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어쩌다가 엠넷의 예능 프로그램 <덕후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예고편을 보았을 때, 나는 할 수 있는 한 최고의 경건하게 자세를 고쳐 그 광고 혹은 예고를 볼 수밖에는 없었다. 왜냐면 우선 세상에 아직 희망과 행복이 조금 남아있는지 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의 “Wake Up”을 집어넣어 이 위대한 노래를 처음 듣고 화들짝 놀란 고등학교 1학년(물론 그 때의 아케이드 파이어는 [Funeral]은 오래고 [The Suburbs]까지 낸 후지만, 아무렴 어떨까) 즈음의 감성으로 나를 보내버렸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역시나 희망차고 행복하게도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덕후였다” 따위의 감동적이기 그지없는 문구들을 보여줘 안 그래도 두근거리던 마음을 두 배로 두근두근대게 했기 때문인데다가, 무엇보다 첫 방송에 장기하가 나온다고 못 박으며 두근을 두근두근으로 바꾼 것도 모자라 두근두근두근으로 완전히 폭발시켰기 때문이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이 프로만큼은! 어떻게든!! 사수해야겠다!!! 고 다짐했고, 실제로 꽤 감격스럽게도 나는 이를 어느 정도는 해내며 장기하가 오직 토킹 헤즈(Talking Heads)의 데이비드 번(David Byrne)을 위해 서울에서 뉴욕까지 기묘한 여정을 뚫고 가는 어마어마한 모험기를 시청할 수 있었다. 그건 참 즐거운 경험이었는데, 그건 무엇보다도 내가 장기하의 덕후이기 때문이다. (이건 10년이나 되는 긴 이야기다…) <덕후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장기하가 보여주는 ‘데이비드 번-빠’의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바로 지금, 이 모습에서부터 장기하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고 느꼈다. 나는 언제나 장기하와 얼굴들에 대해 쓰고 싶었다. 물론, 이미 잘 알고 있으며 다시 반복할 필요가 없는 사실들을 다시 언급하고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장기하의 모습들을 <덕후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제목 그대로 ‘덕후’로서의 정체성이 가득한 바로 그 모습으로 다시 이야기해야 할 거 같다고 느꼈다. 나는 그에 대한 긴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고, 그래서 이 글은 덕후로서의 장기하에 대한 글이 되었다.

 

 

장기하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그러니까 그가 눈뜨고 코베인의 육중한 드러머에서부터 청년실업의 기이한 포크 청년을 지나 인디 록의 수염 난 슈퍼 루키와 이후 면도하고 돌아온 인디 록의 구세주로, 또 <장기하의 대단한 라디오>의 DJ이자 아주 잠깐 ‘아이유의 애인’이었던 시기도 지난 뒤 스팍 헤어스타일의 암흑기(?)를 지나 지금의 극성 토킹 헤즈+데이비드 번-빠까지의 거의 15년이 될 법한 시간동안 장기하에게 변함없이 붙어있던 정체성은 ‘오래된 미래’, 정확히는 ‘한국 대중음악의 오래된 미래’였다. 이 단어는 그 안에 담긴 무궁무진한 모순과 양가와 역설만큼이나 의미심장한 단어인데, 어쩌면 이 오래된 미래라는 오래된 호칭이야말로 장기하의 덕후성과 직접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입구가 되기 때문이다. 거기서부터 우선 시작해보려고 한다. ‘오래된 미래’는 장기하의 모든 음악 활동, 눈뜨고 코베인 시절부터 지금-여기까지의 거의 15년이 되어가는 그 모든 시간을 정리할 수 있는 단어다. 그리고 그 ‘오래된 미래’라는 장기하의 특징은 그의 덕후성과도 거의 포개지듯 겹치는데, 자연스럽게 그가 이 호칭 겸 정의를 받은 때로 돌아가, 장기하가 대중음악의 ‘오래된 미래’가 되어가는 과정과 더불어 ‘덕후’의 관점에서 그의 덕질 여정을 재구성해보는 것으로, 덕후 장기하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덕후, 장기하

