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19년 3월 21일 목요일
장소: 문래 보사노바
질문, 정리: 정구원 lacelet@gmail.com, 전대한 jeondaehan@naver.com, 김태윤 gyaltai@gmail.com

지난 12월 초 발표된 [이르고 무의미한 고백]은 한 해의 마무리가 진행될 무렵 [weiv] 필진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앨범이었다. 한희정과 시와, 이아립 등이 들려줬던 흐름을 ‘투명성’이라는 측면에서 해석한 에디터도 있었고, 소리의 흐름이 쌓이는 방식에 주목한 경우도 있었다. 앰비언트 및 글리치 팝의 방법론을 연약하지만 끊기지 않는 가느다란 실처럼 이어낸 [이르고 무의미한 고백]의 사운드와 감성은 우리가 익히 들어 왔던 음악을 새로운 차원으로부터 다시 풀어낸 빛나는 성취였고, 그 잔향은 지워지지 않는 잡음과 부유하는 듯한 공간감의 형태로 듣는 이의 시간을 채워 나갔다.

그 성취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갑작스럽게 등장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이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한 확신과 궁금증을 품고 [이르고 무의미한 고백]을 만든 뮤지션 장명선을 만났다. 앨범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그는 밝고, 당당하며, 자신의 음악에 대한 믿음을 지닌 이만이 보여줄 수 있는 태도로 우리를 맞았다. 그 모든 긍정적인 분위기를 텍스트 안에 전부 담을 수는 없겠지만, 이 인터뷰가 [이르고 무의미한 고백]을 인상깊게 들은 모든 이에게 즐거운 경험이 되었으면 한다.

 

 

정구원: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장명선: 안녕하세요, 저는 음악을 만드는 장명선이라고 합니다.

 

정구원: 처음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하신 시기는 언제인가요? 노래를 부르고 음악을 만들기 시작하신 계기와 그 당시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장명선: 맨 처음 음악을 만든 건 고등학교 때였는데, 제가 중학교 때까지 피아노 전공을 했었어요. 그래서 예술고등학교를 가고 싶은데 엄마 아빠가 너무 반대를 하셔서… 아쉬운 마음에 고등학교 들어가서 동아리로 관현악부를 들어갔어요. 거기서 담당 선생님이랑 친해져서, 선생님한테 ‘저 음악이 너무 하고 싶어요’ 하고 말씀드렸는데, 작곡을 해보는 건 어떻겠냐는 말씀을 해 주셔가지고 그 때 ‘어, 나도 작곡이란 걸 해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했어요. 당시에 오지은님이나 시와님, 한희정님 음악을 많이 듣고 있을 때여서, 나도 이런 거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다, 하는 생각으로 기타를 들고 처음 곡을 쓰기 시작했어요.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14년도에요. 대학교 입학을 한 후 공연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카페 언플러그드의 ‘오픈 마이크’에 신청을 해서 처음으로 무대를 꾸리게 됐습니다. 그때는 노래도 엄청 못하고 기타도 너무 못 쳐서 이대로는 진짜 안 되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웃음)

 

정구원: 그러면 처음 음악을 시작하셨을 당시에는 포크 음악으로 시작을 하셨던 거네요.
장명선: 네, 그렇게 시작했어요. 그 때도 장명선이란 이름으로 활동했었고요. 중간에 대학교 다니면서 만난 친구와 어쿠스틱 듀오로 팀을 꾸려서 활동하기도 했었어요.

 

정구원: [이르고 무의미한 고백]의 믹싱과 마스터링 등에 도움을 주신 이재호님과 함께 듀오 밤과 낮으로 활동하셨는데, 이전 음악 활동으로부터 어떻게 이어지게 되었나요?
장명선: 어쿠스틱 듀오로 활동을 하던 무렵에 공연장에서 재호님이 이문이라는 활동명으로 솔로로 공연하는 걸 봤어요. 전기 기타랑 노트북으로 공연을 진행하셨는데, ‘이런 음악이 있구나, 정말 신기하다’ 싶었어요. 그때까지는 전자음악에 전혀 관심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공연이 끝나고 재호님께 음악 어디서 들을 수 있는지 여쭤보고, 그 후에 연락을 주고받다가 재호님이 자기 프로젝트에 보컬이 필요하다는 요청을 주셔서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일렉트로닉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밤과 낮 활동이었죠.

