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임(haihm)의 사운드가 만들어내는 진동을 특정한 곡들에서 잡아채는 일은 언제나 반가운 떨림을 가져다준다. 그의 경력 자체는 몇 가지의 경로를 지나왔지만, 그가 참여하고 제작한 트랙들 속에는 항상 그 진동이 부글대며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이를테면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이상한 일”에서 깜빡거리면서 굴러다니는 전자음이 대표적일 텐데, 그 효과나 사용에 있어서 이를 글리치(glitch)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글리치의 생태가 소음과 잡음에 준하는 사운드에서부터 발현한 것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안정적인 매끄러움을 지향하는 아이돌 팝에서 글리치가 등장하는 게 이상한 일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상한 일”에서 글리치한 효과는 자신의 ‘소음’적 특성을 너무 강조되지 않게 접목되어, 잘 짜인 팝의 일부로 스스로를 집어넣는다. 그 속에서 글리치함은 음색과 질감에 주로 적용되지, 차분하게 진행되는 탑 라인 멜로디와 미료의 랩이 대비되는 아이돌 팝적인 진행에 혼선을 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앞서 언급한 미료의 랩 구간에서 튀어나오는 ‘푸르르르’와 ‘난 난 너와’ 같은 부분에 슬며시 걸리곤 하는 효과음들은 이리저리 튕기듯 점멸하는 비트와 같은 층위에서, 주어진 사운드와 글리치 사이의 거리를 좁히며 “이상한 일”이 단순히 ‘팝’만이 되지 않게 해준다. 곧 하임이 만들어낸 진동이 트랙의 안쪽에 달라붙은 채, 겉면의 전체적인 질감과 분위기를 구성하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온스테이지>가 제공한 정육면체 공간의 ‘안쪽’에서 만들어내는 사운드가 VJ잉을 통해 정육면체 공간의 겉면에 투과되는 것은 무척이나 상징적이다.)

솔로 음반인 [Haihm]을 단단한 중심으로 삼아 몇몇 아이돌 팝 트랙에 참여하던 시기의 하임이 만들어낸 ‘떨림’은 팝의 내부에 장착된 채 묘한 주파수를 내며 발생하는 진동이었다. 그 덕에 “이제 막 시작된 이야기”“Tango The Night” 등은 매우 특유한 아이돌 팝 트랙이 될 수 있었고 말이다. 하임의 경력은 그러한 떨림의 세기를 오묘하게 조정하는 과정처럼도 보이는데, 데뷔작으로부터 6년 뒤에 발표된 EP [Point 9]에서는 “울지 않는 새”“Glanz”, 또 “작고 하얀 사람들”이 무척이나 이상적인 글리치-팝 트랙이 되어 그 균형을 탁월하게 잡았다. 한편, 팝에서 글리치로 향해가는 것과는 정반대로 글리치에서 팝으로 접근을 해도 마찬가지의 효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이상한 일”과 더불어)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대체 불가능한 전성기가 수록된 [Sound G]의 CD 1만큼이나 큰 가치를 지닌 CD 2에 실린 “Haihm Translates Second (Haihm Rebuild)”가 그 단서일 것이다. “Second”에 실린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화성이나 어쿠스틱 기타 소리는 조각난 샘플링이 되어 튀겨지며 글리치하게 들려오지만, 그 단절되고 쪼개진 모습 자체가 다시금 일정하게 짜맞춰진 형상이 되었다. 참으로 적절하게도, 이는 ‘리빌드’에 무척이나 걸맞는 작업이었다. 써니힐 “베짱이 찬가”의 리믹스, 윤상의 “이별 없던 세상”을 리메이크할 때 원곡의 인상적인 신스음과 조금 닮은 사운드를 글리치 속에 뒤섞는 것에서도 이 특징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단순히 독특한 질감을 위한 재료가 될 수도, 그 손상된 특징을 모든 양식에 적용할 수도 있는 글리치라는 요소를 사용할 때, 하임의 노련한 균형감각은 그만의 떨림을 만들어냈다. 트랙을 뒤흔들거나, 더 나아가 그렇게 뒤흔들어 무너뜨린 후에 다시 쌓아올리거나. 조금 더 최근으로 오면 심은용의 [잔영 (殘影)],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노이(SINNOI)의 일원으로서 작업한 [THE NEW PATH]에서 그 사례들을 더 찾을 수가 있다. 국악적 가창과 서양적 기악의 병치라는 크로스오버 작업의 익숙한 방법론 속에서 하임은 자신의 전자음을 마치 기이한 타악기처럼 사용한다. 실제로 민속 타악기의 사운드를 전자음으로 옮겨온 듯한 “가망”이나 “Unity” 같은 경우들이 있을 때에, “Bird”에서 이러한 전자음은 끊임없이 김보라의 소리와 이원술의 더블베이스의 밑 부분에서 사라지지 않는 잡음처럼 존재한다. 그 세기를 서서히 줄이고 키우는 과정에서 묘한 긴장감이 만들어지고, 하임은 두 사운드의 교차점 속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거기에서부터 크로스오버의 조형을 흔들어본다.

