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P의 ‘정전’이라 할 만한 곡들을 거슬러 올라가면 머나먼 1996년까지, 심지어 현진영의 1992년까지 고구마 줄기처럼 뽑혀 나올 것이다. 하지만 “Next Level”은 이들보다는 당장 발매 시간차가 반년도 되지 않는 보아의 “Better”와 더 가깝다고 느껴진다. 이것은 “Better”가 아와(AWA) “Like I Do”의 베이스라인을 샘플링해와 트랙의 주축으로 삼은 것, 그리고 “Next Level”이 동명의 <분노의 질주: 홉스 & 쇼> OST 트랙을 ‘리메이크’하며 트랙의 입출구로 삼은 것 사이의 유사성에서 착안한 생각이다. 물론 두 트랙이 원곡을 SM엔터테인먼트의 세계 안쪽에 포함시키는 방법은 다르다. “Better”은 ‘심플한 비트 위에 여러 아이디어를 조합’1한다는 유영진식 작법을 따라 “Like I Do”의 베이스라인을 ‘심플한 비트’로 삼 탑 라인과 트랙의 진행에서 본격적으로 ‘여러 아이디어를 조합’한다. 새로 만들어진 몇 개의 브릿지와 후렴구의 멜로디는 원곡보다 훨씬 더 다이내믹하게 오르내리며, 후렴구로의 도입을 확실히 알려주는 효과음이나 새로이 추가된 현악기, 자그맣게 울리는 펑키한 전기기타, 심지어 유영진 본인의 코러스까지 추가된다. 그 결과 “Better”은 원곡의 미니멀하고 묵직한 그루브의 매력을 유지한 채 ‘SMP’적인 장식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그에 비해 “Next Level” 사정은 많이 다른데, 여기서 다시금 “Next Level”이 SMP의 25(+a)년짜리 전통과 연결되는 접점을 찾아볼 수 있다. ‘심플한 비트 위에 여러 아이디어를 조합’한다는 아이디어는 여기에서 차라리 심플한 비트 ‘다음에’ 여러 아이디어를 조합하는 꼴이 되었다. 단순하기에 탄탄한 골조 위에 풍부한 장식들을 더하는 게 아니라, 2분 51초짜리 트랙을 ‘심플한 비트’로 사용하고, 그 중간에 아예 50초짜리 ‘여러 아이디어’들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여기서 특기할 점은 “Next Level” 원곡에서 가져온 구간들은 (물론 아이돌 팝의 ‘쪼’에 맞춘 발음의 강세나 넷으로 늘어난 보컬의 화성 등이 들어가는 정도를 빼면)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곧 “Next Level”은 끌어온 원곡을 “Better”처럼 재료이자 구성요소로서 써보는 것보다 아예 일종의 도구로서 원곡을 빌려오는 것에 가깝게 느껴진다. 닝닝과 윈터의 훌륭한 브릿지 구간에서는 원곡의 심플한 비트가 유지되는 것에 비해, ‘비트 드랍’이 시작되고, ‘Nævis’가 ‘Calling’을 하며 진입하는 구간에서는 원곡에서 급작스럽게 이탈하며 아무래도 익숙한 유영진-SMP의 세계에 잠시 들어갔다가, 당혹감이 사라지기도 전에 방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원래의 비트로 돌아온다.

솔기를 매끄럽게 처리하며 자연스럽게 전개되는 낙차의 즐거움을 뽑아내든, 혹은 반대로 노골적으로 봉합선을 드러내며 인위적으로 충돌시키는 낙차의 재미를 드러내든, 적어도 이제까지의 SMP는 특유의 ‘자연스러운 불연속성’을 각 트랙마다 어울리는 방식으로 다듬어냈다. 하지만 “Next Level”에서 그 충돌과 낙차는 상대적으로 무척 성기게만 들린다. 원곡 자체는 SMP적 롤러코스터의 레일로 사용하기에는 조금 밋밋한 편이고, 그렇다고 이 위에 “Better”처럼 화려하고 꼼꼼하게 새로운 사운드를 뿌려 놓은 것도 아니며, 새로이 추가된 구간 또한 다이내믹함을 강조하기에는 깔끔하고 매끄럽기만 할 뿐이다. “Next Level”에서 SMP적인 ‘낙차’는 단 하나의 단순한 이유 – 이 두 구간이 그 어떤 마땅한 인과도 없이 맞닿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처럼만 보인다. 그것이 전혀 충격적이지 않은 것은 SM엔터테인먼트가 이전에도 비슷한 그 ‘인과 없는’ 성질을 훨씬 더 정교하게, 혹은 뻔뻔하게 사용해왔기 때문이다. 그 덕에 SMP의 내력을 어느 정도 체화한 청자들에게 “Next Level”은 25년짜리 비법서의 대표적인 레시피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할 것이다. 그 비법서에 담긴 트랙들을 굳이 전부 다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는 SM엔터테인먼트나 SMP의 역사 그 자체와 거의 동일할 테니까 말이다.​

