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동아시아의 매스 록(Math rock)이 영미권의 매스 록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며 나타나고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굉장히 좋아한다. 여기서 ‘영미권의 매스 록’이라 하면, 1980년대의 하드코어 펑크나 노이즈 록, 심지어 노웨이브(No wave)까지의 특징들을 끌어와 박자와 멜로디부터 곡의 진행 과정과 악기의 톤까지 의도적인 불일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쪽을 이야기하는데… 물론 시간이 지난 후 미드웨스트 이모(Midwest emo) 중심의 인디 록이 이러한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영미권 매스 록을 흡수해 조금 더 편안한 사운드를 들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의 실험적인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들이 활용한 매스 록 (물론 이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지만) 이후 2000년대부터 나타난 동아시아의 매스 록 밴드들은 영미권의 원류처럼 불일치를 바탕으로 해 낯선 조합의 소리들을 만들었다기보다는 이를 훨씬 더 안정적이고 편안하게 활용하거나 기술적인 현란함을 더하는 방식으로 발달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엘리펀트 짐(大象體操)이나 차이니즈 풋볼(Chinese Football), 프룬 디어(話梅鹿) 같이 중화권에서 등장하고 있는 밴드들, 혹은 토(toe)나 하이스이노나사(ハイスイノナサ)에서 시작해 트리콧(tricot)과 죠쵸(JYOCHO)까지 일련의 일본 밴드들을 떠올려보면, 분명히 이것은 다양한 밴드에서 개성 있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작동한다. 정돈된 혼돈, 조화로운 부조화… 같은 말장난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마찬가지의 이야기는 당연히 보이어(Voyeur)에게도 적용된다. 두 번째 EP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 이후 처음으로 나온 싱글인 “물결”에서 그런 식으로 보이어만의 ‘조화로운’ 지점을 우선 찾아낸다면, 의외로 가장 매스 록적인 방식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곡의 시작과 끝에서 반복되는 7박의 기타 리프를 사이에 두고 “물결”의 연주들이 진행되니까 말이다. 지속적으로 반복되어 기억에 남게 될 리프를 이렇게 양 끝 쪽에 배치하면서 출발한 “물결”은 다시 시작한 곳으로 되돌아오는 구성 속에서 그 여정을 매스 록의 여러 특징들을 담아 깔끔하게 풀어낸다.

당연하게도 이 여정에서 중요한 것은 그 시작과 끝 사이에 어떠한 것들이 나타나는지다. 재밌게도 “물결”의 경우에는 반복을 이용하기보다는 계속해서 새로운 멜로디와 연주를 연결하는 편이고, 후반부로 가면 매끄럽게 이어지는 연주의 과정에서 잠깐의 중지와 연결이 계속해서 일어나 긴장감을 높인다. 여기에 더해 건반과 기타, 그리고 보컬의 멜로디가 곡의 중심에서 반복되고, 시간이 진행될수록 각 부분들이 전면적으로 나서는 위치를 바꾸는 이런 특징들이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에서보다 훨씬 더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나타난다는 점 또한 두드러진다.

다른 많은 장르도 그렇겠지만, 특히나 매스 록에서 갑작스러운 연주의 중지나 박자의 변환, 멜로디의 불일치 등이 갖고 있는 예상 불가능함은 확실하게 장르적 쾌감을 가져다주곤 한다. 보이어의 곡을 가져오자면 “부덕의 소치”에서 한 연주와 다른 연주를 모든 악기들의 스타카토로 연결하다가 이를 또 다른 연주로 발전시키는 경우나 “And Tell You It’s Alright”에서 짧은 피아노 솔로를 일종의 브릿지로 둬 연주의 박자와 속도를 조금씩 변화시키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을 단순히 매스 록에서만 적용되는 특징으로만 둘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물결”은 이러한 방식들을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에서처럼 전면적으로 드러내지는 않는 편이며, 이를 곡 안에서 훨씬 더 자연스럽게 연결시킨다. 그럼에도 보이어는 매스 록적인 특징들을 여전히 잃지 않으며, 이 특징들에서 나올 장르적 쾌감은 어떤 의미에서는 곡 안에 숨겨져 있다. 앞에서 언급한 7박의 시작과 끝을 비롯해서, 후반에 건반 혹은 기타와 다른 악기들의 연주를 배치한 다음 재빠르게 끊으며 오고가는 구간 등은 충분히 보이어의 매스 록적 방법론을 이어가면서 이를 조금 더 안정적으로 곡 전체에 포함시킨다. 그리고 상당히 짧은 시간 안에 이렇게 복합적으로 이어지고 끊어지는 여러 부분들을 매끄럽게 이어낼 수 있는 보이어의 장기 또한 “물결” 안에서 발휘된다.