‘오래된 미래’의 호칭은 그가 인디 록의 중심으로 떠오르던 08-09년, 즉 EP [싸구려 커피]와 정규 1집 [별일 없이 산다]가 나왔을 때부터 쓰였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출현 직전까지의 붕가붕가 레코드를 다룬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에도, 또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나온 EP [싸구려 커피]에서도, 한국 대중음악의 오래된 미래라는 호칭이 쓰였으며 이는 이후 수많은 비평에 등장한다. 본격적인 음반이 나오기 전, 그러니까 쌈지 싸운드 페스티벌이나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싸구려 커피”와 “달이 차오른다, 가자”로 뜨기 시작하며 이후 인터넷을 필두로 밈(meme)적 유행을 탈 때, 장기하,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싸구려 커피”는 그 당시 떠돌던 ’88만원 세대’의 청년 담론을 대중음악적으로 반증하는 사례라고까지 평가받기도 했다. 한편 “달이 차오른다, 가자”는 디씨인싸이드를 시작으로 인터넷 곳곳에서 너른 밈적 유행을 타고 있었다.

이러한 다양한 정체성들이 한 곳에 모여 그 당시의 장기하는 ‘합필갤의 전설’이자 ‘가난한 청춘의 대변인’ 혹은 ‘눈코에서 드럼 치던 걔’가 묘하게 섞인 느낌이었다. 이 상황은 2009년에 [별일 없이 산다]가 나오면서 전환되는데, 이전까지 합필갤과 88만원 세대들이 장기하와 얼굴들의 음악 자체보다는 외적으로 드러나는 이슈메이킹적 요소들에 초점을 두게 했다면, 마침내 정규 음반이라는 결과물이 나오면서 이것이 텍스트로써 제대로 이야기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는 강헌이 [장기하와 얼굴들]에 대해 평한 “장기하와 얼굴들의 두 번째 앨범은 김민기에서 진지함을 빼고 정태춘에서 분노를 빼고 산울림에서 문학적 시정을 빼고 신중현과 엽전들에서 실험적인 미학을 빼고 황신혜 밴드에서 과장법을 뺀, 그 나머지의 질료로 21세기 대한민국 청년의 통속성이라는 술통에서 발효시킨 도수 낮은 술과 같다.”라는 문구가 오히려 [별일 없이 산다]에 더 잘 어울려 보인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첫 음반은 20세기 한국 록과 포크, 정확히는 60년대 후반 신중현의 시대부터 80년대 중후반의 ‘언더그라운드’ 밴드들까지 20년에 걸친 록의 장기하식 집대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집대성의 중앙에는 장기하의 덕력이 있다.

 

눈뜨고 코베인 “말이 통해야 같이 살지”

 

다시 시계를 조금 더 과거로 돌려, 붕가붕가 레코드가 아직까지도 쑥고개와 관악구, 즉 서울대학교에 박혀 있던 시절로 먼저 돌아가 본다. [지속가능한 딴따라질] 등을 포함한 인터뷰나 여러 자료들을 참고하면, 장기하는 ‘선배들’(누구인지 예상이 갈 것이다)에 의해 국내 록과 포크를 주입식으로 흡입했다고 한다. 여기에 장기하가 원래부터 좋아하던 20세기 후반의 영미권 록이 더해지며, 장기하는 그의 ‘덕력’을 해외는 물론 국내로도 돌리게 된다. 그가 드러머로 있을 당시, [파는 물건]부터 [Pop To The People]까지의 눈뜨고 코베인은 지금과 같은 우주적인 노랫말의 싸이키델릭-신스 록 밴드이기보다는 산울림/송골매를 중심으로 한 7080 그룹 싸운드를 05년도 당시의 인디 식으로 키치하게 재현하는 밴드였고, 여기에서부터 장기하는 “말이 통해야 같이 살지” 등으로 복고적인 덕심을 드러낸다. 이어 새로이 등장한 [청년실업]에서는 20세기식 그룹 싸운드가 아닌 20세기식의 포크를 마찬가지의 05년도 인디 방식으로 되살린 후에서야, 장기하는 본격적으로 밴드를 동원해 그의 덕심을 실현시킨다.

