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 힙합, 재즈, 일렉트로닉… 언제나 그랬듯이 [weiv] 필자들이 꼽은 10장의 앨범은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에 걸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교차하는 지점을 구태여 짚어본다면, 그것은 각자가 토대를 둔 장르의 전형적인 문법에서 ‘엇나간’ 지점의 매력을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본다. 문법을 파괴하는 긴장의 형태로, 전형성을 탈피하는 즐거움의 형태로, 쪼개지고 왜곡된 소리의 형태로, 그 모든 엇나간 부분들은 각자의 방식을 담아 우리의 귀로 전달된다. 이 모든 소리들이 ‘새롭다’거나 ‘독창적이다’라고 쉽게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수많은 음악이 교차하고 상호참조를 일삼는 디지털 시대에 그러한 수식은 어쩐지 낡은 것처럼 느껴지기에. 다만 이들은 모두 각자가 추구하는 목표를 지닌 채로(혹은, 애초에 목표 같은 건 없었던 것처럼) 생생하게 약동하는 ‘힘’을 갖추고 있다. 나는 그것이 지금 시대의 음악에 새로움이나 독창성보다 더 중요한 가치라고 믿는다. 이 리스트가 그러한 힘을 조금이나마 드러낼 수 있는 안내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 정구원 10. Jvcki Wai Enchanted Propaganda (인디고뮤직) ‘삶은 병이야 / 삶은 병’ “Life Disorder”의 첫머리에서 이 선언이 흘러나올 때, 그것은 짜증 섞인 신음과 기합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신난 듯한 애드립, 오토튠을 타고 고음역대를 가로지르는 랩 싱잉, 흩뿌려지듯 진동하는 신시사이저 소리와 함께 [Enchanted Propaganda]가 전달하는 부적 정서를 형상화한다. 그것을 단일한 단어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분노라고 말하기엔 붕 떠 있고, 투정이라고 낮춰 보기엔 표현의 극단성이 너무 높은 어두운 정동(情動). 다만 어느 쪽에 가깝든, 그것이 ‘나른함’과 동반된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그 나른함이 멈블 랩(Mumble rap)이나 사운드클라우드 랩(Soundcloud rap)이라고 불리는 미국 메인스트림 힙합 시장의 흐름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다만 릴 핍(Lil Peep)과 릴 우지 버트(Lil Uzi Vert), 플레이보이 카티(Playboi Carti) 같은 본토의 선구자들이 알프라졸람의 몽롱한 기운에 힘입어 특유의 느슨함을 배가시킬 때, 재키 와이(Jvcki Wai)는 ‘도그마’와 ‘전쟁’, ‘프로파간다’, ‘자본주의’ 같은 거대담론의 과대망상증적 개념을 디지털화된 목소리의 흐물거림에 실어 용해시키면서 자신만의 고유성을 획득한다. 랩탑보이보이(Laptopboyboy), 에디 파우어(Eddy Pauer), 이안 퍼프(Ian Purp), 신도엘(Xindoel) 등의 프로듀서진이 참여한 비트는 그 구성원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인공적인 홀로그램의 질감을 투사하는 신시사이저라는 일관된 사운드 기조를 유지하며 그 용해액의 나른함(혹은 달콤함)을 배가시킨다. 거대 개념과 사운드클라우드 랩의 나른함을 서로 충돌하는 요인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그저 괴상망측하고 설익은 결과물로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예수처럼, 혹은 소크라테스처럼 평양에서 금목걸이를 뽐내고 산 채로 터져버린 뒤 죽음 이후의 돈을 기원하는 재키 와이의 분열증적인 모습은 기존의 한국 힙합에서 지칠 정도로 정형화된 과시(flex)와는 (가사의 면에서나 사운드적 면에서나) 동떨어진, 파편화된 자아를 전시하는 새로운 차원의 주체가 등장했다는 것을 알린다. 더불어, 그것을 추동하는 나른한 정동이 그 동안 ‘최고’라고 흔히 칭송받았던 래퍼들의 위악적이면서 공허한 허우적거림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집중력 있는 에너지로 꽉 차 있다는 것 역시 [Enchanted Propaganda]에 빠져들게 만드는 요소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기운은 나른한 디지털 카모플라주의 베일 속에서도 통제할 수 없이 날뛰고 있다. | 정구원 9. Electric Planet Five Waltz, Seoul (Self-released) 왈츠는 19세기 유럽에서부터 유행하던 춤과 그 춤을 위한 음악을 지칭한다. 3/4 박자를 기본으로 삼기에 비교적 단순한 리듬이 도출되는데, 이로 인해 음악의 흐름이 그리 빠르지 않아서 우아함과 경쾌함을 동시에 들려주는 춤곡으로 기능한다. 물론 현대로 접어들면서 왈츠의 많은 변용들이 생겼기에 다른 박자에 기반하는 곡들도 많아졌지만, 그럼에도 모두 그 근원에는 한결같이 우아하면서도 경쾌한 분위기를 품고 있다. 일렉트릭 플래닛 파이브(Electric Planet Five)의 [Waltz, Seoul]은 왈츠가 현대적으로 변용된 훌륭한 전형이다. “뚠딴딴”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리듬이, 앨범에 실린 대부분의 곡들의 기본 뼈대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왈츠의 문법을 착실하게 따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곡들의 대부분이 어쿠스틱 피아노나 키보드로만 구성되어 있거나 더블 베이스와 피아노 정도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흔히 아는 (고전적인) ‘왈츠’의 면모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신시사이저와 드럼 머신의 소리를 활용하거나(“3’O Clock”), 기본 리듬 위에 재지한 피아노 라인을 얹어 내는(“Espresso”) 등의 시도를 통해, 동시대의 왈츠가 소리의 측면에서 어떠한 변용/응용되고 있는지를 무난하게 제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만으로는 자칫 잘못하면 (동시대의 요소를 이용한) 형식주의로 빠질 우려를 낳는다. 