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디(Moldy) | Internet KID | Grack Thany, 2018

 

포스트인터넷 시대의 랩 음악

인터넷의 기원이라고 불리는 아르파넷(ARPAnet)이 개발된 1969년으로부터 50년 가까이 흘렀다. 반세기라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세상의 거의 모든 것들은 직/간접적으로 인터넷의 영향을 받았다. 누구도 이러한 변화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이 부정적이라고 생각하든 혹은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든, 엄청나게 거대한 이 변화는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분명히 이질적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인터넷이라는 공간(혹은 지평, 구조… 등등)을 흔히 두 가지 상반된 방식으로 사유하는 듯하다. 한 가지 방식은 인터넷을 현실 세계의 부정적인 대립항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라는 두 대립항을 생각해본다면, 보다 이해가 쉬울 것이다. ‘온라인’에서도 우리는 무수히 많은 일을 할 수 있지만, 정말 중요한 일들, 특히 (도통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진정성이 요구된다고 믿어지는 일만큼은 여전히 ‘오프라인’에서 수행하기를 선호한다. (단적으로, 선거를 위한 투표를 떠올려보라) 이처럼 인터넷은, 불안정하고 오류 가능성을 내포한, 실재의 열화판으로 생각된다. 한편, 다른 방식은 인터넷을 현실 세계의 대안처럼 간주하는 것이다. 과거에 만들어졌던 많은 SF 작품들이 인터넷을 다루었던 방식이 대표적이다. ‘사이버스페이스’에 대한 수많은 상상들이 보여주듯, 인터넷이 현실 세계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새로운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즉, 인터넷은 실재에 의한 제약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긍정적 잠재성의 공간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정말로 인터넷은 그러한가? 우리가 매일같이 접속하는 그것은 정말로 현실의 열화이거나 대안인가? 오히려 오늘날 인터넷은 우리의 일상 그 자체 아닌가? 그것이 투사되는 매체나 장치는 제각각일지 몰라도, 나는 인터넷이 없는 인간의 삶을 결코 상상할 수 없다. 인터넷은 이제 인간과 완전히 독립된 무언가라고 하기엔, 삶으로부터 도저히 분리가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되었다. 그것은 현실의 열화판이거나 현실을 뛰어넘는 잠재성의 공간이 아닌, 새롭게 편입된 그렇지만 별로 도드라질 것이 없는 평범한 일상적 공간일 뿐이다.

포스트인터넷아트 담론은 (시각)예술에서 이러한 상황을 담아내는 작업들에 대한 논의이다. 이를 내 나름대로 요약하기보다는, 포스트인터넷아트를 정의한 몇몇 이론가들의 문장을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포스트인터넷아트는) 인터넷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을 예술이자 어떤 식으로든 인터넷의 ‘스타일’로, 또는 인터넷의 ‘영향 아래’ 있었던 예술을 가리킨다. 즉 그것은 네트워크 문화 안에서 삶의 조건을 재현하는 예술이자 인터넷 이후의 예술이다.” (Olsen 2013)1, “인터넷이 새로움이기보다는 평범함에 가깝게 된 일반적인 문화적 조건에 응답하는 예술이다.” (McHugh 2011)2.

몰디(Moldy)의 새 EP [Internet KID]는 명백히 포스트인터넷 시대의 랩 음악이다. 어쩌면 당연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몰디의 새 EP는 노골적으로 인터넷을 소재로 한 앨범임을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 [Internet KID]라는 앨범의 제목은 물론이고, 첫 트랙 “Sign in”과 두 번째 트랙 “Wi-Fi”는 노골적으로 제목에서부터 인터넷을 소재로 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다른 트랙들에서는 직접적으로는 아닐지라도 ‘접속’이나 ‘백업’ 등의 표현을 가사에 자주 사용함으로써 ‘인터넷’이라는 앨범의 전체적인 컨셉을 일관되게 유지한다.

허나, 이 정도 이유만으로 그의 새 앨범이 포스트인터넷 시대의 랩 음악이라고 진술하기엔 불충분하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몰디가 내뱉는 가사들이 지극히 포스트인터넷 시대의 태도를 견지한다는 것이다. 트랙의 주체가 위치하는 공간은 때로는 인터넷이고 또 때로는 현실이지만, 그는 그런 것쯤은 아무 상관없다는 듯, 한결같은 자기 과시를 멈추지 않는다. 몰디는 ‘이제부터 모든 전파를 뺏어 / 혹시 걱정되면 미리 백업해 둬’ (“Sign In”)처럼 온라인에서는 물론이고, ‘섞어 내 것과 새것과 / 너희건 다 엿 먹어 멋져’ (“GodDy”)처럼 오프라인에서도 자신을 치켜세운다. 온라인에서는 온라인의 문법으로, 오프라인에서는 오프라인의 문법으로 자기 과시를 시도하는 모습은 ‘인터넷이 평범함에 가까운 일반적 조건이 된’ 포스트인터넷 시대의 전형적인 태도를 표상한다.

