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노 리스펙트 포 뷰티 글리터링 블랙니스, 폴에 이어 동시대의 포스트록을 대표하는 또 다른 밴드는 노 리스펙트 포 뷰티다. 둘 다 길고 멋있는 영어 이름이어서 고른 것은 아니고, 글리터링 블랙니스, 폴만큼 노 리스펙트 포 뷰티도 훌륭하게 포스트록의 요소들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2010년에 데뷔해 2012년에 정규 1집 [Why Perish]를 내고 2014년 이후로는 활동을 찾아볼 수 없지만, 그럼에도 노 리스펙트 포 뷰티는 글리터링 블랙니스, 폴과 함께 마찬가지로 국내 포스트록(과 포스트록 연주)의 최전선에 있는 밴드고, [Why Perish]도 포스트록 씬에 있어서 가장 높은 성취를 이룬 음반이다. 글리터링 블랙니스, 폴과 노 리스펙트 포 뷰티의 포스트록을 확실히 가르는 점이 있다면 바로 연주자의 수일 것이다. 글리터링 블랙니스, 폴이 7인조-3기타로 속옷밴드의 그것과 밀접할 정도로 짙은 겹의 기타 노이즈를 들려주는 것에 비해 노 리스펙트 포 뷰티는 이와는 반대로 기타-베이스-드럼의 간단한 3인조 구성을 취한다. 그렇다고 해서 노 리스펙트 포 뷰티의 포스트록이 연주자 수가 훨씬 많은 다른 밴드에 비해 떨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불싸조도, 아폴로18도 3인조다. 단 세 명이어도 충분히 훌륭한 소리를 만들어내는 밴드들은 서울전자음악단부터 파라솔까지 엄청나게 많고, 당연히 노 리스펙트 포 뷰티도 그 목록에 들어간다. 역시나 직접 들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Why Perish]가 그들의 유일한 음반이기에, 50분 간 그 세계에 들어갔다 나오면 노 리스펙트 포 뷰티가 어떤 방식으로 훌륭한 사운드를 만들어내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음반은 여는 곡인 “Declaration of Existence”의 묵직하게 지글거리는 기타 노이즈로 시작된다. 20초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이 지글거리는 기타 소리만으로도 노 리스펙트 포 뷰티는 [Why Perish]에 어떤 음악이 담겨 있을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 노이즈 뒤로 베이스와 드럼이 들어오는 순간 이는 더욱 확실해진다. 두 악기 모두 기타보다도 묵직한 소리를 내며 지글거리는 리프를 받친다. 끊임없이 지글대는 기타 리프는 묵직한 긴장감을 만들고, 무겁게 울리는 베이스 리프와 드럼이 여기에 박자를 더한다. 단순히 4분 동안 연주를 반복할 뿐인데도 거대한 호흡처럼 소리의 공간에 밀도 있는 사운드가 들이찬다. 빽빽한 밀도는 그대로 “The Walls Between Us”로 넘어간다. 베이스와 드럼은 박자를 쪼개며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다. 지글거리는 기타는 천천히 페이드아웃 하다 베이스와 드럼의 연주에 합류한다. 차분한 분위기를 계속해서 유지하지만, 이를 질질 끌지는 않는다. 반복이 너무 길어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 드럼은 비트를 더욱 잘게 바꾸며 긴장감을 키우고, 최고조에 다다르기 직전에 기타와 베이스만을 조용히 남겨두고 빠진다. 이 때문에 일시 정지된 긴장감은 드럼이 돌아오면서 다시 차근차근 쌓이다가 막바지에 자연스럽게 연주가 고조되며 해소된다. 그 긴장감이 한 번 정지되었던 덕분인지, 절정부는 상대적으로 그렇게 웅장하고 장엄하지는 않지만 효과는 강력하다. [Why Perish], 2012 노 리스펙트 포 뷰티의 연주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고 본다. 첫째는 균형이다. 개인적으로 밴드 음악을 이루는 가장 기초적인 요소는 기타-베이스-드럼의 3인조라고 보며 보컬을 추가해 4인조가 되거나 베이스를 제거해 2인조가 되는 식의 변형이 들어간다고 본다. 