다행히도, 일렉트릭 플래닛 파이브는 형식과 태도를 이중적으로 설정한다는 점에서 영리하게 이 위험을 피해간다. [Waltz, Seoul]은 형식적으로는 왈츠(혹은 왈츠의 현대적 변용)의 규칙을 따르되, 태도적인 측면에서는 왈츠를 별로 따르지 않는다. 왈츠는 태생적으로 목적론적인 장르이다. 오롯이 청중을 춤추게 하겠다는 특수한 목적에 종사하는 것이 왈츠의 기본 태도였기 때문이다. 물론, 왈츠가 사교를 위한 춤곡에서 클래식의 세부 장르로 자리잡으면서 이러한 목적은 파기되었지만, 그 대신 다른 클래식의 세부 장르들과 마찬가지로 왈츠 또한 미적/음악적 가치를 최우선적 목적으로 설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렉트릭 플래닛 파이브의 [Watlz, Seoul]는 이 두 목적론적 태도 모두 의식하지 않는다. 대신, 어떠한 거창한 목적 없이 일렉트릭 플래닛 파이브는 그저 왈츠의 형식으로 서울 혹은 우리의 일상을 표상하고 서술할 뿐이다. 그 서술마저도, “선인장”, “일상”, “고양이의 움직임”처럼 미시적이고 소소한 영역에 집중하여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는 동시에 음악의 형식이 갖는 힘에 대한 역설이기도 하다. 지극히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과 서울이라는 친숙한 공간에 대한 표상들이 왈츠라는 특정한 음악적 형식과 결합함으로써 큰 매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기 때문이다. 일상의 경쾌함과 형식의 우아함, 혹은 일상의 우아함과 형식의 경쾌함. 일렉트릭 플래닛 파이브가 [Waltz, Seoul]을 통해 들려주는 조합이 어느 쪽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것이 왈츠의 훌륭한 동시대적 변용이라는 점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 전대한 8. SAAY CLAASSIC (Universal Music) 작년 ‘올해 주목해야 할 국내 알앤비 싱어송라이터&프로듀서를 뽑으라고 한다면 한 치의 고민도 없이 SAAY의 이름을 말할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후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멋진 성취를 이룬 앨범이 많이 나왔지만, 반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도 이 마음엔 변함이 없다. 뮤지션 본인의 모든 재능과 역량이 잘 드러나면서 이토록 탄탄하고 잘 짜인 앨범을 만나는 건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CLAASSIC]은 SAAY가 음악에 대한 열망을 품으며 지내 온 시간의 간절한 꿈의 경계에서 걸어 나와 (“FROM THE HORIZON”) 자신의 다채로운 색을 마음껏 자신 있게 드러내며 실력을 입증하고(“ENCORE”) 영역을 확장시켜(“OVERZONE”) 새로운 음악적 방향을 향해 성실하게 발을 옮기는 앨범이다. (“TO THE HORIZON”) 모든 곡의 작사 및 작곡을 도맡은 SAAY는 장르를 향한 고집이 비슷한 DEEZ와의 공동 프로듀싱을 통한 시너지를 내며 앨범의 완성도를 한 번 더 높인다. 대담한 멜로디 라인과 사운드 메이킹, 힙합, 알앤비, 퓨처 베이스, 네오 소울, 하우스까지 모든 장르를 소화하며 곡의 분위기에 따라 자유자재로 목소리를 운용하는 보컬의 장점은 본인이 프로덕션을 꾸린 덕분에 더욱 빛난다. 모든 트랙이 아주 섬세하게 매만져진 느낌이다. 특히 강렬한 사운드로 단번에 귀를 사로잡는 “OVERZONE”의 도입부를 인트로처럼 사용하고 있는 “ENCORE”의 뮤직비디오는 안무가로서의 능력까지 선보이며 멀티플레이어로서의 모습을 극대화하여 보여준다. 트렌디한 신스 기반의 배열에 올려진 세련된 사운드의 질감과 매끄러운 하모닉, 파워풀하고 그루브 넘치는 목소리와 몸의 움직임은 SAAY에게 반할 수밖에 없는 한방이다. ‘CLAASSIC’이라는 앨범의 제목처럼 노래는 과거의 블랙 뮤직에서 형태를 가져오지만, SAAY는 그것을 모방하고 답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범하고 집념 있게 자신만의 스타일로 변형하고 소화하여 대중에게 풀어 놓는다. 클래식하지만 올드하지 않고, 트렌디하면서도 유행의 어법을 따르지 않으며 과거와 현재를 잇고 있는 이 앨범은 그의 재능이 이룬 성취라는 점에서 더욱 인상적이다. | 성효선 7. 키 (KEY) FACE (SM Entertainment) 누가 이 앨범의 효용에 대해 묻는다면, 그룹 이후의 삶을 미리 꿈꾸는 아이돌 그룹 멤버들에게 내밀 수 있는 훌륭한 샘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음악 시상식 한 번에 수백 명의 아이돌이 서고,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자기의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평가절하를 당하는 일이 익숙해진 청년들이 많은 요즘 같은 때라면 더더욱. 키가 12년을 기다려서 발표한 이 앨범 한 장은 아이돌 팀들이 활동 중에 잃지 말아야 할 자기애에 관해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데뷔 시절에는 ‘목소리가 튄다’는 이유로 팀 내에서 그가 하는 역할에 대한 평가절하가 이루어지기도 했고, 다른 멤버들이 계속 솔로 앨범을 발매하는 도중에도 음악보다는 예능 프로그램이나 연기자 활동을 통해 더욱 자주 얼굴을 비췄다. 