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일(TOIL)의 “너 포에버”와 그 리믹스에서 90년대와 00년대는 난장판처럼 뒤섞인 채 튀어나오는데, 그 모양새는 대략 다음과 같다. 토일의 비트가 90년대 댄스가요의 특징적인 ‘유로댄스’나 트랜스식 신스음을 따오고, 그에 반해 00년대는 참여 래퍼들이 내뱉는 레퍼런스들을 타고 그 신스음에 온통 들러붙는다. 이를테면, 창모가 초반에 오토튠 가성으로 흥얼거리는 ‘자뉘놘 쉐끼롸 나를 욕하지는 마’의 “Tears”는 90년대의 정중앙이나 끄트머리가 아니라 2000년에 나온 트랙이고, 그것은 노스페이스갓(Northfacegawd)이 맥없이 부르는 ‘오에오에오’가 들어 있는 원곡인 “초련” 또한 마찬가지다. “너 포에버” 속에서 유일하게 그 ‘90년대 댄스 가요’에 적중하는 것은 창모의 벌스에서 상징적인 ‘넌 나를 믿었던 만큼’과 함께 제목 자체까지 함께 언급되는 “잘못된 만남”이다. “잘못된 만남“은 이 모든 ‘90년대 댄스 가요’ 스타일을 정립시킨 중요한 트랙 중 하나일 것이겠지만, 이외에 랩이나 멜로디 속에서 언급되는 트랙들은 죄다 ‘90년대’가 막 지나고 나온 비슷한 양식의 댄스 트랙이거나, 애초에 ‘90년대 댄스 가요’조차 아닌 트랙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인지 이 트랙 안에서 그 묘한 불일치는 크게 상관 없다는 듯이 들린다.

“너 포에버”는 90년대 댄스 가요의 가장 특징적인 사운드를 따오지만, 가사 면에서는 도리어 00년대의 레퍼런스를 붙이는 묘한 결합을 이룬다. 여기서 두 가지 함의가 발생하는데, 첫째는 “잘못된 만남”으로 대표되는 일종의 장기-90년대나 범-90년대 양식이 연도의 모든 숫자들이 죄다 바뀌면서 사라지지 않고, 2000년대 초반의 ‘댄스 가요’에서 나름대로 한 부분을 차지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김종민의 합류 이후 코요태가 냈던 온갖 트랙들은 모두 2000년대 초반에 나왔고, “Tears”와 비슷한 맥락으로 소환될 법한 김현정의 “멍”이나 채정안의 “편지”, 조성모의 “다짐” 등도 2000년 초반의 트랙들이다. 도리어 세기 초의 이러한 ‘댄스 가요’ 트랙들은 앞서 언급했던 꽉꽉 눌려진 리드 신스음에 단순하고 잘게 쪼개진 얇은 하우스 비트, 단조의 멜로디를 담은 파워 보컬 같은 ’90년대 댄스 가요’의 특징을 보다 더 극단적으로 올렸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것은 곧 그러한 ‘90년대 댄스 가요’ 양식의 정점이 어쩌면 세기말마저도 지나간 세기 초까지 소찬휘의 고음을 타고 올라가며 이어지고, 자연스럽게 그 인기가 천천히 줄어갔다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바로 그 덕에 00년대 극초반의 어떠한 댄스 가요들은 자연스럽게 ‘90년대’라는 애매모호한 시간대에 흡수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결합에 있어서 둘째로는 그 또 다른 00년대 레퍼런스들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머쉬베놈에게서는 이효리의 “10 Minute”이, 수많은 언급을 참 빽빽하게도 담은 노스페이스갓에게서는 박진영의 “니가 사는 그집”과 미나의 “전화받어”가, 무엇보다도 언에듀케이티드 키드와 던밀스에게서는 태양의 “나만 바라봐”가 끌려나와진다. 이 트랙들은 모두 세기 초에도 인기 있던 댄스 트랙들처럼 하우스나 테크노, 트랜스를 기반으로 삼았기보다는 당대의 흑인 음악을 기반으로 한 팝과 댄스 트랙이라는 점에 있어서, 적어도 이 트랙들은 “Tears”보다 훨씬 더 ’90년대 댄스 가요’와의 거리를 벌린다.