노 리스펙트 포 뷰티의 포스트록은 이 기초적인 구성에서 균형을 잡는 것으로 그들의 소리를 정립한다. 가위바위보처럼 각 악기들은 다른 악기들과 적절하게 맞물린다. 베이스 소리는 엄청나게 묵직하지만 기타 소리를 잡아먹지 않으며 확실한 균형을 이루고, 기타 리프의 빈 칸에 들어가는 드럼 덕에 박자 감각은 배가 되고, 드럼이 쪼개는 박자에 베이스는 묵직한 소리를 통해 밑바닥을 마련해주며 함께 울린다. 이렇게 세 악기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다른 악기들과 맞아떨어지며 노 리스펙트 포 뷰티의 소리가 확립된다. 어느 부분에서는 정교한 매쓰록의 느낌을 닮기도 한 이 균형 감각이 곧 노 리스펙트 포 뷰티만의 포스트록을 완성한다. 두 번째 요소는 진행 방식이다. 2세대 이후의 포스트록 밴드들은 연주의 서사에 있어서 일종의 기승전결을 마련한다. 기에서 제시하고 승에서 쌓아 전에서 터뜨려서 결에서 마무리하는 지극히 당연하기도 한 구조 말이다. 개인적으론 포스트록에서의 서사적인 쾌감이 가장 크게 느껴질 때는 당연히 승에서 전으로 옮겨가는 순간일 것이다. 여러 밴드들은 주로 한 곡 안에서 반복과 변주로 긴장감을 거대하게 터뜨리는 방법을 쓴다. 아폴로18의 “Warm”나 로로스의 “Babel”, 해일의 “세계관” 등이 대표적일 것이다. 하지만 노 리스펙트 포 뷰티는 그 긴장감을 잠시 유보한 후 나중에 터뜨리거나 상대적으로 훨씬 더 차분하게, 점진적으로 끌어올리는 방식을 택한다. 똑같은 3인조 구성인 아폴로18이 뜨거운 연주를 선보인다면, 노 리스펙트 포 뷰티는 차가운 연주를 선보인다. 이들의 기승전결은 격정으로 폭발하지 않고 오히려 모든 걸 차분하게 억눌렀지만, 이를 훌륭하게 이용한 전개 방식 덕에 광대하게 폭발하지 않아도 충분하거나 오히려 더 거대한 여파를 가져다준다. 이어지는 곡인 “Owls On The Ground”를 들어보자. 5분 정도 되는 이 곡에서 노 리스펙트 포 뷰티는 이전처럼 세 악기 사이의 균형 잡힌 연주를 통해 긴장감을 만든다. 반복되는 리프, 점점 잘게 쪼개지는 박자, 트레몰로 노이즈 등 다양한 요소들이 곡 전체를 달아 올린다. 이 소리들이 가장 최고점에 달했을 때 노 리스펙트 포 뷰티는 몇 초 간 조용히 기타 리프를 연주한 다음에 달려가기 시작해 그 강도를 점진적으로 더 올리며 최고조에 다다른다. 짧은 시간의 유예는 긴장 뒤에 이어지는 공간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며, 절정부에 다다라도 차근차근 올라가는 구성 덕에 그 여운은 꾸준히 진행된다. 균형 있는 합으로 마련된 빽빽한 밀도는 이렇게 노련하게 밀고 나가는 솜씨를 만나 효과적인 절정을 만들어낸다. 이어지는 “Summit Collision”과 “Uncanny”에서도 이 두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Summit Collision”은 한 곡 안에 절정부가 세 번 등장한다. 처음부터 5분까지의 첫 번째 부분에서 노 리스펙트 포 뷰티는 이전 곡들처럼 악기를 하나하나 등장시키며 합을 만든 다음 이를 천천히 끌어올린다. 묵직한 베이스 사운드를 집어넣으며 최고조로 솟아오른 곡은 다시금 조용해지며 상대적으로 빠른 속도로 다시 긴장감을 쌓으며 이전 구성을 짧게 반복한 다음 다시금 처음으로 돌아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간다. 완만한 산맥을 타듯 오르내리는 구성 덕에 올라가는 멜로디를 반복하는 최후반부는 여태까지의 모든 긴장감이 해소되는 쾌감을 가져다준다. 한편 “Uncanny”는 재미있게도 이 구조를 비틀어 절정부에서 시작하지만, 그 이후의 진행은 다른 곡들과 비슷하게 정교하게 균형미와 절제된 구성과 함께 나아가며 [Why Perish]의 후반부로 넘어간다. [Why Perish]의 대미를 장식하기도 하며 노 리스펙트 포 뷰티를 대표하는 두 곡 “Day of Departure”와 “I Am A Shadow”는 밴드의 이러한 특성을 최대치로 살린 곡들이다. “Day of Departure”에서는 반복되는 기타 리프에서 긴장감이 생겨나며 드럼과 베이스가 소리를 줄이고 키우며 변주된다. 