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19년 10월 4일 월요일
장소: 합정 퀜치
질문, 정리: 나원영 onezero96@naver.com, 정구원 lacelet@gmail.com
사진: 홍예리

세 번째 [우리의 포스트록을 찾아서+]의 인터뷰이는 조월이다. 2000년대에는 모임 별과 우리는 속옷도 생겼고 여자도 늘었다네의 멤버로, [네가이곳에서보게될것들] 이후로는 솔로 음악인으로도 활동을 이어갔다. 오랜만의 작업물인 [퇴로 / 식목일]이 나온 지 몇 달 지나지 않은 가을, 계속해서 나아가는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나원영: 이번 인터뷰는 기본적으로 조월 님의 솔로 활동에 대한 인터뷰이지만, 음악 활동 이전의 이야기로부터 인터뷰를 시작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튜디오 밤과 낮이 제작하고 키라라 님이 진행하시는 인터뷰 전문 유튜브 채널 <아니 어떻게 이렇게>에서는 조태상 님과 함께 등장하셨더라고요. 여기서 궁금증을 얻어, 음악을 해 보겠다고 마음먹을 당시, 혹은 그 이전에 좋아하셨거나 흥미를 가졌던 음악들이 있었는지, 그리고 음악을 처음 접하고 만드실 때 어떤 부분에서 흥미를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조월: 형이 중고등학교 때 피아노를 치면서 곡을 만들었는데, 그래서 나도 해 봐야지, 하고 만들어 보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컴퓨터에 달린 사운드카드를 가지고 만들었죠. 미디라고 부르기엔 기초적인 게임용 사운드카드 이런 것들로.
나원영: 그러다가 밴드도 하시고, 모임 별도 자연스럽게 생기게 된 거군요. 조태상 님이랑 같이 음악을 만드는 그런 경우가 옛날에는 있었나요? 그러니까, 본격적으로 모임 별 생기기 전에는 그런 일이 별로 없었다든지…?
조월: 어차피 같은 컴퓨터를 쓰니까 (웃음) 형이 뭔가 만들어놓으면 나도 듣고, 제가 만들어놓으면 형도 듣고, 갑자기 멜로디를 붙여놓거나 그런 경우도 있었어요. 서로 들려주고 그랬던 거 같아요. 작곡을 같이 한다, 이런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나원영: 조월 님이나 우리는 속옷도 생겼고 여자도 늘었다네(이하 “속옷밴드”)를 접하고 조금 더 나중에 알게 된 게 진공악단이었어요.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라온 것을 보고요. 제가 찾을 수 있던 것 중에선 가장 오래된 작업물인 것 같은데, “너의 우주” 같은 곡이 유튜브에 올라가 있던 걸 들었던 것 같아요. 이 시절의 음악은 더 찾아보려고 해도 없었는데, 이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가 궁금합니다.
조월: 박대흥이라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가 있었어요. 음악도 잘 만들고 예술에 관심 많은 친구였어요. 그래서 졸업하고 나서 밴드를 해보자, 한 거죠. 반 년 넘게 1년은 안 되는 시간 동안. 보컬 장형윤은 인터넷으로 구인광고를 내서 만났구요. 저희 둘은 모두 기타랑 미디 프로그래밍을 맡았고 보컬까지 멤버가 모인 다음 곡들을 완성했죠. 그런 다음 빵에서 오디션도 보고 해서 공연을 하려고 했어요. 오디션을 보고 난 다음에 ‘공연해 봐, 날짜 잡어’ 그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박대흥이란 친구가 군대를 가게 되어서…
나원영: 아, 왠지 다 그런 식으로 끝나는 것 같아요.
조월: 네, 그래서 자연스럽게 마무리가 되었어요. 마무리 할 때, 그래도 기록물을 남겨놓자 해서 녹음을 했죠. 그때는 멀티 트랙을 쓸 줄도 몰랐어요.
나원영: 그럼 그게 아예 최종 파일인 셈이네요?
조월: 그렇죠, 그렇게 만들어 놓은 걸 밀림닷컴(millim.com)이라는 곳에 올렸는데, 꽤 많은 분들이 들어주셨어요. 거기에 올려놓고 나니 사람들이 다운 받아서 듣고, 아직도 그걸 갖고 계신 분들도 계시고. 사이트가 없어지면서 곡도 같이 사라졌죠.
나원영: 사실 모임 별이 지금 업데이트하는 영상들도 그렇고, 미발표된 상태로 쌓여 있던 게 많은 것 같다고 느꼈어요. 그런 걸 보는 게 되게 재밌어요. 몰랐던 거를 다시 찾아보는 느낌이어서.
조월: (진공악단의 경우에는) 활동이라는 것도 없었고, 잠깐 인터넷에 올려놓았던 거였는데, 그걸 사람들이 어떻게 또 아시고 찾는 분들이 가끔 계시더라고요. 얼마 전에는 밴드 혁오의 크루인 다다이즘 클럽에서 밴드 영상에 진공악단 음악을 사용하고 싶다고 연락을 해 오셔서 쓰인 일도 있었고요. 정말 어렸을 때 만든 곡들이니까 부끄럽기도 하고.

 


진공악단 “너의 우주”

 

정구원: 그러면 어렸을 때 어떤 음악을 주로 들으셨는지, 즐겨 들었던 음반이나 곡이 있으신지가 궁금합니다.
조월: 형이 찾아 듣고 있던 걸 저도 옆에서 주워들었죠. 굉장히 어렸을 때는 본 조비(Bon Jovi) 같은 것도 들었고, 그다음에는 큐어(Cure), 디페쉬 모드(Depeche Mode) 이런 걸 형이 맨날 들고 있으니까, 그걸 따라 들었죠. 중학교 들어왔을 때쯤에는 서태지가 빵 터졌던 때였으니까 힙합, 알앤비 그런 것들도 들었어요. 음반 있는 친구들, 학교 친구들이랑 같이 찾아 듣고.
나원영: 그때 당시에 들을 수 있던 다양한 것들은 다 찾아서 들으신 건가요?
조월: 열심히 찾아 들었는데, 학생이니까 라디오에 뭐 나온다 하면 녹음해서 친구들끼리 바꿔가면서 듣고. 아무래도 한계가 있긴 했죠. 가요의 경우에는, 서태지, 듀스, 이런 것들이 나왔을 때 ‘어, 신기하다’ 막 이러면서 들었어요.
나원영: 당시의 가요가 신기하다고 느껴진 게 있었나요?
조월: 당시에는 그랬어요. 제가 초등학교 때 듣던 가요는 변진섭, 신승훈, 뭐 이런 거였거든요. 그런 것 중에서 가끔 좋은 노래들이 있었고… 가요랑 팝이랑 비교했을 때, 음질도 그렇고 방향성도 그렇고 확실히 격차가 있고 많이 다르다고 느꼈었어요. 그다음 세대인 서태지, 신해철, 015B 같은 그 세대들은 약간, 서구의 발전된 음악? 그런 걸 한국에 들여오겠다, 그런 사명감을 갖고 했었던 거 같은데… 아무튼 뭐 중학교 1학년이었던 저로써는, 신기하고 멋져 보이기도 했죠. 서태지 씨가 미디 악기들을 가지고 음반을 다 만들었다, 이런 걸 보면서 나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구요.