​흥미로운 동시에 걱정이 되는 것이 바로 이런 부분이다. “Next Level”이라는 트랙 자체는 원곡과 새로이 추가된 부분만을 ‘하나의 트랙’ 안에 병치해놓았을 뿐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나타나는 결합적인 성질, 닝닝/윈터의 출중한 보컬 라인, 지젤/카리나의 인상적인 랩, 알 수 없는 개념들을 동원한 유영진의 가사 등에서는 과거의 SM 트랙이라는 ‘레퍼런스’가 연상되며, 이는 일종의 ‘SMP 찾기 게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든다. 나는 SM이 2010년대 중반 이후부터 주로 신인 그룹들을 통해 ‘현재의 SMP’를 선보일 때에, “분명히 2010년대 중후반에 맞게 SMP의 과거를 재조합했지만, 25년간 이어진 방법론의 후대로써 시간과 어쩌면 아이돌 팝 시스템 자체라는 제한을 맞닥뜨린 것 같”2다는 인상에서 여전히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SM 엔터테인먼트의 진화 과정이 점점 평탄해져가 정체되어, 이전만큼의 입지도 상당히 줄어들었으며 새로이 등장한 청자와 창작자 모두 그 스타일에 익숙해진 상황 속에서”3 기존의 공식들을 다시금 재발명할 필요성이 요청되는 때에, “Next Level”은 비인과적인 결합들을 한 트랙에서 다듬을 수 있는 정밀하고 태연자약한 편집 기술 없이, 가장 최소한으로만 필요한 재료만을 최소한의 구간들에 덧대어 놓은 것 같다. 현재의 열정적인 케이팝 청자들에게 적응이 되다 못해 일종의 유전자처럼 박혀있는 SMP 인식 능력을 촉발시키고 어떠한 자극을 주기 위해서, 이제는 굳이 90년대 중반 혹은 2010년대 초반처럼 혁신적인 기술 및 공식의 (재)발명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Next Level”이 그 익숙함 속에서 지극히 효과적인 트랙이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Next Level”을 처음으로 들었을 때 나는 그 허한 연결부에 당혹감을 느끼고 고고하게 세련된 새 구간에 아쉬움을 느꼈지만, 트랙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뭐 그럴 수도 있지’ 싶어졌고, 결론적으로 그 아쉬움은 트랙의 매력적인 평평함을 즐기지 못할 정도로 크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 구태여 ‘아니 이게 그래도 좀…!’ 같은 리뷰를 공개하는 이유는, 사실 “Next Level”의 외부를 둘러싼 ‘메타버스’나 ‘컬쳐 유니버스’ 같은 온갖 버즈워드들이 도리어 트랙 자체보다 선행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2020년대 SM엔터테인먼트의 문화적 세계가 거주할 예정이라는 그 ‘KWANGYA’는 내게 그간 SM이 쌓아올린 온갖 음악인들과 그 ‘세계관’의 각기 다른 층위를 모조리 단순한 하나의 평면으로 통합시킨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어떠한 ‘대통합’이기보다는 ‘평탄화’가 아닐까? 그 모습은 어떻게 보자면 SMP가 수많은 부분들을 사용해 ‘하나의 트랙’으로 합치는 방식과도 비슷할 것이다. 다만 그 때 낙차의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던 것은 성질이 다른 각 층들 사이의 높이를 고려하면서 위아래로 ‘다이내믹’하게 움직이는, 종종 트랙의 인과를 무시하며 즐겁게 내달리는 구성이었다. 그에 비해서 효과적인 전환이 오직 양옆으로만 이동하며 일어나고, 전환되는 구간들마저 사실은 선형적인 시공을 영리하게 내파하기보다는 아예 밖에서부터 거칠게 찢어 붙인 것 같은 “Next Level”의 구성은 복잡하고 즐겁게 배배 꼬인 롤러코스터 레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수많은 익숙한 요소들을 매력적이게 짜깁기한 평면도 아니며,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갑작스럽게 풍경만 달라지는 허허벌판처럼 느껴진다. 물론 그러한 황야에는 3차원의 현실에서 그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에스파라는 팀과 멤버들이 빛나지만, 왜인지 원래 존재하던 차원에서 z축이라는 중심을 잃고 특유의 SMP적인 목소리도 잃은 채 광야를 떠돌고 있는 SM엔터테인먼트의 그 ‘언제부턴가 불안해져 가는 신호’ 소리가 더욱 커져가고 있는 것처럼도 들린다.​ | 나원영 onezero96@naver.com

  1. 강명석, 유영진│“나 같은 작곡가가 하나 있는 것도 재미있는 일”-1, 2010. 6. 9
  2. 나원영, 「네오 매시업 테크놀로지」, 『Various Critics Vol.1』, 2020.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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