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둠과 나”는 2021년 5월 7일 음악 비평 워크숍 『Various Critics』를 통해서 최초로 공개되었다. 공개 1주년을 맞이해, 『Various Critics』 및 [weiv]에 무료로 글을 공개한다. 본 칼럼은 『Various Critics』을 통해서도 읽을 수 있다. | 편집장 래퍼들이 만들어 내는 라임의 간명한 역사에 대해 소개하는 “랩의 해체: 사상 최고의 라이머”에서, 비디오 저널리스트 에스텔 캐스웰(Estelle Caswell)은 커티스 블로우(Kurtis Blow), 라킴(Rakim), 노토리어스 B.I.G.(The Notorious B.I.G.), 모스 데프(Mos Def), 안드레 3000(André 3000), 에미넴(Eminem),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랩을 소개한다. 영상은 래퍼들이 어떻게 영리한 방식으로 자신의 랩에 라임을 더하는지, 그리고 라임이 역사를 거치며 어떻게 그 복잡성과 기교를 더해 가는지를 짧지만 또렷하게 다루며, 그 분석은 비록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더라도 다음 명제를 지지하는 것처럼 유도된다. “가장 솜씨 좋게 라임을 삽입하는 래퍼가, 좋은 힙합 음악을 만들어낸다.” Vox, “Rapping, deconstructed: The best rhymers of all time” 중 이런 이야기에서 MF 둠(MF DOOM)을 빼는 것은 신성모독일 것이다. “그는 다음절 라임 구절을 무더기로 사용하고, 많은 경우 라인 하나를 통째로 라임으로 채운다. 이것을 홀로라임(holorime)이라 한다.” “MF 둠은 라임과 비트의 힘을 이해하고 있으며, 그것을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조작한다.” “That’s That”과 “Meat Grinder”에서 뽑아온, 두 라인을 가득 채운 라임을 화면에 띄우며 캐스웰은 설명한다. 모스 데프와 오픈 마이크 이글(Open Mike Eagle)이 둠을 향해 샤라웃(shout-out)을 날리는 것을 보면서, 나 역시 그의 라임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다시금 느꼈다. 아니, 느끼고 싶었다. 1. [Madvillainy]는 내가 처음으로 산 힙합 앨범이었다. ‘힙합이란 음악이 존재하며 그것은 흥겹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게 해 준 것은 에미넴과 넬리(Nelly)였지만, 이들의 음악을 인터넷에서 알음알음 찾아 듣던 2002년의 나는 음악의 즐거움은 알면서도 앨범을 사서 듣는 재미는 잘 모르고 있던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비싸기도 했다). 없는 용돈을 쪼개면서 음반을 모으기 시작했던 건 3년이 지난 뒤였고, ‘희귀한 해외 인디 음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그 무렵의 나에게 한 해 전에 나왔던 매드빌런(Madvillain)의 언더그라운드 클래식은 꼭 사서 들어 봐야 할 레코드로 다가왔다. 사실 [Madvillainy]을 처음 들었던 경험이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앨범을 사 가지고 돌아오는 길에 무시무시한 가면 속에 비치는 그늘진 눈을 주얼 케이스 너머로 바라보며, ‘언더그라운드 힙합’이란 게 에미넴 같은 유명한 래퍼의 힙합과는 어떻게 다를지를 상상해 보았던 기억은 분명히 난다. 그 뒤, [Madvillainy]을 그 한 해 동안 수십 번은 넘게 돌려 들으며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공습처럼 쏟아지는 “Raid”의 신시사이저와 랩 구절들, “Accordion”에서 담담하게 울리는 아코디언 소리를 잠시 정차시키는 둔탁한 베이스 드럼, “Figaro”에서 능청스럽게 ‘Una, Duociano’라고 소프라노 같은 추임새를 넣는 둠의 목소리, 몽롱함을 구현하는 “Eye”에서의 스테이시 엡스(Stacy Epps)의 목소리, “All Caps”의 뮤직비디오, ‘오늘은 좋은 날이 될 것 같아Looks like it’s gonna be a great day today’라는, 낙천밖에 없는 듯한 “Great Day”에서의 둠의 첫 라인, 박수갈채가 끝나도, 아나운서의 나레이션이 끝나도 이 앨범은 끝나지 않는다는 듯이 자신의 루프를 이어 나가는 “Rhinestone Cowboy”에서의 매들립(Madlib)의 비트… 그 ‘소리’들은 나에게 힙합이 어떤 즐거움을 가진 음악인지를 가장 생생하게 알려주는 사례였다. 당시 함께 빠져들었던 앨범들 – [Funeral], [Turn On The Bright Light], [I Can Hear The Heart Beating As One], [Yankee Hotel Foxtrot], [Franz Ferdinand], 그리고 보니 모두 록이었다 – 과는 달리, [Madvillainy]에서 소리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단숨에’ 도약을 거듭했다. 정해진 뮤지션이 정해진 악기를 가지고 균일하면서도 선형적인 소리의 집합을 구성해 나간다는, 그 당시 내가 받아들였던 ‘앨범’이란 단위의 미학적 공식은 [Madvillainy]에 적용되지 않았다. “Shadow Of Tomorrow”의 불길하고 긴박한 기타 샘플 다음에 이어지는 건 ‘라이프세이버 작전을 바로 지금 개시한다!’는 선언과 함께 두웅 하고 울려퍼지는 “Operation Lifesaver AKA Mint Test”의 웅장한 드럼이었고, 그 웅장함은 전혀 웅장하지 않은 ‘The Magnificent! (스크래치) The Magnificent! (스크래치)’란 외침과 함께 “Figaro”로 연결된다. 보글거리는 거품처럼 둠의 랩 사이로 끼어드는 잡음 같은 샘플들은 덤이었다. 종잡을 수가 없었다. 왜 노래가 이렇게 시작했다 이렇게 끝나지? 왜 전혀 다른 곡에 들어갈 법한 소리들이 여기서 이렇게 – 매끄럽게 – 연결되지? 랩, 랩을 읽어 보면 뭔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소리들의 중심에는 어쨌든 MF 둠의 랩이 있을 터였으니까. 그런 기대를 가지고 어렵게 찾은 둠의 가사는 나를 오히려 더 큰 혼란 속으로 밀어넣었다. 지금보다 영어 능력이 훨씬 못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둠이 [Madvillainy]에서 늘어놓는 랩들은 단어가 눈에 들어옴에도 그것이 합쳐져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는… 그런 종류의 것이었으니까. ‘Tripping off the beat kinda, dripping off the meat grinder / Heat niner, pimping, stripping, soft sweet minor’ (“Meat Grinder”) 같은 문장을 보면서 나는 커다란 물음표를 띄웠다. 이게 해석이 가능한 종류의 가사인가? 내가 슬랭을 너무 몰라서 머리에 안 들어오나? …[Madvillainy]를 들으며 느꼈던 최초의 감상을 정리하면 대충 위와 같을 것이다. 당시에는 가사의 의미를 위키 형식으로 알려주는 지니어스(Genius)도 없었고, 이 앨범을 이해하는 데 조금 더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가 있었을지도 모르는 국내 힙합 커뮤니티도 몰랐었다. 