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속에 거대한 턱과 턱수염의 남자가 있다. 누구든 실제보다 50% 정도로 못생겨 보이게 할 각도로 놓인 카메라. 그리고 음악. 그동안 너무 많이 울려 퍼져 첫 부분만 들어도 고개를 끄덕이거나, 어떤 경우에는 가로저을 존 레논(John Lennon)의 “Imagine”. 피아노 반주가 계속 이어지고, 남자는 ‘이매진 데얼스 노우 헤븐’이 아닌 전혀 다른 노랫말을 부른다. 썸 바디 원쓰 톨미… “Imagine”과는 하나도 맞지 않는 노랫말과 멜로디에, 박자까지 조금 엇나간다. 뭔가 생경한 조합의 이 유튜브 영상은 글이 올라온 현재 229만 카운트를 넘겼으며 댓글은 일종의 컬트적인 칭송으로 가득하다. 이 남자/채널의 이름은 존 수다노(Jon Sudano). 다른 영상을 찾아본다. 라디오헤드(Radiohead)의 “Creep”에도, 아델(Adele)의 ”Hello”에도, 오아시스(Oasis)의 “Wonderwall”에도, 똑같다. 썸 바디 원쓰 톨미… 댓글의 반응도 여전하다. 가끔씩은 ‘true music’이나 ‘real music’ 같은 반응도 있다. 대체 뭘까, 이건. 뮤직–밈의 세계 : 영미의 “All Star”부터 한국-일본의 바카야로이드까지 이 이야기를 하려면 영미권의 인터넷 밈(meme)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텐데, 위키백과나 나무위키의 설명을 읽고 오면 대충 감이 잡힐 것이다. 밈의 여러 가지 특징 중에서 하나를 고르자면, 만들 수 있다면 거의 모든 게 밈이 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드레이크(Drake)의 “Hotline Bling” 춤? 도널드 트럼프가 발음하는 ‘차이나(쫘이놔)’? 피아노를 치는 고양이? 의미심장한 미소의 개구리? 싸우스 코리아에서 온 이상한 아저씨가 부르는 더럽게 신나는 노래? 모든 게 밈이 될 수 있다. 인터넷의 법칙인 셈이다. 인터넷에서의 밈은 일종의 레고블록처럼 수많은 뻘글의 기초가 되며 인터넷-유희의 필수요소가 된다. 음악도 여기에서 예외는 아니다. 이를 뮤직-밈(music-meme)이라 불러도 될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인터넷 상에서 밈의 용도로 쓰이는 음악들은 끔찍하게도 많다. 가장 오래된 편이기도 하고, 가장 널리 알려진 두 곡은 아마 다루드(Darude)의 “Sandstorm”과 릭 애슬리(Rick Astley)의 “Never Gonna Give You Up”일 것이다. 누가 2000년대 초중반의 댄스 음악과 80년대 영국 신스팝이 인터넷을 가득 채울 줄 알았을까? 지금도 이러한 뮤직-밈의 재료들은 끝없이 만들어지고 있고, 인터넷이 그런 밈들로 뒤덮여 끝장나지 않는 이상 계속될 것이다. 다시 존 수다노로 돌아간다. 그가 거의 모든 노래의 반주에 얹는 썸바디 원쓰 톨미…의 원곡은 스매쉬 마우스(Smash Mouth)의 “All Star”라는 노래인데, 사실 원곡을 들으면 참 전형적인 느낌의 90년대~00년대 초반 파워 팝이고, <슈렉>의 오프닝에 쓰이기도 해서 기억을 되짚어보면 조금은 생각날 수도 있겠다(만, 이제는 <슈렉>도 일종의 밈이 되었다). 어느 순간, 조금 더 정확히는 2014년을 전후로 이 곡은 성공적으로(?) 밈이 되었는데, “Sandstorm”이 모든 노래들의 제목을 대체하고 “Never Gonna Give You Up”이 낚시용 브금으로 쓰이며 뮤직-밈의 대표곡 같은 위치에 올라온 것에 비해 “All Star”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밈의 위치에 올랐다. 앞의 두 곡들이 음악의 바깥에 있는 요소들(원곡을 묻는 질문 / 낚시를 위한 떡밥)이 필요했다면, “All Star”는 음악 자체를 파고드는 방식으로 뮤직-밈이 된다. 그러니까, 모든 노랫말의 단어들을 알파벳순으로 재배치하고, 이와 비슷하게 모든 음들을 음계 순으로 재배열하고, 반복을 이어가며 겹치고, 박자를 기묘하게 바꾸고, 바흐와 연결되고, 더 나아가 모든 소리를 쪼개고 뒤틀고 박살낸다. 수많은 방식으로 썸 바디 원쓰 톨미…는 철저히 해체된다.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철저하게. 