하임이 트랙 속에서 사용하는 글리치와 그 진동은, 조그맣던 크던 간에 언제나 트랙을 안쪽에서부터 뒤흔들며 색다른 떨림을 만들어낸다. 그 작은 떨림의 단서와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NOWHERE]에서, 이는 앰비언트와 글리치를 좀 더 자세하게 파고들어가며 이뤄진다. “Everywhere and Nowhere” 같은 트랙들이 적극적으로 앰비언트한 공간감을 탐색하고, “Infinite Circle”이나 “Walk And Move” 등이 거기서부터 출발해 글리치함을 매개로 서서히 테크노나 IDM의 영역으로 진입할 때, 음반을 여는 “Gravity”는 무척 묘한 방식으로 그 중간 영역에 위치된다. 11의 “Duet”이나 전진희의 [Breathing]에서와 비슷한 방식으로 일정한 분위기의 공간감을 형성하는 건반 소리가 나타날 때, 미약하게 보글거리며 자그마한 진동수를 일으키는 글리치는 앰비언트의 목적으로서 지향되는 ‘고요함과 생각할 공간을 불러일으키기로 의도된’[1] 성질에 끊임없이 제동을 거는 것처럼 들린다. 트랙이 시작될 때부터 등장한 글리치가 그렇게 건반과의 묘한 대치 상태를 한동안 이어가다가 서서히 묻히는 듯싶을 때, 딱 ‘하임의 사운드’라고 생각할법한 좀 더 둔탁하고 명확한 글리치가 근저에 몰래 잠복해있다 튀어나오듯 나타난다.​

느리게 연주되는 건반이 만들어내는 긴 폭의 배경 같은 앰비언트와 잠복한 상태에서 더욱 전면적으로 드러난 글리치 사이에서, 이번에는 이전의 하임과는 사뭇 다른 떨림이 만들어진다고 느껴진다. 그것은 사운드의 중심이 어느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오갈 때(“말, 말…”의 윤상 스타일 발라드나 “사월의 눈”의 경쾌한 하우스에서 시시각각 달라지는 글리치의 비율처럼)나 안쪽에서부터 사운드를 뒤흔들어버리는 때(“울지 않는 새”나 “작고 하얀 사람들”에서 서서히 고조되는 것과 같은)의 긴장이 아니라, 오히려 작고 좁은 무게중심에 서서 가까스로 평형을 유지할 때 아주 조그맣게 떨려오는 진동을 포착하는 것에 가깝게 들린다. 미미하게 들려오는 글리치와 미약하게 울려 퍼지는 앰비언트한 건반음의 강도를 미세하게 조정해나가는 이 과정이 이어지면서, 글리치가 조금씩 앞서 나가 건반을 둘러싸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한 글리치가 어느 순간 사라졌을 때, 남아있는 것은 잔음을 더 길게 빼내 어느새 ‘건반음’에서 훌쩍 멀어진 앰비언트 사운드뿐이다. 마치 전혀 다른 영역에서 진행되는 것으로 느껴졌던 글리치와 앰비언트가 어느새 서로에게 묘한 영향을 끼친 것마냥.

과거에 이 ‘떨림’은 종종 트랙의 사운드를 다시 짓고 뒤흔들기 위해 사용되었다. 하지만 “Gravity”에서 ‘떨림’은 글리치와 앰비언트가 맞물릴 때 나타나, 그 둘 사이에서 발생하는 밀고 당기는 힘이 형성한 평형점을 지속적으로 이동시키며 트랙을 이끌어간다. 글리치한 사운드가 한쪽에서 자그맣게 출발 잠깐 사라진 뒤 조금 달라진 모습으로 은근한 매복을 감행하다가 문득 다시 사라지고, 다른 쪽에서는 앰비언트한 사운드가 그 스스로의 주파수 속에서 잔음을 더욱 길게 늘이는 여정을 천천히 이어나간다. 이 둘이 결국 하나의 트랙 안에서 동시에 펼쳐질 때, 각각의 사운드가 평행하게 진행되며 순간순간마다 달라지는 접점에서 “Gravity”만의 떨림이 발생한다. 이 떨림은 안쪽에서부터 전체를 뒤흔들기 위한 도구로서 사용되는 떨림이 아니라, 일종의 마찰열처럼 두 사운드가 맞닿을 때 발생하는 아주 자그마한 떨림이다. 하임은 그 주파수를 세밀하게 조정해나간다. 이보다도 더 은근하게 이를 탐구하는 다음 트랙 “Ground”가 “Gravity”와 함께 제목처럼 [NOWHERE]을 위한 중력과 대지를 만들어주면, 바로 여기이자 그 순간이 지나면 아무 곳도 아닐 모든 공간에서 걸으며 움직이고, 무한하게 돌고 도는, 사운드의 공간이 만들어진다. 이제는 그 공간의 단면에서부터, 하임의 떨림이 울려 퍼지고 있다.​ | 나원영 onezero9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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