샘플링이란 작법이나 미국 내 흑인 문화처럼 앨범의 맥락을 파악할 수 있을 만한 지식도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도, 둠이 힙합을 듣는 사람들에게 가장 상찬받는 부분인 가사, 그리고 라임에 대해 소리만큼의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은 어째서였을까? 그것은 어째서 나에게 직관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라임이라는 ‘사후적’인 즐거움 힙합을 듣는 이들에게 있어 ‘MF 둠의 라임이 대단하다’는 건 너무 당연해서 이야기할 가치가 없는 사실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그렇지만 여기에 한 가지 의문, 그것이 ‘어떻게’ 대단한가 하는 질문을 추가하면, 거기에 확실하게 답하는 것은 갑자기 어려운 일이 된다. 현재 시점에서 이에 대한 한 가지 쉬운 답변은 유튜브에 ‘MF DOOM rhyme’이란 검색어를 친 다음 갖가지 색의 라임으로 하이라이트된 둠의 곡을 들어보는 것이다(그의 라임은, 정말 빽빽하다. 다른 래퍼를 다룬 영상과 비교해보자). 하지만 라인 한 개, 아니 여러 개를 통째로 채우고 있는 홀로라임을 지켜보면서 나는 여전히 그 ‘어떻게’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다고 느낀다. 라임이 정말 많네. 대단해. 그런데 이것만으로 정말 충분히 설명이 돼? 사실 둠의 랩을 들으면서, 그리고 [Madvillainy] 이후로 접했던 수많은 힙합 앨범을 들으면서, 나는 라임이 특별히 힙합을 듣게 만드는 강력한 음악적 즐거움이라고 느꼈던 적이 없다. 둠이 자신의 라이밍을 (라임 자체의 연속에 있어서든 가사의 의미에 있어서든) 트랙 속에서 얼마나 뽐내는지를 생각하면, 그리고 래퍼와 랩을 듣는 이들 사이에서 라임이 얼마나 중요한 기술적 요인으로 여겨지는지를 고려하면, 이건 라임 추진 유탄(‘RPG, rhyme propelled grenade’, “Rap Ambush”)에 폭사당해도 할 말이 없는 감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돌이켜 봐도, 내가 힙합에서 느끼는 즐거움은 라임의 기발함과 랩의 의미가 아닌 소리의 창발적 구성에 그 방점이 찍혀 있었다. 랩과 거기서 파생된 라임은, 내게 있어 그 의미를 따지기 전 소리를 이루는 많은 요인 중 하나일 뿐이라는 위치를 점한다. 여기에는 라임이 ‘분석’의 대상이라는 나의 인식 역시 영향을 끼친다. 보통 라임은 ‘듣자마자 바로 알 수 있는’ 종류의 음성적 재료로 받아들여지고, 실제로 둠의 꽤 많은 라인은 그냥 스쳐 지나갈래야 지나갈 수 없을 정도의 높은 밀도로 같은 운을 반복하며 소리적인 효과를 만들어낸다(“More Rhymin’”의 0:15에서 ‘o’와 ‘ay’ 발음을 활용한 홀로라임, “Figaro”의 1:28부터 시작되는 ‘o’와 ‘il’ 발음을 연속하는 홀로라임이 좋은 예일 것이다). 하지만 라임의 토대를 형성하는 기초 단위는 발음 – 그리고 거기서 파생되는 음고, 음색 등의 요인 – 이라는 음향물리적인 단위만이 아닌, 단어와 언어라는 의미론적 단위가 함께 결합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힙합에서의 라임이란 음악적 재료를 이해하는 데는 음성적인 토대를 기반으로 하되 언어라는 별개의 차원이 가동되어야 하며, 이것은 라임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데 있어 일정 수준 이상의 분석과 훈련, 그리고 언어적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방금 내가 “Lactose and Lecithin”에서 들은 ‘아이퍼iper’ 라임이 ‘cypher’였나, ‘hyper’였나, 아님 ‘viper’였나? (‘viper’ 하나 빼고 땡~ ‘Piper’, ‘diaper’, ‘wiper’였다) 그 모든 과정은 사후적이다. 우리는 영어 랩의 라임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 다른 언어와 문화적 맥락을 넘어서고, 가사를 일일이 뜯어보면서 음절의 발음을 맞춰야 하고, 여기에 아티스트가 해당 단어를 사용하는 고유의 맥락이라는 숨겨진 베일도 고려해야 한다. 가사를 다시 한번 일일이 살펴보면서 이러한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꽤 즐거운 일일지도 모르며, 거기서 더 나아가 그렇게 분석한 라임으로부터 어떤 미학적 효과를 도출하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이러한 사후적 작업은 일종의 소격 상태, 소리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처음에는 분명 라임이라는 소리와 리듬의 담지자에 집중하려 했던 것 같은데, 분석을 끝나고 남은 것은 가사라는 무음의 매체에 여러 가지 기호로만 남아 있는 라임 다발들이다. 왜 라임에 대한 분석은 소리로부터 분리된 채로 끝나는가? 이 위화감은 어떻게 하면 극복되나? 위화감이 중첩을 거듭하던 어느 순간부터 나는 힙합을 들을 때 라임을 내려놓았다. 다행스럽게도, 그것은 힙합에 대한 흥미를 잃게 만드는 걸림돌이 아니라 힙합을 좀 더 유연하게 감상하도록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퓨처(Future), 미고스(Migos), 구찌 메인(Gucci Mane), 와카 플라카 플레임(Waka Flocka Flame), 치프 키프(Chief Keef) 등 트랩(Trap)으로 시작해 멈블 랩(Mumble rap)으로 이어지는 2010년대 힙합의 새로운 조류를 이끈 아티스트들은 어떻게 하면 가사를 잘 쓸 것인가 하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더 들썩이는 뱅어(banger)를 만들지를 고민한 흔적이 더욱 뚜렷하게 느껴지는 음악을 만들었다. 에미넴, 스눕 독(Snoop Dogg), 제이 콜(J. Cole), 그리고 이들을 추앙하는 ‘힙합 리스너’들이 가사의 단순함과 라임의 빈곤함을 비난했지만, 나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너무나도 즐거웠다. 바보 같은 트리플렛(triplet)과 애드립이 반복을 거듭하며 중독적인 비트와 맞물릴 때, 거기에는 일종의 최면적 즐거움이 자리를 깔고 드러누워 있었다.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라임을 내려놓지 못했다. 인빈시블(Invincible), 리틀 심즈(Little Simz),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사바(Saba), 빅 K.R.I.T. (Big K.R.I.T.), 웨스트사이드 부기(Westside Boogie) 같은 훌륭한 스토리텔러이자 라이머들이 거침없이 랩을 풀어놓는 것을 듣는 것은 여전히 강렬한 경험을 불러일으켰다. 아무리 소리에 집중한다고 해도, 라임의 즐거움을 사후적으로 체득하는 것이 지루함을 야기할지라도, 힙합에서 여전히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라임과 워드플레이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라임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나를 뚫고 들어올 때 느끼는 감흥을 애를 쓰며 무시하고 싶지는 않았다. 둠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알려진 12월 31일 이후로 며칠 동안 그의 음악과 가사를 다시 돌이키며, 라임에 대한 내 양가적인 감정에 있어 그가 점했던 특이한 지대를 생각해 보았다. 