물론 그가 음악 외 다른 분야에서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FACE]는 그의 목소리가 한국 가요계에서 찾을 수 없는 독특한 매력 포인트이고, 연기 연습을 통해 한층 더 발전한 퍼포먼스 수행력으로 솔로 앨범에서 다양한 장르와 그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섞을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FACE]의 타이틀곡 “센 척 안 해”에서 그가 크러쉬(Crush)에게 후렴구를 넘긴 시도는 놀랍도록 모험적이다. 그러나 정작 본인에게는 오랫동안 아이돌 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돋보이는 길보다 팀이 함께 돋보이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자연스레 습득한 요령일 것이다. 그는 언제나 확실하게 의사 표현을 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지만, 역설적으로 자기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솔로 앨범에서는 타인과의 조화를 꾀할 수 있다. 서서히 감정을 고조시키다가 ‘밤은 짙어 (중략) 더 이상 센 척 안해’라는 후렴구에서 차분하게 노래의 핵심을 전달하고, 노래의 정점인 브리지 부분에 ‘이렇게 약한 나인데’를 키가 부르면서 완급을 조절하는 식으로. 조화를 꾀하되, 앨범의 주인공인 자신의 역할을 자연스레 중심에 놓음으로써 오히려 이 앨범은 완성도 높은 키만의 작품으로 거듭난다. 그동안 샤이니의 앨범에서 흔히 사용해온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요소들이 종현, 태민, 온유의 솔로 앨범에서는 R&B, 팝의 정체성으로 수렴됐다면, 키의 앨범은 트로피컬 하우스를 훨씬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EDM의 장르적 성격을 더욱 직접적으로 수용했다는 점에서 [Odd] 이후 샤이니의 정체성과 더욱 긴밀한 연계성을 갖는다. 소위 ‘멀티 플레이어’는 여러 가지 일을 잘 해내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키는 [FACE]에서 여러 가지 일을 잘 해낼 뿐만 아니라, 그 하나하나에서 발견하고 습득한 것들을 모아 이 앨범 한 장으로 압축시켰다. 샤이니 음악의 정체성과 자신의 개성 있는 목소리, 그리고 표현력까지 모두 그의 것이다. 그래서 이 앨범은 후대의 아이돌 그룹 멤버들에게 얼마든지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지금 당장 솔로 앨범을 내지 못한다고 해서 자기의 능력을 의심하거나 상황을 탓하지 않아도 된다. 훗날 자신의 장점을 사랑하고 돋보이게 할 방법은 있다. 바로 이 [FACE]처럼. | 박희아 6. 모임 별 주인 없는 금 (비단뱀클럽) 한국 인디 록의 역사에서 모임 별만큼이나 이례적이면서 상징적이고, 불분명하면서 확연한 팀은 없을 것이다. 2000년대를 관통하는 ‘월간 뱀파이어’ 프로젝트 이후, 여러 ‘(일종의) 베스트 모음’ 선곡집과 ‘희귀 음반’들이 나왔고, 그 사이에서 유일무이한 ‘정규 음반’이자 ‘선곡집’인 [아편굴 처녀가 들려준 이야기]가 그 때까지의 모임 별을 어느 정도는 취합해 놓았다. 그 후로부터 또 오랜 시간이 흘렀다. 새 프로젝트가 나올 때마다 멤버들은 계속해서 조금씩 바뀌었고, 그와 함께 음악은 포크트로니카와 신스 팝에서 드론/노이즈와 앰비언트까지 닿으며 정신없이 오갔다. 여전히 정처 없이 떠도는 듯 이어지는 모임 별의 행보에서 [주인 없는 금]은 우선 ‘두 번째 정규 음반’이라지만, 어쩌면 단지 또 다른 ‘프로젝트’ 혹은 ‘선곡집’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나마 유일하게 비교할 수 있는 [아편굴 처녀가 들려준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신스 팝과 인디 록의 성향이 강했던 것에 비해, [주인 없는 금]은 모임 별의 넓은 장르적 스펙트럼을 조각내 콜라주처럼 붙여 놓은 음반이다. “늑대의 탈을 쓴 양”의 불길한 전자음이 음반을 여는가 싶더니 “나리 유코 진”의 신스 팝이 등장하고, 갑자기 “내 검정 자켓”에서 “친밀한 적들”로 이어지는 서정적인 기타 록이 한바탕 지나가면, 어두컴컴한 앰비언트 노이즈와 능청맞은 전자음이 섞인 드림 팝이 번갈아가며 등장한다. “불량배들, 서울”에서는 매우 귀여운 소리들과 함께 술과 안주 이름들을 짧고 굵게 나열한 뒤 바로 “해안도시에서의 낮술”의 미니멀한 앰비언트 테크노로 넘어간다. 그래도 마지막 곡인 “박쥐들 우리는”은 혼란스럽기보다는, 모임 별스럽게 따스하고 서정적으로 음반을 마무리한다. 혼란스러울 정도로 다양한 장르와 소리와 정서들이 등장하고 사라지는 과정에서도 재밌는 건 음반을 관통하는 서사나 장르적인 통일성 같은 어떠한 중심 없이 리좀(rhizome)처럼 잔뜩 엉킨 모임 별의 조각들이다. 이 파편들이 [주인 없는 금]만의 형태로 모였을 때, 모임 별의 어떠한 단면을 한순간 담아낸다. 모임 별처럼 오랜 시간동안 꾸준히 다양한 결과물들을 쌓아올리며 변화해온 음악인이 국내 인디 록 진영에 적은 것도 적은 것이지만, 모임 별은 거기서 더 나아가 그 긴 역사에 담긴 수많은 요소들 자체를 하이퍼텍스트처럼 자유롭게 오가며 활용하고, 이 점이 오히려 [주인 없는 금]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이 음반에는 [월간 뱀파이어] 시절을 강하게 지배한 특유의 멜랑콜리한 정서와 2010년대에 들어서 시도한 일렉트로어쿠스틱(Electroacoustic) 소음들의 불안한 정동, 신스 팝과 인디 록 양쪽으로 뻗어나가는 다양성이 기묘한 형태로 공존하며 각자에게 영향을 끼친다. 그 과정에서 모임 별만의 각기 다른 개성과 특징이 서로를 곁에 두고 충돌하며, 또 다른 의미들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주인 없는 금]은 중심/서사/통일성/주제의식 같은 확실한 ‘주인’이 존재하는 음반들과 다르게, 명확한 주인이 존재하지 않는 무정부주의의 상태로, 유령처럼 떠돈다. 