 

나원영: 모임 별과 속옷밴드의 경우 둘 다 밴드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긴 했지만, 부분적으로 조월 님의 특징이라고 할 만한 것이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모임 별의 “부드러운 인생”처럼 솔로 곡으로도 발표된 트랙이 있고요. 그래도 각 밴드마다 조금씩 다른 색깔을 추구하셨을 텐데, 두 밴드 안에서 작업을 진행하시면서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활동을 하셨는지가 궁금합니다.
조월: 속옷밴드는 아무래도 공연을 더 많이 했으니까, 4-5명의 록 밴드가 연주로 만들어낼 수 있는 합이나 재미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제가 혼자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무겁고 강한 사운드를 만들고 싶기도 했고요. 모임 별은 아주 초창기에는 지금보다 전자음악 사운드의 비중이 더 커서, 공연 때는 기타를 치지만 미디 프로그래밍이나 편곡자 역할을 하기도 했죠. 모임 별은 조태상이 메인 작곡가이고 리더니까 아무래도 저는 서포트하는 역할을 많이 했고요. 속옷밴드는 박현민(니나이언)과 제가 테마를 들고 오긴 하지만, 다 같이 편곡하고 만들어가는 방식이었고. 무 자르듯이 밴드 별로 어떠했다, 라고 말하기가 어렵네요. 밴드마다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기보다는 각 밴드의 멤버들과 상황에 맞춰서 음악을 만든 게 더 큰 것 같아요.

 

나원영: 혹시 그런 경우도 있나요? 원래 모임 별을 위해서 만든 곡이었는데, 속옷밴드가 맡았을 때 더 잘 되었던 경우나, 아니면 그 반대의 경우. 모임 별의 [월간 뱀파이어] 다섯 번째 음반이랑 속옷밴드 두 번째 음반이 나왔던 해가 같길래 뭔가 관련성이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조월: 속옷밴드 곡으로 가져갔다가 잘 안 풀려서 솔로 음반에 수록한 “Stay” 란 곡이 있긴 한데, 모임 별과 속옷밴드는 딱히 기억나지 않네요. 당시, 2006년에 제가 한동안 한국을 떠나게 되었는데, 그래서 모임 별 음반도 만들고 속옷밴드도 빨리 음반을 만든 다음에 가야 됐었어요. 기간이 겹치게 되었던 건데 그때 거의 동시에 작업을 했었던 거 같아요. 아마 알게 모르게 영향이 있었겠죠? 여기서 못한 걸 저기서 어떻게 하던가 하는 식으로. (웃음)

 

나원영: 그러면 옛날부터 미디를 통해서 곡을 만들었던 경험이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오는 것도 있지 않을까요?
조월: 옛날에는 확실히 미디로 곡을 더 많이 만들었어요. 미디에서 기본적인 부분을 만들고, 그다음에는 기타를 넣고. 드럼 같은 건 열심히 찍으면 어느 정도는 흉내 낼 수 있는데 기타는 그게 안 되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아 그냥 배워야겠다’ 하고 기타를 배운 거예요. 그러고 나서 속옷밴드를 하게 되었으니 지금은 기타로 시작해서 곡을 쓰는 경우가 많아지기는 했지만, 음악을 만들기 시작할 무렵에는 미디로 만드는 때가 훨씬 더 많았고 지금은 반반인 것 같네요.
나원영: 그러면 오히려 처음에는 기타가 조금 부가적으로 들어갔던 악기였던 거네요.

 


“산불”

 

나원영: 솔로 활동에서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음악들을 지속적으로 많이 시도해오셨습니다. “악연”이나 “어느새”처럼 속옷밴드의 느낌이 드는 곡들, “다시, 퇴로”의 트로트/뽕짝, [보난자]에 실린 버전의 “전자랜드”나 최태현 님과의 컬래버레이션에서 등장하는 강한 전자음, 포크 발라드라고 할 수 있는 “정말로 행복하다”나 “산불”처럼 정말 다양하게 여러 가지를 만드셨어요. 이 가운데 특별히 뭔가, 다양한 장르와 소리를 만들면서도 공통으로 중요한 것, ‘이거 하나만큼은 뭔가 중요한 거 같다’고 생각하는 게 있으신가요?
조월: 예전에 어떤 유명한 뮤지션분이랑 얘기를 나누었을 때, 그분이 어떤 한 장르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뮤지션이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은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저도 동의하거든요. 사람들은 클리셰나 어떤 ‘정전’의 특성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에 실제로 더 끌리는 경우가 많은 거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어쩌다 보니 ‘저는 이 장르에 깊이 있게 한 우물을 팠어요’라고 할 만한 장르가 없었어요. 근본이 없다고 할 수도 있고. 한 장르를 제대로 이해하고 체화한다는 게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니까. 어렸을 때부터 브라이언 이노(Brian Eno)나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처럼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면서 잘 버무리고 가지고 노는 성향의 프로듀서들을 동경했던 거 같아요. 물론 그분들은 엄청 뿌리가 단단한 사람들이긴 하지만 (웃음) 아무튼 저는 가볍게 여러 가지를 듣고 만들어 보고 하는 게 재미있었어요, 배경이나 정신을 이해하는 건 중요한 일이고 나름 노력하기는 하지만, 장르나 양식이라는 걸 제가 원하는 심상을 표현하고 소리를 만들 때의 재료 정도로 어느 정도는 건조하게 거리를 두고 보는 면이 있죠.
20대 때는 무슨 음악을 하든, 내 스스로의 색깔이 분명했으면 좋겠다, 그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짧지 않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만들었던 음악에 그런 생각들이 담겨있겠죠. 그 고민은 요즘은 확실히 덜 하긴 하는 거 같네요.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다른 이질적인 것들이 이렇게 부딪힐 때의 재미 같은 것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더 만들어 보자, 좀 떨어져 있는 것들을 이렇게. 그러다 보면 그 사이에 공간이 생기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정구원: 여러 가지 장르를 잘 섞는 뮤지션들, 이를테면 세인트 빈센트(St. Vincent)나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같은 사람들의 작업을 보면, 여러 장르들을 결합하는데 그게 ‘안 섞이는’ 듯한 느낌이 발생할 때가 없지는 않거든요. 보통 사람들이 그런 경우를 발견하면 ‘아 이거는 좀 안 섞였다’ 같은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그 틈이 생기는 게 재밌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조월: 그 틈을 ‘허점’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죠. 저는 그 틈이라는 것도 만들기에 따라서 재밌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것들을 매력적으로 느끼는 편인 거 같아요.
정구원: 저도 옛날에는 그런 틈을 별로라고 생각하던 사람이었는데, 점점 그러한 틈이 더 재밌어지는 거 같아요. 너무 딱 맞으면, ‘그렇구나, 잘 하는구나’에서 끝나게 되고. (웃음)