그는 그 어떤 래퍼보다도 집요하게 자신의 가사에 라임을 박아넣지만, 그 빽빽한 라임으로 구성된 가사는 어떤 선형적인 스토리텔링이나 래퍼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살리기에는 지나치게 분절적이고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와해되어 있다. 가사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가 펼치는 라임의 상당수를 느끼지 못하고 지나가게 될 것이지만, 라임을 확인하기 위해 가사를 들여다보는 순간 이 무너진 의미들의 미궁에 갇힌다. 내가 처음으로 들었던 힙합 앨범을 만든 이 악당은 세상을 떠나면서 다시 나에게 수수께끼를 안겼다. 이러한 의문을 편하게 내려놓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라임이라는 것을 대하는 데 있어서, 딱히 단어에 의해서 추동되는 의미를 읽으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그 단어들의 음운 사이에서 발생하는 리듬감과 말맛, 그것을 즐기는 것만으로 미학적 의의는 충분할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예술 작품을 대할 때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해불가능성을 인정하는 방향일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점까지 포함해서). 그렇지만 단순히 그렇게 편하게 납득하고 넘어갈 수 없는 이유는, 라임을 이런 식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앞서 설명했던 라임에 대한 사후적 분석의 근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둠이 ‘더 좋은 라임이 더 좋은 곡을 만들지 / 잘 지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많은 게 아니라’1라고 “Rhymes Like Dimes”에서 랩한 것은, 단순히 둠의 랩 안에 얼마나 많은 라임 다발을 집어넣는지를 센 다음 “이렇게 라임이 많고 그 연결도 기발하니 둠은 대단하다”라고 단순한 결론을 내리는 이들을 긍정하기 위한 것이 아닐 터이다. 나는 둠이 이 라임을 통해서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를, 여전히 알고 싶다. 하지만 그런 의지를 가지고 둠의 랩으로 돌아가는 순간 막막함이 나를 가장 먼저 사로잡는다. 다시 위의 라인으로 돌아가서, 그는 왜 돈을 의미하는 다른 많은 표현 방식 대신에 ‘got a lot of what it takes just to get along’이란 표현을 썼는가? 그건 <1933년의 황금광들> (Gold Diggers of 1933)이란 뮤지컬 영화의 삽입곡인 “We’re in the Money”의 가사 중 한 부분을 따온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돈 속에 있네 / 우리는 돈 속에 있네 / 우리는 잘 지내기 위해 필요한 게 아주 많지…’2 둠의 가사가 담은 레퍼런스는 대중문화에 대한 오타쿠적(혹은 “Figaro”에서의 표현대로, ‘똑똑한 너드’적) 깊이로 가득하고 그것을 발굴하는 것은 분명 재미있지만, 그 점은 동시에 그의 가사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끝도 모를 아득함을 전달한다. 내가 그의 가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더 나아가, 이런 식으로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파고들고 매달리는 것은 결국 라임을 기계적으로 분석하는 것과 그리 큰 차이가 없지 않을까? 2. “켄드릭 라마나 에미넴, 안드레 3000 같은 아티스트가 라임을 통해 아주 생생한 스토리를 전달한다면, MF 둠은 마치 초능력을 사용하는 악당처럼 그의 빽빽한 라임을 활용한다.” – 에스텔 캐스웰, “랩의 해체: 사상 최고의 라이머” 중 나는 왜 이런 어려움을 겪는 걸까? 이 글을 쓰는 3개월 동안 둠의 가사를 멍하니 지켜보면서, 나는 어떤 식으로든 그에게서 실마리를 잡았다고 여긴 부분이 손 안의 모래알처럼 바스러져 내려가는 경험을 수없이 반복했다. 그가 랩을 통해 그리는 이야기 속에서 나는 항상 길을 찾았나 싶다가도 잃어버리기를 반복했고, 라임들은 그런 나에게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로 재잘거리듯이 스쳐지나갔다. 둠이 랩한 내용을 주제별로 나누어 돌이켜 본다. 라임 스킬에 대한 자랑, 우정, 동생의 죽음에 대한 추도3, 70-80년대 슈퍼히어로 애니메이션과 괴수 영화에서 따온 샘플링만으로 이루어진 사운드 콜라주, 가면과 정체성, 망한 데이트(그리고 그 곡에서 아파니 B(Apani B)가 말하는 것처럼, 어쩌면 ‘종교, 정치, 세가, 체스, 뿌리, 문화, 힙합, 스컹크, 마리화나’까지)… 어쩌면 내가 둠의 가사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가사 자체의 의미를 해석하기 어렵다는 문제뿐만이 아니라, 이런 산발적인 주제에 대해서 전체적인 상을 그리기 어렵다는 점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나의 곡 속에서 양자 어뢰를 날리는 <스타 트렉> 속 우주와 ‘애들이 사람을 죽여도 별일 없는 것처럼 평온한 브루크남4’을 넘나드는 빅터 본(Viktor Vaughn)5은 해당 곡이 수록된 [Vaudeville Villain] 속에서 마약을 사러 동부주립대를 나와 퀸즈(Queens)로 가거나, 강도질하는 방법을 친절하게 알려주면서 션 존(Sean John) 수트에 지린 것처럼 떠는 사람을 비웃거나, 자기 동키콩 게임을 로커에서 훔쳐간 9학년들을 잡으러 간다(물론 각각의 곡들은 여기서 쓴 문장 하나만으로 요약되지 않는 무수히 많은 시공간을 넘나든다). 마치 프랙탈처럼, 라인의 산발성은 곡의 산발성이 되고, 곡의 산발성은 앨범의 산발성으로 이어진다. 그건 다른 래퍼들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설령 콘셉트 앨범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똑같은 레퍼토리와 테마를 가지고 주구장창 돌려 막으며 곡을 만드는 래퍼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랩을 잘 한다고 여겨지는 래퍼들과 비교했을 때 내가 MF 둠의 랩에서 위화감을 느끼는 부분이 있는데, 그는 기묘할 정도로 서사가 중심이 되는 랩메이킹을 피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랩을 잘 한다’는 것의 기준은 단순히 라임과 워드플레이의 스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스토리텔링을 진행해 나가는 능력을 의미하는데, 음악 저널리스트 마틴 코너(Martin Connor)는 내가 느꼈던 위화감을 좀 더 정돈된 언어로 아래와 같이 정리한다. “내가 라임 장벽rhyme barrier이라고 부르는 게 있다 – 래퍼는 랩을 시작할 때는 아무 단어나 고를 수 있다. 하지만 그 단어로 라임을 친다고 하면 이제 단어 선택에 있어서 라임이 맞는 것으로만 골라야 한다는 제한이 발생한다. 나한테는 라임 장벽을 얼마나 잘 넘어가느냐가 얼마나 좋은 래퍼인지를 가르는 기준이다. 정교한 라임을 계속해서 드랍하면서도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가? 