 

정구원: 사운드클라우드를 살펴보면 곡이 많이 공개되어 있지는 않더라구요.
장명선: 실제로는 곡이 엄청나게 많아요. 공연을 하면 뭘 연주할지 골라서 갈 정도로. 재호님이 그 프로젝트에 워낙 욕심이 많으셨거든요. 그런데 녹음은 많이 안 해서 곡을 찾기가 힘드셨을 거에요. (웃음) 앨범도 내지 않았고요. 제가 앨범이라도 내보자고 꼬시고는 있는데 재호님께선 ‘입에 풀칠 먼저 하고 하자’고 하시네요. (웃음)

 

정구원: 그러면 밤과 낮 활동 때도 작곡 등에 참여하셨던 건가요?
장명선: 밤과 낮 프로젝트 자체가 원래 재호님의 프로젝트여서 작사·작곡·편곡·사운드 디자인 등을 전부 재호님이 맡으셨고, 저는 보컬로만 참여했어요. 그런데 저도 욕심이 있다 보니까 재호님과 곡을 같이 쓰든지, 아니면 제가 곡을 써서 작곡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두 사람이 진행하는) 스타일이 너무 달라서 밤과 낮으로 같이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어요. 그래서 만약 내가 음악을 만들 거면 솔로로 해야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내가 어떤 음악을 만들고 싶은가, 그리고 내 장점이 무엇인가, 이 두 가지에 대해서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정구원: 일렉트로닉 뮤지션 키라라님께서 믹스맥 코리아(Mixmag Korea) 인터뷰에서 ‘장명선씨의 음악을 꼭 들어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네요’라고 언급해 주신 바 있습니다. 당시 저도 그 인터뷰를 읽고 처음 명선씨의 음악을 듣게 되었는데, 키라라님의 수업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고 어떤 영향을 받으셨나요?
장명선: 솔로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재호님의 작업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나도 솔로로 활동한다면 전자음악으로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배우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어요. 그랬더니 재호님이 키라라 아카데미를 한번 들어 봐라, 하고 제안을 해 주셨어요. 사실 재호님이 아카데미 1기였고, 제가 2기였죠. (웃음) 그 때가 3년 전인데, 전 당시 기본조차 없는 무(無)의 상태였어요.
키라라 아카데미는 저처럼 전자음악을 처음 배우는 분들에게 입문용으로 아주 좋은 강의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생 기초부터 차근차근 알기 쉽게 설명해 주시거든요. 기술적인 부분만 알려주시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음악가에 대해 서로 발표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자신의 취향을 분석할 수 있게끔 도와주시고, 또 칭찬을 진짜 많이 해 주세요. 비트 조금만 찍어도 ‘와 너무 잘했다’고 박수 쳐 주시고(웃음) 그래서 만들면서도 ‘어렵다’가 아니라 ‘재밌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작업할 수 있게 해 주셨고요. 내가 어떤 음악을 만들고 싶은가, 그리고 내 장점이 무엇인가, 이 두 가지에 대해서 많이 배운 것 같아요. 그게 음악생활 하면서 엄청 큰 힘이 되었고요. 키라라 선생님은 상대방의 장점을 잘 찾으시는 분 같아요.

 

정구원: 그러면 키라라 아카데미 수업을 들으시면서 앨범에 대해서 계속 계획을 잡아오셨던 건가요?
장명선: 아뇨, 사실 수업을 들을 당시에는 앨범에 대한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마지막 수업 때 자기 곡을 하나 완성을 해서 가져오라고 하시거든요. 그 때 썼던 곡이 “바라는 일”이었어요. 플래시 플러드 달링스(Flash Flood Darlings) 선생님도 함께 곡을 봐 주셨는데, 두 선생님이 곡을 듣고 나서 너무 칭찬을 많이 해 주시는 거에요. (웃음) 그 때 용기를 얻어서 ‘앨범을 한번 내 볼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끝나고 나서.

