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주차 위클리 초이스는 검정치마, 재지팩트, 짙은의 트랙, 그리고 언니네 이발관 앨범에 대한 필자별 코멘트입니다. 본 위클리 초이스는 음원 사이트 멜론에도 연재되고 있습니다.

 

검정치마 | Diamond | HIGHGRND, 2017.5.30

‘벅차오르다’. ‘큰 감격이나 기쁨으로 가슴이 몹시 뿌듯하여 오다.’는 뜻의 단어이자, 6년 만에 돌아온 검정치마의 음악을 듣고서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이었다. 사랑을 한가득 눌러 담은 것만으로도 모자라 끝내 넘쳐흐르고 마는 그의 음악 앞에서, 벅차오르지 않을 사람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Diamond”는 특히 더 사랑스러운 곡이다. 3집 [TEAM BABY]의 세 번째 트랙인 이 곡은 1집 [201]과 2집 [Don’t You Worry Baby (I’m Only Swimming)]에서 들려주었던 팝의 기조를 이어간다. 경쾌한 피아노와 통통 튀는 드럼, 후반부의 기타 솔로까지 어느 것 하나 매력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 2집과 3집 사이의 싱글 “Hollywood”나 선공개 되었던 “Everything”에서 들려주었던 부유하는 듯하고 몽환적인 느낌의 신시사이저는 조금 가벼워졌지만, 곡의 도입부에서부터 잔잔히 깔리면서 듣는 이를 사로잡는다.

그렇지만 이 곡이 가진 최고의 매력은 역시나 가사다. 검정치마 특유의 직설적인 가사는 전작들에서보다 더 빛난다. 사랑을 시작하던 때로부터 시간이 흘러 마음이 변하진 않았을지 걱정하는 연인에게, 그는 ‘변하지 않는 건 다이아몬드 하고 / 널 사랑하는 나밖에 없다고’라고 말한다. 단순하지만 단단한, 이 한 마디보다 사랑하는 마음을 잘 담아낸 가사는 적어도 올 한 해 동안은 없을 것이라고 감히 단언하고 싶다. 사실 이 곡 “Diamond” 뿐만 아니라, 3집 [TEAM BABY]의 모든 트랙이 사랑으로 가득하다. 가득한 사랑이 어떻게 더 무르익을지, 앞으로 나올 두 장의 앨범을 기다리게 된다. | 전대한

 

 

재지팩트 (Jazzyfact) | 하루종일 | ILLIONAIRE RECORDS, 2017.5.29

래퍼 빈지노와 프로듀서 시미 트와이스의 듀오, 재지팩트가 긴 공백을 깨고 기지개를 켰다. 다만 이들이 1집에서 들려준 사운드, 재즈를 즉각적으로 연상케 하는 음악을 기대한 팬들은 다소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이번 EP는 전체적인 사운드와 곡의 분위기를 달리 했다. 이런 변화에 대한 포부는 “Cross The Street”의 가사에서 엿보인다. ‘뭐가 나빠 나는 다 하고 말거야 / 넌 판단하고 난 감당할 거야’ 재지팩트는 딱 이 가사만큼 하고 싶은 음악을 만들어냈다.

[Waves Like]에서 시미 트와이스는 샘플링을 활용해 80년대 R&B와 힙합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트랙을 완성했다. 이 부분이 이전의 재지팩트와 가장 두드러지게 다른 지점이다. 이번 앨범이 재지팩트가 이전에 들려준 음악, 이른바 ‘재지’라고 일컫는 특정 분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억지스러운 평가일 것이다. 팬들의 선호(기대와 취향)를 만족시키는 것과 앨범의 완성도는 다른 층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시미 트와이스가 프로듀서로서 음악을 다루는 방식과 폭이 확장된 지점, 곡에 대한 이해도가 엿보이는 빈지노의 적당히 느슨한 랩은 과거 음악과의 유사성과 상관없이 충분히 즐거운 감흥을 전달한다.

타이틀 곡인 “하루종일”은 이번 EP에서 가장 낯설고 새로운 재지팩트를 소개하는 트랙이다. 시미 트와이스는 일본 가수인 안리(Anri)의 “Last Summer Whisper”에서 오리지널 멜로디를 전면적으로 활용하여 샘플링했다. 80년대 시티팝 특유의 여유롭고 빈티지한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낸 비트에 노래와 랩의 중간지대에 있을 법한 빈지노의 랩이 얹힌다. 힘을 뺀 랩으로 한결 곡을 멋스럽게 표현한 빈지노는 은근하게 리듬을 타며 나른한 어조로 게으르고 행복한 시간을 자랑한다. 욕조에 몸을 푹 담근 것처럼 덩달아 나른해질 때쯤, 일상적인 가사 안에 자신의 뚜렷한 주관과 재치가 여실히 드러나는 파트에서 작게 웃을 수밖에 없다. ‘초식남은 반만 담그래 나는 완식욕해 / 그래 날 오징어라 불러’ | 정은정

 

 

짙은 | No Rush | Deep Music, 2017.6.2

짙은의 싱글 “No Rush”는 오는 9일 9년 만의 정규 2집 [UNI-VERSE] 발매를 앞두고 선공개한 싱글이다. 여기서 짙은은 속삭이듯 노래하고 있지만 그 음악은 집약적이다. 마치 바텐더의 설명에 따라 위스키 한 모금을 목으로 넘기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 향의 갈래를 탐색하듯, “No Rush”는 곡이 끝나는 순간까지 작은 소리도 귀 기울여 들을 것을 요청한다.