하지만 둠은 이런 각본을 뒤엎는데, 이는 라임 장벽에 대한 그의 접근이 기이하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그는 복잡정교한 라임을 드롭하기 위해서 일관된 극적 내러티브를 희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보통의 경우라면 이것을 래퍼의 단점이라고 판단하겠지만, 나는 이것을 둠 고유의 스타일이라고 본다.” – 마틴 코너, “래퍼 플로우 대백과 – MF 둠 분석 (Rapper’s Flow Encyclopedia – MF DOOM Analysis)” 중 창작자, 청자, 비평가, 교육자를 막론하고 라임과 서사를 적절하게 결합하는 것은 좋은 랩을 판단하는 데 있어 가장 이상적인 기준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보이며, 때로는 “이야기가 말이 되어야 한다. 라임이 맞는다고 아무거나 집어넣을 수는 없다. 스토리도 맞아야지”라고 말한 쿨 G 랩(Kool G Rap)의 경우처럼 라임보다 서사를 우선시하는 의견도 찾아볼 수 있다.6 이러한 일반적 인식은 내가 가사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보이는데, 랩을 따라갈 때 뚜렷한 서사가 존재하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깊은 인상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에미넴의 “Lose Yourself”나 “Stan”, 그리고 켄드릭 라마의 “The Art of Peer Pressure”나 “DUCKWORTH.” 같은 경우처럼 말이다. 두 래퍼는 ‘라임 장벽’을 솜씨 좋게 넘어가는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 호출되는 사례이며, 나는 이들 곡들의 가사를 살펴본 이래 이들이 그려 냈던 서사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랩 배틀을 앞두고 엄마가 해준 스파게티를 게워 낸 채로 긴장에 떠는 래퍼. 답이 없는 편지에 분노로 가득 찬 채 자동차를 타고 폭주하는 열성 팬. 집을 털고 좌회전과 우회전을 거듭하면서 경찰을 피하는 켄드릭과 친구들. 우연과 업보가 교차하는 안소니(Anthony)와 더키(Ducky)의 만남. 이 모든 서사에서 라임은 거의 희생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 라임을 이루는 단어들이 아니고서는 이런 서사를 만들어내지 못할 거라고 느껴질 정도로 필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라임과 서사가 이루는 필연성에 익숙해진 채로 둠의 가사를 대하는 것이 쉬운 일일 리는 없다. 둠의 가사 속에서 라임은 오직 그 자체로 존재의 이유를 이미 확보한 것처럼 서사에 대해서 거의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으며, 다만 그 라임 다발들로부터 장면이 파생해 나올 따름이다. 장면들… 그것들은 선형적인 연속선을 그리기도 하고 하고, 역순으로 접하기도 하며, 그냥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서사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장면들은 라임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연결된다. 아무래도 둠의 랩과 라임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내 안에서 서사라는 걸 (약간은) 파기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장애물로서의 라임을 극복해 나가는 서사: “Lose Yourself”의 경우 마틴 코너가 가사의 내용과 라임 사이에서 발생하는 상호 제약에 ‘장벽’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충분히 설득력 있는 단어 선정이지만, ‘라임과 서사의 적절한 결합’이란 기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은연중에 라임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생각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장벽’이라는 표현에서 나는 이들이 스토리텔링을 제약하는 장애물로서 라임을 바라보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더 나은 예술적 성취를 위해서 라임이란 장애물을 극복해야 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물론 그것은 라임이 그저 방해물일 뿐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의 반영이 아니다. 많은 창작자들은 실제로 창작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극복해 내면서 작품을 만들고(심지어 둠조차 “라이터스 블록(writer’s block)은 과정의 일부다. 창작이 막히면 그냥 내버려 두고 다른 걸 하는 편이다”라 말한다7), 그 어려움이 대단하면 대단할수록 인상적인 성취가 탄생할 확률이 높아진다. 때로는 결과물 자체보다 그 극복의 과정을 목격하거나 상상하는 것이 더 큰 울림을 줄 때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몇몇 경우에 그러한 극복으로 인해 달성된 성취에 대해서 부담을 느끼는데, ‘극복’이 예술적 성취에 부여한 무게 이외의 무언가를 느끼기 힘든(혹은, 느끼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는 듯한) 결과물 앞에서 그 부담은 좀 더 심해진다. Slim Lyrics, “Eminem – Lose Yourself – [Lyric Video & Colored Rhyme Scheme]” 중 “Lose Yourself”는 이런 나의 부담을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구체화한 예시다. 라임의 양과 체계, 딜리버리, 스토리텔링, 프로덕션 등 모든 면에서 이 곡은 완벽하다. 힙합을 듣는 이들이라면 비장한 목소리로 생생한 묘사와 함께 무명 래퍼의 부담감과 결의를 이끌어 나가는 곡의 서사에 한 번, 그리고 그 서사가 무지막지하게 투하된 라임과 깔끔하게 귀에 박히는 동기(motif)8에 의해 추동된다는 점에 또 한 번 놀랄 것이다. 첫 벌스에서 ‘am’과 ‘ei’ 음운으로 이루어진 1-4번 라인의 라임 체계, ‘o’와 ‘ou’ 음운으로 이루어진 5-8번 라인의 라임 체계, 그리고 나머지 9-16번 라인 내내 ‘ae’, ‘i’, ‘ou’ 음운으로 라임 체계(그리고 동시에 동일한 억양으로 해당 라임 체계에 부여한 동기)를 만들어 내는 에미넴의 랩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거야. 그게 나한테 야유를 퍼붓는 관객이든, 싸구려 트레일러 집이든, 관객들 앞에서 한 마디도 못 떼는 한심한 나 자신이든, 이 모든 걸 담은 서사를 어떻게 랩으로 다뤄야 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라임이든 간에!’ 