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경 한 재즈 바에서 한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이 있다. 칵테일 바와 재즈, 어쿠스틱 장르 중심의 음악 소공연장을 겸했던 그곳은 소위 홍대 앞 젠트리피케이션의 자장 속에서 꽤 이른 시기에 연남동에 자리를 잡은 곳이었다. 지금까지도 주로 음대를 갓 졸업했거나 경력을 시작하는 뮤지션들의 소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당시는 연남동도 현재보다는 ‘핫 플레이스’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시기다. 나는 연남동에서 홍대 앞 인디씬을 곁눈질하는 동시에 재즈 바에서도 인디문화나 하위문화, 혹은 그 유사한 것이 형성되길 희망했다.

하지만 실제로 벌어진 일은 기대와 달랐다. 재즈 바는 고유한 분위기를 갖고 있었지만 연남동의 향유자는 주로 ‘소비력을 갖춘 30대 이상의 직장인’으로 한정되었다. 몇몇 뮤지션들이 재즈 바를 주무대로 삼기도 했던 데에 반해, 재즈바를 찾는 관객들은 칵테일을 사 마시며 라이브 음악을 즐기는 것 이상으로 어떤 ‘씬’을 형성할 만한 문화적인 참여까지 이르진 않았다. 최근에는 그 때보다 몇몇 공연장이 더 생겨났지만, ‘연남동 음악 씬’이라는 상상이 다소 막연하게 느껴질 만큼 각 공연장의 활동 양상은 상이하다. 이곳이 다른 지역이 아닌 연남동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그리고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큰 주제를 복기했을 때 각각의 공연장들이 보이는 차이는 내게 최근 홍대 앞을 둘러싼, 서로 아주 가까이에 있지만 멀게 여겨지는 여러 움직임들을 상징한다.

 

제39회 <라이브 클럽 데이> 포스터

 

지난 6월 29일 진행된 39회 <라이브 클럽 데이>에서는 경기콘텐츠진흥원과 KBS <올댓뮤직>이 주관하는 <인디스땅스 2018>의 본선 2라운드 무대가 하나투어 브이홀에서 치러졌다. <라이브 클럽 데이>는 홍대 앞의 여러 움직임을 감안하더라도 ‘인디씬’이라는 말이 여전히 유효한 음악 축제다. 비록 펑크족은 없더라도 여러 공연장과 레이블들이 ‘지역 음악 축제’를 공감대로 합심해 인디씬의 명맥을 이어나간다. 동일한 슬로건을 갖는 또 다른 홍대 앞 페스티벌 <잔다리페스타>가 세계 각지 씬과의 관계 및 공동 작업을 염두에 둔 것에 비해 보다 순수하게 지역성에 천착하는 것도 <라이브 클럽 데이>만의 고유한 특징이다.

<라이브 클럽 데이>의 또 다른 키워드는 ‘무경계’인데, ‘실력파 뮤지션 발굴 및 육성’을 목적으로 3년 차에 접어든 <인디스땅스 2018>의 본선 무대가 2017년에 이어 다시 한 번 이어졌다. ‘인디씬’과 ‘지역 음악 축제’, 그리고 ‘지역 공공기관 및 방송국’과 ‘실력파 뮤지션 발굴 및 육성’이라는 서로 다른 주체와 목적이 ‘경계 없이’ 어우러지는 모습은 앞서 설명한 연남동에서의 경험에 견주어 봤을 때 조화롭다. ‘뮤지션의 발굴 및 육성’이라는 목적 또한 인디씬 내 인큐베이터 역할에 대한 갈증을 떠올려봤을 때 당위성을 갖는다.