이렇게 “너 포에버”에서 언급되는 모든 트랙들에서는 사실 발매 당시에 유행했던 댄스 트랙이라는 점 외에는 굳이 공통점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단순한 리드 신스음이 유지된 채 정박의 하우스 비트만이 현재의 트랩으로 교체된 얇은 성질의 리듬 위에는 ‘내가 바람 피워도 넌 절대 피지 마’와 ‘넌 나를 믿었던 것만큼 난 내 친구도 믿었기에’의 멜로디가 14년을 사이에 두고도 꽤나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이러한 형상은 90년대와 00년대 댄스 가요 간의 의도적인 결합이기보다는, 차라리 어떠한 현상의 증거처럼 느껴진다.

2000년대의 시작과 끝을 사이에 두고 그 해의 가장 유명한 댄스 트랙은 그렇게 “Tears”에서 “나만 바라봐”로 옮겨지며, 양식에 있어서 꽤나 차이를 보였다. 그렇지만 “나만 바라봐”에서 당대 미국 알앤비 팝의 특징들이 테디와 태양을 타고 이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00년대 후반대의 방식으로 꽉꽉 두툼하게 눌린 리드 신스를 까는 도입부와 후렴구에서는 어렴풋하게나마 ‘한국 댄스 가요’로서의 특징이 느껴지기도 한다. (“너 포에버”에서 사용되는 오토튠의 코미디적인 효과는 어쩌면 “기도” 등에서 꽤나 진지하게 나왔던 그것을 웃음기를 머금고 가져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나만 바라봐”는 도래하게 될 아이돌 팝과 알앤비 사이의 교차점을 예고하는 동시에, 여전히 이전 시기 댄스 가요의 채 사라지지 않은 흔적을 담고 있는 채 인접한 시간대들이 뒤섞인 현장이 된다. 그러므로 “나만 바라봐”가 지녔던 그 모든 세련되고 깔끔한 사운드를 벗겨내고 가장 얇은 두께의 보컬 멜로디만을 남겨놓아도, 그 탑 라인만큼은 토일의 유로댄스 신스음에 그토록 잘 어울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다른 면에서는 “너 포에버”에서도 굳이 노골적으로 “잘못된 만남”이나 “나만 바라봐”에서 비슷하게 통하는 상황을 강조한 가사들도 있지만.) “너 포에버”가 다른 2000년대의 댄스 가요들을 사용할 때 접근했던 이런 방식은, 특히나 “나만 바라봐”에서도 더 효과적으로 적용된다.

곧 ‘90년대’의 것으로만 받아들여져온 양식에 어쩌다보니 얹힌 ‘00년대’의 트랙들이 이렇게나 잘 어울리는 “너 포에버”는, 어쩌면 이제 00년대라는 과거가 슬슬 90년대라는 대과거에 흡수되어감에 따라 나타난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약간의 시간적 도약을 해보자면 2011년이나 2016년에 재미로라도 이런 식의 트랙이 나오지 않았고 2021년에 나왔다는 점이나, 딱 그 2010년대 초중반부터 등장하던 ‘90년대 레트로’가 시간이 지나가면서 세기말-세기 초로, 그리고 00년대 중반까지로 훌쩍 들어왔다는 점이, 2000년대를 ‘과거’로서 돌이켜볼 수 있는 시간적인 간격이 마련되었다는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그것은 다르게 말하자면, 00년대에서 10년대를 뽑아내는 게 아니라, 90년대를 끄집어내는 행위이기도 하다.

이제 00년대의 어떠한 트랙들은 10년대를 예비했다고 받아들여지기보다는 오히려 90년대의 연장으로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더욱 강해진 것이 아닐까. 이것이 흥미로운 동시에 꽤나 두려워지는 것은, 결국에는 그 장기-90년대 레트로가 현재의 시점에서도 도무지 끊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여기서 궁금해지는 것은, 00년대 가요를 그 이전과 이후의 두 시기 중 어느 쪽에 연결시키는 게 더 어울릴 지다. 최소한 “너 포에버”는 전적으로 전자를 증명하는 현상인 동시에, 그러한 00년대는 단독적인 00년대를 지시하는 식으로 존재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이전과 이후에 이어지는 연속성을 형상화하기보다, 90년대라는 더욱 거대한 시간에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포섭시킨다. 이것은 그 나름대로 ‘과거지향 연결’에 적극적으로 가담한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트랙 안에서 래퍼들이 90년대처럼 덧씌워진 00년대에서 얼마나 재밌게 구는지를 생각해보면 말이다. | 나원영 onezero9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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