그 시릴 정도로 완벽하고 생생한 서사는, 그러나 동시에 “Lose Yourself”의 랩에 쓰인 단어들과 라임이 그 서사에 복무하는 것 이외에 다른 식으로 읽힐 여지를 차단하게 만드는 구속구로 기능한다. ‘Oh↗, there↘ goes↗ gra→vity↘ / oh↗, there↘ goes↗ Ra→bbit, he↘ / choked↗, he’s↘ so↗ mad→ but he↘ / won’t↗ Give↘ up↗ that→ easy↘ / no↗, he↘ won’t↗ have→ it↘’라는 중독적인 동기를 지닌 라임 체계의 연속에서, 이 라임들을 래빗의 좌절과 분노, 그리고 독기를 드러내는 수단 이외의 무엇으로 해석할 수 있는가? 그 서사가 거의 모든 단어에 음운 대응을 부여한 조밀한 라임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대단한 점이지만, 역으로 그 ‘필연적’인 관계에서 언어와 라임은 오직 서사라는 지시항을 가리키면서 급격히 평면화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라임들은 서사라는 뚜렷한 옷감을 단단하게 잡아두어야 하는 씨실과 날실로써 붙박힌다. 손바닥엔 땀이 가득하고(palms are sweaty) 팔은 무겁고(arms are heavy) 그의 스웨터엔 토한 자국이 가득하며(vomit on his sweater already) 엄마가 해준 스파게티가 말라붙어 있다(mom’s spaghetti). 이 생생한 이미지들이 (역시 생생한 서사 속에서) 다른 식으로 해석될 틈새는 거의 없다. 극복된 장벽인 라임은 이제 그 곳에 지지대로서 그대로 붙박인다. 이러한 논리가 서사를 중시하는 모든 곡과 래퍼들에게 해당한다고 우기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에미넴처럼 뚜렷한 서사와 조밀한 라임 형식을 결합시킨 류의 가사를 읽을 때 종종 둠이 듣도 보도 못한 형태로 뒤틀린 라임의 순접과 역접을 통해 괴상한 이야기, 혹은 장면의 점프를 거듭하는 광경을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전자의 방법론을 따르는 래퍼들이 은연중에 드러내는 ‘리얼함realness’에 대한 욕망(혹은 강박)로부터 자유롭다. 미국의 문화사학자인 J. 제시 라미레즈(J. Jesse Ramírez)가 말한 것처럼, “인류학자 존 L. 잭슨이 지적했다시피 “힙합에서 리얼함은 가장 귀중한 문화 자본의 형식”이다. 둠은 이와는 반대되는 접근을 제시한다. ‘리얼하게 가는keeping it real’ 대신에 둠은 리얼하지 않게 간다keeps it unreal. 마블Marvel 유니버스에서 닥터 둠은 마법을 부리고, 전기를 내뿜을 수 있으며, 라트베리아Latveria라는 가상의 국가를 지배하는 지도자다. 둠의 공상적인 특성은 듀멀레이가 ‘실제로’ 누구인지 보여주는 대신 그의 몸을 중요하지 않게 만들고, 동시에 그의 가사 쓰는 스킬을 부각시킨다. (…) 그는 ‘그저 맨살을 감추기 위해 마스크를 쓰는’ ‘좀 못생긴 친구’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멋지기 그지없는 라임’을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 J. 제시 라미레즈, “리얼하지 않게 가기: 랩, 레이스크래프트, 그리고 MF 둠(Keeping It Unreal: Rap, Racecraft, and MF Doom)” 중9 서사를 동원하는 래퍼들이 리얼함을 증명하고 싶어할 때, 그것은 래퍼 자신과 래퍼가 늘어놓는 서사라는 두 가지 차원 모두에 대한 재구축의 의지로 작동한다. 그렇게 구성된 ‘리얼한 래퍼’와 ‘리얼한 서사’는 서로를 상호보완하면서 리얼함이란 가치를 증폭시킨다. 둠은 그들을 비웃듯이 마스크를 쓰고 라임을 전면에 부각시킨다. MF 둠, 빅터 본, 킹 기도라(King Geedorah)10 등 다니엘 듀멀레이가 지닌 다양한 페르소나는 서사를 라임이라는 연막 속에 가두며 그것을 듣는 우리가 라임을 직시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 때 라임은 더 이상 장벽이 아닌 통로가 된다. 이해할 수 없는 파편적인 장면들을 연결하기 위한 유일한 이정표가. ‘나’를 버리기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든 랩은 가장pretending이다. 래퍼들이 자신의 음악적 페르소나와 인물로서의 자아 사이의 틈을 좁히려고 얼마나 노력하건 상관없이 말이다. 둠이 특별한 건 그의 정체성이 수행적일 뿐만 아니라, 그가 수행과 실재 사이의 틈을 혼동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둠의 마스크야말로 그 불안정한 틈새다.” – J. 제시 라미레즈, “리얼하지 않게 가기: 랩, 레이스크래프트, 그리고 MF 둠(Keeping It Unreal: Rap, Racecraft, and MF Doom)” 중11 라미레즈는 같은 논문에서 다니엘 듀멀레이가 KMD의 제브 러브 X였던 시절을 거쳐 MF 둠으로 모습을 바꾼 경로를 추적하면서 그의 활동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잡아내는데, 그것은 그의 캐릭터가 발생시키는 불안정성이다. 듀멀레이는 “둠에 대해 3인칭 시점에서 랩을 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둠이 내러티브적 캐릭터고 듀멀레이가 작가라는 점을 청자에게 상기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듀멀레이가 마스크를 벗거나 듀멀레이로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둠 뒤의 퍼포머 혹은 작가로서의 그의 정체성은 불안정하다. (…) 듀멀레이가 설사 둠의 마스크 뒤의 육신이라고 해도, 그와는 상관없이 그는 숨겨져 있고, 찾을 수 없으며, 알 수 없는 채로 남아 있다.”12 이러한 분석은 내가 그(혹은, MF 둠과 빅터 본과 킹 기도라와 슈퍼빌런을 포함한 ‘그들’)의 음악을 파면서 느낀 감각과 맞닿아 있다. 서사를 신경쓰지 않는 라임의 연속이 빚어내는 ‘언리얼함’과 함께 동반되는 것은 그의 음악에서 ‘나’가 지워지는 듯한 인상, 혹은 광경이다. 그 광경은 둠의 음악 속에서 잊을 만하면 등장한다.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고, 또 사라지고 / 빌런 말고 걔의 머리가, 그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아냐 / 만약 그렇다면 그는 대머리 아프리카인이겠지 / 모든 돈을 갖고 튀지, 우주 여행이다’13 같은 과대망상적 헛소리 속에서, 실패한 실험 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내 얼굴… 너무 흉측해! 그 놈이 내가 실험을 서두르게 만들었는데! 이제 전 인류한테서 내 얼굴을 감출 수밖에 없어…’라고 분노하는 닥터 둠의 목소리에서14, 그리고 ‘그 동안 어디 있었지?’라는 물음에 ‘마스크 뒤, 누구도 날 찾지 못하는 곳에서’라고 나지막하게 답하는 모습에서15, 둠은 계속해서 ‘나’를 흐리고 숨어든다. 여기서 말하는 ‘나’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은, 그리고 둠이 정말로 ‘나’를 지우려 한다고 단정하는 것은 사실 무리수일 수도 있다. 다니엘 듀멀레이라는 인간은 가사를 쓰고, 랩을 하고, 직접 혹은 협업을 통해서 대부분의 비트를 만들고, 그런 자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브라가도시오(braggadocio)16라는 원리에 따라 자랑하며, 그런 ‘랩을 못 하는 어중이떠중이 래퍼들과 구분되는 나’는 둠의 음악에서 ‘나’가 가장 확실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하지만 힙합이란 음악과 문화에서 지배적인 규범으로 자리잡고 있는 ‘나’의 강조 – 나를 표현하고, 자기 생각과 실제 경험을 다뤄야 하며, 드레이크(Drake)처럼 고스트라이팅이나 받고 다니면 “왕이라 할 수 없다. 