 

나원영: 몇 년 전의 “우리의 포스트록을 찾아서”에서 제 나름대로 조월 님의 특징들을 ‘서정적인 소음’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조월 님이 다양한 활동에서 만들어 내는 소리의 특징을 표현해보려다 이렇게 쓰게 되었는데요. 사실 이것이 과연 맞는 표현일까, 생각을 많이 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질문을 드리고 싶은 것도 있었는데, 조금은 두루뭉술할 수도 있는 질문이지만 조월 님께서 스스로의 음악에서 ‘서정적인 것’과 ‘소음’에 대해 생각하시는 게 있다면 어떤 것인지, 아니면 어떤 인상이 떠오르는지 알고 싶습니다.
조월: 서정적인 것이라고 하면… 멜로디든 가사든 여러 가지가 있겠죠? (웃음) 팝 발라드 음악, 팝한 멜로디 같은 것들에 대한 애정이 있으니 그런 점에서 서정적이라고 느껴지는 요소들이 나오는 거 아닐까 생각하고요.
소음에 관해서는, 가요 음반이든 팝 음반이든 상관없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어떤 음반들은 정말 깨끗하고 하얀 벽으로 둘러싸여 있을 거 같은 그런 스튜디오에서 녹음이 된 듯한 소리를 가지고 있어요. 무균실, 공장에서 나온 것 같은 소리들. 과거에서 현재까지 양상은 조금씩 변했지만, 그런 깔끔하고 하얀 소리들을 만들 능력도 없었고, 시간이 갈수록 녹음 당시의 상황이나 공간에 대한 정보, 의도가 녹아있는 사운드에 더 흥미를 느끼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녹음을 하고 나서 잡음 같은 걸 많이 지우고 그랬는데, 나중에는 굳이 뭐 지워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1집에는 그런 이상한 잡음들이 많죠. 그때는 스튜디오도 못 가고 원룸 같은 방에서 작업을 해서 뒤에 차가 지나다니는 소리도 다 들어갔었는데, 그냥 내버려뒀어요. 이후로도 그런 것들은 크게 신경을 안 쓰려고 하고 있고요. 2집 [깨끗하게, 맑게] 같은 경우에도 방향성은 조금 다르지만 역시 어지럽고 탁한 소리들을 만들고 싶었고요.

 

조월: 그런 면에서의 소음이 있을 수 있겠고, 속옷밴드에서 찌그러지는, 드라이브 같은 소음의 경우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되겠네요.
나원영: 혹시 그런 소음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정구원: 환경적 소음이 아니라, 질감적 소음에 대해서요.
조월: 하드하거나 드라이브감이 있는, 공연을 보거나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을 때 충격을 가하는 록 음악도 굉장히 좋아하고, 속옷밴드에서 함께 연주를 할 때 합이 맞고, 그러면서 커다란 소리가 터져 나올 때, 그럴 때의 희열이 있습니다. 솔로로 할 때 록킹한 곡을 만들거나 하는 거는 아무래도 어렵지만 밴드에서는 같이 연주하면서 느낄 수 있으니까요. 녹음을 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 같은 건 나중에 생각하고, 같이 그냥 곡을 만들면서 합주하고 사람들과 연주를 할 때 느끼는 희열을 굉장히 즐기는 것 같아요. 그것도 밴드를 하는 큰 이유 중에 하나에요.
최태현 씨와의 작업도 재밌었어요. 언젠가 쾅프로그램의 음반 소개 글을 쓰면서 ‘내가 아는 가장 커다란 소리를 만드는 음악가’라고 최태현 씨를 설명한 적이 있어요. 최태현 씨가 끝까지 밀어붙이면서 만드는 노이즈, 소리, 음악을 옆에서 보고 영향을 받고, 함께 작업물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여러모로 즐거운 작업이었어요.

 

정구원: 말씀을 들어보니까, 혼자서 하는 것 못지않게 여러 명과의 협업을 되게 즐기시는 거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제가 조월 님의 음악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느꼈던 인상은 무언가 갇혀 있고, 안쪽으로 단단한 그런 느낌이었는데, 이 이야기는 또 새롭게 느껴져요.
조월: 제가 그렇다고 말하면 멤버들이 뭐라고 얘기할지는 잘 모르겠는데… (웃음) 아무튼 다른 사람이랑 작업을 하고 밴드를 하는 거는 혼자일 때는 느낄 수 없는 희열이 있죠. 같이 밴드를 하면서 합을 맞추고, 조금씩 곡을 만들어 바꿔가고, 그런 것들의 재미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최태현 씨랑 작업을 했던 것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과의 작업도 그렇고… 그런 협업을 일부러라도 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런 과정에서 제가 모르던 음악도 듣게 되고요. 앞으로도 계속 많이 하고 싶어요. 새로운 밴드를 하려는 생각도 하고 있고요.

 

정구원: 박민희 님과의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도 궁금해요. 이번에 “식목일”에 피처링으로 참여하시기도 했고, 2018년 11월 〈춘면곡〉과 〈권주가〉 퍼포먼스에서 조월 님께서 만드신 트랙이 제공되기도 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조월: 박민희 씨가 무반주로 부른 〈권주가〉를 네 분의 뮤지션에게 들려드렸고, 그런 다음에 <권주가>라는 주제와 소재를 가지고, 본인의 트랙을 써도 좋고, 안 써도 좋고. 마음대로 만들어달라는 게 주문이었어요. 박민희 씨하고는 이전부터 친분이 있어서. 그 이후에 이번 제 음반에도 보컬로 참여하셨고,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에 전시된 남화연 작가의 〈반도의 무희〉라는 영상/설치 작품에 제가 음악을 만들었을 때 박민희 씨가 보컬로도 참여했었어요.