 

전대한: 씬에서 활동하는 다른 음악가들과 꽤 다양하게 친분을 맺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키라라뿐만 아니라 애리, 피아노 슈게이져, 은도희, 빅 베이비 드라이버, 오지은 등등 많은 음악가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는 것 같은데, 이러한 상황이 음악가에게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되나요? 단순히 같은 레이블에 소속되어 있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씬에서 동료나 친구가 있다는 것이 본인의 작업에 있어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합니다.
장명선: 이것도 약간 키라라 선생님의 영향이 있을 텐데, 마지막 수업 때 선생님이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음악가 동료를 많이 만들어라. 왜냐하면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넓어진다’라고요.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아요. 공연 섭외가 들어오는 걸 보면 대부분 ‘특정 음악가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고 말씀해주시는 경우가 많거든요. 특히 키라라님을 통해서요. 키라라님이 워낙 주변에 제 얘기를 많이 하고 다니셔서… (웃음) 그 부분에서 키라라님에게 감사한 점이 많아요. 확실히 저는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리고 작업하는 데 있어서는, 동료들이 있으면 고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잖아요. 혼자 고민하는 것보다는 같이 고민하는 게 해결점을 더 빨리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각자 앨범을 만들고 나서 마스터 음원이 나오면 카페 한잔의 룰루랄라에서 사장님한테 틀어달라고 해서 같이 모여 있을 때 미리 들어보고 그랬거든요. 그러면서 이건 이렇다, 저건 저렇다 이야기 나누고. 그렇게 같이 피드백을 해 줄 사람이 있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정구원: [이르고 무의미한 고백] 제작의 후원을 받았던 텀블벅 페이지를 보면 “사인파 신시사이저와 글리치 사운드에 매력을 느껴 두 가지를 주로 활용해 음악을 만든다”는 소개가 첫머리에 나옵니다. 명선씨의 음악에 있어서 이 두 가지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어떤 계기로 이러한 소리들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나요?
장명선: 전자음악을 하면서 이런 음반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게끔 만든 앨범이 두 개가 있어요. 모트 가슨(Mort Garson)의 [Mother Earth’s Plantasia]와 모스키투(Moskitoo)의 [Mitosis]인데, 우선 [Mother Earth’s Plantasia]에서는 신스 소리들이 마음에 들었어요. 부드럽고 몽글몽글한 사인파 계열의 신스 소리. 모스키투의 앨범에서는 글리치 소스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좋았고요. 그 두 가지를 참고하면서 음악을 많이 만들었던 것 같아요.

 


Mort Garson [Mother Earth’s Plantasia]

 

정구원: 명선씨의 음악을 들으면서 랄리 푸나(Lali Puna)와 멈(múm) 등의 글리치 팝 아티스트, 페네즈(Fennesz)나 알바 노토(Alva Noto)처럼 글리치 소스 자체에 집중하는 아티스트들이 생각나기도 했어요.
장명선: 그러한 뮤지션들 대부분을 좋아하고, 특히 일본 앰비언트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아까 언급했던 모스키투 외에도 코키유(cokiyu), 피아나(piana) 같은 아티스트의 음악을 많이 들었는데, 그 분들의 공통점이 목소리를 패드처럼 사용한다는 점이에요. 글리치 사운드 구성에 있어서는 료지 이케다(池田亮司)나 미국의 스윗 트립(Sweet Trip)같은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그리고 좀 더 빠른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에 랄리 푸나의 음악을 듣게 됐어요. 들으면서 사운드가 너무 깔끔하고 멜로디가 멋있어서 닮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정구원: 전대한 비평가는 연말결산에서 썼던 것처럼 명선씨의 음악이 글리치 팝이나 앰비언트보다는 오히려 포크와의 접점을 더 많이 생각해보게 되는 음악들이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스스로도 자신의 음악과 포크의 접점을 많이 생각해보시거나, 혹은 염두에 두시나요?
장명선: 글 읽으면서 정말 놀랐던 게, 재호님도 마스터링을 진행하시면서 비슷한 말씀을 하셨어요. 제 음악이 포크에 더 가까운 것 같다고. 그래서 마스터링을 할 때도 일반적인 전자음악을 마스터링하는 방식과는 다르게 접근해야 할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제가 글리치 팝이나 앰비언트를 많이 듣긴 하지만, 그것보다 더 많이 듣는 게 포크에요. 아까 말씀드렸던 오지은, 시와, 한희정 등의 한국 인디 포크 뮤지션들의 음악을 많이 들었고, 아오바 이치코(青葉市子)나 바시티 버니언(Vashti Bunyan) 앨범은 정말 맨날, 질리도록 들어요. 아마도 듣는 음악이 그런 음악이다 보니 영향을 받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정구원: 사운드클라우드를 보면 “サーカスナイト”나 공기공단(空気公団) 등 일본 음악가들을 커버해 주셨는데, 일본 음악을 특별히 좋아하시는 느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장명선: “サーカスナイト”의 경우 아오바 이치코님이 커버해 주신 곡을 들어서 알게 되었어요. 공기공단도 엄청 좋아하는 밴드고요. 해외 음악들 중에서도 제가 왠지 모르게 일본 음악에 좀 더 끌리는 것 같네요.

