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 혹은 대중음악 악기 편성에 국악기 혹은 민요나 판소리와 같은 가창 형태를 포함하는 (성혜인, 「스펙타클 열병」, 『국악원논문집』 제36집, 14쪽)” 국악-크로스오버의 경향이 최근 몇 년 동안에는 씽씽-이날치의 국내외적인 인지도 상승에 따라 강해지는 듯이 보인다. 그렇지만 단순히 이것만을 크로스오버의 주된 흐름만으로 볼 수는 없는 이유는, 사운드에 있어서 성악·기악을 포괄하는 ‘국악’의 형태에서 최대한 벗어나고자 하려는 사례들이 유의미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레드불 뮤직에서 진행했던 [서울 소리] 컴필레이션을 일종의 지침으로 둘 수 있을 것이고, 작년에는 Taj의 [From Hell, With Love]나 벤트하우스의 [Awilu]와 [Path] 같은 의미 있는 시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 힙합으로 영역을 넓혀보면 행인(HNGIN)의 [바람 般若]과 후드보이 데이브의 [808 SEOULSIDE]가 있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는 오이크니(OYNKI)의 “웃다리”에 주목했다. 경기·충청 지방 웃다리 농악의 휘모리장단을 치는 장구 소리와 이 뒤에 묵직하게 울려 퍼지는 징 소리를 가져오되, “웃다리”는 이를 오로지 리듬의 뼈대로만 삼은 채 그 남은 공간을 테크노로 채운다. 여러 국악 크로스오버에 있어서도 오로지 장단만을 중심으로 둔 뒤 그 사운드를 반복적이고 단단하게 구축해가는 것은 흔히 볼 수 없던 시도였다.

“웃다리”를 통해 시작되었던 오이크니의 ‘장단 프로젝트’는 2년이 조금 덜 되는 시간이 지나고 나온 “אקל דמה (이하 ‘아겔다마’)”로 이어진다. 간소한 상모 춤만이 나왔던 “웃다리”와는 다르게 조금 생뚱맞게도 북한에 대한 자료화면들을 시대착오적인 반공 프로파간다처럼 짜깁기하는 “아겔다마”의 뮤직비디오가 그나마 음악과 연결되는 점이 있다면, 막을 수 없는 거대한 위협이라도 표현하듯 “웃다리”에서의 강도를 훨씬 늘리되, 속도는 더욱 줄였다는 점에 있다. 징을 대체하듯이 등장한 베이스음은 갈수록 무겁고 짙은 노이즈로 뒤바뀌어, 이번에 사용하는 느린 자진모리장단에 있어 궁편의 소리를 모조리 덮어버린다. “웃다리”의 경우 비슷한 방법을 장구 소리를 해치지 않고 박자감을 고조시키는 데에 사용했지만, “아겔다마”에서는 도리어 채편의 소리만이 유일하게 분간할 수 있는 것으로 남은 채, 마치 깊고 긴 징의 지속음을 겹쳐 쌓는 듯한 효과를 낸다. “웃다리”와 비교해보았을 때 “아겔다마”가 재밌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말하자면 양쪽에 킥드럼과 스네어/하이햇을 지녔다고 무리하게라도 치환해볼 수 있는 장구의 반복적인 리듬이 만들어내는 최면적인 성질을 강화했던 “웃다리”의 방식을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까지 벗겨냈고, 그 대신에 나머지 모든 공간을 극단적으로 두꺼운 (징과 같은) 소음이 만들어내는 무거운 리듬이 대체한 셈이다. 그 리듬은 최면적으로 가기에는 너무나 두텁게 불어난 채 공간을 빼곡하게 채워버리고, 미약하게 들려오는 태평소와 같은 소리마저도 집어삼키며, 그 모든 국악기-소음을 구분 불가능할 지경으로 섞어버린다.

기존의 사물놀이에서 징이 차지하는 역할이 리듬의 아래쪽에서 하나의 중심 기반을 잡아주는 것이었단 걸 떠올려보면, “아겔다마”는 그 저류하던 밑 부분만을 극단적으로 왜곡시키며 사물놀이 안에서 징이 수행했던 역할과 기능을 뒤집는다. 그것이 “장르 간의 뒤섞임이 앞서 말한 시대의 도전에 응하는 하나의 방식이라면 이 방식은 그 자체만으로 급진적일 수 있을까? (같은 글, 15쪽)”는 성혜인의 물음에 직접적으로 대답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애매모호한 ‘장르’나 어떠한 ‘민속’ 사이의 뒤섞임이 각자의 도움을 통해 그 안쪽을 끄집어내어 뒤집는 것으로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해준다. 국악임을 인지할 수 있게 해주는 특정한 성악과 기악의 사운드를 사용하는 크로스오버들이 도리어 그렇지 않은 서양 혹은 대중음악 사운드 사이에 분명하게 존재하는 틈을 의도와 상관없이 청자가 구분 가능하게 지시해버린다면, “아겔다마”는 ‘국악’과 ‘국악 아닌 것’, 또 ‘민속’과 ‘민속 아닌 것’을 가늠하기 힘든 노이즈 속에 그 틈새를 잔뜩 묻고 가려버리는 것으로, 오히려 민속음악의 가장 기초적인 뼈대(이 경우에는, 자진모리장단에서 열채가 열편을 때릴 때 내는 소리)만을 드러낸다. 그렇게 한 번 뒤집혀져 만들어진 육중한 소음 속에서 다시 솟아올라온 열편 때리는 소리는, 소음만큼의 강도로 ‘국악인 소리’와 ‘국악 아닌 소리’라는 분류체계의 틈을 찢을 수 있을 것이다. | 나원영 onezero9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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