 

나원영: 조월 님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보았을 때, 가요적인 것이나 팝적인 것이 기반에 깔려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심지어 최태현 님과의 [거울과 시체]에서도 그런 게 느껴졌던 게 있어요. [거울과 시체] 소개문에 “발라드를 부르게”라는 표현이 있기도 했고요.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점이 어쩌면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조월 님의 음악들을 찾아 듣게 하는 큰 동력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라고도 생각하는데, 조월 님은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조월: 이런 저런 록 음악, 전자음악을 찾아들을 때에도 김현철, 더 클래식 같은 가요음반들도 항상 즐겨들었어요. 더 클래식의 박용준 씨의 키보드 연주나 편곡을 굉장히 좋아했고. 그리고 윤상, 조동익 씨의 음반들도 즐겨 들었었고. 당연한 얘기인지도 모르지만, 김형석 씨나 유희열 씨도 너무 좋은 작곡가라고 생각하고. 고등학교 때 록 음악을 듣는 친구들한테는 록 음악만이 짱이잖아요. 저는 팝이나 가요 작곡가들도 많이 좋아했어요.
정구원: 뭔가 좀 ‘다른’ 걸 들을 때 생기는 태도, 나는 이런 것만 들어야지, 나는 애호가야, 이런 게 별로 없으셨다는 이야기네요.
조월: 록 음악에만 빠져있는 친구들에 비하면 덜 했던 거 같아요. 제가 가요 음반들 듣고 있으면 록 듣는 친구들이 와서 너 뭐하니? 이런 식으로. (웃음)
정구원: (웃음) 그런 피어 프레셔(peer pressure) 같은 게 확실히 있죠.
조월: 그렇죠. 고등학교 때 되게 기타를 잘 쳐서 꽤 유명한 친구가 있었는데, 제가 김현철을 워크맨 같은 걸로 듣고 있으면 그 친구가 와서 “뭐 듣냐?” 이러면서 딱 듣더니, “아 이런 거를 듣냐… 야 너는…” 그랬던 기억도 있고. (웃음) 근데, 전 다 좋았어요. 오히려 뭐, 그 친구가 듣던 잉베이 말름스틴(Yngwie Malmsteen), 이런 건 안 들었죠. (웃음)
나원영: (웃음) 그러면 나중에 음악을 만드실 때에도, 특정한 레퍼런스가 아니더라도 그런 취향이 자양분이 된 게 있겠네요.
조월: 많이 그랬을 거 같아요.
나원영: 윤상의 “소년”을 커버하신 거를 듣고 그 부분이 이렇게 연결될 수도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그래서 이런 질문을 드린 것 같기도 하고요. “어느새” 같은 곡이 라이너스의 담요한테 가서 연진 님의 방식으로 부른 것도 좋았고, <아니 어떻게 이렇게>에서 조태상 님이, 이효리랑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하셨나요? 조월 님도 혹시 그런 거를 되게…
조월: 그런 메인스트림의 뮤지션들이랑 협업을 할 기회가 있으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데, 기회가 없네요. (웃음)
나원영: 기회가 생겼으면 정말 좋겠어요. (웃음) 그래서 어쩌면 그런 요소들이 있기 때문에 모임 별이나 조월 님의 음악을 처음 듣는 분들도 빠르게 좋아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아편굴 처녀가 들려준 이야기]가 나왔을 즈음에 제 주위 친구들한테 “악연” 같은 조월 님 곡을 들려주면 다들 좋다고 한 게 기억나네요. 카페에서 라이너스의 담요 버전의 “어느새”가 흘러나오는 걸 들은 적도 몇 번 있고요. 그런 걸 보면 가요나 팝적인 힘? 힘이라 표현하긴 애매하고, 그런 게 있는 것처럼 느껴지네요.
조월: 팝 음악에 대한 사랑이 분명히 있죠. 깊은 사랑. (웃음)

 

정구원: 멜로디에 있어서 장조로 진행되던 선율이나 코드가 단조로, 혹은 단조가 장조로 일순간 변이되면서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내는 지점, 그 부분이 많은 사람들이 조월 님의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온도시가불타는꿈”, 1집의 히든 트랙, “깨끗하게, 맑게,”, “평서문” 등 많은 트랙에서 이러한 부분을 보여주고 계시는데,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 어떻게 접근하시는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조월: 코드를 먼저 만든 다음에 그 위에 곡을 붙이는 경우가 많아요. 멜로디를 만들 때는 특별히 막 생각을 하고 만들지는 않는데, 코드를 만들 때는 시간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 보면 코드 두 개나 네 개 가지고서도 엄청난 노래를 만드는 분들이 계시잖아요, 한받 씨도 그렇고, 김일두 씨도 그렇고.
정구원: 탑 노트가 엄청나게 인상에 남는 경우죠. 코드는 단순하게 가는데도.
조월: 저는 예전부터 그런 타입은 못 됐던 것 같아요. 우선 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90년대에 많이 들었던 모던 락에 자주 쓰이는 뻔한 코드 진행들. 그런 걸 따라 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다면적인(?) 코드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아무래도 이 부분에 있어 영향을 많이 받은 건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의 케빈 실즈(Kevin Shields)와 디페쉬 모드의 마틴 고어(Martin Gore)일 거 같아요. 이게 지금 무슨 조인지 잘 모르겠다, 아니면 언제 조가 바뀐 건지 모르겠다, 그런 식의 진행이 좋았어요.

 

정구원: 조월 님의 음악, 특히 솔로 곡을 들었을 때 그런 코드의 조바꿈이 움푹 꺼지거나, 우그러지거나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좋아요. 약간 발 헛디디듯이. (웃음) 다른 아티스트의 곡들 중 조바꿈에서 이런 느낌을 주는 경우를 거의 찾아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 점에서 되게 신경을 많이 쓰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것이 어느 순간 조월 님의 어떤 아이덴티티가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조월: 그런 걸 분명 좋아하고, 신경을 쓰면서 만드는 것 같아요. 어설프게 하면 유치하고 티가 확 나니까 조심스럽죠. 최근에 이태훈(헬리비젼, 까데호)이 자기한테 조월의 음악은 조바꿈이다, 이런 얘기를 해주더라고요. 사실 그런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 부분이 명확하게 들리는 건지, 내가 잘 하고 있는 건지, 그런 걸 잘 몰랐었어요. 그런데 제가 워낙 존경하는 뮤지션이기도 한 그 친구한데 그런 이야기를 듣고, 또 질문도 이렇게 해 주시니, 그런 걸 알아주시면 반갑죠.