하지만 이 이질적인 특성들이 접속하고 단절되는 과정에서, 훨씬 더 무한한 가능성을 띈 새로운 의미들이 탄생하고 연결된다. 여태껏 모임 별을 구성해온 요소들은 다시금 색다른 배치로 쌓아올려지고, 고정되지 않은 형체는 내용과 형식 모든 측면에서 변주되며, 모임 별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이자 콜렉티브의 새로운 순간들이 부단히 형성된다. 모임 별은 언제나 주인 없이 또 끊임없이 변화해왔고, 그렇게 스스로의 근거와 형태를 새롭게 바꿔나갔다. 이 역동적인 과정 속에서 [주인 없는 금]은 여태까지의 프로젝트들이 그래왔듯 모임 별의 어느 순간을 기록하는데 또 한 번 성공했다. 여러가지 방식들로 별을 모아 하나의 별자리를 만드는 것과 비슷하게, 모임 별은 이번에도 다른 방식으로 모여 등장하고 사라졌으며, 언젠가 다시, 또 다른 방식으로 모여 나타날 것이다. | 나원영 5. XXX LANGUAGE (BANA) 이런 힙합 음악도 있다. 아니다, 이런 음악도 있다. XXX의 [LANGUAGE]는 앨범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문제 제기 혹은 새로운 물결의 도래를 의미한다. 김심야는 가사를 통해, 프랭크(FRNK)는 사운드를 통해 기존 시스템을 탈피하고 자신만의 방식을 모색했다. 그래서인지 [LANGUAGE]에는 전복적인 발상과 에너지가 집약되어 있다. 실험적일 뿐만 아니라 완성도도 높다. 이 무서운 데뷔 앨범은 음악과 음악 산업에 대한 질문이자 제안이 된다. 김심야가 쓴 가사에는 성공, 헤이터(hater), 카피캣(copycat), 배신 등이 담겨 있다. 힙합이 주로 다루는 주제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음악 산업에 대한 문제의식이 녹아 있다. “18거 1517”에서는 ‘최고의 래퍼가 되면 부자가 될 거란 터무니 없는 생각 개꿈’이라며 음악적 성공과 무관하게 적은 수입을 냉소한다. 차트 만능주의로 전락한 음악 산업을 지적하는 “간주곡”은 “Ugly”와 함께 자신들의 음악이 해외에서 주목받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저평가되는 현실을 반영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곡을 관통하는 주제는 ‘예술’이다. 그는 열두 트랙에 걸쳐 예술(음악)에 대한 자신들의 신념을 역설한다. [LANGUAGE]에서 가장 돋보이는 점이자 음악적 성과라고 할 수 있는 점은 혁신적인 작법과 사운드 소스를 활용한 방식이다. 작곡을 전담한 FRNK는 곡의 구조를 기괴한 로봇처럼 거듭 다른 형태로 변신시키고, 사운드를 극단적으로 왜곡하여 의도적으로 이질감을 연출한다. 그는 곡의 구조를 끊임없이 비틀고 파괴하면서 혼란스럽고 거친 세계를 묘사한다. FRNK가 쌓고 허물기를 반복하며 만든 사운드를 듣고 있으면, 현재 해외에서 실험적인 음악으로 주목받고 있는 음악가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암네시아 스캐너(Amnesia Scanner), 샤이걸(Shygirl), 소피(SOPHIE)가 바로 그들이다. 단지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앨범이라서 상찬하는 건 아니다. FRNK는 절대 조화롭다고 평할 수 없는 요소들의 특성을 오히려 이용했는데, 긴장과 반전을 통해 쾌감을 끌어내는 솜씨가 뛰어나다. 그는 베이스, 샘플, 킥을 왜곡하고 중첩하여 소리의 텍스처를 낯설게 표현한다. 극단으로 치닫는 사운드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흐름 때문에 청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하고 당황하게 된다. “간주곡”이 대표적이다. 초반부에 가스펠 코러스와 바이올린 연주가 평화로운 세계를 비추듯이 부드럽게 우회하나, 이내 묵직하고 파괴적인 비트가 등장한다. 5분 10초까지 랩 없이 과격한 킥 드럼, 영롱한 하프 샘플, 따발총처럼 쏘아대는 비트가 파트를 나누어 교차한다. 한없이 왜곡된 요소들이 부조화를 일으키며 충돌하는데, 그 균열에서 아이러니한 에너지와 카타르시스가 피어난다. FRNK가 묘사한 혼란스러운 분노는 의도된 혼돈이라는 점에서 치밀하게 설계된, 완벽한 폐허다. “수작”은 피치업된 보이스 샘플을 반복적으로 배치하여 보컬이라기보다 비트로 활용했으며, 마치 FRNK와 김심야가 주고받듯이 인스트루먼트 파트와 랩 파트가 번갈아가며 전개된다. 앨범 전반에 흐르는 김심야의 시니컬한 랩은 사운드 측면에서도 뛰어난 악기로 활약한다. 특유의 기계적이고 비음 섞인 래핑이 저음의 묵직한 비트와 대조를 이뤄 균형을 맞춘다. 가사 내용에 귀 기울이지 않아도 랩과 비트의 조합이 흥미로운 이유다. 앞서 말했다시피 [LANGUAGE]는 질문이자 제안이다. ‘음악을 이렇게 만들면 어떨까?’라는 자문부터 ‘이런 음악은 어때?’라는 질문까지, ‘이런 음악도 있어’라는 제안부터 ‘우리는 이런 음악 해’라는 선포까지. XXX는 다른 차원의 작법, 다른 차원의 사운드를 들려준다. 한국 힙합 신과 음악 시장에 화두를 던진다. 그리고 맥락과 의의를 걷어내더라도 XXX의 [LANGUAGE]는 훌륭하다. 음악을 접하면서 이토록 멋진 폐허를 만나는 일은 흔치 않다. | 정은정 4. 키라라 (KIRARA) Sarah (Self-released) 일찍이 나원영 필자가 [Sarah]의 미학에 대해 정성스럽게 집대성한 바 있으므로 그 논의에 더해 이야기를 이어갈 수밖에 없겠다. 그것이 뮤지션 키라라와 [Sarah]의 가치를 드높이는 일이기를 바란다. 나원영 음악평론가의 논의를 거칠게 요약하자면 키라라의 음악은 ‘세계를 뿌숴서, 이쁘고 강하게’ 만드는 것이고 이는 샘플링을 통해 이미 존재해온 음악의 내용과 형식을 ‘뿌숴서’, ‘강한’ 베이스+드럼(빅비트)과 ‘이쁜’ 멜로디+리프(시부야케이)를 통해 합쳐낸다는 것이다. 이러한 도식을 넘어 팬들을 감화시키는 것은 키라라의 정체성과 감정이다. 