그렇게 “싸구려 커피”를 거쳐 마침내 나온 음반이 [별일 없이 산다]다. 장기하의 덕질로써는 기념비적인 첫 시작인 이 음반에는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까지의 신중현이 수놓은 무수한 프로젝트들(에드훠, 더 맨, 퀘션스, 덩키스, 무엇보다도 엽전들)의 ‘그룹 싸운드’와 이후의 디스코그래피에서도 꾸준히 인용되는 산울림의 걸작들(1-3집, 6집, 9집, 10집… 사실상 모든 음반들)에 송골매(또한 활주로와 블랙 테트라)를 중심으로 80년대 초반의 하드 록 중심의 캠퍼스 밴드들이 더해지고, 거기에 동아기획과 하나음악이 중심이 되어 80년대 중후반으로 이어지는 ‘언더그라운드’ 록은 물론 김민기-한대수-양병집-송창식-정태춘으로 길게 이어지는 60년대에서 80년대까지의 포크의 계보까지 더해진다. 장기하는 그렇게 시공에 꽉 찬 선배들을 모아와 한꺼번에 들려준다. 곧, [별일 없이 산다]는 2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펼쳐진 한국 록을 통째로 2009년에 옮겨와 다시 풀어내어 모든 시간이 동시다발적으로 울려퍼지게끔 다시 풀어낸 음반이었다.

사실 [별일 없이 산다]가 20세기 한국 록의 2009년식 복고라는 비평은 음반이 나왔던 당시에도 임진모서정민갑, 이호영, 최규성 등에 의해 많이들 이야기되었다. 장기하만 가능하다고들 하는, 말하기와 노래하기를 섞은 보컬의 뒤에는 사실 송창식과 김창완과 배철수와 양병집 등의 각자의 방식으로 이를 결합시킨 선대 음악인들이 있었고, 이종민의 키보드와 하세가와 요헤이의 기타가 싸이키델릭한 연주를 담기 이전에 조금 더 주도적이었던 이민기의 기타는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의 기타 톤을 머금고 있었다. 이렇게 60년대에서 80년대까지의 포크와 록을 중심으로 [별일 없이 산다]의 성향은 대충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음반 첫 절반에 있는 서정적인 포크 록은 70년대를 향한 오마주였고, 한편 선공개 EP식이었던 [싸구려 커피] 외의 수록곡들인 “나를 받아주오”에서는 송창식, “아무것도 없잖어”에서는 배철수(와 송골매), “삼거리에서 만난 사람”에서는 신중현 등을 더욱 더 적극적으로 인용하며 [별일 없이 산다]는 20세기 한국 록의 거장들에 대한 애정과 덕심, 존경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재밌게도 그 당시의 비평가들(어떻게 보자면 90년대 당시에 ‘1세대’ 인디 밴드들의 이른바 ‘혁신’을 직접 경험한 입장의 X세대 비평가들)이 [별일 없이 산다]에 가득 실망한 (또 뒤이은 [장기하와 얼굴들]의 ‘개성’에 열광한) 이유는 이렇게 여러 아티스트에게서 따온 복고가 대놓고 혼재되어 있는 양상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러건 말건, 장기하와 얼굴들에게는 ‘오래된 미래’라는 호칭이 적합하게 붙여졌으며, 그렇게 인디 록의 미래는 오래되게 되었다.

 

“나를 받아주오”

 

이어지는 음반들에서 장기하는 다음 음반으로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그의 덕력을 발산한다. 자신의 아카이브에서 더욱 깊숙이 숨겨져 있던 레퍼런스들을 꺼내오고, 그에 맞춰 김창완식 안경이나 배철수식 콧수염, 낡고 후줄근한 양복, 복고 성향에 완성을 더한 미미 시스터즈, 1집 전반을 차지한 포크 록 성향 등이 미련 없이 제거되는 대신에 말쑥한 양복, 안경도 수염도 없는 얼굴, 이종민의 현란한 싸이키델릭 키보드가 더해진다.