 


“サーカスナイト” (장명선 커버)

 

전대한: 비슷한 맥락에서, 사운드적인 측면은 전자음악의 방법론은 따르지만 언어나 감정을 다루는 방식은 포크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것이 너무 이분법적인 구분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혹시 음악을 만드실 데 이런 부분을 염두에 두셨나요?
장명선: 염두에 두고 작업하는 건 아닌데, 아무래도 포크 음악을 들으면서 시와님이나 오지은, 한희정님의 가사 쓰는 방식들을 보고 닮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서 가사가 그렇게 나온 것이 아닌가 싶어요. 처음부터 장르에 신경을 쓴 것은 아닌 것 같고요.

 

정구원: 이렇게 글리치 이펙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음에도 각 곡들이 듣는 이의 귀를 한번에 사로잡는 멜로디, 훅(hook)을 갖추고 있어서 자신만의 인상을 선명하게 남깁니다. “다가오는 것들”의 5음 신시사이저 리프나 “일기장”에서의 ‘네게 달려가 / 잠들고 싶어’의 멜로디처럼요. 이렇게 훅을 포함시키는 작법을 의도적으로 추구하신 건가요?
장명선: 네, 저는 멜로디에 가장 많이 신경을 써요. 훅이 있는 멜로디를 일단 좋아하기도 하고요. 주변 음악가들이 제게 칭찬해 주시는 것 중에 하나가 멜로디에 대한 것이었어요. 멜로디가 강점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다 보니까 더 잘해야 할 것 같고 (웃음) 자연스럽게 멜로디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된 것 같아요. 다만 최근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라온 몇몇 곡들처럼 사운드스케이프에 좀 더 중점을 둔 음악도 해 보고 싶고, 하고 싶은 게 많은 것 같아요.

 


“다가오는 것들”

 