 


“When You Sleep”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커버)

 

나원영: 케빈 실즈 이야기하니 생각이 난 건데, [Loveless]를 한국 뮤지션들이 리메이크한 앨범에서 “When You Sleep”으로 참여하셨잖아요. 일렉트릭 뮤즈가 기획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거기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나요?
조월: 당시에 이런 거를 만들 건데 참여할 거냐, 하고 연락이 왔어요. 처음에 어떤 곡을 골랐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고르고 나서 연락을 했더니 그 곡은 이미 선점이 되었다 하시더라고요. (웃음) 뭐가 남았는지 물어보니까 이것저것 남았다 그래서 그 중에 “When You Sleep”을 골랐어요. 뭘 고르든 워낙 다 좋아하는 음악들이니까요.
나원영: 아까 말씀하셨던, 밴드를 같이 할 때 빵 터진다는 희열이나 조가 딱 바뀌는 순간의 희열이 함께 섞여있는 느낌이 “When You Sleep” 커버에서 느껴져요. 원곡은 그런 터지는 느낌이 덜했는데, 오히려 커버 곡에서 그런 게 더 세졌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조월: 참여한 뮤지션들 모두 고민을 많이 했을 거 같아요. 너무 좋은 음반이니까, 어떻게 해야 이게 의미가 있을까? 그런 식으로. 제 경우에는 고민을 많이 하다가, 그냥 제일 편한 거, 제가 만들기에 제일 편한 방식으로 했어요. 너무 고민하면 패착이 될 거 같아서. 그때 조인철 씨가 드럼을 치셨어요. 선결이 그 음반 수록곡 녹음하는 걸 구경하러 갔는데 드럼을 너무 잘 치시는 거예요. 그래서 김경모한테 나도 잠깐만 녹음 좀 몇 개 해주면 안 돼? 해서 그 자리에서 간략한 주문과 디렉션을 드리고 녹음을 했죠. 지금도 기억나는 게, 그 터지는 부분에서 약간 일그러지는 소리가 나죠. 오버로드 되는 것처럼. 그런데 실제로 오버로드 되는 소리는 아니고, 그런 이어폰이 찢어지는 듯한 효과를 내고 싶어서, 이거저거 많이 해봤던 기억이 나네요.

 

정구원: 이번 [퇴로 / 식목일] 싱글을 들으면서 조월 님의 음악에서 등장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장르의 영향이 느껴진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퇴로”나 “다시, 퇴로”에서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트로트는 물론이고, “식목일”에서는 멜로디 진행이나 악기 편성에서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 Fire)나 빌 위더스(Bill Withers) 등의 펑크(Funk) 뮤지션들이 연상되는 지점이 있었어요. 저는 이런 부분을 느끼면서 이전까지 가졌던 선입견, ‘조월 음악은 장르가 조월이야’라는 생각이 부수어지는 기분이 들어서 즐거웠는데, 이번 싱글을 작업하시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임하셨는지가 궁금합니다.
조월: 이건 아까 장르 얘기 했던 거랑 비슷할 맥락일 것 같아요. 여러 장르들의 재료를 가지고 그것들을 어떤 식으로 배치를 할 것인지. 그러는 것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 같고요. 특히 “퇴로” 같은 경우에는… 예전 곡 중에는 “전자랜드”에도 그런 코드가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서정성’이라고 얘기를 할 수도 있지만 ‘통속적’인 것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것과, 사람들이 많이들 좋아하는 것과는 조금 떨어져있는 것들, ‘실험적’이라고 표현하기는 좀 그렇지만 통속적이거나 대중적인 것과는 다른 방향에 있는 것들, 그 두 가지를 섞고, 병치하고, 그런 거에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노래”

 

나원영: 자잘한 질문인데, [깨끗하게, 맑게]의 “노래”라는 곡에서, 기타 멜로디가 애국가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조월: 애국가죠. 맞습니다.
나원영: 그렇군요! 너무 기시감이 들었는데, 애국가스러울만 하면 뭔가 다른 멜로디가 나오더라고요. ‘동해물과 백’ 까지는 애국가인데, 갑자기 ‘백두산’할 때 좀 이상해지는 식으로.
조월: 저는 그 부분이 되게 명백한 줄 알았는데, 잘 모르시더라고요. (웃음)
정구원: 사람들이 조월 음악에서 그런 거를, 나름 명백한데도 불구하고 예상하지 못하는 게 있는데, 어쩌면 이것도 일종의 선입견이라고 볼 수 있을 거 같아요. 좋은 의미의 선입견이라도 선입견이 아닌 건 아니니까요. 이걸 가지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거예요. 엇, 조월이 왜 트로트를 하지? 이건 무슨 의미지? 이런 식으로.
조월: 어떤 분이랑 지나가다 얘기를 나누었는데, “다시, 퇴로”가 되게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Yellow Magic Orchestra) 같다고 생각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아, 비슷한 시절의 옛날 음원들하고 악기가 들리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 미디 사운드 카드로 음악을 만들었을 무렵에, 거기에는 딱 127가지 악기 소리만 있었어요. 이미 저장되어 있는 걸로만 음악을 만들었어야 했던 시절이었는데, 그때가 사실 재밌기도 했거든요. 아무런 제한이 없는 거보다는 그 제한을 가지고 내가 뭘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하니까. 그때의 느낌을 다시 한 번 되살리고 싶기도 했고, 이런 느낌의 작업을 조금 더 해 볼 생각도 있고. 그게 트로트라는 콘셉트에 맞았던 거 같아요.
그 곡은 노래방에서 실제로 쓰였던 SC-55 라는 사운드 모듈을 가지고 만들었어요. 옛날에는 꽤 비쌌는데, 4~5년 전에 중고로 5만원인가 3만원인가에 구했네요. 가상 악기 같은 걸로 갖추고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거보다 차라리 직접 사서 하는 게 더 빠르겠다 싶었어요. 효과도 확실하고.
정구원: 사실 컴퓨터 미디로 다 옮겨가지고 데이터베이스화하는 게 더 힘들 것 같기도 해요.
나원영: 지금의 노래방 반주들이 케이팝이나 힙합을 노래방스럽게 옮기려고 할 때 거기서 발생하는 묘한 틈새가 좀 웃기고 재밌는 게 있어요. “다시, 퇴로” 같은 경우에도, 어떻게 보면 멜로디 같은 요소가 트로트를 가장했다고 하더라도 그 중간에 있는 것들은 조월 님이 넣은 것들인데, 그런 게 트로트-미디 사운드로 ‘번역’된 듯한 느낌이 들어요.
정구원: 소리의 정체성이 너무 명확한 소리들, 우리가 노래방이나, 시장이나,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 곳에서 들었던 소리들이 쌓고 있는 구조가 익숙하지 않은 거죠. 그 사이에서 괴리감이 일어나는 게 재밌었어요.
조월: 사실 트랙별로 녹음한 것도 아니었어요. 반주는 그냥 원 트랙으로 믹스 없이 받았어요. (웃음) 트랙을 따로따로 받아서 컴프레서를 걸고 뭘 하고 그러는 게 불필요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실제 노래방에서도 안 그랬을 테니까.