오직 100% 자신의 진실만을 얘기해야 한다”17 – 를 생각해 봤을 때, 둠이 그런 ‘나-중심주의’란 문법을 온전히 따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영 석연치 않다. 둠에게서 ‘나’가 확연해 보이는 순간만큼이나, 그가 자신의 음악에서 ‘나’를 대단치 않은 것처럼 웃어 넘기는 순간이 이어진다. 때때로 그가 보이는 ‘나-중심주의’가 자체 패러디처럼 느껴질 정도로. 힙합에서의 ‘나-중심주의’를 가장 커다란 혼란에 빠뜨리는 곡 중 하나는 “Curls”다.18 둠이 만든 트랙 중에서 몇 안 되는 자전적인 곡, 그렇기 때문에 ‘나의 서사’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는 “Curls”는, 그러나 그 ‘옛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에 있어서 앞뒤가 정확히 이어지지 않는 이상한 방향을 택한다. 거리에 있는 500얼마 달러를 챙겨서 뭘 먹으러 가고, 가난한 사람들한테 랩을 하고, 일곱 살에 떨을 피우고 천국을 봤다고 믿는 망한 참전용사를 만나고, 플라스크 병에 모엣 샹동 샴페인을 담고 수업에 갔다 집에 혼자 있는 애인을 보려고 선생님한테 조퇴를 허락받고… “Curls”의 라인들은 둠이 어린 시절 실제로 경험했을 법한 장면들의 연속이지만, 그것은 특정한 내러티브의 형성보다는 꿈에서 다시 등장한 과거의 기억들이 조각난 몽타주로서 어지럽게 붙어 있는 형상에 가깝다 (진주 목걸이를 한 벌거벗은 여자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날뛰는 모습이나 ‘물을 마시고 싶으면 종이컵을 가져와 / 너가 어디에 입 댔는지 어떻게 알아?’라는 뜬금없는 말은 그런 구성의 파편화를 가속시킨다) 그것이 다니엘 듀멀레이의 기억인지, 다니엘 듀멀레이를 경유해 착색된 둠이란 캐릭터의 기억인지, 아니면 둘 중 누구와도 상관없는 어떤 시선을 통해 잡힌 장면일 뿐인지 나는 의심하게 된다. 이 가사의 ‘주체’는 누구인가? 둠이라는 ‘나’를 이 장면들의 (단일한) 주체라고 상정하는 순간 이 유사 서사의 개연성은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Curls”는 지탱된다. 우리가 과거를 (꿈 속에서든 깨어 있는 동안에든) 꺼내 오는 방식이 “Lose Yourself”와 같은 철두철미한 구축보다는 “Curls”가 들려주는 그것 – 무엇이 언제 일어났는지 확실하지 않고, 잡생각이 끼어들고, 자신의 경험이 아닌 보고 들은 것의 혼동스러운 삽입을 조심스럽게 털어 내는 것 – 에 더 가깝다는 사실에 의해서. 무시무시한 양으로 쏟아지는, 그렇지만 누가 들어도 ‘이것은 운을 맞췄군’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뚜렷한 방식 대신 실시간으로 듣는 이도 미처 다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교묘하게 삽입되어 있는 라임 다발들에 의해서19. 자신이 절대로 경험하지 못했을 과거 속으로 청자들을 데리고 가는 왈디르 칼몽(Waldir Calmon)의 키보드 멜로디에 의해서. 힙합을 들을 때 래퍼 자신의 이야기, 리얼한 감정과 스토리, ‘나’가 확고하게 중심에 자리잡은 세계를 상정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둠과 매들립은 교활하리만치 따뜻한 허구를 건낸다. ‘그의 삶은 마치 민속 전설과도 같지 / 왜 그렇게 뻣뻣하게 굴어, 좀 더 피워야겠구만 이 친구’.20 그리고 “Curls”에서 이어지는 트랙인 “Do Not Fire”, 인도 영화의 화려한 악기들과 <스트리트 파이터 II>의 효과음, 1970년대 흑인 코미디언들의 찰진 목소리가 겹겹이 쌓인 사운드 콜라주가 어지럽게 펼쳐진다. 그 다음 곡 “Money Folder”가 분명한 선언 – 둠의 목소리가 아닌, <다큐멘터리 컬트 악당의 역사> (A Documentary History of the Cult Villains)의 나레이션을 빌린 – 과 함께 시작될 때까지. ‘악당은 다양한 모습을 취한다’21. 생각해보면 그가 ‘나’를 지우는 방식은 그가 타인의 목소리를 다루는 방식에서도 발현된다. KMD 시절부터 그의 프로덕션에는 (그가 직접 만든 비트든 타 프로듀서들이 제공한 비트든) 본인의 목소리 못지않게 영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그리고 다른 음악에서 따온 샘플이 넘쳐났다. 앨범의 제목을 결정하는 목소리가(“Black Bastards!”), 곡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Super!’라는 한 마디가(“Hoe Cakes”), 1960년대 혹은 2370년대의 라운지에서 울릴 듯한 부드러운 루프 속에서 펼쳐지는 서로 다른 영화 속 목소리들의 협연이, 그리고 수많은 다른 목소리들이 둠의 목소리를 대신한다. 아니, 그걸 ‘대신한다’고 볼 수 있을까? 둠 본인은 그 과정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처음에는 그런 조각들이 나한테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져. (…) 특정한 사안이나 주제를 언급하는 한두 가지를 더 찾고, 그것이 계속 쌓여 나가고, 그런 다음 대화에 참여하는 거다. 과정이 끝날 때까지.”22 대화는 타인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나’만이 남아 있는 음악 속에서는 완성될 수 없는 과정이다. 음악 속에서 ‘나’의 서사를 완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모든 음악의 요소가 ‘나’라는 중심점을 향해 빨려들어가는 구조의 형성일 것이다. 물론 그런 건 불가능하다. 소리는 음악가가 자신의 앨범에서 얼마만큼 ‘나’를 드러내길 원하는지와 무관하게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가고 나는 음악가가 추구하는 ‘나’와 상관없이(신경을 안 쓰는 건 아니다) 그렇게 재잘되는 소리들에 끌린다. 둠이 늘어놓은 소리들은, 심지어 자신의 목소리를 포함해서, 그 불가능성을 인정한 것처럼 들린다… 다만 어떤 식으로든, 그 소리들은 연결되어 있다. 위에서 내가 [Madvillainy]의 소리들이 ‘도약을 거듭한다’고 썼던가? [Endtroducing…]과 [Since I Left You]를 접하기 전, 나는 샘플링이 만들어 내는 사운드의 연결성이 어떤 힘을 지니고 있는지를 [Madvillainy]를 통해서 느꼈던 것 같다. 매들립이 그러한 힘을 가장 혼란스러운 형태로 보여주긴 했지만, 그것은 “Dead Bent”와 “Cellz”와 “Fazer” 같은 둠의 다른 트랙들에서도 충분히 나타나는 힘이다. 무엇이든 이어질 수 있다. 무엇이든 연결될 수 있다. 설령 그것이 아무리 말이 안 되는 배치처럼 보이더라도. 설령 그러한 ‘연결’이 단순히 1초 뒤, 2초 뒤, 단방향적인 시간의 흐름을 따라 놓인 것에 따른 단순한 결과일 뿐이라도. 평론가 마크 에이브러햄(Mark Abraham)은 [Since I Left You]에 대해 남긴 평에서 다음과 같이 쓴다. “[Since I Left You]는 장난스럽게 묻는다. “사람 말고 말을 할 수 있는 다른 물건이 뭐가 있을까?” 그리고 답한다. “레코드야.””23 그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나는 레코드의 말을 하는, 말을 거는 힘이 연결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이런 엉뚱해 보이는 질의응답으로부터 다시, 나는 둠이 그토록 빼곡한 라임 형식을 구축한 것에 대해 넘겨짚어 본다. “보통 레코드를 만들 때면 나는 비트를 먼저 만들고, 그 비트가 가사를 위한 영감이 돼. (…) 루프를 먼저 들어보고, 그 루프를 빼내고, 거기다 드럼을 얹고, 808로 다듬는 거야. 