정구원: 작업기를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어요. (웃음) 작업기에서 보컬 사운드를 잡는 데 있어서 굉장히 애를 먹으신 것처럼 보이는데, 개인적으로는 앨범을 들으면서 악기들의 소리만큼이나 목소리, 그리고 목소리를 사운드로 활용하는 방법도 인상적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앨범 전반적으로 미니멀한 기조를 유지하고 있어서 목소리가 큰 비중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뭔가 얇은 막이 덮고 있는 것처럼 도드라지는 부분을 어느 정도 억제하고 있다는 인상이 들었습니다. 보컬을 음악적으로 활용하는 데 있어서 접근하신 방식, 그리고 녹음 및 믹싱 등의 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조금만 더 이야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장명선: 보컬 믹싱에 애를 먹은 이유가, 기본적으로 제가 성량이 작고 힘이 없는 목소리를 갖고 있어서 보컬을 앞쪽으로 끌어내는 게 힘들었어요. 최대한 끌어내긴 했지만 그래도 뭔가 덮인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런 목소리를 갖고 있다 보니 다른 사운드를 많이 넣었을 때 더 많이 덮이더라구요. 그래서 편곡할 때 목소리를 도드라지게 하기 위해서 다른 소스들을 많이 뺐어요. 목소리에 미드가 너무 없어서 (웃음) 애를 많이 먹었네요. 멜로디를 많이 강조했으니까 결국에는 보컬이 잘 들려야 하는 음악인데 자꾸 안 들리다 보니. 메인 보컬 말고도 코러스라든지 다른 소스도 엄청 많이 있었는데, 지금 있는 것도 사실 많이 추려낸 거에요.
재호님이랑 작업하면서 진짜 많이 싸웠어요. 작업 끝나고 술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술을 마시다 보면 감정이 격해지잖아요. (웃음) 작업하면서 쌓였던 것들을 얘기하다 보니 상황이 커지고 울고 그렇게 되더라구요. 예를 들어 저는 앨범에 리버브를 정말 많이 넣고 싶었어요. 근데 재호님은 욕심은 알겠지만 빼야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제 음악은 보컬이 핵심인데 리버브를 많이 넣으면 보컬이 죽고 사운드가 지저분해진다고. 처음엔 그게 이해가 안 갔었는데, 결론적으로는 재호님 말씀이 맞았던 것 같아요.
싸운 이유를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제가 그 당시에 사운드를 어떻게 만들어야겠다는 확신 같은 게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만들고 나면 재호님이 잘 해주시겠지? 이런 마음뿐이었던 것 같고,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다투게 됐네요.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라이너 노트를 구체적으로 정리를 하고 나서야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그때부터는 안 싸웠어요. 재호님이 이번에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사운드 외주 작업도 받는다고 하시니까 많이 연락주세요. (웃음)

 

정구원: 생각해보니 라이브 때는 리버브가 좀 더 많이 들어간 느낌을 받았어요.
장명선: 네. 라이브가 리버브가 더 많이 들어가요. 재호님께서 라이브 피드백도 해 주시는데, 라이브 때는 리버브 넣은 게 더 낫다고 해 주시고… 그렇지만 레코딩은 다르니까요.

 

정구원: 앨범을 녹음하실 때 사용하신 장비에는 어떤 것이 있으신가요?
장명선: 일단 에이블튼(Ableton) 내장 악기를 정말 많이 썼어요. 다른 소스보다도 에이블튼 안의 것으로 작업을 주로 진행했죠. 신시사이징은 넥타 (Nektar) 임팩트 LX25(IMPACT LX25)로만 진행했고요.
녹음할 때 사용했던 마이크는 SM 베타57a(Beta57a)였어요. 원래 사용하려던 마이크가 웜 오디오(Warm Audio)의 WA-47jr였는데, 노이만(Neumann)의 U47이라는 마이크를 카피해서 만든 마이크였어요. 큰 맘 먹고 샀는데, 방음 부스가 없다 보니까 잡음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결국 팔아버렸네요.
그리고 “숲” 같은 경우에는 포크 뮤지션 박영환씨 녹음실에 가서 작업을 했어요. 양주 하나 사들고. (웃음) 그 분께 마이크를 팔았는데 녹음실에 방음 부스가 굉장히 잘 갖춰져 있었거든요. “숲”은 방음 부스가 없으면 정말 어떻게 할 수가 없겠더라구요.

 

“이 관계가 끝나버리면 어쩌지? 끝나지 않은 상태지만 언젠가 끝나버리겠지? 하고 혼자 상상하고 불안해하는 내용을 담은 앨범이에요.”