 

나원영: 가볍게 넣어 본 질문인데, 조월 님의 음악을 하나의 표현이나 문장 등으로 정리한다면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여태까지 만드신 곡을 통틀어서 그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이 있다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조월: 하나로 표현하는 거는… 엄청 고민을 해봤는데 못 하겠어요. (웃음)
정구원: (웃음) 그렇다면 가장 좋아하시는 곡은? 아니면 만들면서 재밌었던 곡이 어떤 곡이었나요?
조월: 다 좋아하기는 하는데… [깨끗하게, 맑게]의 첫 번째 곡, “다시는 이러면 안 돼”를 되게 좋아해요. 재밌는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텐투텐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서현정(모임 별 드러머)씨가 보컬로 참여한 곡이기도 하고. 사운드나 그런 것들이 제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진 것 같고요. 2집의 첫 번째 곡으로 한 이유도, 일부러라도 1집과는 좀 다르게 가고 싶었어요.
나원영: 처음에 레코드 스크래치 사운드가 들리면서 빠암 하는 식으로 시작하는데, 제가 [깨끗하게, 맑게]를 먼저 듣고 1집을 나중에 들었거든요. 정말 밝고, 깨끗하고, 맑아진 느낌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조월: 1집도 좋아하는 음반이기는 한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 들어보니까, 굉장히 낮다고 해야 할까, 무겁다고 해야 될까, 그런 인상이었어요. 의도치 않게? 예전에는 제가 통기타로 코드를 뜯고, 그런 음반을 낼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거든요.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만들어진 느낌. 다음 음반을 만들 때는 ‘그렇게 슬프고 우울한 사람은 아니에요’라고 말하고 싶은 것도 있었고. (웃음) 1집이 조금 감정적인 음악이라고 하면, 2집은 뭐랄까, 음악적으로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있는 음반인 거 같아요. 그래서 첫 번째 곡으로 “다시는 이러면 안 돼”가 딱 맞았고, 지금도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제 안에서의 맥락이긴 하지만요.
그리고 “어느새”도 좋아하고요. 지금도 들으면 코드 진행이나 곡 구성 같은 것들이 썩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도 좋고요.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노래를 다시 만들 수 있을지. (웃음)

 


“어느새”

 

나원영: 앞서 퓨어디지털사일런스(PDS)와 잠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 ‘인디 씬’ 혹은 ‘홍대 씬’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PDS의 경우에는 PC통신 이야기를 많이 하셨고, 잠은 많은 클럽들(드럭, 스팽글, 빵, 피드백 등)을 중심으로 활동을 하셨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조월 님께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여러 사람들과 만나면서 오랫동안 활동을 해오셨는데,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중반에 사람들이 모이고 음악을 함께 만드는 방식이나 기회가 어땠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나중에 변화했다면 어떤 쪽에서 차이를 느끼셨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조월: 속옷밴드 같은 경우에는 초기에는 빵을 중심으로 활동했죠. 이대 후문에 있었던 빵. 사실 어느 시점까지는 거기 이외의 클럽에서 공연을 한 적이 별로 없었고, 계속 거기서 공연을 했었어요. 이대 빵 같은 경우에는 인디에서도 약간 마이너한 그런 구석에 있는 곳이었죠.
나원영: [빵 컴필레이션]이 세 장이나 있었는데, 저는 이걸 들으면서 ‘빵에는 정말 엄청난 분들이 모여 있네’ 싶었거든요. 속옷밴드의 트랙은 두 번째 컴필레이션에 실려 있었고요. 그런데 과거 인디 씬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오히려 드럭 등에 대한 증언이 더 많더라고요.
조월: 속옷밴드 같은 경우에는 결성 당시의 멤버들이 고등학교 친구들이기도 했지만, 이대 빵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결성된 밴드라고 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재밌는 공간이었죠. 스팽글 같은 경우만 해도 저는 거의 끝나가는 시점에만 한두 번 가 봤던 정도였고, 드럭 쪽은… 저는 펑크 씬과의 접점은 없었어요.
당시에 홍대 쪽에 있었던 클럽들과 저는 사실 크게 연관은 없었던 것 같아요. 이대 후문 빵에서 공연 하고, 그 안에서 사람들도 만나고. 거기도 어쨌든 나름의 고정 관객, 팬들이 있었으니까요. 잠 같은 경우에는 저도 너무 좋아하는 밴드였고요. 그리고 전자양, 연진 씨, 운디드 플라이 그 정도? 채송화의 김남윤 형(잠, 3호선 버터플라이)도 있네요. 연진 씨나 김남윤 형하고는 지금까지도 가끔 같이 작업도 하고, 녹음도 같이 했었죠.