그렇지만 국힙 씬의 수많은 다른 음악가들이 그래왔듯, 이러한 태도는 자기 과시 서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Internet KID]는 인터넷을 주된 공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음에도, 결국에는 (오프라인에서의) 자기 과시를 노래했던 다른 작업들과 궤를 같이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 앨범에서 몰디가 과시하는 것이 오프라인의 어떤 대상들이 아니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나타난다. 현금이나 시계와 같은 물질적 표상을 통해 이루어지는 돈에 대한 과시나, 파티와 같은 장치를 이용한 인기와 명예에 관한 과시 등이 주를 이루었던 기존의 자기 과시는 그의 곡들에서는 그리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가 원하는 것은 사람들이 ‘진화의 순간’을 ‘생중계’하는 것이고, ‘죽이는’ 소리를 기록하기 위해 자신의 ‘Wi-Fi’를 체크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몰디가 무척 영리한 음악가임을 새삼 느낀다. 돈이나 인기와 같이 다소 뻔한 자기 과시의 표상들을 버리고 자신의 행보나 소리에 집중할 것을 요구하는 동시에 (그가 속한 크루 그랙 다니(Grack Thany)가 자신들의 주된 모토로 내세우는) ‘대안적인’ 자기 과시를 시도하는데, 이와 더불어 [Internet KID]라는 앨범의 컨셉처럼 포스트인터넷 시대의 랩 음악이 마땅히 과시의 대상으로 삼을 만한 소재를 매우 적절하게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듀서 사일러밤(Sylarbomb)과의 협업은 앨범에 더욱 견고한 통일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그는 오늘날 국힙 씬에서 가장 지배적인 세부 장르인 트랩과 붐뱁을 과감히 제외하고, 드럼 앤 베이스(Drum and Bass)나 그라임(Grime), 바운스(Bounce)와 같이 전자음악에 그 뿌리를 둔 장르들을 채택한다. 또한 사일러밤은 전작들에서도 종종 들려주었던 것처럼 노이즈를 적극적으로 차용하는 방식을 통해 분열적인 사운드를 직조해낸다. 이러한 프로듀싱은 인터넷 시대의 음악(보다 정확히는 컴퓨터 기반의 음악이겠지만)을 랩 음악에 적극적으로 녹여냄으로써 앨범에 일관성을 형성한다.

작년 연말결산에도 썼지만, 그래서 나는 그랙 다니의 구성원들이, 그리고 몰디가, 스스로를 소개할 때 대안적인(얼터너티브한) 음악을 한다고 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도대체 무엇의 대안인가? 국힙 씬의 흔해빠진 음악들? 그렇다고 치자. 문제는 무언가의 대안이 될 것이라는 말은, 그들이 다른 무언가를 대신할 수 있는 만큼 그들도 또 다른 무언가로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몰디가(그리고 그랙 다니가) 국힙 씬의 음악들에 대한 포스트인터넷적 대체재라고 말한다면, 역으로 이 새로운 음악을 대신할 수 있는 누군가도 지금-여기에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포스트인터넷 시대의 랩 음악은, 적어도 한국에서만큼은, 몰디로부터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 전대한 jeondaehan@naver.com

 

Rating: 7.5/10

 

수록곡
1. Sign in
2. Wi-Fi
3. Goddy
4. Rap Dance
5. Nerdwave 2018
6. 사랑과 평화

 

 

  1. Adler, Phoebe, et al. Art and the Internet. Black Dog Publishing, 2013. p.195. 번역된 문장은 아트인컬쳐 2016년 11월호에 실린 김지훈의 “왜, 포스트인터넷아트인가?”에서 재인용
  2. McHugh, Gene. Post Internet: Notes on the Internet and Art 12.29.09> 09.05.10. LINK, 2011. 번역된 문장은 아트인컬쳐 2016년 11월호에 실린 김지훈의 “왜, 포스트인터넷아트인가?”에서 재인용

One Response

  1. CYAN`s List of 2018 : 2018 국내 베스트 트랙 50 - 온음

    […]   Black AC의 손에서 탄생한 둔탁한 드럼 앤 베이스 비트와 불안정한 스크래치 위로 쓰여지는 Moldy의 자기과시성 노랫말은 ‘새로움’이라는 하나의 가치를 지향한 채 펼쳐지며, 그렇기에 돈/자동차/시계 등으로 이루어지는 한국 힙합의 대표적인 자기과시 유형과 거리를 둔다(* “그래 돈 던지면 전부 뻔해서, 그걸 살까하다가 똑같아 니 새끼들 전부 줬어“). 그 뒤로 등장하는 “우피 골드버그”, “얼음땡에서 술래가 된 저스틴 비버” 등의 공허한 라인은 Verse를 휘발적으로 태우지만, 이윽고 클라이막스로 이르러 새로움으로의 이행의 의지를 맹렬하게 재확인하는 라인들이 전 Verse의 공허함에 또 하나의 의미를 부여한다. 그 지점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교차하며, 인터넷에서 허무하게 소모되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들이 현실과 일상 속으로 녹아들어와 격변의 방아쇠로 작용한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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