나원영의 세심한 서술 중 ‘뿌숨’과 그가 표현한 ‘키라라 월드’에 ‘감화’라는 말로 [Sarah]를 포함한 키라라 음악의 분위기와 태도를 설명하려고 한다. 우선 그는 ‘뿌숨’에 대해 펑크적인, 퍼포먼스적인 해석을 지양했음에도 필자 개인적으로 ‘뿌숨(혹은 ‘뿌수다’, ‘뿌셔뿌셔’ 등)’을 자주 접했던 곳은 실제로 하드코어 펑크 신의 일부 음악가들로부터였다. 키라라와 둘 사이의 접점이라면 두리반 투쟁과 당시의 동세대 음악가, 공간들이었으리라고 짐작한다. ‘(음악의) 모든 소스를 다 잘라 놓’는 것이라고 키라라가 스스로 설명한 뿌숨과 ‘빠르고, 시끄럽고, 화가 나 있는 음악’이라는 하드코어 펑크의 직관적인 정의와 두 가지를 참고해보면, 아마도 ‘뿌숨’이 잘게 쪼개진 리듬을 바탕으로 하고 신체의 움직임을 유도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키라라의 음악 곳곳에서는 리듬, 멜로디 파트의 경계를 뿌수어 샘플링에 의해 분쇄되거나 음절단위로 진행되는 멜로디 라인 또한 리듬감을 고조시킨다. 예컨대 [moves] 앨범의 ‘BLIZZARD’의 도입부는 오히려 멜로디 라인이 리듬을, 리듬 라인이 멜로디를 담당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굳이 키라라와 하드코어 펑크 사이의 연관성을 찾으려는 이유는 [Sarah]에 이르러 부각되는 차이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Sarah]에서 슬픔과 분노는 솔직함, 유대감으로 옮겨갔고 감정 변화에 따른 음악의 변화는 사소한 것으로부터 느껴진다. 전작들이 다소 원초적인 질감의 소리와 키라라의 표현으로 ‘고음역의 쏘는 부분들’이 두드러졌다면, [Sarah]에서는 보다 부드러운 질감의 소리, 트랙의 강-약 세기 조절, 그에 따른 곡 진행의 매끄러움 등이 전해진다. [moves]에서의 키라라의 미학이 좀 더 넓은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키라라의 개인사에서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타인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을 노출시키기 위한 시도가 늘어갔다.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음반에 선정되며 팬 층을 더욱 두텁게 확보하고, 그 시상식에서 “친구들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소신을 여론에 드러내고, 나아가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밑바탕으로 삼으면서도 꾸준히 여러 매체와 인터뷰하며 외연을 확장하는 사이 본인도 모르게 많은 이들은 그에게 감화되고 있었다. 키라라 월드라는 표현은 댄서블한 전자음악/큰 음량/음악가의 퍼포밍으로 특징지어 지는데, 그 음악에 감화된 팬들을 ‘키라라 월드’의 외연적인 확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조심스레 이러한 변화를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음악’에서 ‘타인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음악’으로 창작자로서의 입장이 변화한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이를테면, ‘이 지구에서 어떻게 살까요([cts4])’라고 고민하던 그는 이제 타인에 대한 ‘걱정([Sarah])’어린 시선을 보내며 감정과 태도의 변화를 보인다. 앨범 소개에서 알려져 있듯 키라라는 한 친구를 염두에 두고 “Wish”와 “걱정”을 작곡했지만 그의 인간적인 고뇌와 행동 그리고 팬, 지지자들의 확장과 발맞추었기에 더욱 반갑다. 팬들은 키라라가 슬픔과 분노 속에 만들어온 뿌숨에 감화되어 왔다면, [Sarah]를 거치며 이제 그와 시선을 마주하게 되었다. | 김태윤 3. 장명선 이르고 무의미한 고백 (1000 Rockets) 투명성(Transparency)에 관한 논의를 접했다. 이를테면, 사진은 투명성을 지닌 매체이기에, 어떤 대상이 찍힌 사진을 보는 것은 곧 그 대상 자체를 보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식이다. 투명한 창문을 통해, 그 너머의 풍경을 직접 보는 일처럼 말이다. 허나, 사진을 보는 것은 그저 사진을 보는 것 아닌가? 투명성을 지닌 무언가를 지각하는 것이 어떻게 세계 그 자체를 보는 것이란 말인가? 그러나 장명선의 앨범 [이르고 무의미한 고백]을 처음 들은 순간, 나는 그전까지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주장이 설득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덜컥 믿게 됐다. 장명선이 들려주는 소리 그 자체만 놓고 논한다면, 불투명하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이르고 무의미한 고백]에서는 점멸하는 듯한 글리치 이펙트 위로, 비교적 차분한 신시사이저가 멜로디를 제시한다. 이와 함께 나지막이 코러스가 깔리고, 리버브가 약간 걸린 보컬이 들려온다. 이러한 사운드는 앰비언트 계열의 음악에서 느껴질 법한 몽환적이고 모호한 분위기를 앨범 전반에 형성한다. 물론 종종 책장을 넘기는 소리나 물 흐르는 소리 혹은 시계 초침 소리 같은 일상적인 세계의 소리들이 투명하게 제시되기도 하지만, 이것만으로 세계를 (투명하게) 직접 들려준다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역설적으로, 장명선은 이 불투명한 소리들을 켜켜이 쌓아서 자신의 마음속 어딘가 깊은 한 켠에서 조심스레 길어낸 듯한 여리고 예쁘고 착한 마음들을 수수하게 들려준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느끼는 이르고 무의미한 불안감”을 담아내고 싶다는 음악가 본인의 말처럼, 우리는 [이르고 무의미한 고백]을 들으며 장명선이 소중하게 고이 간직해왔던 그 불안들을 직접 보고 들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아름답게 불투명한 소리들로 겹겹이 에워쌌음에도, 감정들은 결코 숨겨지지 않는다. 