약간은 길을 잃을 듯한 광활한 공간감을 살려낸 사운드는 커버와도 너무나 잘 어울린다. 호흡이 길고 음색이 선명한 피아노, 몽환적이지만 간결한 보컬의 멜로디는 이 공간 속에 말뚝으로 박아놓은 이정표다. 다양하고 오밀조밀한 음의 배치와 호흡 사이사이에서 긴장감, 씁쓸함, 무상감이 교차하는 사이 짙은의 음악은 모던록에서 모던록의 어법으로 구현한 앰비언트로 한 걸음 나아간다. 밀려드는 감정들이 감당하기 당혹스러워질 무렵 이정표에는 “No Rush”라는 한 마디가 새겨져 있다.

짙은은 왜 급박한 일상 속 쉼표같은 한 마디를 건네고자 했을까. 하지만 의문보다는 존재감이 먼저 다가온다. 이 곡을 들으며 전개된 폭 넓은 감정, 긴 기간 만에 발표되는 정규앨범을 앞두고 자신의 음악적 어법을 재정비한 것 모두를 집약하는 한 마디로서, 마찬가지로 한 곡으로서 “No Rush”는 균형감을 과시하고 정규앨범에 대한 기대를 높인다. | 김태윤

 

 

언니네 이발관 | 홀로 있는 사람들 | 블루보이, 2017.6.1

어떤 아티스트의 마지막 앨범에 대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사실 그리 많지 않다. 물론 좋다, 그렇지 않다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다. 다만 그 모든 이야기가, ‘마지막 앨범’이라는 상징이 갖는 아우라에 어쩔 수 없이 밀리게 된다는 것이 문제다. 요컨대 마지막 앨범에 대한 이야기는 글쓴이가 그것을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감상적으로 흐르게 된다. 그것이 언니네 이발관 같은 ‘중요한’ 밴드에 대해서라면 더욱더.

하지만 그런 ‘감상’이 나 혼자만 부담해야 하는 책임인 것은 아니다. 적어도 [홀로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분명히 그렇다. 한국 인디 씬에서 감성이라는 키워드를 가장 처음부터 이끌어 왔던 산증인이지만, 언니네 이발관은 지난 어떤 작품보다도 이번 앨범에서 가장 감상적인 방향을 택한다. 그 감상을 추동하는 것은 주로 이석원의 가사다. ‘난 미치도록 알고 싶다’ (“창밖엔 태양이 빛나고”), ‘분노가 밀려와 너의 헛소리’ (“나쁜 꿈”) 같은 (언니네 이발관치고) 놀랍도록 직설적인 표현을 굳이 골라내지 않아도, 곡의 노랫말들은 이전보다 훨씬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방향으로 자신의 감정을 노래한다.

그런 방향성이 이 앨범을 듣는 청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각각의 사람들마다 다를 것이다. 마지막까지 이런 류의 자기연민을 버리지 못한다고 혀를 찰 사람도, 감춤 없이 보다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는 모습에 공감을 느낄 사람도 있을 테니까.

다만 (이것이 분리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의 감성이 아닌 사운드를 좋아했던 입장에서, [홀로 있는 사람들]이 ‘들려주고 싶은 소리’보다 ‘하고 싶은 말’이 앞서는 앨범이라는 점은 못내 아쉽게 느껴진다. 전작 [가장 보통의 존재]에서 보여줬던 감정과 사운드의 단단한 결합, 그리고 [후일담]과 [비둘기는 하늘의 쥐]에서 효율적으로 여백을 활용했던 모습을 생각해 보면, [홀로 있는 사람들]이 쏟아내는 말은 분명하게 밸런스가 치우쳐 있다. “마음이란”이 들려주는 산뜻한 그루브, “나쁜 꿈”과 “홀로 있는 사람들”이 그려내는 힘있는 공간감이 이 밴드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사운드에 속한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는 더더욱 아쉬운 지점이다.

이것이 마지막 작품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말한 바는 ‘아쉬움’이 아닌 ‘기대’의 영역에 들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마지막이기에 감상적인 앨범 앞에서, 나 역시 감상적인 아쉬움을 토로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아쉬움 가득한) 마지막 앨범’을 대할 때 느끼는 가장 본질적인 아쉬움이 아닐까. 그러니 내가 가장 처음으로 들었던 이들의 트랙 속 가사로, 이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자.

‘영원한 것은 없다 생각하지 말아요 / 우리 기억속에 남은 순간을 믿어요’ | 정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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