 

정구원: 외부의 시각에서 ‘씬’이라고 묶는다는 건 실제로 어떤 관계가 맺어지고 있는 걸 지칭하기도 하지만, 비슷한 음악을 하는 밴드들끼리 느슨하게 묶이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조월: 지금 크게 보면 포스트록이나 슈게이징의 영역으로 묶을 수 있는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그때 이대 후문 빵에 많이 있었어요. 데이슬리퍼나 잠, 네눈박이 나무밑 쑤시기 같은. 그런 성향의 밴드들이 공연할만한 다른 클럽이 마땅히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그 음악가들이 공연 전에 음악을 틀고, 공연 끝나고 나서는 음악 틀면서 같이 술 마시고, 음악 얘기를 하고, 그러면서 분명 영향을 주고받았던 게 있겠죠. 특히 잠 음반 같은 경우에는 처음 듣고 어우, 너무 좋은데? 더 열심히 해야지, 이런 생각도 했었어요.
나원영: 잠 인터뷰 때도 들었던 얘기지만 일종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거 같아요. 주위에 아는 분들이 참 많았네요.
조월: 멋있는 밴드였죠. 조금 더 조명을 받아도 좋은 음반들이라고 생각해요. 아, 그러고 보니까 잠 연습실을 저희가 받아서 쓰기도 했네요. 잠이 해체하게 됐는데 잠이 사용하던 연습실이 돌곶이에 있다고 해서, 속옷밴드가 그 작업실을 이어받아서 사용했어요.

 

나원영: 온라인 쪽으로는 약간 다른 게 있었나요? 온라인 공간에서 커뮤니케이션이나 교류를 하셨던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조월: ugcc.net이라는 커뮤니티가 있었어요. 인디 관련 컨텐츠들이랑 게시판이 잔뜩 있고,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는데 밴드 게시판을 만들 수도 있었던 것 같아요. 거기에 넬(Nell) 게시판도 있었죠. 넬도 그때 이대 빵에서 공연하고 있을 때였으니까. 저도 그 공연을 봤었고… 아무튼, 그런 밴드들 게시판에 ‘음악 좋아요~’ 이런 댓글 같은 거 달고 (웃음), 멤버 구인 게시판도 있었죠.
그리고 블루노이즈란 곳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신기한 게 그 시절에 동영상을 올리던 사이트였어요. 지금으로 따지면 약간 온스테이지 같은 느낌도 있었는데, 어떻게 운영되었던 건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그분들이 공연을 다니시면서, 찍어서 올리는 분들이었던 것 같아요. 거기에도 재밌는 것들이 많이 올라왔었죠. 저희 속옷밴드 영상도 올라가 있었고, 저희 베이시스트 장윤영도 그 두 군데에 구인광고를 올려서 만나게 되었어요.
아, 블루노이즈 하니까 생각난다. 베이스 멤버를 구하고 있을 때였는데, 어떤 분한테서 자기가 대전에 사는 사람인데 한 줄짜리 베이스를 가지고서 속옷밴드의 베이스를 치고 싶습니다, 라고 되게 신기한 문장의 이메일을 보냈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지금 사정 때문에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라고 답장을 보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분이 한받 씨였어요.
나원영: 아, 진짜요?
정구원: 진짜요?
조월: 제가 그때 이메일을 받고서는 몰랐는데, 나중에 조금 지나고 나서 아, 그분이셨구나! 해서 한받 씨랑도 나중에 얘기하고 그랬던 게 기억이 나네요.

 

나원영: 그러면 그때 당시 어떠한 인디 씬이란 게 있었다고, 아니면 그냥 모던 록이라거나 실험적인 록, 어떻게 부르든 그런 활동을 하는 사람들만의 씬이나 장이 있었다는 생각이 드셨나요?
조월: 처음 밴드를 시작하던 시절에는 이대 후문 빵이 저에게 어쨌든 그런 씬이었죠. 그런 사람들이 그나마 공연을 하고, 사람들이 그냥 보러 오고. 관객이 많을 때에는 정말 많이 왔었으니까요. 속옷밴드 같은 경우에도 처음에는 정말 아무도 없고, 두 명 오고 그럴 때에도 많이 공연하고 그랬었는데. 굉장히 좁긴 했지만 그래도 거기가 씬이었던 것 같아요.

 

나원영: 멀리는 진공악단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계속해서 뭔가를 만드셨는데, 저는 그게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가능케 한 동력, 계속해서 작업을 할 수 있게 만들었던 지속가능함의 이유가 있을까요?
조월: 음악을 더 이상 하지 않는 친구들도 많지만, 여전히 묵묵히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주위의 동료들 보면 다 비슷한 거 같아요. 보면 속옷밴드나 모임 별이나 지금도 다들 이따만한 큰 가방들 메고서, 땀 뻘뻘 흘리면서 다니고. 이제 다들 나이가 들었으니까, 합주하려고 딱 모이면, 아 진짜 힘들다, 너무 늙어서 이제 몸이 힘들다, 그런 얘길 하죠. (웃음) 그러면서 아직도 직접 포스터 만들고, 홍보도 직접 하고, 이러면 반 농담 삼아서 ‘우리 음악 진짜 좋아하나 보다’ 그래요. 그거 말고는 별로 없는 거 같아요. 음악으로 돈을 제대로 번 것도 아니니까. 음악 만드는 게 재밌어서, 그 외에는 사실 동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이 될 게 없을 거 같아요. (웃음) 음악 만드는 건 뭐, 여전히 너무 재밌기 때문에.

 

나원영: 장르를 섞고, 배치를 새롭게 하시는 걸 좋아하신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이 질문이 여기에 배치되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이런 게 무용하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많아졌고… 그래도 질문을 드리자면, 조월 님께서는 외부인이 특정 장르(슈게이징, 포스트록, 노이즈 팝, 전자음악 등)의 어법이나 특징을 빌어 조월 님의 음악을 이야기하거나 설명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조월: 지금은 사실 그렇게 이름 붙이는 거에 대해서 불편함은 없어요. 장르의 이름을 붙여서 설명을 하는 건 설명하시는 분들에게 있어서는 여러 가지 편리한 점, 장점이 있으니까요. 그분들에게 뭘로 들릴 수 있겠구나, 뭘 들을 수 있겠구나, 그 정도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부르시던. (웃음)

 

나원영: 위의 질문과는 정반대의 질문인 것 같기도 한데, 이러한 포스트록/슈게이징 등의 장르에 속할 법한 음악들을 좋아하시는지, 작업을 할 때 참고하시는지가 궁금합니다.
조월: PDS 인터뷰를 보니까, 포스트록이 뭐냐는 질문에 ‘길고 노래 없는 거’라고 말씀해 주셨더라고요. 그 기준으로 보면 속옷밴드는 완전 빼박이겠네요. (웃음) 그런 점이 분명히 있긴 한데, 개인적으로 그런 음악들을 즐겨 듣지는 않았어요. 그보다는 토터스(Tortoise)의 음반들과 토터스의 존 매킨타이어(John McEntire)가 프로듀스한 음반들, 짐 오루크(Jim O’rourke)와 그가 참여한 음반들, 옛날 크라우트 록, 캔(Can) 그런 것들을 한창 찾아듣고, 더 매력적이라 생각했었어요. 따라가다 보면 현대음악이나 재즈 쪽을 듣게 되기도 했고.
나원영: 생각해보면 말씀해 주신 밴드가 뭔가, 나중에 나온 포스트록 밴드보다는 장르를 섞던 분들이네요. 토터스도 그렇고, 캔도 그렇고.
정구원: 모과이(Mogwai) 계열이라고 하죠. 나중에 나온 포스트록은.
조월: 모과이 계열 음악의 팬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제가 좀 더 좋아하고 영향을 받기를 원했던 것들은 위에 말한 밴드들 쪽인 거 같아요.