이러한 식으로 한 음악을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방식으로 분해하는 밈은 비단 “All Star”만은 아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모든 것들이 밈이 될 수 있고, 이는 뮤직-밈도 마찬가지다. 어린이용 TV쇼에 나온 투톤 스카 풍의 “We Are Number One”, 영화 <겟 아웃(Get Out)>에 나와 유명세와 함께 밈-화된 차일디시 갬비노(Childish Gambino)의 ”Redbone”, 못 만들어서 유명해진 애니메이션의 주제곡 “The Nutshack”, 인터넷에선 이젠 밈-밴드가 되어버린 데스 그립스(Death Grips)의 ”Guillotine” 등등등. 유명도나 장르에 상관없이 밈이 되거나 밈으로 쓰이는 곡들은 철저히 분해/결합/변주/변형/왜곡된다. 어떻게 보면 이 뮤직-밈에서 중요한 건 밈이 되는 특정 노래들이 아니라, 인터넷의 놀이가 되어버린 밈들을 만드는 방식 그 자체일 지도 모르겠다. 이 ‘방식’들은 흔히 [“곡 제목” but it’s 변형 방식]의 포맷을 삼았다. ‘변형 방식’은 노래의 속도를 특정 어구에 맞춰 올리거나 줄이고, 다른 밈들과 섞고, 노랫말을 어구별로 쪼개 다른 방식으로 나열하고, 반주의 음을 내리는 대신 노랫말의 음을 올리고, 반복하고 겹치는 등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방식으로 펼쳐진다. “All Star”는 어쩌면 단지 이 기묘한 유희의 가장 유명한 희생물(?)일지도 모른다. 이게 대체 무슨 난리통인가. 여기서 잠깐, 시선을 영미권의 낯설고 혼란한 밈의 세계에서 조금 더 익숙한 세계로 돌린다. 영미권의 뮤직-밈들이 기존 곡을 완전히 박살내며 그 분위기와 아우라를 무자비하게 해체하고 이 작업을 기묘한 창작으로 잇는다면, 한국과 일본을 둘러싼 이른바 ‘필수요소’ 혹은 ‘소스’들은 이와 조금 다르다. 하나의 곡을 뜯어고치는 형태의 방식은 음악과는 거리가 조금 먼 영상을 ‘소스’로 삼아 이뤄지고, 국내의 경우에는 다양한 필수요소들을 소스 삼아 리믹스하는 경우가 많다. 흔히들 ‘합필갤 르네상스’라고 하는 2000년대 후반의 디시인사이드 (구) 합성-필수요소 갤러리를 대표하는 합성물인 “빠삐놈”과 여기에 이어지는 “빠삐놈병神디스코믹스”, “달찬놈” 등이 대표적인 예시다. 빠삐코의 CM송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나온 산타 에스메랄다(Santa Esmeralda)의 “Don’t Let Me Be Misunderstood”를 기조로 삼아 엄정아의 “DISCO”, 전진의 ”와“, 장기하와 얼굴들의 ”달이 차오른다, 가자“ 등이 혼란스러운 동시에 꽤 적절하게 이어진다. 그나마 이러한 경우가 빠삐코 CM송이나 “Don’t Let Me Be Misunderstood”을 일종의 음악-소스라고 붙일 수 있는 경우일 테고, 당시의 (구)합필갤에서는 홍진호를 둘러싼 무수한 영상들과 <야인시대>의 심영, 아니면 정치적으로 부적절한 여러 가지 영상들을 소스로 썼으며, 그 유희적인 방식은 “All Star”과도 꽤나 비슷하다. 영미권의 뮤직-밈들이 들려주는 방식과 가장 비슷한 건 어쩌면 위와 같은 리믹스가 아닌 이런 곡일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소스 합성의 방식은 어쩌면 일본의 보컬로이드와도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보컬로이드가 기초가 되는 목소리를 데이터화시킨 다음 이 음원들을 다양하게 ‘합성’한다면 “빠삐놈”을 비롯한 이 수많은 합성물들은 실존하는 소리들을 ‘소스’로 삼은 셈이다. 실제로, 한일을 막론하고 ‘~로이드’라는 이름이 붙는 이 필수요소들은 <데스노트> 애니메이션의 마지막 장면이나 일본의 노노무라 류타로 / 한국의 고승덕 등을 이용해 무수한 소리와 노랫말을 만들어낸다. 2010년대에 들어오며 합성 문화가 (현) 합성 갤러리에서 티비플로 넘어가고, 수많은 국산 소스들이 말 그대로 ‘발굴’된다. 