그럼에도 <인디스땅스 2018>의 무대가 <라이브 클럽 데이>가 되어야 했다면, 두 행위자 사이의 어떤 공감대가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궁금증이 남는다. 왜 굳이 <라이브 클럽 데이>일까? 이미 <인디스땅스 2018>의 예선 무대가 명지대학교 자연캠퍼스, 한양대학교 에리카캠퍼스, 경기대학교 수원캠퍼스 등 경기도 소재 대학 축제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주관기관으로 참여하고 있는 경기콘텐츠진흥원이 경기도 지역 문화와 산업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생각해봤을 때 자연스러운 흐름일 것이다. 아울러 참여 기회는 경기도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전국의 뮤지션을 대상으로 한 결과, 388팀이라는 역대 최대의 지원자가 <인디스땅스>에 참여했다. 이는 전국적 공공성과 국내 대중음악 산업의 발전을 동시에 지향하려는 목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뮤지션 지원 중심의 목적이 특정한 지역적 씬의 토대를 마련하려던 것은 아닌 점에서, 이는 경기도나 홍대 앞 인디씬(최종 6팀의 경선으로 압축됐다고 하더라도)의 지역성을 훨씬 상회하는 결과로 보인다. 홍대 앞이 서울의 대표적 핫 플레이스의 하나로, 다양한 문화적 취향과 실천들이 개입한다고 하더라도 인디씬 자체가 그 모두나 전국적인 어떤 것과 등치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울러 ‘실력파’ 뮤지션을 발굴하고 육성한다는 취지 또한 궁금증을 배가 시킨다. ‘실력’이라는 말은 아마도 공공성과 대중성을 담보하는 의미로 요구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 홍대 앞 인디씬에서 신진 뮤지션들의 무대였던 라이브 클럽들은 음악과 문화가 나누어지지 않은 무대를 제공해왔던 점이 특징적이다. 실력이 없어 씬에서 인정받기 어려웠다는 뮤지션들의 얘기를 접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 무대에 선다는 것은 지역 씬 관계자, 동료 뮤지션, 클럽 관객들 사이의 문화적인 공감대에 참여하는 것을 우선시한다. 즉, 음악적 실력의 증명보다는 함께 씬을 꾸려가는 이들과의 관계가 더욱 선행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의문이 들긴 하지만, 결국은 <인디스땅스 2018>과 <라이브 클럽 데이>가 공감대를 지속적으로 맞추어가겠다는 의미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본선 무대에 나선 뮤지션들도 ‘실력파’라는 수식어에 부족하지 않은 무대를 선보였다. 젠틀한 무대매너가 돋보였던 아이반, 본인들의 끼를 드러내면서도 다양한 매력을 선보였던 헤이맨, 영상작업까지 더해가며 ‘공상과학’이라는 확실한 컨셉을 강조한 트리스, 어쩌면 4인조 밴드의 가장 정석적인 무대를 보여준 휴이, 기타 줄이 끊어지는 해프닝마저 캐릭터로 보일만큼 유쾌했던 맥거핀, 브라스밴드로서 브이홀 무대에 가장 애로사항이 많았을 텐데도 여유롭게 무대를 이어간 엔피유니온. 브릿팝, 신스팝, 힙합을 결합한 브라스 밴드 등 무대를 수놓은 장르 또한 다채로워 그 자체로 보자면 경선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기호를 만족시키는 하나의 독자적인 공연을 보는 듯 했다.

 

자체제작 영상을 더한 공상과학 컨셉 신스팝 밴드 트리스의 무대 ⓒ 류혜민

 

아쉬웠던 점은 <인디스땅스 2018>과 <라이브 클럽 데이>가 공감대를 지속적으로 맞추어가겠다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그 취지를 명확하게 살리지 못하는 제한점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브이홀 무대에서 진행된 <인디스땅스 2018>은 <라이브 클럽 데이>의 다른 무대와 다소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3시간 동안 연속으로 진행된 경선은 본선 진출 팀들이 오디션 형식에 압박받지 않고 자유로운 퍼포먼스를 선보일 수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라이브 클럽 데이> 자체를 즐기기에는 어려움으로 작용했다.

사회자의 진행 아래 프로그램이 전개되어야 하는 점, 촬영을 위한 장비 및 인력이 제한된다는 점, 관객들이 각각의 뮤지션의 무대를 관람한 뒤 씨소(SeeSo) 앱을 통해 투표해야 한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본선에 참여한 뮤지션들이 한 무대에 서야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만약 본선에 참여한 뮤지션들을 두 팀 정도씩 나누어 <라이브 클럽 데이>의 무대 곳곳에서 공연을 펼치는 것이 가능했다면, 그들이 <라이브 클럽 데이>에 참여한 다른 뮤지션들과도 교류를 넓히고 각 클럽을 방문한 관객들 또한 <인디스땅스 2018>의 무대를 접하는 등 확장의 가능성이 보다 넓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맥거핀의 변하금(보컬, 기타)와 배준일(기타)

 

오는 8월 9일 고양 아람누리 KBS <올댓뮤직> 공개방송 파이널 콘서트에서 <인디스땅스 2018>의 최종 우승자가 발표되고, 최종 우승자는 1천만 원의 상금 및 음반 제작, 유통, 홍보 등 각종 혜택을 수여받는다. 만약 <인디스땅스 2018> 본선 무대에 섰던 뮤지션들이 <라이브 클럽 데이>와 원활한 관계를 유지한다면 우승자가 상금과 각종 혜택을 통해 활동에 탄력을 받을 뿐 아니라, 그들이 장차 홍대 앞 인디씬의 새로운 기수로 각광받게 될지 모른다. 그들 또한 다양한 무대를 소화하며 역량을 쌓고 실력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인디씬의 여러 관계를 활동의 준거점으로 받아들이고 지탱하게 될지 모른다. 인디씬에서도 신진 뮤지션들을 위한 안정적인 기회가 부족하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인디스땅스>와의 장기적인 동행을 통해 이를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뮤지션들은 물론 씬 전체가 모색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다.

<라이브 클럽 데이>라는 고유한 ‘지역 음악 축제’와 ‘실력파 뮤지션의 발굴 및 육성’이란 목적을 지닌 <인디스땅스 2018>이 서로의 장점을 보다 굳건히 할 수 있도록, 더욱 장기적이고도 공고한 동행을 기대한다. | 김태윤 gyalta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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