사실 이 ‘말쑥한 양복’부터 넌지시 지시되듯, 2011년에 나온 [장기하와 얼굴들]은 장기하가 가장 적극적으로 끌어온 그의 가장 큰 레퍼런스인, 그리고 알다시피 덕질의 대상인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즈음의 초기 뉴웨이브, 특히 텔레비전(Television)이나 토킹 헤즈를 비롯해 데보(Devo)나 카스(The Cars) 등의 장르적 선구자들이 담기게 된다. [별일 없이 산다]를 채운 그룹 싸운드식 기타 톤은 산울림의 가장 독창적인 순간들과 명백한 토킹 헤즈식 연주에 자리를 내준다. 음반을 시작하는 “뭘 그렇게 놀래”에서부터 토킹 헤즈식의 기타 톤이 훅 들어오며, 이는 “깊은 밤 전화번호부” 같은 다른 노래들로도 이어지며 이후에 등장하는 “빠지기는 빠지더라” 등의 곡으로도 명맥을 잇는다. 여기에 토킹 헤즈를 거의 복사하다시피 가져온 편은 아니지만 “우리 지금 만나”나 “그렇고 그런 사이” 등의 곡에서 또한 특유의 기타 톤이나 리듬감 등의 뉴웨이브 성향이 매우 다분하다. 그렇다고 해서 [장기하와 얼굴들]이 20세기 한국 록에 대한 애정을 완전히 버린 것도 아니어서 “그 때 그 노래”에서는 7080식의 포크 송을 다시금 불러오고, 한편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의 장대한 9분짜리 싸이키델릭 연주는 이어질 [사람의 마음]에서 더욱 두드러질 싸이키델릭 성향을 넌지시 지시하기도 한다.

2009년 당시의 비평들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별일 없이 산다]의 키치적인 복고는 “싸구려 커피”가 증폭시킨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물로 평가됐다. 반면 [장기하와 얼굴들]에 대해 많은 당대의 비평들은 이른바 ‘장기하적’이거나 ‘장기하와 얼굴들적’인 요소들이 확실히 더 많이 들어가 ‘셀프 타이틀’ 값을 하는 ‘명반’으로 보면서 환호성을 보냈다. 한국대중음악상이 [장기하와 얼굴들]을 “독자적 영토를 구축하며 진화”나 “현재적으로 변주하고 성공적으로 융화” 같은 표현을 쓰며 “안정감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참조목록(레퍼런스)의 범위를 더 넓히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잇”는 성과를 냈다고 극찬한 것이 대표적이다. 많은 비평들은 장기하와 얼굴들이 [별일 없이 산다]의 키치적 복고 성향에서 벗어난 것에 대해 혁신/진보/진화/발전 등의 단어를 썼다.

하지만 어떻게 보자면 장기하와 얼굴들은 여전히 덕질을 계속할 뿐이었다. 다만 그 범위가 넓어지거나 깊어지며 달라진 것뿐이다. 장기하와 얼굴들 본인도 그러한 변화를 인지하고 있었듯이, “뭘 그렇게 놀래”로 이를 메타적으로 짚는데, 상기했듯 음반을 여는 이 곡에는 ‘진짜’로의 변화에 대한 선언(‘잘 봐 / 못 믿겠지만 / 네가 보고 있는 사람이 진짜 나야’)과 그에 대한 자화자찬(‘나도 내가 진짜로 해낼 줄은 몰랐었어 / 이렇게나 멋지게 해낼 줄은 몰랐었어’)을 늘어놓고 강조(‘예전에 네가 알던 내가 아니야’)한다. 거리낌 없이 자신의 변화를 자랑하는 노래는 어떻게 보자면 이를 자랑하는 만큼 어쩌면 살짝 꼬아놓은 게 아닐까, 싶기도 한데, 어쨌든 음악적으로만 보자면 기존의 스타일에 이종민의 키보드 연주와 토킹 헤즈식 기타 연주가 더해지면서 곡은 장기하와 얼굴들의 덕질 인용이 20세기 한국 록에서 7080 뉴웨이브로 바뀌었다는 걸 선언한다.

어떻게 보자면 한대음이 이 변화에 참조 목록과 레퍼런스를 언급한 건 맞긴 하지만, 내가 보기에 중요한 부분은 이것이 ‘독자적 영토를 구축하며 진화’한 결과물이라기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영토들을 되짚어가며 변주한 작품이라는 점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깊어지기보다는 넓어졌고, 변화하기보다는 이동했다. 어찌되었던, [장기하와 얼굴들]은 셀프 타이틀을 달았지만, 오히려 그들이 ‘장기하와 얼굴들’이기보다는 뉴웨이브 레퍼런스를 추가했다는 걸 드러내는 음반이 되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 레퍼런스의 무수한 인용이야말로 ‘장기하와 얼굴들’ 그 자체가 아닐까.