김병만이 <달인>에서 ‘뮤뱅 김병만선생’이라는 이름으로 연주하는 소리들부터 김상중의 햄버거 CF, <올림푸스 가디언>의 디오니소스까지- 소재 선정에 있어서는 영미권의 밈과 다를 바 없이 쓸 수 있는 모든 것들은 밈/소스가 된다. (그것이 어쩌면 이 모든 밈들의 근본일지도 모르겠다) 일본은 일찌감치 2ch와 니코니코동화를 중심으로 이 합성물 혹은 ‘매드 무비’들이 만들어지며, 국내에서도 이제는 많이 늙어버린 디시인싸이드에서 벗어나 유튜브와 티비플을 중심으로 이러한 ‘병만로이드’와 ‘바카야로이드’의 합성물들이 계속된다. (여담이지만, 일본에서 도중하차라고 불리며 국내에도 규모가 꽤 있는 합성물들은 대중교통의 안내방송만을 이용했는데, 밈/소스에 있어서 일종의 장르적인 탐구를 하는 경우라고 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곧 각기 다른 필수요소들을 매시업/리믹스하는 시대는 하나의 소스를 보컬로이드처럼 음절 단위로 쪼개어 새로운 노래를 창조하는 또 다른 해체-재결합의 과정이 된다. 여기서 또 한 번 생각해보면, 이러한 한일의 합성물/매드 무비/~로이드 하는 음악-필수요소들의 방식 또한 보컬로이드의 방식과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사실 보컬로이드가 오타쿠 서브 컬처 문화를 바탕으로 한 창작에서 많이 쓰이긴 하지만, 하츠네 미쿠를 이용한 슈게이징 음반 [Mikgazer]나 보컬로이드들의 음성을 재즈 스캣으로 이용한 연주곡 시리즈 “보컬로이드들이 그저 ~할뿐!”등을 들으면 나름의 무한한 가능성이 보일 것이다. 실제로 후자의 “보컬로이드들이 그저 ~할 뿐!” 시리즈 중 하나는 국내로 건너와 “합성소스들이 그저 소리지를 뿐!”으로 변주되기도 했다. 만약에 보컬로이드를 이용한 전자가 매우 훌륭한 ‘음악’이라고 치면, 필수요소들을 이용해 이를 재미나게 변주한 필수요소-음악도 마찬가지로 훌륭한 ‘음악’이라고 할 수는 없을까? 김병만이 ‘병플렛’과 ‘빨코더’ 등으로 내는 소리로 온갖 음악을 만드는 건 유튜버이자 음악인 Andrew Huang이 쓸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이용해 소리의 ‘소스’를 채집하고 음악을 완성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숀 와사비(Shawn Wasabi)의 ”Marble Soda”를 각종 필수요소로 재구성한 “마블 소다★맛츠다”와 같은 곡은 또 어떤가. 이제는 정말로 거의 모든 음절들을 내뱉을 것만 같은 바카야로이드를 단순히 인터넷상의 농담으로 보기엔 힘들어 보인다. 지극히 유희적인 태도와 방식이 어느새 음악이 되어버리는 순간, 그 순간들을 밈-뮤직 밖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대중음악의 해체–재결합 장인들로 다시 보는 밈–뮤직 이러한 밈-뮤직은 언제나 수많은 유머소재 중 하나, 지독한 농담, 혹은 무한한 재미로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이렇게 밈/소스를 이용한 작업물들은 음원을 이용해 해체-재결합 쇼를 들려주는 여러 다른 ‘음악’들과 궤를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김현식의“비처럼 음악처럼”부터 서태지의 “Christmalo.win”까지 수많은 곡들을 ‘소스’ 삼아 이를 뒤틀어버리고 뒤집어버리는 요한 일렉트릭 바흐(Jonathan Electric Bach)나 샘플링 활용에 있어서 가장 독보적인 방법론을 포스트록과 합쳐내는 불싸조, 국내의 6070 대중음악들을 이용해 새로운 옛 풍경을 그리는 DJ 소울스케이프(DJ Soulscape) 등의 작업들이 인터넷 밈-뮤직의 작업들과 그렇게 넓은 차이가 있어 보이진 않는다. 사실, 이런 뮤직-밈 혹은 음악-필수요소의 방식들이 전혀 새로운 건 절대 아니다. 음원을 산산조각 내는 방식은 이미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생각보다 오래 전부터 수많은 이름을 달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찾아왔다. 샘플링, 리믹스, 매시업… 이것들이 장르가 되면 플런더포닉스(Plunderphonics)가 되고, 좀 더 들어가면 무지크 콩크리트(Musique concrete)니, 턴테이블/테이프 뮤직이니 사운드 콜라쥬 하는 실험적인 장르들까지도 닿는다. 