정말이지, 장명선의 노래들은 반짝반짝 빛이 날 정도로 투명한 유리창 같다. 그 투명한 유리창 뒤에 놓여있는 것은, 너무 예쁘고 소중한 누군가의 마음이자 우리 자신의 마음이다. 이러한 투명함은 거시적으로는 국내 동시대 대중음악 씬의 일련의 흐름에 대해 재고해볼 수 있는 새로운 범주로 자리한다. 한희정이나 이아립, 시와, 곽푸른하늘, 김목인 등등의 (직관적으로 비슷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음악가들을 떠올려보자. 흔히 “진정성 있는 음악”, “착한 음악” 따위의 안일한 명명으로 분류하기 급급했던 이러한 음악들을, 투명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재분류해 볼 계기를 장명선의 음악으로부터 발견한다. 언급한 음악가들은 공통적으로 포크의 문법을 구사하지만, 그보다 더 큰 그들의 공통점은 사실 음악가의 내면과 감정을 진솔하게 내비쳐왔던 이들이고, 이는 장명선의 [이르고 무의미한 고백]에 내재한 투명성의 특징과 일치한다. 요컨대, 장명선의 작업은 그동안 “진정성”이나 “깊이” 따위로 오용해왔던 평가적 범주를 투명성이라는 분류적 범주로 대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우리에게 마련해준다. “사진은 투명하다. 우리는 사진을 통해 세계를 본다.”는 철학자 켄달 월튼(Kendall Walton)의 문장을 떠올린다. 한없이 투명한, 장명선의 [이르고 무의미한 고백]에도 똑같이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이르고 무의미한 고백]을 통해 누군가의 여리고 예쁜 마음을, 그리고 세계를 듣는다고. | 전대한 2. 공중도둑 무너지기 (Self-released) 찬사가 이미 많이 오갔다. 전작 [공중도덕]이 한국과 일본의 애호가에게 주로 알려졌다면, 공중도둑으로 이름을 바꿔 낸 [무너지기]는 해외에서도 주목받았다. 정교하게 짜인 음반이어서 해명하려는 시도도 많았다. [weiv]에서도 두 번 다뤘다. 팝이 세운 소리의 위계가 무너진다는 분석이 있었고, 예감이 무너지고 소리들이 쌓일 때의 쾌감에 대한 분석도 있었다. 그러니 이번엔 분석 대신 감상 하나만 덧댄다. 아스라하고 어쩌면 주술적인, 함께 무너지는 꿈 같은 순간에 대하여. [무너지기]는 또렷한 개별 대신 모호한 전체의 편에 서는 음반이다. 음계는 아슬한 벤딩으로 자꾸 미끄러진다. 음반을 이루는 기타, 보컬, 신스는 트레몰로로 평등하게 끊어지고 또 뭉쳐진다. 댄스 팝의 쾌감을 노릴 수도 있었던 “곡선과 투과광”은 신스를 흩뿌리며 끝맺는다. 코넬리우스(Cornelius)를 잠깐 연상시키는 “쇠사슬”의 말미마저 정갈함을 피한다. 낯선 것들이 형체를 짐작하기 전에 모이고 또 흩어진다. 기괴하고 무섭게 들리기 딱 좋다. 여느 실험적인 음악들이 그러하듯이. 그런데 [무너지기]에선 이 모든 혼란이 괜히 따뜻하고 평화롭다. 따로였으면 스산했을 소리들도 한 데 모으니 아련하게 들린다. 크고 작은 종소리가 울리고, 얇고 맑은 목소리가 곳곳을 메우자 어둑한 노랫말에도 희망의 기운이 살짝 실린다. “함께 무너지기”의 가사에서 탑을 쌓으러 끌려가는 ‘발걸음들’, ‘빈손’들에겐 무너지는 것이 소망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그래서일까. [무너지기]를 듣고 있자면 함께의 힘을 생각하게 된다. 작은 소리들을 엮어 만든 음반처럼, 약한 것들의 모임이 만들 아름다움을 상상하게 된다. [무너지기]가 전하는 쾌감과 함께, [무너지기]를 만든 태도가 기억될 수 있기를. 그런 소망까지 괜히 품어보게 된다. | 김세철 1. 수민 (SUMIN) Your Home (Self-released) 어떤 음악은 앨범 혹은 곡이라는 총체에 앞서 그 음악이 지닌 질감에 온 신경을 집중시키게 만든다. 이를테면 “In Dreams”에서 첫머리를 내미는 먹먹하면서도 풍부한 울림을 지닌 킥 드럼, “I Hate You”의 미니멀한 구성 속에서 튀겨진 듯한 오토튠의 비음으로 은근하게 쏘아붙이는 수민의 목소리, 날카로우면서도 몽글몽글한 소스들이 얇은 종이를 포개듯이 겹쳐지는 “설탕분수”의 신시사이저처럼. 정말이지, [Your Home]의 소리를 들으면서 감각을 곤두세우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민이 빚어내는 소리의 질감 앞에서 우리는 시냅스에 가득한 신경전달물질을 게걸스럽게 빨아들이는 수상돌기가 된다. 그 짜릿한 질감은 하이퍼팝(Hyperpop)에 대한 환상과 연결된다. (아직까지는) ‘장르’나 ‘스타일’보다는 음악을 들으면서 느껴지는 인상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긴 하지만, 2010년대 들어 두각을 드러낸 극단적으로 과장된 일련의 버블검 일렉트로닉 팝을 지칭하는 단어로써 하이퍼팝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찰리 XCX(Charli XCX), 케로 케로 보니토(Kero Kero Bonito), 소피(SOPHIE)와 A. G. 쿡(A. G. Cook), 한나 다이아몬드(Hannah Diamond)를 비롯한 일련의 PC 뮤직(PC Music) 소속 아티스트… 자칫 좀 더 과격한 일렉트로팝 정도로만 느껴질 수 있는 이들의 음악을 범상함의 덫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드는 가장 커다란 동력은 이들이 만들어내는 소리의 초월적인 질감, 즉 감각을 광케이블의 속도로 가속시키는 초감각화의 촉매다. 그 점에서 [Your Home]의 소리는 전혀 다른 맥락에 있으면서도 동일한 효과를 가져온다. 하이퍼팝 워프게이트를 묘사한 듯한 매끈한 커버 이미지는 그 가속된 감각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명쾌한 시각적 도상을 제시한다. 