 

정구원: [이르고 무의미한 고백]에 대해서 ‘사랑에 빠지는 순간 느끼는 이르고 무의미한 불안감’이라는 설명을 해 주신 바 있어요. 저는 그 불안의 형태가 어떤 의심이나 불행한 사건을 직접적으로 상징한다기보단, 어떤 행복이란 상태에서 이것이 어떤 식으로든 사라져버리는 것을 상상하게 되는 것, 그리고 그것을 견뎌내는 데에서 비롯되는 내적인 파동을 떠올렸어요. 저 역시 사랑을 하면서 느끼게 되는 불안은 대부분 그런 경험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그러한 사랑과 불안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장명선: 구원님께서 말씀해 주신 바가 맞는 것 같아요. 어떤 불행한 사건을 겪고 만든 앨범이라기보단, 이 관계가 끝나버리면 어쩌지? 끝나지 않은 상태지만 언젠가 끝나버리겠지? 하고 혼자 상상하고 불안해하는 내용을 담은 앨범이에요. 그런 불안의 종류가 있는데, 그것이 관계에는 도움이 확실히 안 되는 것 같아요.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오히려 집착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 같고요. 관계에 있어서 방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아서, 그런 불안이랑 거리를 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도 많이 생각하고 있고요.

 

정구원: 제목에 있어서 그것을 이르고 무의미한 ‘감정’이 아닌 ‘고백’이라고 붙인 이유가 있으신가요?
장명선: 제가 그런 불안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관계에 도움이 안 될 걸 아니까. 불안에 대해 평소에 상대방에게 말을 하는 편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나 혼자 가지고 있던 걸 고백하는 느낌이라고 생각했어요. 다른 방식으로요. 약간 독백에 가까운 느낌? 혼자 일기를 중얼중얼 읽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웃음)

 

정구원: 앨범 전반부의 가사는 사랑하는 과정에서의 열망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고, 후반부에서는 그러한 열망으로부터 거리를 둔 채로 자신과 상대에 대한 관조를 풀어놓는데, 이를 사운드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 전반부가 가라앉은 소리, 후반부가 비트 등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좀 더 격정적인 소리로 표현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보통은 반대의 기조를 취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일종의 아이러니를 통해 의도하신 효과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장명선: 앨범의 화자가 관계에서 불안을 굉장히 많이 느끼는 사람인데, 점점 거리를 두면서 더 단단해지고 성숙해지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전반부는 불안감에 좀 더 집중했고, 후반부는 불안감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다 괜찮아!’ 이런 상태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 뒤로 갈수록 음악의 비트가 강해지고 한층 밝게 만들어진 것 같아요.

 

정구원: 글리치라는 요소에 대해서 보통은 사운드적으로 느껴지는 흥미로움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이르고 무의미한 고백]에서 등장하는 글리치와 잡음 등이 명선씨의 노랫말만큼이나 앨범의 전체적인 테마를 표현하는 기제로 쓰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마치 언어를 대신하는 듯한 “이 다음에는”의 소리는 말할 것도 없고, “바라는 일”의 멜로디 사이로 흠집을 내는 듯이 끼어드는 글리치가 불안감의 징표로서 출몰한다는 느낌이었거든요.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글리치라는 요소가 명선씨에게 어떤 의미를 지닌 도구인지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장명선: 처음 작업할 때는 글리치를 ‘불안감의 징표’로 사용한다거나 하는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트랙 정리를 하다 보니까 그런 식으로 쓰일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글리치가 많이 들어간 곡, 불안감이 느껴지는 곡들을 앞쪽으로 배치하고 덜한 곡, 해소되고 없어지는 방향의 트랙들을 뒤쪽으로 넣었어요.
다만 “이 다음에는” 같은 경우에는 이 앨범에서 글리치로 완전 뒤덮인 트랙이 하나 정도는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으로 만든 노래였어요. 그래서 그 노래는 빼지 않고 그대로 마지막에 넣었어요. 그리고 마지막은 밝은 느낌으로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관현악 소스들을 통해서 좀 더 밝게 만들었어요.