생각해보면, 뮤직-밈이 해내는 방식은 음원 분해-재결합의 전문가들이 썼던 방식과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네거티브랜드(Negativland), 존 오스왈드(John Oswald), KLF, 마트모스(Matmos),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Oneohtrix Point Never), 케어테이커(The Caretaker), 애벌런치스(The Avalanches), 걸 토크(Girl Talk), 플라잉 로터스(Flying Lotus), DJ 섀도우(DJ Shadow), 제이 딜라(J Dilla), 매드립(Madlib),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 등의 레코딩들이 이런 뮤직-밈의 방법론과 크게 차이 나는 부분이 있을까? 밈-뮤직을 하나의 ‘방법’이라고 가정했을 때, 이 음악인들의 방법과 밈-뮤직의 방법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어떠한 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그것이 밈-뮤직을 밈-뮤직이라 할 수 있는 특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합성러의 합성물과 같이, 음악인들도 그들의 작업물에서 ‘이미 존재하는 원본’들을 수많은 방식으로 재구성한다. 여기서 다른 건 단지 그 재료, ‘소스’일 뿐이다. 그리고 음악의 재료/소스가 기타-팝이나 신스-팝처럼 일종의 장르로, 하나의 범주로 묶일 수 있다면 이러한 뮤직-밈을 이용한 다양한 ‘작업물’들이 곧 음악, 그러니까 밈-뮤직 혹은 필수요소-음악이 될 수 있는 건 아닐까? 그 수많은 밈-뮤직 가능성들을 살펴보기 전에 대중음악의 범위 안에 들어가 있다고 판단되는 몇 비슷한 선례들로 음원 해체-재결합의 장인들, 존 오스왈드와 애벌런치스, 걸 토크, 그리고 요한 일렉트릭 바흐를 검토해보자. 앞의 둘은 플런더포닉스의 측면에서, 뒤의 둘은 매시업 혹은 리믹스의 측면에서 볼 수 있을 거 같은데, 계속해서 언급했듯 이러한 장르 혹은 방식들은 샘플링이라는 거대한 방법론에 기초하고 있고, 개인적으론 이런 음악인들이음악이건 밈-뮤직이건 각자의 방식으로 샘플링을 운용하는 좋은 예시라고 생각해 ‘선례’로써 이들을 가져와봤다. ‘플런더포닉스’라는 말의 원류이기도 한 존 오스왈드는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Bad” 한 곡 만을 분열적으로 재구성해 그 이름과도 적절히 맞아떨어지는 “Dab”을 만들었다. 그는 CD가 튀는 듯한 노이즈와 ”Bad”의 순간순간들을 엮으며 “Bad”가 갖고 있던 원래의 느낌을 철저히 부숴버렸고, 이는 몇 년 뒤 수많은 80년대 영미 팝을 극한으로 미분한 다음 더욱 더 분열적이고 해체적으로 적분한 형태의 음반 [Plexure]로 이어진다. 20분 동안 사정없이 튀어나오는 이 소리 조각들은 어쩌면 ”All Star”나 “We Are Number One” 혹은 그러한 뮤직-밈의 다가올 과거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오스왈드의 작업이 당대 팝에 대한 해체적인 시선이 담겼다면, “All Star”을 비롯한 밈의 경우들은 지극히 유희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이런 충격적인(?) 방식으로 등장한 플런더포닉스는 시간이 지나며 샘플링/리믹스/매시업이 마련한 따스한 곳으로도 옮겨가는데, 1000조각이 넘는 샘플들을 모으고 모아 새로운 풍경을 선보인 애벌런치스의 작업은 완성된 모양 없는 퍼즐을 제대로 완성한 것과 비슷할 것이다. 그들의 데뷔작이자 대표작 [Since I Left You]와 작년에 나온 근작 [Wildflower]는존 오스왈드의 [Plexure]와 똑같은 방식으로 온갖 음원들을 합하지만, 존 오스왈드의 철저한 해체가 아닌, 아름다운 재결합을 들려준다. 마치 플런더포닉스가 지닌 동전의 양면이랄까. 애벌런치스의 이 듣기 좋고 잘 정돈된 해체-재결합에서 매시업의 비율을 조금 더 높이면 아마도 걸 토크와 그의 대표 음반들인 [Feed The Animals]나 [Night Ripper]이 나올 것이다. 