이펙트가 들어가는 기타 노이즈와 상대적으로 노이즈 없이 차분하게 연주하는 부분이 함께 번갈아가며 나온다. 드럼이 크게 울리고, 기타 소리가 고조될 때 더욱 깊고 새로운 리프가 훅 들어오며 조용한 폭발을 일으키고, 이는 짙은 잔향을 남긴다. “I Am A Shadow”도 음반을 닫는 곡이자 가장 긴 곡으로써 노 리스펙트 포 뷰티의 절제된 포스트록을 환상적으로 들려준다. 약하게 울리는 기타 리프가 곡을 연 다음 묵직한 베이스 리프가 좀 더 빠르게 연주되며 공간을 채운다. 여기에 드럼이 박자를 맞춰주고, 기타도 한 번 더 올라오며 지글거리는 노이즈를 더하며 공간을 더욱 깊인다. 지글거리는 사운드가 트레몰로 연주로 바뀌며 발 빠르게 긴장감이 형성된다. 밴드는 계속해서 이 소리들을 정교하게 쌓아간다. 정상까지 거의 다 왔다고 느껴지는 순간 드럼이 사라지고 긴장감이 유보되며, 빈 공간을 훌륭하게 채우는 트레몰로 노이즈가 1분 정도 지글대면서 사라질듯 하다가- 바로 그 순간에 다시 완전한 소리가 들어와 클라이맥스로 향한다. 묵직한 베이스와 드럼이 넓은 공간을 만들고, 메인 리프를 반복하는 기타와 지글대는 노이즈를 뿜어대는 기타가 이 위를 채색한다. [Why Perish]의 음반 표지와도 같은 색채와 형태의 추상화가 생각나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노 리스펙트 포 뷰티의 정교한 웅장함과 절제된 장대함이 생겨난다. 감정적인 대폭발 없는 무척 절제된 연주를 들려줘도, 노 리스펙트 포 뷰티는 오직 균형 잡힌 합과 훌륭한 구성만으로도 충분히 격정과 장관을 이뤄낸다. 모든 아름다운 순간이 끝나고 들려오는 바닷가의 파도 소리가 [Why Perish]를 깔끔하게 끝낸다. 파도 소리와 연계해서 보자면 50분을 빈틈없이 채운 이 연주에서 아름다운 모든 것들을 묵직한 소리와 함께 쓸어버리는 ‘멸망이라는 이름의 파도’가 생각난다. 음악은 시간으로 이뤄졌다. 시간의 진행에 따른 변화들이 음악을 만든다. 소리들은 순간순간마다 쌓이고 쌓여서 하나의 곡을 만들고, 들려오는 바로 그 순간순간마다 사라진다. 우리는 나타나고 사라지는 소리들의 순간 사이에 있는 조그마한 변화들을 즐기는 셈이고, 어떻게 보자면 한 곡 안에 쌓인 수많은 순간들이 사라지는 것을 즐기는 셈이다. 수많은 순간과 사이 속에서 음악이 만들어진다. 그렇기에 시를 쓸 때 행과 그 사이를 생각하고, 만화를 그릴 때 컷과 그 사이를 생각하고, 영화를 만들 때 장면과 그 사이를 생각하고, 게임레벨을 디자인할 때 구성요소와 그 사이를 생각하듯 – 음악을 만들 때도 소리와 그 사이를 생각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소리의 순간들과 그 사이들, 그 구성 자체를 치밀하게 고민하고 계산하고 배치하고 꾸며낸 노 리스펙트 포 뷰티의 포스트록은 아름답게 빛난다. [Why Perish]라는 음반 이름을 생각하며 노 리스펙트 포 뷰티를 들을 때마다, 모래바닥에 멋지게 그린 그림들이 파도에 사라지는 것처럼 멋지게 쌓이고 사라지는 소리들이 생각난다. 더 많은 존중과 주목이 필요한, 아름다운 소리들이. | 나원영 onezero96@naver.com One Response 공중도덕 – 무너지기 (2018) | [weiv] 2018.09.23 […] 리스펙트 포 뷰티를 이야기할 때에는 마지막에 시간으로 이뤄진 음악과 그 ‘소리의 사이’에 대해서 짧게 언급했다. 그러니까 이런 […] 응답 Leave a Reply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CommentName* Email* Website Δ
공중도덕 – 무너지기 (2018) | [weiv] 2018.09.23 […] 리스펙트 포 뷰티를 이야기할 때에는 마지막에 시간으로 이뤄진 음악과 그 ‘소리의 사이’에 대해서 짧게 언급했다. 그러니까 이런 […] 응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