 

“뭘 그렇게 놀래”

 

60년대를 향하여

이렇게 6080 한국 록에 이어 7080 뉴웨이브를 레퍼런스에 집어넣은 장기하와 얼굴들은 이어지는 [사람의 마음]과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이하 [내사노사])에서부턴 복고의 영원한 성지, 60년대를 향해 파고들어간다. [사람의 마음]에서는 도어스(The Doors)를 중심으로 60년대의 여러 고전적인 싸이키델릭 록을, [내사노사]에서는 비틀즈(The Beatles)나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 킹크스(The Kinks), 러브(Love) 등이 들려준 고전 록들을 이전의 레퍼런스들(1집 때의 6080 한국 록, 2집 때의 7080 뉴웨이브)에 얹는다. 그럼으로써 장기하와 얼굴들의 덕질은 깊어지는 동시에 밴드 자체는 궁극의 복고 밴드로 변한다. 3집부터 정식 멤버가 된 하세가와 요헤이가 클래식 록의 골수 덕후(6070 싸이키델릭과 펑크의 깊고 깊은 추총자로 초창기 곱창전골이나 미미시스터즈, 룩앤리슨 등의 프로듀싱을 파고들어가다 보면 그의 성향을 알 수 있을 것이다)인 것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장기하와 얼굴들]과 짝패로 놓을 음반인데, 두 음반 모두 사랑 혹은 연애의 서사를 느슨한 컨셉으로써 사용하는 동시에, 그 컨셉 아래 음반이 인용하고 있는 특정 장르/시대에 대한 덕후적 레퍼런스 차용이 담겼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에 담긴 60년대식 싸이키델릭 혹은 싸이코빌리는 음반의 미세한 곳까지 퍼져있다.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 같은 노래들의 멜로트론이나 밴조, 프렛리스 베이스, 오래된 신시사이저, 리듬 머신 등의 악기 사용은 당대의 싸이키델릭 사운드를 물질적으로 구현해 내기 위한 노력 중 하나다. 실제로 60년대 싸이키델릭을 시대적으로도 장르적으로도 재현하려 노력한 다양한 형태의 록이 [사람의 마음]에 등장한다. “좋다 말았네” 같은 노래들이 장얼식 싸이키델리아의 대표적 예시라면 “기억 안 나”에서는 이를 로큰롤로, “올 생각을 않네”에서는 로커빌리로, “구두쇠”에서는 밴조를 더한 컨트리 등으로 펼쳐지는 식이다.

 

“좋다 말았네”

 

한편 20세기 한국 록에 대한 집념도 끝나지 않아 무려 전인권을 피쳐링으로 기용하는 동시에 (게다가 “사람의 마음”은 묘하게 들국화의 “내가 찾는 아이”의 멜로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청년실업의 “기상시간은 정해져 있다”를 셀프 리메이크 하며 산울림의 성향을 더해낸다. 이 지점에서 20세기 한국 록과 60년대 영미 록은 ‘고전’ 혹은 ‘클래식’으로써 시공을 넘어 연결되고, [사람의 마음]은 전작들보다 과거에 대한 덕심과 충실도가, 그리고 그 조합 능력 또한 훨씬 더 높은 음반으로, 그 ‘재현’의 완성도는 더욱 더 막강해졌다. 여기에서 장기하는 60년대에 대한 덕심을 더욱 넓히기 시작했고,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는 그 과정에서 탄생했다.

60년대를 향한 록적인 애정은 어쨌든 간에 비틀즈를 중심으로 비치 보이스나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 등으로 빠지기 마련인데, [내사노사]는 결국 비틀즈/비치 보이스의 팝 록 성향을 근거로 하며 기존의 컨셉 음반에서 벗어나는 한편 각 곡의 레퍼런스를 확실하게, 또 따로따로 두기에 이른다. 이 지점에서 1집의 한국 록, 2집의 뉴웨이브, 3집의 싸이키델릭이 4집의 60년대 팝 록과 만나 기묘하게 섞이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내사노사”와 “빠지기는 빠지더라”는 선대를 잇는 장기하식 입말이 무르익는 동시에 뉴웨이브식 펑키함이 더해졌고, “괜찮아요”나 “쌀밥”은 이전까지의 결합을 바탕으로 삼아 일종의 로큰롤(이 로큰롤은 신기하게도 [사람의 마음]에서 등장한 싸이키델릭-로큰롤과는 또 다른 형식의 로큰롤이다)과 팝 펑크를 더했으며, “ㅋ”은 “느리게 걷자” 이후 오랜만에 차용된 레게 비트의 노래다.