많이 손대지는 않아. 오리지널에 최대한 가깝게 유지하는 걸 좋아하니까. 옮길 수 있는 부분이 남아 있을 정도로 유지하고 나머지 부분은 상상에 맡기는 것이다. 그러고 난 다음에 거기에 맞춰서 가사를 쓴다. 단순하게 가는 거지.”24 그는 샘플들이, 자신이 찾아낸 레코딩들이 빚어내는 소리가 서로 간에 연결되는 것을, 그럼으로서 그것들이 말을 하는 힘을 터득하는 것을 모방하고 싶었던 걸까? 바보 같은 인상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둠이 내뱉는 단어와 문장들이 라임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연결되는 광경을 지켜 들으면서 레코딩들이 서로를 연결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느낀다. 그 둘은 ‘가능성’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같은 위상에 오른다. 무슨 말이든 이어질 수 있다. 라임이라는 고리만 있다면. 그 순간, 랩은 ‘나’나 서사라는 닫힌 루프에서 벗어나 자신이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획득한다. 3. 그렇지만 이렇게 생각을 풀어낸 뒤에도, 나는 둠의 음악을 들으면서 둠의 라임에 여전히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 라임들은 래퍼가 흔히 걸고 다닐 법한 체인처럼 반짝거린다기보다는 박자와 박자 사이에서, 피곤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치는 애드립과 먼지가 채 닦이지 않은 듯한 샘플 사이의 어딘가에서 흘러내린 노끈처럼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자리잡는다. 내가 만약 창작자였다면, 혹은 힙합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 노끈이 조금은 더 확실하게 귀를 사로잡았을까? 글을 구상하기 시작하면서 ‘둠과 나’라는 제목을 정했을 때, 이는 둠을 지렛대로 삼아 내가 힙합을 듣는 방식을 되돌아보려는 목적을 지시하고 있었다. 아마 그것은 어떤 자격지심을 내포하고 있었던 것 같다. 랩과 라임은 내가 힙합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서 가장 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랩과 라임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힙합이란 장르를 들을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아니, 하지만 (라임은 차치하고서라도) 비트랑 같이 랩을 하는 것이 만드는 사운드의 즐거움은 부정할 수 없는데, 그러면 생각보다 나는 랩이란 걸 즐기고 있었던 걸까? 그냥 힙합을 계속 즐겁게 듣고만 있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 의문에 대한 속시원한 대답은 의외로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 의문을 대면해 보고 싶었다. 내가 맨 처음으로 세상 모르고 빠져들었던 래퍼/프로듀서를 다시 방문함으로서. 그렇지만(혹은, 당연하게도) 아직도 여전히 잘 모르겠다. 어쩌면 출발선을 잘못 잡았던 걸지도 모른다. MF 둠은 당신이 그에 대해서 많이 알았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더 알 수 없는 곳으로 잠겨드는, 그런 종류의 아티스트니까.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목적과는 영 딴판인 곳에서 (많은 것을 생략하거나 뛰어넘으며) 라임과 사운드에 대한 생각을 풀어낸 지금 이 순간에도, 아직 그 생각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는다. 이 글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에 대해 아직도 정하지 못했다는 게 그 미확신의 반증일 것이다. 2020년 10월 31일에 죽은 사람의 소식이 12월 31일에 공개되었을 때의, 그 기분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라이밍의 진수는 모든 이들을 약간 방심하게off-guard 만드는 것이다.”25 불현듯 ‘Mic Check’이란 목소리와 함께 샤데이(Sade)로부터 따온 감미로운 피아노 소리가 들릴 때,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린다. 둠은 라임을 만드는 방식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으로 저 말을 했지만, 나는 그것이 단지 라임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힙합이 어떻게 랩을, 소리를,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연결시키고 이어지는지에 대해 나는 그의 음악을 통해 처음으로 배웠다. 다음에는 이런 소리가 나오겠지, 라는 방심을 뒤엎는 연결들. 누군가는 그것을 예측불가능성으로 치부할 것이다. 나는 그것을 가능성이라 부르고 싶다. 음악이 제공할 수 있는 가능성. 그렇지만 둠은 그저 부드러운 목소리로 권한다. ‘긴장 푸시고 좋은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 음악을 즐기시길…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 정구원 lacelet@gmail.com “아무래도 우리 지금 당장-“ “하느님 맙소사, 닥치고 좀 들어봐!” (라디오 주파수 소리) “당신, 혹은 당신들도 이 사람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특별한 생물학 물질에 접근할 수 있는 연구소에서 일하는, 치명적인 물질을 만들 수 있는 지식과 능력을 가진 노련한 자. 홀로 작업을 진행하는 내성적인 인간. 이 킬러는 아마도 연구소에서 몇 시간에 걸쳐서…” “음악을 만들지, 친구!” “그걸 음악이라고 할 수 있나?” “그럼!” – 킹 기도라, “Monster Zero” 중26 ‘Better rhymes make for better songs, it matters not / If you got a lot of what it takes just to get along’‘We’re in the money / We’re in the money / We’ve got a lot of what it takes to get along!’다니엘 듀멀레이(MF 둠의 본명)는 제브 러브 X(Zev Love X)란 활동명으로 1990년대 초 랩 그룹 KMD의 일원으로 활동했으며, 그룹에는 그의 동생 DJ 서브록(DJ Subroc)도 함께였다. 1993년 4월 23일 DJ 서브록은 교통사고로 숨을 거두었고, 그 후 KMD는 2집 [Black Bastards]의 표지가 인종차별을 연상시킨다는 논란에 휘말리며 소속 레이블 일렉트라(Elektra)에서 계약을 해지당하게 된다. 이 비극은 다니엘 듀멀레이가 제브 러브 X를 떠나 MF 둠으로 ‘재탄생’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끼쳤으며, 보다 자세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브라이언 콜먼(Brian Coleman)이 [Black Bastards]에 대해 남긴 기록을 추천한다.