애벌런치스가 그랬듯, 걸 토크는 팝의 모든 시간들을 속속들이 불러오며 레디메이드의 조각들로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낸다. [Since I Left You]에서 애벌런치스가 원곡이 대체 뭐일지 예상이 가지 않는 정도로 부드럽게 이 조각들을 가져왔다면, [Feed The Animals]를 비롯한 걸 토크의 작업은 원곡이 갖고 있던 분위기를 가져오면서도 다른 맥락에 자연스럽게 이어내는 매시업을 들려준다. 이 부분에서 그 태도적인, 혹은 분위기적인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개인적으론 음원 샘플링 하나만으로 또 다른,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둘은 같은 위치에 놓인다. 분열적인-플런더포닉스 / 자연스러운-플런더포닉스 / 자연스러운-매시업을 지나 이제는 분열적인-매시업, 존 오스왈드와 비슷한 위치에 있을 매시업이 남았을 텐데, 이미 유튜브에는 각종 뮤직-밈들을 ‘죽을 때까지’ 정신없이 합쳐놓은 곡부터 [Plexure]의 힙스터적이고 현대적인 버전인 “2deep4u”의 너무나 깊은 세계도 있지만, 여러 이유에서 (단순한 팬심이 그 이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거 같지만) 요한 일렉트릭 바흐를 놓치고 갈 수는 없을 거 같다. 그 유명한 ”Christmalo.win SINBARAMRemix”를 필두로 요한 일렉트릭 바흐는 매우 적극적이고 의식적으로 한국 팝에 이박사/태진아의 ‘뽕짝’과 하드코어한 전자음악 등을 리믹스하거나 매시업하며 존 오스왈드와는 다른 방식으로 팝의 조각들을 참신한 프랑켄슈타인으로 만들어버린다. 최근의 “생율 Bomb”과 같은 곡에서도 그 나름의 ‘태도’는 이어지는데, 이는 어떻게 생각해보면 “All Star”를 잘게 쪼개어 다른 음악이나 밈들과 합쳐버리고 “D.I.S.C.O”나 “와” 등을 유희 반 조롱 반의 태도로 합쳐버리는 합성의 태도와도 이어지는 부분이 있다. 결론적으로, 존 오스왈드의 파괴적인 조롱, 애벌런치스와 걸 토크의 자연스러움, 요한 일렉트릭 바흐의 무한한 유희, 그들의 모든 방법과 태도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지금의 밈-뮤직에 서려있다. 나는 이 모든 거대한 밈/필수요소 대잔치들이 이 값진 선례들의 새로운 미래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닐 씨시레가, “All Star” 밈과 밈–뮤직의 극점 이 또 다른, 새로운 미래 중 한 명으로 닐 씨시레가(Neil Cicierega)라는 사람을 들고 싶다. 월드 와이드 웹의 초창기부터 수많은 플래시 애니와 인형극과 영상 등을 만들어온 사람인데, 레몬 데몬(Lemon Demon)이라는 이름으로 기묘한 신스팝을 만들던 그는 “All Star” 밈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던 2014년부터 이른바 “Mouth Experience”라고도 불리는 세 장의 음반 [Mouth Sounds], [Mouth Silence], [Mouth Moods]를 만든다. Mouth 시리즈는 존 오스왈드의 해체적인 태도와 요한 일렉트릭 바흐의 참신한 유희, 걸 토크와 애벌런치스의 자연스러움을 모두 담아낸 완벽한 밈-뮤직 음반들이다. 매시업에서 플런더포닉스까지를 오가는 그의 창조적인 샘플링의 몇 예시들로는 한스 짐머(Hans Zimmer)의 “Time”과 빌리지 피플의 “Y.M.C.A”를 섞은”T.I.M.E”부터 (참 예상 가능한 조합이지만) 마이클 잭슨과 너바나를 섞은 “Bills Like Jean Spirit”, 오아시스(Oasis)의 원곡을 철저히 부수는 동시에 새롭게 구축한 “Wndrwll”, B-52의 팝 펑크 목소리와 버나드 허먼(Bernard Herrmann)의 <싸이코> OST를 합친 괴기스러운 ”Love Psych“ 등이 있다. 특히나 닐 씨시레카만이 보여줄수 있는 샘플링의 최극단으로는 토킹 헤즈(Talking Heads)부터 아웃캐스트(OutKast)와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 그리고 “All Star”를 합쳐낸 ”The Starting Line“과 ”Annoyed Grunt“을 들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시도들은 존 오스왈드의 그것을 조금 현대화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주목할 만 한 점은 Mouth 시리즈를 대표할 [Mouth Sounds]에 있다. 