물론 매스 록의 매력은 장르가 변해온 만큼 넓고 애매하게 퍼져 있으며, 그것은 날카롭거나 공격적인 톤 및 복잡한 박자와 구성으로 만들어진 예상치 못한 전개에서 나타날 수도 있다 (이러한 방식은 매스 록이 하드코어 펑크에서 계승하는 바다). 최근에 블랙 미디(black midi)의 [Schlagenheim]을 비롯해 시스터토크(Sistertalk)의 “Vitriol”이나 블랙 컨트리, 뉴 로드(Black Country, New Road)의 “Sunglasses” 같은 곡들이 노웨이브와 노이즈 록의 교차점에서 이러한 부조화의 쾌감을 들려줬는데, 나 또한 딱 그런 이유에서 이 곡들을 매우 좋아했다. 하지만 이를 다른 쪽으로 뒤집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매스 록의 의도적인 불일치가 주는 나름대로의 쾌감을 훨씬 더 안정적이고 조화로운 방식으로 풀어낼 때, 그 사이의 묘한 마찰과 간격에서 또 다른 재미와 매력이 나타날 것이라고.

“물결”에서 보이어는 상대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7박으로 곡을 시작하고 끝내거나, 악기마다 각기 다른 멜로디를 계속해서 등장시키며 이어가거나, 그 연주의 합을 빠르게 끊고 다시 붙이는 걸 반복한다. 그와 동시에 기본적으로 곡은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과 비슷하게 멜로디 자체는 상대적으로 많은 반복 없이 유지하며, 동시에 따스한 톤으로 밝은 분위기를 만든다. 그렇게 확실히 어딘가가 익숙하지 않지만, 매끄럽게 이어지는 흐름이 만들어진다. 기본적으로 “물결”은 누구나 어려움 없이 들을 수 있을 곡이겠지만, 곳곳에 여러 매스 록적인 비법 혹은 비밀이 숨겨져 있고, 그것을 하나하나 찾아내면서 보이어를 즐길 수 있다.

생각해보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비정형성을 바탕으로 어떠한 정향을 성립하고, 이를 통해 편안함이나 익숙함을 주는 것은 그냥 낯설거나 불일치하는 것을 던지는 것보다 더 어려운 작업일 것이다. 하지만 ‘조화로운 혼돈’ 혹은 ‘정돈된 부조화’라는 단어가 애초에 갖고 있는 혼란스러운 특징은, 이렇게 충분히 다양한 형태로 상상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2000년대 이후에 동아시아권을 중심으로 등장하고 있는 여러 매스 록 중심의 인디 록 밴드들이 그것들을 해내면서 나름대로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다고 본다.

물론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로 보이어를 비롯해 작년에 훌륭한 싱글과 EP를 낸 다브다나 티어파크 같은 밴드들에서도 나는 그러한 특징이 제법 강하다고 느꼈다. 매쓰 록의 장르적 쾌감과 특징을 튼튼히 유지하면서도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곡을 만드는 건 다른 밴드들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니 말이다. 성급한 판단일 수도 있겠지만, 동아시아의 매스 록을 영미권과는 차별화시키고 있는 흐름을 찾자면, 이런 재해석과 창조의 시도들이 그 물결의 가장 높은 곳에서 반짝이고 있을 것이다. | 나원영 onezero9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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