | 정은정

 

 

Logic | Ξverybody | Visionary Music Group/Def Jam, 2017.5.8

현재 힙합 신에서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를 비롯해 많은 래퍼들이 해시태그 #BlackLivesMatter를 적극 사용하며, 인종 차별 문제를 거론하는 트랙을 발표하고 있다. 로직(Logic) 또한 3집 [Ξverybody]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가사에 녹여냈다. 흑백 혼혈이란 이유로 백인 사회와 흑인 사회에서 받는 이중의 차별, 부와 복지 시스템에서 배제된 극빈층의 삶 등등. 주목할 점은 그가 흑백 혼혈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주변성’, ‘소수성’으로 인식하고 사고의 범위를 확장했다는 점이다. 본작에서 로직은 인종뿐만 아니라 종교, 젠더, 성적 지향, 계층 등에 따른 차별에 반대한다.

효과적인 감상법을 안내하자면, 이 앨범을 1번부터 13번까지 순차적으로 듣는 방식을 권한다. 앨범이 한 편의 영화처럼 뚜렷한 서사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스토리의 도입에 해당하는 1번 트랙 “Hallelujah”에는 아톰(Atom)이라는 가상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다. 다음 트랙부터 그는 수천번 환생하여 흑인, 극빈층, 가정 폭력 피해자, 자살 시도자, 미혼모의 삶을 살며 이들의 목소리를 낸다. 아톰은 모두(Everybody)의 삶을 경험하고, 그리하여 모두를 이해하고 모두를 사랑하는 존재로 거듭난다. 그의 음악을 듣는 순간, 청자는 누구나 아톰이 된다.

로직의 이야기는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이다. 인종 차별과 약물 중독(“Everybody”, “Take It Back”), 피의자의 인종이나 종교를 일반화하여 특정 집단에의 혐오를 조장하는 태도(“Killing Spree”), 자살 충동을 느끼던 사람이 차츰 삶의 의지를 가지는 과정(“1-800-273-8255”), 그리고 모든 영웅을 당연스레 백인으로 가정하는 편견까지(“Black SpiderMan”). 그가 쓴 가사는 하나의 메시지로 귀결된다. 모든 사람은 인종, 종교, 젠더, 성적 지향, 계층에 상관없이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아갈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로직의 랩 퍼포먼스는 긴장과 즐거움을 배가한다. 그는 진중한 내용을 귀가 즐거운 라임으로 담아낼 줄 아는 작사가이자, 이를 감각적으로 구현할 줄 아는 래퍼다. 그는 뛰어난 딜리버리 스킬로 가사를 또박또박 읊으며 천천히 노를 젓다가, 때가 되었을 때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타이트한 래핑으로 순식간에 분위기를 압도한다. 휘몰아친다고 하는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특히 “Everybody”, “America”, “Killing Spree”에서 후반부의 래핑은 숨을 죽이고 듣게 된다. 특유의 날카로운 톤으로 힘있고 정확하게 쏟아내는 순간, 파트에 담긴 메시지는 더욱 임팩트 있게 빛난다.

프로덕션을 살펴보면 1집부터 함께 한 프로듀서 식스(6ix)와 전체적으로 공동 작업을 했는데, 부분적으로 DJ 칼릴(DJ Khalil)도 힘을 합하여 “Mos Definitely”와 “Black SpiderMan”을 완성했다. 그 결과 전체적으로 기존의 로직이 고수해온 정통적인 형식에 트렌디한 사운드를 활용하는 방식과 함께, 부분적으로 DJ 칼릴이 리드미컬한 그루브를 살리는 트랙을 더했다. 특히 DJ 칼릴의 프로듀싱과 데미안 레마 허드슨(Damian Lemar Hudson)의 피처링이 만난 “Black SpiderMan”은 CCM을 연상케 하는 피아노 멜로디와 보컬 라인 위로 래칫 비트를 얹어 곡의 풍성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극대화했다.

파올로 베로네세의 <가나의 혼인 잔치>를 오마주한 앨범 아트워크에는 눈에 띄는 점이 있다. 신이 앉아 있어야 할 자리를 로봇이 떡 하니 지키고 있다. 로봇이 지배할 미래 사회에 대한 암시라기보단 인종과 성별을 비롯한 모든 특질을 초월한 아톰을 로봇으로 은유한 것, 그리고 모든 이들의 삶을 굽어보게 된다는 점에서 신(영웅)으로 은유한 것일 테다. 누구나 로직의 음악을 들으면 아톰이자 신이 될 수 있다. 그럼으로써 타인을 이해하고 ‘나’로 존재하는 데 가까워지리라. 인류애와 용기, 청각적 즐거움이 넘실거리는 앨범이다. | 정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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