 

나원영: 작년에는 모임 별의 [주인 없는 금]이 나왔고, 솔로 싱글로 “아니, 이미”를 공개하셨습니다. 올해는 김막이라는 이름으로 “Ocra” 와 “FRA”라는 곡을 내셨고, 여름에는 [퇴로 / 식목일]이 나왔습니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와의 인터뷰에서는 앞으로 이러한 식으로 곡을 좀 더 만드실 거라고도 하셨고요. 최근에 발표하신, 그리고 참여하신 곡들마다 정말 다양한 특징들이 나타나는데, 지금 현재 음악 활동을 하시면서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정구원: 사실 꽤 오랜만에 다시 활발하게 활동을 하시고 있잖아요. [깨끗하게, 맑게]가 나온 지도 6년이 넘었으니까요. 개인적으로 정말 반가움이 앞서는데, 이런 활발한 활동의 계기는 또 어떻게 된 것인지, 그런 것도 궁금합니다.
조월: 제 머릿속으로는 조월이라는 이름으로 음반을 되게 많이 만들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항상 하고 있는데, 실제로 몸은 그렇게 따라주지 않는 것 같아요. 마음 같아서는 막 더블 앨범도 만들고 싶고 한데, 생업도 있고, 다른 밴드들도 하고 있으니까요. 아마 한 4~5년 정도가 제가 풀 앨범을 낼 수 있는 텀인 거 같아요. 저도 이제 벌써 나이가 꽤 많이 들었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신곡을 작업할 때 브라스를 쓰거나 했던 것은 중고등학교 때부터 음악을 들으면서, 브라스를 이렇게 저렇게 하는 곡을 만들면 너무 재밌겠다, 이런 상상들을 머릿속에서 해왔거든요. 다른 것도 해보고 싶은 게 있죠. 예를 들어 합창단을 넣는다든지, 현악 편곡으로도 만들고 싶고요. 목록화를 해놓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하고 싶은 것들을 머릿속에 항상 생각하는데, 이제는 계속 미루다 보면 아예 못하고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만약에 제일 집중하고 있는 게 있다면, 그런 버킷 리스트들을 깨는 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중에 돌아봤을 때, ‘아 그거를 할 걸, 그걸 왜 안 했지?’ 이런 생각을 최대한 적게 만들기.

 


“식목일”

 

나원영: 그러면 혹시 트로트도 그 안에 있었나요?
조월: (웃음) 트로트를 하고 싶다기보다는 그런 구성의 곡을 만들고 싶다는 걸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어요. 트로트의 요소들과 전개로 긴 서사를 가진 지닌 곡을 만들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습니다. 네다섯 파트 정도? 거기까지는 못 가더라도 세 파트 정도를 크게 나누고 구성도 해서 만들고 싶다, 이러면서… 브라스가 들어간 곡의 경우에도, 아까 펑크(funk)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그 장르 음반들의 질감이나 사운드 스케이프가 무척 재미있어요. 특히 드럼이 딱딱 붙는 느낌이라든지, 브라스나 기타, 베이스 트랙의 공간감이라던지. 이번에 “식목일”을 편곡하거나 믹스할 때에도 커티스 메이필드(Curtis Mayfield)가 레퍼런스라면 레퍼런스였고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어떤 작업을 하면 재밌겠다, 이런 생각들도 더디지만 조금씩 실천하고 있네요. 그런 것들을 하고 죽어야겠다, 이게 지금 제일 집중하고 있는 부분이에요. (웃음)
정구원: 말씀하신 걸 듣고 있자니 생각을 하고 계신 게 정말 많은 것 같아요. 만들고 싶으신 것도 많고.
조월: 근데 몸이 안 따라주더라고요. (웃음)
정구원: 저희도 마찬가지에요. 쓰고 싶은 건 많거든요. (웃음)

 

나원영: 지금 시점에서 과거를 되돌아볼 때 어떤 느낌이신지, 그리고 과거에서 언젠가의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그 부분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조월: 제 안에서 음악을 만들고 고민하는 부분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진 않은 거 같아요. 그때도 비슷한 고민을 했을 거고, 나중에도 마찬가지일 거 같고요. 외적으로는, 20년 전이든, 15년 전이든, 나중에 나이가 들면 유명해져 있을 거 같네, 이런 생각을 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음악을 해서 돈을 많이 벌 거야, 뭐 이런 생각도 못 했던 것 같고요.
지금도 그렇고, 예전에도 그렇게 생각했었고, 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새로운 음악을 발표할 때, ‘이 사람이 이번엔 뭘 만들었을지 궁금하다’라는 느낌을 줄 수 있는 뮤지션이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죠. 그게 무슨 새로운 장르 이런 게 아니어도, 어떤 식으로 음악이랑 가사를 쓰고, 어떤 식으로 접근을 했을지, 그 사람이 던지는 음반에서의 어떤 질문이나 고민들이 너무 무의미하지 않게. 그런 뮤지션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죠. 이건 한국만 그런 게 아닌데 40~50대 넘어가서도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계속 궁금해지는 작업물들을 내놓는 사람들이 드물잖아요. 옛날에는 제가 35살이 됐을 때, 40살이 됐을 때, 그런 뮤지션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네요. 오 년 후에도 십 년 후에도 내가 뭔가 만들었을 때, 무의미하지 않은, 궁금한, 뮤지션이면 좋겠다. 그게 제가 바라는 바인 것 같아요.
정구원: 예전부터 그런 생각을 계속 해 오셨던 거죠?
조월: 그런 것 같아요. 기술적으로든 어느 면으로든 항상 좀 더 나아지고 싶었고. 최신 유행을 좆고 그럴 수는 없겠지만, 꼭 ‘발전’이 아니더라도 뮤지션이 어디론가 나아가고 있구나, 제 음악에 대해서 스스로도 그렇게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 본 인터뷰는 서울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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