 


“이 다음에는”

 

정구원: 그렇다면 글리치 사운드를 만들 때 어떤 식으로 작업이 이루어졌나요? 과정에 대해서 설명 부탁드립니다.
장명선: 제가 글리치 소스 만드는 것 자체를 좋아해요. ‘음악을 만들어야겠다’ 같은 마음가짐을 가지고 만들기보다, 글리치 소스 하나에 집중해서 만드는 식으로 놀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좋은 소스가 나오면 그걸 사용해서 음악을 만드는 거죠.
작업 과정을 예로 들면, 제 목소리를 녹음해서 엄청 길게 늘려가지고 지직거리게 만든다든지, 아니면 다른 샘플을 넣어서 소스를 구긴다든지.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무료 효과음 소스를 다운받아서 팩으로 모아 놨는데, 그것을 전부 부어서 비트크러셔(Bitcrusher) 등의 오디오 이펙트로 만지기도 하고요. 그렇게 해서 만든 소리 중에 마음에 드는 건 샘플 소스 폴더에 넣어 두고, 폴더에 있는 수많은 글리치 소스를 골라서 작업할 때 사용하는 거죠. 재밌어요. (웃음) 이어폰을 꼽고 들었을 때 현실에 없는 소리들이 들리는 것이 좋더라구요. 패닝을 극단적으로 하면 소리가 정말 옆에 있는 것처럼 들리거든요. ASMR처럼. 세상에 없는 질감이 여기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좋아요.

 

정구원: 혹시 글리치 및 전자음 이외의 소리, 관현악이나 기타 등의 다른 소리에 대한 욕심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장명선: 관현악을 좀 더 적극적으로 쓰고 싶긴 한데, 레코딩 작업을 할 때는 그런 소리들은 미디로 찍어서 작업해도 될 것 같아요. 다만 라이브에 대한 욕심은 있어요. 라이브에 관현악 세션을 동원해서 진행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앞으로 그런 무대를 꾸려보고 싶긴 해요.

 

정구원: 이제는 많이 희석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여전히 전자음악이라는 장르가 음악가의 내면이나 감정을 다른 장르에 비해 가깝게 전달하지 못한다는 오해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명선씨가 이러한 부분에 있어 특별히 중점을 두는 포인트가 있으신가요?
장명선: 첫째로는 가사를 쓸 때 신경을 많이 쓰게 되는 것 같고, 두 번째는 그 가사와 음악이 붙었을 때 착 붙는 느낌, 음악과 가사를 같이 들었을 때 이것이 어떤 감정인지 확 느껴지는 부분이 있도록 만들고 싶어요. 가사도 그렇고 멜로디도 그렇고, 음악의 기저에 깔린 소스나 사운드가 모두 하나로 뭉쳐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그 느낌을 되게 좋아하고, 작업할 때도 그 부분에 집중하게 되는 것 같아요. 듣는 이가 몰입할 수 있도록.

 

정구원: 김성혜씨가 맡아 주신 앨범 커버와 뮤직비디오 등의 일러스트 역시 인상적이었는데, 아름다운 파스텔톤의 색상 이외에도 ‘몸’을 중심적인 모티프 중 하나로 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분의 작업 과정과 그림에서 받은 인상에 대해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장명선: 제가 원래 김성혜 작가의 팬이었어요. 처음 음악을 만들고 나서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릴 때 같이 올릴 만한 그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성혜씨에게 연락을 드리고 같이 작업하자고 했는데 좋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제가 음악을 만든 다음 이메일로 보내면 김성혜 작가가 그걸 듣고 그림을 그린 다음 받고, 이런 식으로 작업이 진행되었어요.
메일을 쓸 때 가사와 안부인사 정도만 적고 구체적으로 ‘이런 그림을 그려주세요’ 같은 요청은 하나도 안 드렸어요. 왜냐하면 팬이니까 다 좋을 것 같은 거에요. (웃음) 그런데 정말 그림이 다 맘에 들었고 음악이랑 착 붙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성혜씨가 쓰는 색채가 환상적인 분위기를 내는 경우가 많고, 그림체 자체도 간결하다는 느낌을 받는데 그 느낌이 제 음악이랑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성혜씨가 많이 고생하셨죠. 뮤직비디오는 성혜씨와 더불어 애니메이터 유민하씨와 함께 작업했는데, 그것도 사실 전적으로 맡겼어요. (웃음) ‘하고 싶은 대로 해 주세요’라고 부탁드렸는데 정말 완벽하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했어요.