그 초월적인 감각이 붕 뜬 것처럼 위태롭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수민이 R&B와 K-Pop의 풍요로운 토양에서 길어올린 구조를 [Your Home] 내에 뼈대처럼 단단히 세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데뷔작 [Beat, And Go To Sleep EP]부터 클래식한 소울/R&B 그루브의 정수를 뽑아냈던 기억과 레드벨벳(“봐”), 방탄소년단(“Lie”) 등 여러 K-Pop 뮤지션의 송라이팅에 참여한 경험은 [Your Home]에 부드러우면서도 테크니컬한 목소리의 형태로, 모타운(Motown)의 고전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무그 베이스(Moog bass) 풍의 베이스라인으로, 벌스와 코러스의 명료한 훅(hook)을 중시하는 K-Pop적 번쩍거림 등의 구조로 아로새겨져 있다. 하지만 [Your Home]의 초감각적 사운드가 진정으로 매력적인 형태를 드러내는 건 그러한 견고한 토대를 자신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발판으로 삼되, 그 구조의 전통적 법칙에 얽메이지 않고 질감 자체를 탐사하는 데 집중한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많은 K-Pop이 팝에서의 ‘과잉의 미’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면서도 소스 선정이나 믹싱, 퍼포먼스를 위한 작곡 등에 있어서 ‘안전하’거나 ‘익숙한’ 패턴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Your Home]은 오직 소수의 K-Pop만이 (약간이나마) 돌파했던 하이퍼팝의 영역을 과감하게 가로지른다. 빛보다 밝게 터지는 음향의 광선이 가로지르는 사운드스케이프 속에서 수민은 나와 너, 사랑과 관계, 육체와 교감에 대한 이야기를 과감함과 산뜻함이 교차하는 언어로 자신 있게 노래한다. 추상이 아닌 실제의 영역에 있는 그 언어는 감각을 일깨우는 하이퍼팝의 초월적 질감으로써 생명력을 얻는다. ‘모든 소리를 눈에 담’고, ‘모든 걸 다 가진’ 채로, 그 생명력은 수민의 목소리 속에, 언어 속에, 그리고 이 앨범을 듣고 있는 우리의 귀와 뇌와 신경과 육체 속에, 달콤하고 반짝거리는 가루처럼 흡수된다. [Your Home]은 그렇게 감각과 육체라는, 팝이 그토록 진동시키려고 노력하지만 쉽게 간과되곤 하던 요소에 집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육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이 앨범이 일깨우는 감각의 홍수로부터 비로소 깨닫는다. 수민은 그럼으로써 조금 더 강력해졌다. 나 역시 그러하다. 당신도 마찬가지로, 조금 더 강력해질 수 있을 것이다. | 정구원 필자별 리스트 정구원 공중그늘 [공중그늘 EP] 공중도둑 [무너지기] 구토와 눈물 [+E-L] 김사월 [로맨스] 김해원 [바다와 나의 변화] 나이트라이딩 [꿈의 도시] 데카당 [데카당] 동찬 [안개] 모임 별 [주인 없는 금] 보아 (BoA) [WOMAN] 선미 [WARNING] 소낙빌 [빌라에서 만든 음악 EP] 수민 (SUMIN) [Your Home] 슬릭 (SLEEQ) [LIFE MINUS F IS LIE] 신혜진 [cnsntr EP] 아슬 (Aseul) [ASOBI] 애리 [Seeds EP] 예서 (YESEO) [DAMN RULES] 은도희 [Weak] 장명선 [이르고 무의미한 고백] 장필순 [soony eight : 소길花] 종현 [POET | ARTIST] 출장작곡가 김동산 [서울·수원 이야기] 키라라 (KIRARA) [Sarah] 플래시 플러드 달링스 [Fewchie 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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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성을 달리 보자면, 부정성이 제거 된 상태. 나와 타자의 거리/간격도 제거된 상태로 느껴집니다. 내가 타자로, 혹은 시공간으로 도달할 때 거치는 장애물, 혹은 사유들이 존재하지 않은 상태이죠. 부정성을 거침으로서 오히려 자아를 풍요롭게 하는 경험, ‘단계’를 거침으로서 무엇가를 ‘완결’해볼 수 있는 경험을 투명성은 앗아갑니다. 어쩌면 이는 현재 자본주의 체제의 억압 방식과 결부되죠. 결과물, 목표만이 모든 것인 논리 속에선 간격이란 정말 불필요한 요소입니다.. 사회는 지체되는 것, 다른 것(부정성)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장명선이 불투명한 소리를 켜켜이 쌓아서 들려주는 어여쁜 마음은 오히려 ‘불투명’했기 때문에 존재할 것입니다. 어여쁜 마음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불투명한 소리와 흩뿌려지는 노랫말들이 만들어낸 아우라를 견디고, 음미하기 때문에 비로소 이 음악이 아름다워지는게 아닐까요? 장명선이 만들어낸 시공간을 우리는 우리의 세계관과 ‘부딪히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부딪힘이라는 부정성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예술을 사유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진솔함, 진정성은 투명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보이는 투명한 순간은, 애초에 거짓됨, 비유, 은유 자체가 없어질 테니까요. 기본적으로 인간의 언어는 근원적으로 불투명하며, 어쩌면 본인조차도 본인에 자아에게 ‘투명한 사람’은 되기 불가능하겠죠. 새로운 사유가 열리기 전, 이미 투명해진 이미지 혹은 개념들은 긍정/가속화된 상태로 넘어갑니다. 그리하여 어찌 보면 투명성은 포르노적이며 폭력적입니다. 발가벗겨진, 그렇기 때문에 항상 긍정적이고 부딪힘과 머뭇거림은 제거 되죠. ‘투명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이 음악을 부정하거나, 남들과 다르게 사유할 자유가 사라집니다. 