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화”의 ‘마지막’은 정확히 어디에 있을까? 그러니까, 악기 소리에 흐린 울림을 많이 걸어놓고 시작되는 트랙은 잔향이 그보다는 상대적으로 덜한 목소리들이 나오면, 넓게 흩어져있던 울림의 규모를 보다 줄여서 잘 들려오는 기타 리프에 담는다. 물론 도입부에서 예비되었듯, 후렴에서 이 울림은 보컬들의 목소리를 감싸듯이 다시 넓게 퍼진다. 남성과 여성의 목소리만 살짝 달라질 뿐 전체적으로는 동일한 구조의 절+후렴 한 묶음은, 빗맞듯 들리는 두 개의 건반 소리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는 자연스럽게 어떠한 반복을 예감하게 해준다. 그 덕에, 따로 떨어진 채 등장하던 두 목소리가 마침내 두 번째 후렴에서 잠시 줄어들은 연주를 배경삼아 합쳐지며 강조되는 순간은, 어떤 애니메이션의 첫 번째 화를 시청하며 예상한 중간과 후반부의 전개가 정확히 실현될 때와 같은 쾌감을 안긴다. 그것은 만족스러운 안정감과 완결의 느낌일 것이다.

이때까지 곡을 풀어가는 두 개의 목소리는 무언가 자그맣게 시작되지만 점차 그 규모가 거대하게 불어나는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주동인물들처럼 느껴진다. 이들은 매우 정직한 절+후렴의 한 묶음이 두 번씩 반복되는 “마지막화”의 탑 라인, 특히나 그 모든 흐릿한 울림 속에서도 가장 명확하게 반짝이는 후렴구 멜로디를 이끈다. 앞서 등장했던 두 대의 기타와 두 개의 건반이 이미 떡밥을 던졌거나 그것이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클리셰를 따라잡을 수 있듯이, 이 두 목소리가 마침내 한 자리에 모였을 때를 이 모든 것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할 법하다. 곡이 정말로 그렇다는 듯 필요한 만큼만을 들려주고 3분 정도로 끝난다 싶을 때, ‘너랑 난 당연히 주인공이라 마지막에도 함께일 줄 알았는데’ 싶었던 그 예상은 그 ‘마지막’이 정말로 ‘끝’이 되지 않은 채, 또 다른 ‘마지막’이 덧붙여지며 배반된다.

도입부에서 예비되었다고 썼던, 목소리가 아닌 다른 모든 악기 소리들의 울림이, 그때까지는 전혀 등장하지 않았던 속도와 코드로 뒤바뀌고, 더욱 거대한 잔향을 뿜으며 공간의 부피를 느리게 키운다. 이 때 두 개의 목소리는 마치 ‘주인공’으로서 지니고 있던 세계의 주도권을 놓친 듯이 불어난 소리들 속에 파묻혀버린다. 이번에 새로 등장한 ‘마지막’ 속에서 목소리들은 그 전까지 3분 정도의 구간을 짧게 되풀이하듯 동일한 남성-여성-듀엣의 순으로 진행되지만, 이 반복은 앞선 두 번과는 분명 다르다. 두 목소리보다 훨씬 더 거대하게 짙어진 소리들의 세계가 이 두 개인을 잔뜩 덮어 ‘주인공’으로서의 위치를 흐려버릴 때, 목소리들은 자기 자신이 세계의 주동자로서 성립되었던 처음으로 돌아가 ‘그 때’나 ‘그 밤’을 기억하고자 하지만, 그게 정확히 ‘몇 번째 화’였는지의 단서를 더 이상 찾을 수는 없다. 이 구간을 통과하면서 직전까지 당연한줄 알았던 안정감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고, 그 끝마무리 또한 긴장을 해소하지 않은 채 ‘마지막’에 닿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추가되는 “마지막화”의 시간적인 ‘마지막’에서 시공을 잔뜩 차지한 모든 악기 소리와 그 울림이 사라지고 오직 목소리만이 남았을 때, 이들은 다시 ‘주인공’으로서 곡을 이끌어갈 유일무이한 권한을 다시 덜컥 부여받는다. 하지만 이미 이 목소리들은 ‘당연히 주인공이라’ 생각했던 애초의 첫 기반을 잃었다. 그들이 주도한다고 믿었던 소리들이 그들을 배반하고 세계와 그들을 집어삼켰으니까. 게다가 그들을 잡아먹어버린 소리들의 세계마저 순식간에 사라졌기에, 그들의 존재만이 전부인 상황에서 ‘세계’의 시공을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자그맣게 후렴의 멜로디를 중얼거리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재밌는 것은 트랙의 시간이 정말로 ‘마지막’에 닿는 그 순간 이 목소리들마저도 단지 자그마한 잔향이 되어, 후렴의 마지막 한 마디를 완성하지 못한 채 사라진다는 점이다. 이렇게 트랙이 진행되는 내내 “마지막화”의 목소리-주인공들은 곡이 시작하던 ‘첫 번째 화’ 때에는 보장된 줄만 알았던 당연한 ‘마지막 화’를 계속해서 받지 못하고, 그에 닿지조차 못한다. 이 목소리들은 그들이 존재하고 있는 세계의 ‘주인공’이 아니라, 단순히 이 거대한 시공을 구성하는 또 다른 부속이었을 뿐이다. 존재하던 세계는 예상 가능한 방식으로 알맞게 끝나지 않은 채 엇나가버리고, 그 순간 목소리와 악기소리 사이의 위계를 뒤집어엎는 동시에 뒤엎고, 그렇게 목소리들을 ‘주인공’의 위치에서 탈각시키더니, 어느 순간 자취마저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린다.

익숙하게 즐겨볼 수 있는 반복 속에서 예감되는 어떠한 종결의 감각과 그로 인한 쾌감은 이를 통해 애초에 기대되었던 방향과 새로이 나타난 방향 어느 한쪽으로도 완전히 충족되지 않은 채 단절된다. 도리어 그러한 중단이 “마지막화”가 조성하는 분위기의 미완성된 ‘마지막’과 무척이나 어울리게 느껴진다. 여린 울림만의 효과가 주는 부유하는 듯한, 분명한 안정감이 없는 그 공간감과, 그 세계의 ‘주인공’들이 당연한 운명인 줄 알았던 모든 것에 배반당하는 노랫말은, 그와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별 일 없이 끝날 거라고 막연하게만 믿고’ 있으면 큰코다치는 소리들의 세계를 적확하게 꾸며낸다. 그러한 미완과 배반의 성질들이 만든 기묘한 완결성이, “마지막화”를 인상 깊은 형태의 에피소드로 구축한다. | 나원영 onezero9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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