이를 포함한 모든 음반에는 밈이자 소스로써의 “All Star”가 다방면으로 쓰였는데, ”T.I.M.E’의 웅장한 끝을 장식하는 휘파람은 가장 기본적인 경우며 눈치 챌 수 없는 수많은 순간순간에 “All Star”와 스매쉬 마우스의 곡들이 쓰인다. [Mouth Sounds]는 그 중에서도 스매쉬 마우스와 “All Star” 자체를 기본 요소로 삼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음반으로, 이번에는 모디스트 마우스(Modest Mouse)부터 칸예 웨스트(Kanye West)까지 영미 팝의 모든 순간들이 피할 수 없이 ”All Star”와 결합된다. “The Sharpest Tool”은 그 깊은 밈-뮤직의 최전선에 있을 것이다(애초에 음반 제목의 Mouth라는 단어를 어디에서 따왔는지 생각해보면, 더욱 명백해진다). 게다가 [Mouth Sounds]는 단순히 “All Star”을 디폴트값으로 삼아 샘플링하는 것을 넘어 ”All Star”을 1200% 늘여 음반전체를 지나가게 만들었고, 각 곡의 정보에 적힌 숫자들과 기호들을 조합하면 SMASHMOUTHALLSTARS가 되며, 음반 제작일이 “All Star”가 나온 1999년 5월 4일로 맞춰져 있는 등 ”All Star”를 이용한 똥글싸기(Shitposting)의 정교한 정점에 오른다. 나는 음악적으로 발전하다 못해 메타적인 측면까지 나아가는 이 모든 밈-뮤직과 합성물들, 범위를 넓혀 과거의 조각들을 샘플링으로써 현재에 끌어와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이 모든 방식이 무한한 재미를 넘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밈-뮤직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처음에는 “All Star” 등의 재료에서, 그 다음으로는 해체-재결합의 방법에서 그 특징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닐 씨시레가의 이러한 메타적인 시도들을 보면, 밈-뮤직을 가장 제대로 특징지을 수 있는 것은 (무척이나 애매하지만) 그 지극히 유희적인 태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세 요소들이 전부 합쳐져 밈-뮤직이 완성될 수도 있지만 말이다. 대중음악에서도 무척이나 무겁고 진중한 의미들이 쌓이는 지금, 가장 가볍고 능청맞은, ‘평범한 진실이랑 재미있게 노는 것’1의 태도를 이어가며 장난감 다루듯이 대중음악을 다루고, 그것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이 태도가 밈-뮤직을 결정하는 중대한 요소이며, 어쩌면 밈-뮤직의 가능성이 담긴 곳이 아닐까 싶다. 무한한 재미에 담긴 무한한 가능성, 레고(LEGO)가 덴마크어 ‘재미있게 놀다’에서 따온 것처럼, 밈-뮤직은 단지 수많은 소스/필수요소들을 가지고 재미있게 놀았고, 그 무한한 재미에서 무한한 가능성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닐 씨시레가의 대표곡이자 이 난잡한 밈/필수요소 대잔치의 마지막 곡으로, “Imagine All Star People“. 너무 많이 이 세계에 울려펴졌다고 해도, 여전히 아름다운 존 레논의 ”Imagine”, 피아노 반주가 울리고…이 글을 뚫고 오는 고생길에서 너무도 많이 들은 그 노래가 얽혀온다, 천천히, 천천히. 썸 바디 원쓰 톨미 더 월드 이스 거나 롤미… 두 노래가 합쳐지는 걸까, 아니면 그냥 존 수다노의 우스운 밈과 같은 것일까. (이것마저도, 크로스오버인가?!) 대체 뭘까, 이건… 그러니까, 그냥 ‘음악’이 아닌가? 그래, 또 다른, 새로운, 즐거운, 음악. | 나원영 onezero96@naver.com 김중혁, 『유리 방패』 Leave a Reply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CommentName* Email* Website 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