뉴욕 브루클린과 베트남을 합성한 말놀이MF 둠의 페르소나 중 하나. ‘힙합이 금지당한 평행 차원에서 온 과학자이자 래퍼’이며, <판타스틱 포> 만화책 시리즈의 슈퍼빌런인 닥터 둠(Doctor Doom)의 본명 빅터 폰 둠(Victor Von Doom)에서 이름을 빌렸다. 닥터 둠은 MF 둠의 모티브이기도 하다.폴 에드워즈, 최경은 역, 『하우 투 랩』, 한스미디어, 2011, p. 63MF DOOM, Jeff “Chairman” Mao, “DOOM”, Red Bull Music Academy, 2011곡 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면서 곡의 성격을 드러내거나 중요성이 부각되는 짧은 음형 또는 선율.강조는 본문. 해당 인용문에서 마지막 문장은 “Beef Rapp”의 가사를 인용한 표현이다.MF 둠의 페르소나 중 하나. <고지라> 시리즈의 숙적 괴수인 킹 기도라에서 이름을 따왔으며, <고지라> 시리즈에서 영감을 받아 이름을 지은 MC와 프로듀서들이 뭉친 뉴욕의 힙합 크루인 몬스타 아일랜드 짜르(Monsta Island Czars)의 멤버이기도 하다.강조는 본문.J. Jesse Ramirez, “Keeping It Unreal: Rap, Racecraft, and MF Doom”, Humanities(10, 5), 2021, pp. 6-7‘Disappear, reappear and disappear again / Villain not his hair, he’s no Afro-American / If that’s the case, he’d be a bald-headed African / Taking all the credit and jetted, astral traveling’, “Ballskin” 중‘What have I done to myself? My face is…hideous! He made me hurry my experiment! Now I must hide my face from all mankind. But he will pay. Oh, how he will pay!’, “Doom, Are You Awake?” 중. 해당 샘플은 1967년 방영된 <판타스틱 포> 애니메이션 “Expelled” 에피소드에서 따온 것인데, 재미있게도 거울을 보면서 이 대사를 말하는 닥터 둠의 얼굴은 비치지 않는다.‘Where he been, behind the mask, who can’t find me’, “Rhinestone Cowboy” 중. “Keeping It Unreal: Rap, Racecraft, and MF Doom” pp. 6-7에서 재인용.랩에서 자랑하거나 뻐기는 것을 일컫는 단어로, 배틀 랩에서 상대방을 깔아뭉개고 자신을 드높이는 것과 연결된다. 에소레틱(Esoretic)은 “내 음악의 대부분은 ‘내 랩이 너보다 낫다’는 걸 중시했던 올드스쿨 힙합과 브라가도시오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폴 에드워즈, 최경은 역, 『하우 투 랩』, 한스미디어, 2011, p. 51힙합 그룹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의 故 파이프 독(Phife Dawg)의 말. 고스트라이팅은 가사를 대신 써 주고 공식적으로 크레딧에 올라가지 않는 대필을 뜻한다. Paul Meara, “Phife Dawg Says Rappers “Can’t Claim King” If They Use A Ghostwriter”, HiphopDX, 2015지니어스에서 가사 원문을, 힙합엘이에서 해석본을 확인할 수 있다.“Curls”의 라임에 대해서는 이 영상을 참조하라.‘His life is like a folklore legend / Why you so stiff, you need to smoke more, bredren’, “Curls”‘The villain took on many forms’MF DOOM, Jeff “Chairman” Mao, “DOOM”, Red Bull Music Academy, 2011Mark Abraham, “Top 100 Albums of the 2000s”, Cokemachineglow, 2009MF DOOM, Jeff “Chairman” Mao, “DOOM”, Red Bull Music Academy, 2011MF DOOM, Jeff “Chairman” Mao, “DOOM”, Red Bull Music Academy, 2011“I think we should-“ “Jesus Christ, shut up and listen! (Tuning radio)” “It is very likely that one or more of you know this individual. Someone who’s experienced working in a laboratory with access to select biological agents, with the knowledge or expertise to produce a deadly product. Someone who’s standoffish and works in isolation. A killer who may have used off hours in a laboratory to produce…” “Music, brother!” “You call that music?” “Yeah!” One Response RY 2023.02.15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둠의 노래들은 곡과 가사 모두 즉흥적이고, 몽타주적인 특성이 강한 것 같습니다. 글을 읽고 나니, 둠의 가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익숙하게 들어왔던 노래의 방식으로 접근하기보다는, 미술관에 걸린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제나 테마를 통한 연속성은 존재하지만, 각각의 이미지는 완전히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들으니 곡의 전체적인 이미지가 좀 더 잘 그려지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이 글 덕분에 둠의 가사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힌트를 얻어 가는 것 같아서 기쁩니다. 응답 Leave a Reply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CommentName* Email* Website Δ
RY 2023.02.15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둠의 노래들은 곡과 가사 모두 즉흥적이고, 몽타주적인 특성이 강한 것 같습니다. 글을 읽고 나니, 둠의 가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익숙하게 들어왔던 노래의 방식으로 접근하기보다는, 미술관에 걸린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제나 테마를 통한 연속성은 존재하지만, 각각의 이미지는 완전히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들으니 곡의 전체적인 이미지가 좀 더 잘 그려지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이 글 덕분에 둠의 가사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힌트를 얻어 가는 것 같아서 기쁩니다. 응답