모든 것이 자칫하면 획일화되거나 무한긍정화 될 수 있는 위험한 범주가 투명성이 아닐까요. 음악가는 본인의 음악이 ‘투명한’음악으로 규정됨으로서 긴 시간과 부정성을 필요로 하는 개념을 담아내기 힘들어지며 음악가 본인의 아우라/카리스마를 확립하기 힘들어집니다. 거론된 장명선,김목인,한희정 등등의 범주를 ‘깊이있는’, ‘진정성’이란 단어로 확립하는게 ‘오용’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이들의 음악에서 다가오는 마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방법은 ‘투명성’과는 거리가 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글을 읽고, 이렇게 댓글을 쓰면서 ‘투명’이란 단어를 구성하는 재료들이 개인마다 매우 다를 것 같다는 걱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투명성에 대하여 논하는 한병철이나, 하이데거 등의 철학자들도 역시 ‘투명성’ 이라는 단어에 확립을 깔끔하게 하지 못한 것 같구요. 그리하여 저의 해석이 뜬구름만 잡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쉐도우 복싱 같은 느낌…. 저의 고민이나 질문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혹시 제가 오독했거나 좀 더 덧붙여주실 지점이 있다면 sanhank@naver.com로 답장 주시길 바랍니다. 영광입니다.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weiv 필자분들 응원합니다. 응답 Leave a Reply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CommentName* Email* Website Δ
lhk0527 2019.04.03 전대한 님의 (장명선-이르고 무의미한 고백) 평에서 논하는 투명성에 대해 여러 생각이 듭니다. ‘투명성’은 과연 진솔함을 넘어선, 음악, 더 크게는 세계의 범주로 볼 수 있을까요? 투명성을 달리 보자면, 부정성이 제거 된 상태. 나와 타자의 거리/간격도 제거된 상태로 느껴집니다. 내가 타자로, 혹은 시공간으로 도달할 때 거치는 장애물, 혹은 사유들이 존재하지 않은 상태이죠. 부정성을 거침으로서 오히려 자아를 풍요롭게 하는 경험, ‘단계’를 거침으로서 무엇가를 ‘완결’해볼 수 있는 경험을 투명성은 앗아갑니다. 어쩌면 이는 현재 자본주의 체제의 억압 방식과 결부되죠. 결과물, 목표만이 모든 것인 논리 속에선 간격이란 정말 불필요한 요소입니다.. 사회는 지체되는 것, 다른 것(부정성)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장명선이 불투명한 소리를 켜켜이 쌓아서 들려주는 어여쁜 마음은 오히려 ‘불투명’했기 때문에 존재할 것입니다. 어여쁜 마음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불투명한 소리와 흩뿌려지는 노랫말들이 만들어낸 아우라를 견디고, 음미하기 때문에 비로소 이 음악이 아름다워지는게 아닐까요? 장명선이 만들어낸 시공간을 우리는 우리의 세계관과 ‘부딪히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부딪힘이라는 부정성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예술을 사유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진솔함, 진정성은 투명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보이는 투명한 순간은, 애초에 거짓됨, 비유, 은유 자체가 없어질 테니까요. 기본적으로 인간의 언어는 근원적으로 불투명하며, 어쩌면 본인조차도 본인에 자아에게 ‘투명한 사람’은 되기 불가능하겠죠. 새로운 사유가 열리기 전, 이미 투명해진 이미지 혹은 개념들은 긍정/가속화된 상태로 넘어갑니다. 그리하여 어찌 보면 투명성은 포르노적이며 폭력적입니다. 발가벗겨진, 그렇기 때문에 항상 긍정적이고 부딪힘과 머뭇거림은 제거 되죠. ‘투명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이 음악을 부정하거나, 남들과 다르게 사유할 자유가 사라집니다. 모든 것이 자칫하면 획일화되거나 무한긍정화 될 수 있는 위험한 범주가 투명성이 아닐까요. 음악가는 본인의 음악이 ‘투명한’음악으로 규정됨으로서 긴 시간과 부정성을 필요로 하는 개념을 담아내기 힘들어지며 음악가 본인의 아우라/카리스마를 확립하기 힘들어집니다. 거론된 장명선,김목인,한희정 등등의 범주를 ‘깊이있는’, ‘진정성’이란 단어로 확립하는게 ‘오용’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이들의 음악에서 다가오는 마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방법은 ‘투명성’과는 거리가 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글을 읽고, 이렇게 댓글을 쓰면서 ‘투명’이란 단어를 구성하는 재료들이 개인마다 매우 다를 것 같다는 걱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투명성에 대하여 논하는 한병철이나, 하이데거 등의 철학자들도 역시 ‘투명성’ 이라는 단어에 확립을 깔끔하게 하지 못한 것 같구요. 그리하여 저의 해석이 뜬구름만 잡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쉐도우 복싱 같은 느낌…. 저의 고민이나 질문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혹시 제가 오독했거나 좀 더 덧붙여주실 지점이 있다면 sanhank@naver.com로 답장 주시길 바랍니다. 영광입니다.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weiv 필자분들 응원합니다. 응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