특히 음반 후반부는 [별일 없이 산다]의 초반부와 비슷한 서정적인 포크 사랑 노래들인 동시에 그러한 사랑 노래들에 60년대 팝 록을 더하기도 했는데,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김창완 식의 포크 팝과 비치 보이스 식의 화음을 절묘하게 섞었다. [사람의 마음]보다는 규모 면에서나 길이 면에서나 소품이지만, [내사노사]는 역시나 60년대에 집중하는 동시에 장기하와 얼굴들이 그 때까지 덕심을 쏟아온 다른 영역들도 조각조각 가져와 합쳐낸다. 이제는 아예 당당히 그 영향과 인용을 드러내며 “나는 산울림을 좋아하지만 / 당신은 안 좋아해도 괜찮아요”라고 노래하는 식으로. 정말로 이게 장기하에게 ‘괜찮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아름다운 노래”

 

He met David Byrne (Once in a lifetime)

어떻게 보면 장기하와 얼굴들의 모든 음악은 복고적인 열정과 무한한 덕업일치를 향한 여정이다. 심지어 정규 음반들 이외의 노래들에서도 이는 여전하며, 오리혀 더욱 더 잘 드러나기도 한다. “풍문으로 들었소”와 “조금만 기다려요” 등 공식적인 함중아와 양키스/산울림 리메이크를 비롯해 [별일 없이 산다]와 [장기하와 얼굴들] 전후로 들려준 비공식적인 작업들,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나 “담배 가게 아가씨”, 심지어 “백만송이 장미” 등 20세기 한국 록의 선배들을 거의 복사하다시피 리메이크하고 커버하는 시도들도 마찬가지다 2015년에 디지털 싱글로 낸 “새해 복”에서는 김창완식의 창법을 더욱 더 극도로 끌어올리고, 심지어 “새해 복”의 공식적인 리믹스들마저 윤석철 트리오, DJ 소울스케이프, 나잠수, 전기성, 신세하, 프라이머리 등을 막론하고 복고적인 성향을 담는다.

그리고 [내사노사]에서도 2년이 지난 이 시점,.. <덕후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장기하는 시작부터 끝까지 오로지 데이비드 번을 보기 위해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한다. 뉴욕으로 날아간 그는 토킹 헤즈의 발자취를 좆으며 자신이 음악을 좋아하고 창작하게 된 데에 토킹 헤즈가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그러한 그가 토킹 헤즈를 얼마나 좋아해 왔는지를 끊임없이 드러낸다. 이 덕심은 데이비드 번을 직접 보는 걸 모자라 이야기도 나누고, 곡도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창작자적 욕망(?)으로까지 나타난다. 시리즈 중간에 토킹 헤즈의 헌정 밴드와 함께 “Once In A Lifetime”을 연주하는 장면에서, 또 미국 공연에서도 비슷한 멘트와 함께 동일한 곡을 연주하는 장면에서 장기하와 ‘얼굴들’은 토킹 ‘헤즈’(그 스스로도 이 지점에 대해 이야기한다)의 헌정 밴드이며 실제로 어느 정도도 그렇게 된다(여기에 북미 투어 실황에서 “Once In A Lifetime”을 “알 수 없는 사람”과 잇는 순간 장기하의 덕질은 일종의 정점에 달한다). 그러한 덕후로써의 장기하가 마침내 데이비드 번과 만나는 장면을 보고 깨달은 게 있다면, 장기하의 모든 음악적 여정은 하나의 깊고 깊은, 또한 매우 성공적인, 덕질 그 자체다. 어쩌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장기하는 한국 록 최고의 유일무이한 덕후다.

 

“Once In A Lifetime + 알 수 없는 사람”

 

그런데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국내의 인디 록에서 이러한 식으로 과거의 시간들을 조각내어 끌어와 새롭게 이어내는, 레트로라는 레고 조각을 이용해 건축을 하는 DJ 같은 음악인들은 비단 장기하 뿐만은 아니었다. 그 다른 DJ들을 알아보기 위해선 장기하가 6080 한국 록의 완벽한 리믹서이자 ‘오래된 미래’가 된 08-09년으로 다시 한 번 돌아가야 한다. 거기에 또 다른 덕후들이 있다. | 나원영 onezero96@naver.com

 

p.s 제목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산문 “육체이면서도 그것만은 아닌(Both Flesh and Not)”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김명남 번역, 바다)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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