 

정구원: 트랙별 그림 중 특별히 마음에 드셨던 그림은 무엇인가요?
장명선: “네 모든 것”의 그림이 정말 좋았어요. 가사의 내용을 그림이 전부 함축해서 담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네 모든 것”

 

김태윤: 1월 25일 SUBstore에서 우에스기 히데요뷔찌(上杉ヒデヨヴィッチ, Geronimo Label), DJ 놋팔(DJ NOPPAL)과 ‘월드 키무키무 페스티벌’이라는 공연을 함께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부야의 7th FLOOR라는 곳에서도 공연을 하셨고요. 우에스기 히데요뷔찌와 DJ 놋팔은 과거에 각각 서울 궁중족발과 신도시 등지에서 공연하신 바가 있는데, 이렇게 일본의 뮤지션 및 음악 씬과 교류하시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장명선: 제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일본에 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는데, 여행을 가는 김에 공연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트위터에 ‘저 일본에서 공연이 너무 하고 싶어요’라고 일본어로 써 놓았는데, 일본에 사시는 김대종씨가 그걸 보셨어요. 서점에서 일하시면서 문화기획자 분들이랑 친하신 걸로 알고 있었는데, 트윗을 보시고 나서 자기가 아는 공연기획자랑 연결을 시켜주겠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7th FLOOR에선 대표인 미야지씨의 기획으로, SUBstore에선 김대종씨의 기획으로 공연을 하게 되었어요.

 

김태윤: 두 공연장 및 함께한 뮤지션이 연주되는 음악의 스타일이나 공간의 목적, 관객 구성 등에서 자못 상이해 보이는데, 두 공연에서 느끼셨던 점이나 경험, 그리고 한국에서의 공연과 차이를 느낀 점 등에 대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장명선: 일단 7th FLOOR 같은 경우에는 공간이 엄청 크지는 않았어요. 대략 한잔의 룰루랄라 정도 크기였는데, 규모에 비해서 사운드가 너무나 좋더라구요. 제가 공연을 한 공연장 중에서 제일 좋았어요. 그리고 엔지니어 히로키 씨가 굉장히 세세한 부분까지 사운드를 잡아 주시고 테이블이나 의자 위치까지 신경을 써 주셨어요. 감동적일 정도로. (웃음)
보통 한국에선 사람들이 음악 들으면서 조용하게 말을 하고 움직이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근데 여기서는 정말 말을 한 마디도 안 하시고 눈을 감은 채로 들으시더라구요. 제가 라인업 중에 제일 마지막 순서였는데, 첫 팀은 마르코포로포로(marucoporoporo), 두 번째는 에메랄드 포(EMERALD FOUR)라는 뮤지션이었어요. 근데 두 아티스트 모두 멘트를 단 한 마디도 안 하셨어요. 제목도 이야기 안 하고 음악만 계속 연주하시고. 저는 원래 멘트 잘 안하는데, 일본에서 공연한다고 멘트를 진짜 많이 준비해 갔거든요. 근데 앞에서 그렇게 하시니까 당황스러워서… 줄였어요. (웃음) 그래도 제가 멘트를 할 때마다 관객들이 웃어 주셔서 좋았어요.
7th FLOOR가 각 잡고 음악 듣는 느낌이라면, SUBstore는 분위기 자체가 되게 자유롭게 춤추면서 음악을 듣는 느낌이었어요. 인상적이었던 건, 히데요뷔찌씨가 음악을 틀면서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시고 (웃음) 중국어로도 노래를 하신 것. 그리고 DJ 노팔씨는 담배 한 대 피우시면서 춤추면서 디제잉을 하셨어요. 그 모습이 너무 멋져서 기억에 남네요.

 

 

정구원: 앞으로의 활동 계획, 그리고 다음 레코딩에 대한 예고를 부탁드립니다.
장명선: 일단 올해 공연을 많이 하고 싶어요. 큰 무대에도 한번 서 보고 싶고. 그런 기회들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전시 음악에도 도전해 보고 싶어요. 김성혜 작가와 유민하 작가와 함께하는 전시로 올해 여름에 첫 시작을 하게 될 것 같네요. 아마 그 전시가 2집 앨범의 정서, 분위기와 연결될 것 같아요. 기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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